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을 읽으며 묵상할 때 성구사전을 이용해서 다른 성경과 같이 병행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음녀'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데
예를 들어,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에 대해서 한번 찾아보십시오.
성경이 '음녀'라고 말할 때는 문자적인 의미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언이 '비유의 책'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비유 안에 감취어진 '오묘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찾아 발견해내는 것이 잠언묵상의 핵심입니다.
<제5장>
5장에서 지혜의 교사는 음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진리를 찾는 제자들(구도자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 중에 하나가 음녀의 존재와 유혹이다. 음녀는 작은 쾌락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길로 접어 들어서라고 길가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음녀는 누군가? 잠2:17에 정의한 대로, 음녀는 (1)소시의 짝을 버린 자, (2)하나님의 언약을 버린 자이다. 음녀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창녀’를 의미하기보다는 쾌락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나, 물질주의, 언약을 무시하는 삶, 등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v.1-6: 음녀에 대한 경고의 가르침
“내 아들아”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구도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음녀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음녀는 ‘달콤한 말’을 하는 데 노련하다. 그러나 입은 달지만 나중은 쑥같이 쓰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죄의 본질이다. 죄는 지을 때 쾌감을 느끼지만 죄를 지은 후에는 후회하게 되는 법이다. 쾌락주의나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마음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 음녀의 발이 어디 있는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간다’ 그 삶의 태도나 방향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쪽이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향락을 추구하는 자는 생명의 길을 발견하지 못할뿐더러 자기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알지 못하는 흑암 가운데 헤메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의 서기관 같은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주의하며 그가 주시는 부요한 이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1절) 그리고 근신을 지키며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제자들은 근신을 지키며 지식을 지키며 입술을 지키며 마음을 지켜야 한다.
●v.7-14: 음녀에 대한 경고(2)
지혜의 제자들은 지혜자의 가르침을 들으며 버리지 말고 음녀에게서 멀리 해야 한다. 그 집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1절)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한다” 음녀를 가까이 하는 자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라. “두렵건대”라는 말이 세 번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 결말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이다. 음녀를 가까이 할 때 주어지는 비극적인 최후가 무엇인가? (1)“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 버리게 됨” (2)“네 수한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됨” (3)“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됨” (4)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한탄하며 후회할 것이다. 그 후회하면서 남기는 말이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후회하는 내용은 다름 아니라 ‘지혜의 훈계를 싫어하고 꾸지람을 가벼이 여긴 것’이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 로 갔고” 데마와 같이 세상을 사랑하여 사명을 떠난 인생의 최후 진술이 얼마나 후회할 것인가를 미리 아는 것이 청년 시절에 도움이 될 것이다.
●v.15-23: 음녀에 대한 경고(3)
이제는 긍정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즉, 언약에 만족하는 삶을 권면하고 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여기서 문자적인 의미는 부부생활에 만족하라는 것이지만 보다 성경적인 의미는 언약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언약에 자족하는 삶이 경건의 핵심이다. 반면 불경건함이란 언약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욕구충족을 위해 다른 곳에서 만족을 구하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축복에 자족하며 거하는 삶이 참된 경건이다.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그 물을 한없이 향유하는 것은 언약을 맺은 당사자의 특권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에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성령의 강물은 개인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 샘’이란 ‘젊어서 취한 아내’를 가리키면서 신앙심 그 자체를 말한다. 즉,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축복을 가리킨다.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그리스도인의 자족은 경건의 기초이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도움이 되나니”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형편에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와의 언약적 축복을 향유함에 달려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즉,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만족하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해야 한다. 그의 품으로 항상 만족해야 한다. 지혜의 제자들로서 “음녀를 연모하며 이방 계집을 가슴에 안는 일”은 결코 합당치 않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길을 다 보고 계신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하나님의 눈을 항상 의식하고 제자들은 음녀에의 길을 멀리 해야 한다. 우리가 생명길로 순탄하게 가는 것은 오직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음녀에의 길을 멀리 해야 한다. 그러나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게 될 것이다. 왜냐면 악인은 훈계를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며, 미련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미련함 때문에, 훈계를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사망’을 당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훈계를 받기를 싫어하는 마음, 곧 미련한 마음(=진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는 피상적인 마음)은 한 영혼을 영적 사망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