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구하라(Time Redemption)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나 공간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개념이나 공간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양자세계를 창조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물질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즉, 양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입자로 나타나고 그것이 질량을 가지게 되는 순간 시공간의 곡률을 만들어 내는데 신체를 가진 인간이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은 10년 동안 어떻게 중력을 자신의 이론에 접목을 시킬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궁극적인 돌파구는 시공간이 역동적이고 휘어질 수 있으며, 여러분과 나는 이런 곡률 효과들을 ‘중력’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영감의 열매들을 지금 우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특수상대성이론은 중력이 없는 고정되고 평평한 시공간에 관한 이론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곡률이 중력을 생성하는 역동적인 시공간에 관한 이론입니다. 두 상대성이론 모두 뉴턴역학의 원리 일부를 대체했는데도 고전이론으로 간주합니다. 물리학자들에게 고전적이란 말은 ‘비상대론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양자적’ 의미입니다.
양자의 세계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관측되지 않는 원자의 세계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양자의 세계에서는 빛보다 빠른 공간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존재하는 거시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빛보다 빨라 움직일 수 없다. 빛으로 만들어진 만물은 절대 속도인 빛에 비해 모두가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또한 시간을 감지하는 이유는 중력의 영향 때문이다. 중력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다. 중력으로 인하여 시공간이 생겨난 거시세계에서는 단지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뿐이다.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이 죄를 범하면서부터 시공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양자의 세계와 물질세계, 그리고 천체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만드셔서 다스리게 하고자 하셨으나 인간은 속임수에 의해 그 고귀한 지위와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최초의 성전이었던 에덴에서 추방당하여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아야 할 시공간이 혼돈에 빠지기 시작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고, 공간과 연결된 시간조차 원래 사람에게 놀이터와 같은 것이 폭력을 휘두르는 감옥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사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가 악하기 때문에 시간을 구원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
세월을 아끼라고 했을 때 ‘아끼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엑사고라조’인데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사라’(buy from)는 뜻이다. 영어로 말하면 Redeem your time 즉 시간을 구하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아담의 죄와 타락으로 인해 아담의 통치를 받아야 할 시공간이 혼돈과 악에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대로 대충 살게 되면 삶은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감옥에서 태어나서 감옥 안에서 살아가는 죄수와 같다. 그러한 시간이란 감옥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탈출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시간이란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고 ‘시간을 구원하는 것’이란 시간이란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실행하는 것이다.
1994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제목은 Shawshank Redemption 즉, ‘쇼생크 구원’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시간에 관하여 좋은 비유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팀 로빈슨)는 아내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쇼생크라는 끔찍한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감옥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하거나, 때로는 자살하기고, 어떤 이들은 나름대로 웃고 떠들며 살아간다. 그러한 감옥에서 앤디는 탈옥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감옥이란 상황을 자신을 위한 기회의 공간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자신의 무죄함과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 내려고 결심한 주인공 앤디는 20년간 탈출을 준비했고 마침내 성공하게 된다. 그동안 감옥에서 앤디를 만나 우정을 나누었던 또 다른 주인공 레드(모건 프리먼)는 앤디 덕분에 자신의 인생에 다시없을 최고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드는 가석방된 다음 앤디가 남긴 편지를 찾아내어 읽는다.
친애하는 레드에게,
만약 당신이 이 편지를 읽는다면 당신은 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여기까지 왔다면, 아마도 당신은 좀 더 멀리 가려고 할지 모릅니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그 마을의 이름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지요?
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일을 도와줄 좋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이 오는지 지켜볼 것이고 체스판을 준비해 둘 겁니다.
기억하세요. 레드.
희망이란 좋은 거예요. 어쩌면 가장 좋은 것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요.
나는 이 편지가 당신을 찾아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친구,
앤디로부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시간은 악명 높은 쇼생크와 같다. 시간이란 감옥은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할 따름이다. 우리는 모두 이 감옥에서 태어나서 이 감옥에서 살다가 이 감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시간과 함께 우리를 둘러싼 공간 즉, 자연세계도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고 시간과 같이 폭력적이다. 이 영화는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에 대해 아주 좋은 비유를 제공해 주고 있다. 모든 인생이 시간이란 감옥에 갇혀 죽음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가운데 아무 죄도 없는 한 사람이 오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시공간이란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 주셨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터무니없다고 코웃음 치며 비웃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고 그를 따랐다. 레드는 단지 감옥에서 앤디를 만나 그와 우정을 쌓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에게 놀라운 기회가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인생 최고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와 우정을 나누고 그를 내 인생의 친구로 삼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시간의 감옥에서 탈출하였다. 그는 지금도 시간 밖에서 살아 계신다. 그는 우리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우리를 위해 체스판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에서 앤디는 가끔씩 이름이 없는 엽서를 감옥에 있는 레드에게 보냈다. 마찬가지로 놀라운 구원의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 의해 온 인류에게 전해지고 있다. 길은 모두에게 제시되었고 찾아가는 것은 시간의 감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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