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31)
세상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
본문: 계11:14~19
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1: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 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기독교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선언은 가장 장엄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주장 때문에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또한 핍박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왜 이러한 주장 때문에 교회가 핍박을 당해야 했나요? 그것은 세상 나라가 잘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도전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보면 사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전자는 세상 나라에 속한 자들을 의미하고, 후자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개념구도가 아닙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오늘 본문에서 세상나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나라에 속해 있고 우리는 하늘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하나님은 우리를 그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빌1:27)
성경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것은 성경 윤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속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소속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늘에 속한 자이든 가, 아니면 땅에 속한 자인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속한 자입니까? 아니면 땅에 속한 자입니까? 마지막 성경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하고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려울 때를 살아갈수록 우리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로이 받은 천국 시민권에 대한 자부심이야말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게 하는 진정한 원동력인 것입니다. 따라서 삶은 전적으로 자기이해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됨됨이에 대해 관심이 많으십니다. 여러분의 소속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시민권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이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특히 우리는 세상에 신속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하도록 도전 받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우리는 세상이 겪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화’를 보면서 우리의 소속이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각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임하는 진노의 양상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시민권을 생각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된 자임을 잠시 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임하는 진노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찰에 대한 요청입니다. 그냥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냥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것 중에 우리의 관심과 주목을 끌만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보면서 살고 있지만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치 모세가 가시떨기에 불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버렸듯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그냥 읽는 것과 자세히 주목하면서 관찰하며 연구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늘 새롭게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맹목적인 마음과 피상적인 마음은 경건의 훈련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세상에 내리시는 진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히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에 진노가 임하고 있는가?’라고 하면서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니 자세히 보십시오. 관찰해보십시오. 보일 때까지 보십시오. 그러면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셋째 화’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해봅시다. 일곱 인과 마찬가지로 일곱 나팔은 매우 비슷한 구조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 네 번은 자연계에 임하는 재앙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은 영적인 세계에 임하는 재앙을 보여줍니다. 다섯째 나팔소리부터 일곱째 나팔소리까지 매우 특별한 재앙으로 묘사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자세히 주목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우나 그라나 관찰해보면 볼수록 특별한 하나님의 진노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다섯째 나팔소리로 인하여 무저갱이 열리고 귀신들이 출몰합니다. 여섯째 나팔 소리 때문에 끔찍한 대학살과 교회가 짓밟히는 장면, 그리고 증인들이 죽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제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려 불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가 경험하게 될 마지막 화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드디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나팔이 울려 불 때의 광경을 보게 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려 불 때 곧바로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나팔소리에 대한 전체적인 의의를 먼저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음성들이 장엄하게 선언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이 선언은 성경에서 가장 장엄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음성에 감격하지 않을 성도들은 없으며, 이 음성에 낙담하지 않을 불신자들은 없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계속 읽어오면서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 우리는 가슴 벅찬 감흥을 얻게 됩니다. 그토록 고대했던 말씀을 듣는 순간입니다. 가장 속시원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의 아주 중요한 공식을 보게 됩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모든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어둠의 왕국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 나라가 다시 영광스럽게 하나님 나라에 복속되는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요? 세상 나라가 우리 주 하나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나라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선포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십시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가 조만간 미국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해보십시오. 돌에 맞아 죽을 소리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외치며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 이유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매우 독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매우 정치적입니다. 하나님 한분을 ‘우리 주’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 군주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위험한 정치적 집단입니다. 왜냐면 세상 나라가 주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상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결코 핍박이나 미움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소속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사실을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노릇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 그분이 모든 것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살면서 고통을 당하며 핍박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한없는 위로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물질과 쾌락과 같은 세상신들을 섬기며 세상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가는 자들과 스스로 주라고 자처하는 교만한 자들에게는 이 말씀이야말로 분노를 촉발시키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나라가 주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선언에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나라의 백성은 극명하게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결코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회색지대나 비무장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진군해온다고 담대히 선언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군해오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항복하면 그는 새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 지금까지도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곧 구주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심으로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살 때 이렇게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이 선언에 대해 하늘에 거하는 여러분들이 화답해야 할 고백이 무엇입니까? 본문 16절에,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거하는 모든 성도들의 대표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은 모든 의인들의 총회의 대표자들입니다. 결국 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고백은 곧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선언 앞에 우리는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해야 마땅합니다. 이 놀라운 선언 앞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진정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 곧 세상 나라를 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실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경배해야 할까요? 