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지파와 도피성
민수기 35장은 레위지파와 도피성에 관한 규례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직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40년 광야생활이 드디어 끝나고 약속의 땅에 진입하게 되는 그 순간입니다. 민수기 33장에서는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지나온 곳들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고, 34장에서는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분배원칙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5장에서는 레위지파가 거처할 곳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레위지파에게는 제비뽑기를 통해 가나안 땅을 분배하여주지 않으시고 다른 12지파 속에 흩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제비뽑기의 방식과 달리 레위지파를 위해서는 각 지파들이 자발적으로 레위인들이 거처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제비뽑아 얻게 된 기업에서 레위인들이 거할 성읍을 떼어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는 한 곳에 모여서 살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12지파가 각기 받은 기업 속에 살도록 흩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하신 의도는 명백해보입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속전으로 선택받아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를 대신하여 성막에서 노동하며 제사장들을 도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섬기는 일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므로 다른 이스라엘 지파와 달리 기업을 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섬김으로써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레위지파를 다른 12지파에 골고루 흩으신 것은 그들의 섬김을 통해 다른 지파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섬김을 통해 이스라엘 지파 전체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헌신과 섬김이 전체 공동체에 영적인 유익을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거룩한 지식은 분산되어야 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12지파 각각의 기업에 들어와 있던 레위인들은 존중받아 마땅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파는 십일조를 비롯하여 레위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성읍과 들을 레위인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이 여기서 나옵니다. 십일조를 드림은 존중히 여기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레이인들의 헌신과 섬김은 원래 자신들의 의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만 전적으로 섬기고 성막에서 노동하는 레위인들을 자신들과 같이 여겨야 했습니다. 그 믿음이 십일조로 표현되어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에게 각 지파는 성읍을 자신의 기업에서 떼어서 주어야 했습니다. 레위인과 지파의 관계를 알면 자신의 기업에서 성읍을 떼어서 레위인들에게 주고, 그들에게 십일조를 주는 것은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비뽑기의 형식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각 지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기업에서 성읍과 들을 선택하여 자원하여 주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35장 1절에서 8절까지 읽어보면, “주게 하라”는 말씀이 10번 이상 나옵니다. 레위인들의 헌신과 섬김 때문에 자신들이 어떤 굉장한 유익을 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레위인들에게 줄 성읍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얻은 기업에서 48개의 성읍이고, 성읍을 중심으로 가로 세로 각각 2천 규빗의 초장이었습니다.
셋째, 레위지파에게 줄 48개의 성읍 중에서 6개를 도피성으로 지정하여 주셨습니다. 요단강 동편에 3곳, 서편에 3곳을 지정하신 것은 접근성을 고려해서입니다. 도피성은 레위인의 성읍으로서 이스라엘 전체에서 불의를 몰아내고 공의를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레위인들의 존재와 삶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 전체가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일에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거하게 될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흘러야 하는 땅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먼저, 악인에 대한 처벌은 매우 엄정히 이루어져야 합니다.(민35:16-21) 악인을 처벌하는 형벌은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으로, 억울하게 처벌받거나 무고한 자가 피흘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가 도피성 제도입니다.(민35:22-28) 억울한 자, 실수로 사람을 해치게 된 자는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에 들어갈 때는 제사장의 재판을 통해 도피성에 거주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의 의무는 재판이 공의롭게 진행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재판을 위한 원칙들에 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민35:30-34) 증인들과 증거들을 잘 따지고 분별해야 하는 임무가 제사장들과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들에게 있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여 피흘린 결과 땅이 아벨의 피를 받아 하나님께 심판을 호소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이 피흘림으로 더럽혀지지 않아야 망하지 않게 됩니다. 레위인들의 존재와 역할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 이스라엘의 긍휼과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레위인들입니다. 레위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구별되어 바쳐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헌신 때문에 이스라엘은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지파들은 레위인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그들의 고귀한 섬김과 헌신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레위인들, 레위지파를 목회자들 혹은 성직자들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레위인의 역할은 특정 소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레위인과 같은 그런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정에서 레위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일반 신자들이 구약시대의 레위인들이 가졌던 거룩한 의무로부터 제외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며, 또한 자신들이 속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세상은 부패하게 됩니다. 빛이 빛을 잃어버리면 세상은 어둠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물론 도피성 제도 안에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영적인 의미를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어야만 도피성을 떠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모든 자,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슬퍼하며 뉘우치는 모든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도피성이 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피성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도피성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적인 의미, 사회치유적인 의미,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는 레위지파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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