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일을 하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루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목사나 선교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대접과 상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 즉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을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선지자들의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조차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자유와 치유를 가져다주었으니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푼 이런 일들조차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설교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일들이 사람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병자를 낫게 하고 귀신 들린 자를 해방시켜주는 일과 같이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돕는 일조차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 사람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 하였던 유명한 ‘사역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책망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도 예수님은 그들을 모르는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잘 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므로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로 낙인찍히는 것 이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일이다.” 우리는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설교를 잘하고, 목회를 잘하며,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놀라운 기적을 행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잘 인도하는 등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성공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게 하였으니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널리 알리는 놀라운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까닭은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였다면 그것은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더욱 높아진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관심이 없어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14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것임을 알게 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감격에 겨워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겠다고 손을 들어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30여 년 전 목사로 안수를 받던 날 감격과 감동이 있어야 하겠지만 제 마음에는 그렇게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한번도 목사가 되라고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를 명령하신 적도 없고, 심지어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라는 명령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제 마음속에 소원을 따라 열심히 산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목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왜 목회를 하지 않았느냐고 심판의 날에 저를 책망하실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제가 “주님 제가 목사가 되어 열심히 목회를 하다가 왔습니다.”라고 한다면 주님께서 “내가 언제 너를 목사가 되라고 했고 목회를 하라고 명령했느냐?” 라고 책망하실 것 같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내가 자랑할 것은 목사가 된 것도 아니고 목회를 하거나 혹은 선교활동을 한 경력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나를 위하여 못 박혀 죽으신 것 외에는 그 날에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저는 남자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땀흘려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도 그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을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까? 현실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과 성경 속에서 주님께서 저에게 하기를 원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6:27)라고 말씀하셨을 때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두라는 그런 말씀일까요? 다른 일은 일체 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만 하라는 그런 뜻일까요?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떤 청년은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목사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는 것이 유리한 것이 아닐까요?” 그 청년의 눈에는 목사가 선교사가 다른 일반인들보다는 믿음을 지키고 신앙생활하기가 더 낫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목사 안수를 받고 30여년이 흐른 지금의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목사나 선교사라고 더 많이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사라고 더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목사인데 그 정도 밖에 안됩니까?’라고 누가 제게 책망하는 것 같을 때가 솔직히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로서 유명해지고, 규모가 큰 교회를 담임하고, 국내와 해외로 많은 일을 하면서 분주하게 다니는 일을 한다고 한다면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데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 그리고 매너리즘에 눈과 귀가 멀어서 자신이 굉장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리스도와 멀어지고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증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자신이 한 일들을 마지막 심판 날에 그리스도 앞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한다고 철저히 믿으면서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이름 있는 목사와 선교사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이란 어떤 일일가요?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일”로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주일예배 때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듯이 주문을 외우는 그런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단지 생각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말의 의미를 히브리식이 아니라 그리스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리스식으로 이해하는 믿음이란 단지 어떤 것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정도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식으로 믿음을 이해하는 것은 보다 깊은 인격적인 교감과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못했다고 성경이 말할 때 그것은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몰랐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성적인 경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란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치시고 세상에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와 인격적인 사귐을 갖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요한일서 1장 6,7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참 믿음에 거하여 살아가는지 아닌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말씀에 대해서 요한일서를 자세히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사귐’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한다는 것은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사귐(fellowship)이란 무엇입니까? 인격적 교감, 교제, 나눔입니다. 사귐이란 결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사귐이란 반드시 쌍방적입니다. 이런 사귐은 반드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어떤 증거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면서 어둠 가운데 생활한다면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니까요. 그래서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어둠 가운데 살아간다면 빛 가운데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믿는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있는 어둠을 몰아내어야 합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이란 하나님께서 인치시고 세상에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일이 쉽다고 여길까요 아니면 어렵다고 여길까요? 연애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사귀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사귀는 일은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있어도 쉬운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관계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2:3-5)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일방적인 앎이 아니라 쌍방적인 사귐과 인격적인 교제는 반드시 서로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이 무엇입니까? 유명한 목사가 되라고 하셨습니까? 성공하여 큰 교회를 목회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3,24)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일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야 우리는 하나님을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삶속에 미움과 증오가 나타난다면 이것은 스스로 거짓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마지막으로 꼭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빛이신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함을 이루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살전4:3-6)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는 자로 부르신 목적은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살전4:7). 거룩함을 이룬다는 것은 산속의 수도원에 들어가서 세상과 등지고 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좁은 의미에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은 성적인 순결입니다. 가정생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곧 거룩입니다. 음란을 버리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의 음란한 풍조를 따르지 않는 것이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거룩함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사귐이며, 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거룩함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러나 연애생활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설레는 일입니다. 흥분된 일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온 세상의 구주와 그리스도로 보내주셨는데 그런 분과 사귐을 갖는 것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큰 착각과 환상에 빠져서 자신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하다가 마지막 심판 날에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책망을 듣게 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자신을 나름 유명한 사역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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