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과학, 그리고 우주

퀀텀신학 책을 저술한 동기

등불지기 2024. 9. 4. 16:13

 

이 책은 제가 올해 2월부터 약 6개월 간 작업한 끝에 드디어 이번주 출간이 된 책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제가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만 다른 각도에서 제가 이 책을 저술한 동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1) 처음 저는 이 책을 내기 위해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설교원고나 강의안 등을 충실하게 작성하고 작성한 것을 잘 저장해둡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으면서 묵상한 내용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느낀 점들, 심지어 제가 요리한 것에 관해서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입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데 가끔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는데 그럴 때 연구한 내용을 아내와 딸들에게 나누기도 하고 주변의 지인들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럴 때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조언을 받기도 하는데 조언을 받는다고 무조건 출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에 대한 권유를 받으면 한번쯤 이것이 책으로 나오면 우리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은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한번쯤 생각을 하게 됩니다. 2월부터 관련된 책을 읽고 조금씩 내 생각을 글로 써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조금씩 출판에 대한 권유가 있었는데 출판하기로 다짐하고 출판사와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5월 중순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 글을 한번 읽어보고 괜찮다고 판단하였는지 계약조건을 보내왔고 제가 보기에 가장 무난한 조건을 선택하여 출판을 하기로 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약 2 달에 걸쳐 출판사와 여러번 메일과 통화를 주고 받으면서 글에 수정과 교정을 하면서 글을 보완하고 다듬었고, 8월 말에 최종 출판 승인을 하였고 9월 첫 주에 인쇄와 각 서점에 배포가 된 것입니다. 8월 마지막 금요일에 인쇄가 들어갔고, 9월 2일부터 예약을 받고 9월 5일에 주문자에게 배송하고 6일에 수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저는 제가 믿는 바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15년 동안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제가 한 일은 가난한 흑인 목회자들에게 성경과 신학을 무료로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선교사가 들어가지 못한 마을에 들어가서 클라스를 개척하게 되면 그곳에서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저 혼자서 신학을 가르치고 훈련하였습니다. 흑인들에게 가르친 과목은 성경해석학-묵상이론-신구약66권 개론-강해설교학-목회학-조직신학-교육학-행정학-역사신학-선교학-비교종교학-제자훈련학-영성학 등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시간은 3시간 강의를 약 80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을 듣습니다. 시골지역에는 제 영어강의를 부족어로 통역하는 통역사를 학생 중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강의하다보니 어느덧 제 안에 가르치면서 정리된 저만의 신학체계가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철수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가 가진 신학체계를 한번 정리하고 싶은 열망이 컸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것을 제 딸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첫번 째 동기였습니다. 

 

(3) 저는 새로운 시각과 용어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2월부터 아주 우연한 계기로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제가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선 저의 성향이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제가 쓰는 글의 성격도 수필이나 시보다는 토론과 논쟁을 좋아하는 논설 또는 논문형 타입이었기 때문에 양자역학에 관한 책들을 읽는 것이 다른 어떤 문학서나 철학서를 읽는 것보다 즐거웠습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복잡한 수학적 공식이나 증명은 아직도 제겐 어렵습니다만 그 양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제게는 좋아보였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원리들은 사실 단순하며 많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양자역학의 원리들을 이해하면서 저는 양자역학의 관점과 용어들을 가지고 제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고 가르쳐왔던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진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첫째 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빛이 양자역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하면서 제 생각을 글로써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도와 관련하여 저는 과정신학, 창조신학, 카오스신학,자연신학, 그리고 창조에 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 이를테면 유신진화론과 문자주의적 창조론과의 개념 차이 등에 대해 새롭게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4) 저는 양자역학이라는 최첨단 문명의 영역에 복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제가 화가 났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불교에서도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설명하고 있었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성공주의 그룹이나 심지어 의학이나 심리학에서조차 양자역학을 적극 활용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교계와 신학교들을 보면 이러한 부분에 관하여 너무 미지근하거나 혹은 너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만물의 본질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학문의 세계를 신학이 배척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는 문화에 대해 개혁하고 선도해야 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단절되고 스스로 고립되어 고사되어 가는 모습처럼 보이는 교회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많은 지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방황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과학에 진지한 지성인 크리스챤들을 위해 교회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들은 너무 바빠서 이런 주제에 관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신학교 교수들은 교단의 신학 정체성에 눈치를 보느라 이 주제에 관하여 담론을 과감하게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신학도만이 이 주제로 담론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5) 저는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뿐 제가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또한 신학자들에게도 요구됩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라는 미덕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고 가르치고 있는 바가 진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지라도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과학자도 신학자도 교권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담론, 이야기 소제를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든지 반박하고 반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주장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6) 마지막으로 저는 저의 딸들에게 그리고 젊은 지성인 크리스챤들에게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돕는 것--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의 전부입니다. 얼마든지 다른,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이 각각 나름대로 진리를 말하는데 이것이 서로 모순된다면, 서로를 부인하게 된다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누구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바를 자신의 말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소리를 낼지라도 서로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저에게 좋은 신앙과 신학의 유산을 물려준 선배나 선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 제가 믿고 가르쳐왔던 기독교 신앙, 또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부심이 있다고 계속 낡은 가죽부대에 담아둘 수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소중하다고 여길수록 우리는 늘 새로운 언어로 진술함으로써 개혁하고 또 개혁해야 합니다. 복음은 철저히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복음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급진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김광락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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