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내가 미국 이란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

등불지기 2026. 4. 11. 23:24

 

최근 중동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스라엘 vs. 이란 간의 전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고자 한다. 이 전쟁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내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는 정권을 교체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란을 대상으로 선전포고 없이 선제 타격하여 시작된 전쟁이다.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이 이미 있었지만 핵시설의 완전한 해체와 정권교체를 목표로 핵협상이 진행되던 중에 기습적으로 발발하였다. 미국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공습에 의하여 최고종교지도자인 하메네이를 비롯한 수십 여 명의 이란의 실질적인 지도자들이 일시에 사망하였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끈질긴 저항에 부딪혀 피차간 난항을 겪던 중 파키스탄 수도인 이스라마바드에서 휴전 및 종전 협상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는 뉴스를 오늘 보았다. 

 

나는 이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심을 가지고 면밀하게 뉴스를 챙겨보고 있다.  내가 중동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온 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모든 열방과 민족이 마땅히 경배해야 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발발할 때부터 틈틈히 뉴스를 챙겨보고 있는데 공교롭게 1991년 미국와 이라크 전쟁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신학대학원 졸업반을 다니고 있었는데 미국-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졸업논문을 쓰기로 하고 당시 전쟁에 관련하여 기독교회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1년에 걸쳐 논문을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쓴 졸업논문의 제목은 [여호와의 전쟁에 관련한 신학적 윤리적 관점]에 관해서였다. 그때 당시 내 기억으로는 기독교회들 내에서 종말론 설교가 유행했고, 심지어 다미선교회라고 하는 사이비 단체가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 매스컴에 보도가 되었었다. 그 전쟁 이후 이상하게 기독교 내부적으로 종말론적 신앙이 오히려 약해지는 경향을 보였었다.

 

요즘 나는 주일마다 요한계시록을 읽고 묵상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구속계획(Redemptive plan)이 완성되기까지는 필연적으로 이 땅에 전쟁과 지진과 같은 인위적인 재해와 자연적인 재해가 끊임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뉴스에서 보도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전쟁, 특히 중동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관해서 생각하고 말할 때 특히 교회는 이러한 전쟁이 요한계시록의 어느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적 견해와 주장을 조심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우리에게 어느 때와 징조를 말해주는 암호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나는 기독교 복음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교회역사에 관심이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새로운 것은 없다. 이전에 있던 일이 또 있는 것일 뿐이다. 솔직히 나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11세기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유럽에는 빈곤의 문제, 교황과 왕들의 갈등문제, 영주들의 문제 등 많은 정치적인 문제들이 있었는데 당시 교황은 정치적인 돌파를 통해 교권을 확립하고 동방으로부터 오는 경제적인 부를 획득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지를 이교도들로부터 되찾아오자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그렇게 1095년에 시작한 전쟁은 무려 361년간 지속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크루세이드(Crusades) 즉 십자군 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은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고, 서로간에  결코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주고 받았다. 그것은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게 가장 높은 장애물이 되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당시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일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비방을 받게 만들었다.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 대 이란 간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란은 민주주의 정권에 대한 열망을 담아 시위하는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한 권위주의 정권이 있다. 혁명수비대라는 절대 권력과 금력을 가지고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하마스 헤즈볼라 등과 같은 무장집단을 지원하며 반이스라엘 정책을 펼쳤고, 이에 대해 오래전부터 이를 갈며 벼르고 있던 이스라엘은 무력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여기는 시오니스트라는 극우주의자들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내 보수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로 재선되었다. 이스라엘 시오니즘주의자들의 코드와 미국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전 holy war' 사상이 서로 일치하였다. 뉴스에서 보도하던 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정권을 쉽게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간절한 설득에 쉽게 넘어가 이란 정권을 교체한 최초의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전쟁 버튼을 눌렀다. 결국 이 전쟁의 당사자인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 모두 극우주의자들이고, 이 전쟁은 극우주의자들의 충돌이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는 힘과 무력으로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극우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의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무력으로 세계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는 의도와 달리 세계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길로 가고 있다.

 

이번 이란 대 미국-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역사하는 '(힘과 무력으로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극우주의(extreme right)'라는 강력한 요새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요새는 매우 강력한 사고방식의 한 유형으로서 우리 사회나 가정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이 가진 것(이를테면 석유자원)을 빼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네타나후는 이 전쟁을 통해 자신이 기소당하는 것에서 잠시나마 모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본분을 벗어나 위험한 무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그들은 쉽게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알라를 위하여' 혹은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하여' 혹은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것이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니까'라는 식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한 명분들은 모두 십자군 전쟁 때에 옷과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넣고 욕심과 증오심을 감춘 채 살육 전쟁에 나섰던 성전논리(holy war game)의 다양한 가면일 뿐이다.

 

이런 상화에서 오늘날 기독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대한 경계, 혹은 그러한 식의 해석과 가르침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

2. 극우주의자들의 사상이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

3. 중동 땅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임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될 때까지 이러한 류의 갈등과 전쟁은 더욱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함

4. 그리스도의 복음이 중동 땅에 힘있게 선포되고 영혼들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간절히 중보기도해야 함

5.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정당화하는 '성전논리'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안에 침투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함

6. 미국-이스라엘의 전쟁을 적극 지지하고 옹호하는 몇몇 극우성향의 목사들과 신자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에 경악과 함께 매우 우려스러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화평케 하는 사람들'입. 폭력과 무력을 사용하여 질서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함

7. 이러한 전쟁을 보면서 사람들은 점점 사나워지고 이기적으로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오른 편 뺨을 맞으면 왼 편 뺨을 내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살기를 소망한다.

8. 우리는 남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며 겸손히 회개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고 십자가로 돌아가야 야 함.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김광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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