첫째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될 것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은 감사드려야 마땅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우리를 은혜로이 그분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따라서 우리의 소속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우리 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단지 높으실 뿐만 아니라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누가 감히 그분의 주권에 대항할만한 자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지극히 높으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 한분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특권인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셋째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찬양해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은 본문에서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18절을 봅시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첫째, 하나님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단절된 자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남녀노소 차별이 없이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상 주심을 기대하고 살아가십시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최선으로 상을 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자는 언제나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 주심을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상 주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사람의 상 주심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행하실 마지막 셋째 일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일입니다. 여기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누굽니까? 그들은 원수 마귀와 귀신들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의 종말에 대해서는 12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2장부터 우리는 땅을 멸망케 하는 자들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원수 마귀와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까닭은 이방들이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분노를 터트리기 때문입니다.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 진노를 사는 일입니다. 이렇게 이방들이 분노하므로 주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의 왕노릇하심에 대해 잘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편2:1-6)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반역할 때에 하늘에 계신 주께서 껄껄 웃으실 것입니다. 그들의 반역을 비웃으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때에 분을 발하여 진노하심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그들 위에 단번에 높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열방을 유업으로 물려받아 철장권세로 그들을 깨뜨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그리스도와 입 맞추십시오. 그리스도와 화목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결코 하나님께 분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씨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씨름하는 줄을 놓으십시오.
이방들이 분노한다는 말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봅시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하는데 봉사는 하는데 실제로 자기 나라와 자기 뜻을 구하는데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대게는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생각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여러 가지 논리적인 증거를 갖다 대면서 굳게 확신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감정이 쏠린 다음에는 그렇게 쏠린 쪽으로 모든 응답이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성경을 보거나 기도를 하더라도 자꾸 그쪽으로 ‘응답’이 오는 법입니다. 자신의 좋아하는 것에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 같고 확신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을 때 보혜사 성령은 가만히 보고만 계십니다. 인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탄식하시면서 중보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좌절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구 손을 흔들며 불만을 나타냅니다. 왜죠? 자기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인 양 굳게 확신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좌절시키실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일이 여러분의 삶속에 없습니까? 제게는 수없이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닐 때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냉철하게 자신에게 질문해보십시오.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세우는 계획과 마음의 소원,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서 유니온에서 출판된 [하나님의 뜻]이란 책을 한번 읽어보십시오. 저는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앞날의 선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새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거창하게 하고 싶어하는 큰 일이 아니라 날마다 해야 하는 작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감정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먼저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이 진정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난과 실패를 잠시 사용하십니다.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사람은 감정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하나님을 먼저 아십시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서 먼저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빌1:6) 내 마음의 소원이 내가 기뻐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습니까? 대부분은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사용하려고 합니다. 내가 품고 있는 소원이나 계획이 내가 임의대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좌절되고 실패하여도 여전히 불같은 소원으로 남아 있는 가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은 내가 절망하고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아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원, 즉, 육신의 정욕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소원은 조금만 환경이 나빠지면 금새 하나님께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주신 소원인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의 욕심에 따라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한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면 여러분을 높이 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상을 주시며, 또한 멸망시키시는 이 일은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백성들에게는 한없는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울려 불 바로 그 때인 것입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백성과 만나주는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기다림이 끝이 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킵니다. 10장 7절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일곱째 나팔소리가 울려 퍼진 다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선지자들이 미리 고하여 온대로 성취될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에 대한 분명한 환상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환상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위대한 성취의 순간에 하나님의 큰 진노가 다시 한 번 쏟아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려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한없는 위로가, 하나님 앞에 분노한 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지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상 주심과 멸망케 하시는 권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그 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황은 제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됩니다. 최종적인 순간에 심판과 상 주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십시오.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이제는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에게 진정으로 입 맞추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화해하십시오. 하나님과 더 이상 소원한 상태로 계속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평화를 먼저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을 먼저 기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을 위한 나의 뜻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든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견고한 생각의 틀이 하나님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내 생각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결코 하나님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과 씨름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 이상 씨름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생각이 아무리 가상하고 또 고상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화목하고 친밀함을 누릴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화해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진정한 쉼을 얻을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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