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잠언3장

등불지기 2012. 3. 4. 23:58

잠언을 묵상하는 분이나 잠언을 연속적으로 강해하려고  하시는 분에게 유익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교인들은 지혜로운 가르침,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간절히 원하고 있지요..

김광락 선교사 올림.

 

 

<3장>

 

●v.1-10: 지혜가 주는 유익을 보고 지혜를 사모하라.

지혜의 본체이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자신을 얻을 때 얻게 되는 유익들을 열거하신다. 본문에는 ‘그리하면’이란 접속사가 5번 나온다.

 

(1)장수하리라(2절)

장수하며 많은 해를 누리게 하리라는 말은 삶의 의미를 알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알고 사는 삶,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은 바로 이 소명을 발견한 삶이 아닌가? 삶의 이유와 의미를 알기 때문에 동시에 ‘평강’을 누린다. 어떻게 이런 축복을 받는가? 어떤 행위에 의해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지혜자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으로 간직하는 태도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2)은총을 받으리라(4절)

은총은 곧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유년기 시절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다. 그것은 예수님의 유년기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즉, 예수님은 “인자와 진리로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자신의 목에 매며 자신의 마음 판에 새기는데” 열심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인자와 진리가 무엇인가? 인자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의 어떻게 행동하심과 하나님의 어떻게 말씀하심이 예수님 자신에게 그렇게도 소중했고 소중했기 때문에 고이 간직하셨고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가신 이유였다. 교회 안에서 누가 가장 사랑스러운가? 열심히 봉사? 내가 볼 때 가장 사랑스러원 교인은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연구하며, 에스라와 같이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이다.

 

(3)내 길을 지도하시리라(6절)

‘네 길’이란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길이 아니라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순례의 길을 말한다. 이 길을 가는 데 있어 지혜가 등불이 되고 발에 빛이 되어주실 것이다. 어떻게 주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이 없이는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하여서 언제 어떻게 곁길로 빠져나갈지 알 수 없다. 지혜자는 그것을 알기 쉽게 말한다. “①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②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③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여기서 지혜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두뇌의 명석함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복음의 중요한 원리는 인간의 지성은 근본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부패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알지 못하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4)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8절)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는 말은 마음의 풍성함을 말한다. 진리를 연구하고 깨닫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한 영혼은 밥을 먹지 않아도 실제로 배가 부르다는 것을 경험하여 알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인생’은 수많은 재물을 모으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 마음을 배불리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복이 임하는가? 이것 역시 열매로서 건강한 뿌리에서 비롯되는 특성이다. 그것은: ①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②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는 말은 그리스도께 진정한 지혜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언제 이 믿음이 필요한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혜가 부족한 자임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 때야 말로 하나님께 ‘지혜를 부어달라’고 부르짖어야 할 때이다. 지혜는 하나님 안에 있으며 내 안에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은 악에서 떠남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더 두려워하는 존재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삶에서 입증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경건은 위선적이며 자기 기만적이다.

 

(5)네 창고가 가득히 차리라(10절)

“창고가 가득히 차고...새 포도즙이 넘치리라”는 말은 ‘자족하는 삶’을 말한다. 빌4:19에 사도 바울은 영광스러운 채움의 약속을 하고 있다.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쓸데없는 ‘채움’이 아니라, 실제적인 ‘채움’이다. 구약의 성도들이 하루 동안에 먹을 만나를 공급받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약속하신다. 그것은 충족한 은혜이다. 받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차고 넘치는 것이다. 어떻게?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는 결과’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열매의 처음을 드리는 것으로 입증된다.

 

●v.11-12: 지혜의 관문을 통과할 때 견디어라.

지혜의 교사는 지혜를 추구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을 언급한다. 지혜는 외견상 책망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싫어하지 말라는 것이다.(11,12절) ‘징계’ 혹은 ‘꾸지람’은 지혜를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책망은 생명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대문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은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이것을 싫어해서 도망가버린다. 그들이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 복음이 그들 자신을 정죄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들이 저들의 죄를 깨우치는 일에 열심을 내기보다는 그러한 그들을 세상적이고 심리적인 방법으로 위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깨닫고 ‘정죄감’을 느끼고 자신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임을 알고 사형수로 선고 당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결코 그리스도를 제대로 발견할 수 없다.

 

●v.13-26: 지혜의 유익을 보고 지혜를 사모하라(II)

지혜의 교사는 계속해서 지혜의 유익을 나열한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는 지각(명철)을 얻은 자는 얼마나 복이 있는가? 그것은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은 정금보다 낫다.” 그것은 “진주보다 귀하며,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우편 손에는 장수가,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다.” 지혜를 얻은 자의 길은 즐거운 길이며, 평강의 길이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무엇과 같은가? ‘생명나무’다. 실제 그리스도께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이셨다. 그는 생명나무로 오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복되다. 그 마음에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복되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지혜로 말미암아 천지를 창조하셨고, 천지만물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19,20절) 이런 점에서 골로새서를 잠언서와 같이 묵상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지혜자이신 그리스도를 만물의 충만으로 보았는데 정확하게 구약에 근거하고 있는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지혜의 교사는 계속해서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 어떤 몸부림을 쳤던가? 그의 서신서를 읽어보라. 구구절절이 그리스도가 배어있지 않는 말씀이 있단 말인가? 그는 그의 눈앞에 그리스도가 떠나지 않게 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우리 “영혼의 생명”이 된다. 그리고 “장식”이 된다. 계속해서 ‘생명’이란 단어가 강조되는 것을 보라. 그리고 ‘길’이 강조되는 것을 보라. 이것을 위해 창세기 3, 4장을 배경으로 염두에 두어야 함을 앞에서 말했다. 이 지식이 우리의 “길을 안연히 행하게” 하며, 가는 길에서 “발이 거치지 아니하도록” 붙들어 줄 것이다.(23절) 이 길에서 누울 때에 (고대근동문화에서 길에서 눕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고, 깊은 잠을 잘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약속이 여기서도 확인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를 사랑하시며 그에게 평안을 주신다.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이다. 갑작스런 두려움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악인이 갑자기 멸망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25절) “대저”(for),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은 성도의 길을 보전하시는 분으로 선포되고 있다.

 

●v.27-35: 두 가지 길--패역한 자의 길과 정직한 자의 길

지혜의 교사는 두 길을 보여주면서 선택할 것을 말한다. 정직한 자(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모습은 이 영원한 가치를 알기 때문에 선을 베풀 힘이 있을 때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않는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라고 하지 않는다. 이웃을 모해하거나 까닭 없이 다투지 않는다.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않고 모방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신은 지혜의 부르심을 받아 최고의 가치인 지혜를 찾아 나선 순례자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역한 자(이익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받을 것이지만, 진리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구도자들(정직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교통하시는 은총을 베푸신다. 악인(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지만 의인(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의 집에는 복이 임한다. 지혜로운 자는 결국 영광을 기업으로 받지만, 미련한 자는 매를 맞고 욕을 볼 것이다. 지혜이신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실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하실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소유한 인생이 얼마나 복된가? 그리고 그분을 무시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는가? 영원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그 길을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라고 말한다. 죄길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로 발을 옮겨 놓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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