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기적

등불지기 2024. 8. 29. 18:21

우리의 삶은 기적으로 가득차 있다

 

기적

 

양자역학에서 전자(electron)는 원자의 결합과 분해를 통해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핵폭탄급 에너지는 양성자와 중성자 안에 ‘핵력’ 혹은 가장 강한 힘이란 뜻의 ‘강력’의 형태로 숨어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에너지인 열과 빛은 대부분 전자의 움직임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물질의 형성과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보면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전자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그 수많은 기적을 직접 재현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호흡하고 느끼며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기적이다.

 

물질은 모두 원자로 이뤄져 있으므로, 물질 표면이란 전자의 구름이다. 우리 몸과 컴퓨터 키보드 모두 표면은 전자의 구름이다. 만진다는 행위는 그런 구름끼리 접근하는 것이다. 손가락 표면을 만드는 전자구름과 키보드 표면을 만드는 전자구름이 접근하려 해도, 양쪽의 궤도는 이미 전자로 채워져 있으므로, ‘전자구름’끼리 겹쳐지는 일은 실현되지 못하고, 손가락은 키보드의 표면 바로 앞에서 멈춘다. 이런 원리로 발생하는 힘을 ‘축퇴압’(degeneracy pressure)이라 부른다. 우리가 물체를 만질 수 있는 것이나 물체끼리 부딪쳐서 반발하는 것도 축퇴압 덕분이다. 이것이야말로 물질이 입자 같은 이유다. 만일 전자가 ‘보손’이었다면 축퇴압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물체는 마치 유령처럼 서로 맞닥뜨려도 그냥 통과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전자가 보손이라면 전자 대부분은 에너지가 가장 낮은 궤도에 들어가서 원자 자체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주변의 물체가 형태를 유지하고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전자가 페르미온인 덕분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우리들의 삶 또한 기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양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쓸수록 ‘신기하고 신비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양자의 세계로 구축된 현실 세계는 그야말로 기적으로 충만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날마다 보는 빛은 그 자체로 기적이 아닌가! 우리의 몸이 원자로 되어 있는데 그런 우리가 사물을 보며 만지며 촉감을 느끼는 것이 기적이 아닌가! 우리가 숨을 쉬면서 대기 중의 공기를 호흡하는 것과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우리 몸의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이 기적이 아닌가!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자신들이 가진 과학적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면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현대 문명인들이 혜택을 누리는 핸드폰을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이것이 ‘일상’이라고 말하겠지만 양자역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1927년 솔베이 회의 때만 해도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로 현재 최신 스마트폰을 가져간다면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해서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그 모든 기적적인 현상들은 양자역학적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많은 것들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기적이 아니라 일상인 것처럼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 일상이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면 과학적으로 이해가 된다면 믿겠는가? 믿음은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선택일 뿐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수많은 기적들을 본다. 모세의 손을 통해 애굽에 내린 그 재앙들을 보라. 광야에 물이 없어 부르짖던 이스라엘에게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것을 보라. 원자의 구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면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선지자들이 왕들 앞에서 행한 기적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은 화학적 성질을 바꾸는 것인데 원자와 분자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눈먼 자를 보게 하고 듣지 못하는 자를 듣게 하고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는 것과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기적 또한 원자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원자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고 붙들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기적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을 때 영혼과 몸이 분리된다고 했다. 영혼의 존재 역시 양자역학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몸은 원자의 세계로 돌아가고 우리의 의식세계를 구성하는 영혼의 존재는 원자 자체가 소멸되지 않는 것처럼 소멸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분해되어 문자 그대로 먼지 한 톨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뜨거운 열을 가하면 금방 신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은 분해되고 원자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영혼이 양자정보의 형태로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가 다시 새로운 육체와 결합하게 되는 부활의 사건을 왜 믿을 수 없다고 하는가? 신체가 먼지로 돌아간다면 먼지에서 신체로 재구성하는 것은 원자의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식은 죽 먹기와 같을 것이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에 기록된 그 수많은 기적들이 쉽게 다가온다. 내게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의 기적을 믿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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