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살리는 신학, 무너뜨리는 신학

등불지기 2024. 9. 3. 16:08

 

 

종종 저에게 "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물어봅니다. "왜 꼭 신학을 하고 싶은지..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분들의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하나님 혹은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입니다. 

이 경우 신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문교부에 등록이 되고 일반적으로 모든 교회에 널리 알려진 신학교(교단/비교단)에 입학하여 배우는 것이 있고(formal study), 또는 개인적으로 독서를 통해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informal study). 물론 평소 출석하던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거나 열심히 출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신학'을 배우는 non-formal study가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신학을 공부하든 간에 신학공부 그 자체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순수한 동기로 신학교에 입학한 많은 분들이 첫 학기에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은 신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에 의해서만 가능한 은총입니다. 오히려 '학문성'을 강조하는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어떤 지식은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왔는데 신학교에서는 이상한 '비평학'을 가르칩니다. 그럴 때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가졌던 성경에 대한 믿음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힘과 지혜까지 신학교에서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신학생 스스로의 몫입니다. 

 

둘째,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경우 특별한 신학교육을 사역자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유교문화권인 아시아권에서는 대체로 일정한 신학교육을 받는 것을 사역자가 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가운데 소명이 확인이 된다면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 지원하여 공부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먼저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사역)을 위해 자신이 누려왔던 그 모든 안정감(직업, 재정, 등등)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지 거듭 확인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혹은 극심한 가난과 재정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수하면서라도 그 일을 하여야만 하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지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크게 점검한 다음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였다면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교회를 이단과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교회를 진리의 체계 위에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이 진리 안에서 바로 서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을 분명하게 마음에 새긴 다음에 신학공부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배우게 될 지식이 교회와 공동체를 세우기는 커녕 오히려 무너뜨리는데 쓰여질 수 있습니다. 신학은 교회를 살리고, 세우고, 견고하게 하는데 쓰여져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채, 단지 지식만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거나 신학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신학을 제대로, 올바르게 공부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째, 신학을 공부하므로써 교만해진다면 그것은 신학을 잘못 배운 것입니다.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였다면 하나님 말씀의 세계 앞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부족하며, 초라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반면, 배웠다고, 조금 새로운 지식을 알았다고 다른 형제들을 비난하고 공동체성을 해치거나 믿음을 무너뜨린다면 신학이 독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신학은 어떤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엇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며, 무식하고, 많이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다면 올바른 앎을 얻은 것이고, 자신을 교만하게 만든다면 잘못된 앎에 도달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름대로의 신학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을 따로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점점 올바른 태도를 몸에 지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살리는 신학, 즉 신학을 올바로 배운 사람이라면 겸손의 미덕을 갖추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자신의 무지함을 알아가는 사람이 참 신학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진리의 터 위에 견고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만은 자신을 파괴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조차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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