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잠언11장

등불지기 2012. 3. 5. 00:31

잠언에서 등장하는 '아비'는 육신의 아비라기보다는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 '스승'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잠언에서 나오는 '자녀'는 '진리를 배우는 제자'이구요..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자에게 '부모와 자녀'의 관계속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을 함께 보여주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오와주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지만 가르치려는 태도를 조심하여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잠언의 말씀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과 저것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고, 비교하고, 분별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 제 11 장 >

 

※ 계속해서 믿음의 길과 불신의 길, 지혜의 길과 어리석음의 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과 하나님을 무시하는 길, 의인의 길과 죄인의 길, 구도자의 길과 정욕을 추구하는 자의 길, 이렇게 두 가지 길이 비교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인간이 얼마나 죄인이며,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으며,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복음의 계시가 이어진다. 이러한 두 가지 길은 요한복음에서 '빛과 어둠‘의 길로, 요한일서에서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로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v.1-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자는 속이는 저울을 사용할 것이다.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행위를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공평한 추를 그가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이익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들이 되지 말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경고한다.

 

v.2- 교만 뒤에는 반드시 욕이 따라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세상을 통치하는 원리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서 지금도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계신다. 교만의 반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경외하는 자)는 지혜이신 그리스도와 멀지 않은 사람이다. 예수님께 나아온 백부장은 이러한 지혜를 보여주었고 또 칭찬받았다.

 

v.3- 하나님의 크신 일들을 연구하고 진지하게 살피는 자는 그 성실함이 자기를 생명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익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에서의 망령된 행실은 자기를 망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생명과 사망의 문제에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v.4-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서 볼 때 재물이 왜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한 가에 대해 알 수 있다. 잠언은 ‘진노하시는 날’을 위해 재물을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의리‘이다. 의에 합당한 삶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베푸는 삶이다. 마25장에 나오는 염소와 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의리가 없었다.

 

v.5- 완전한 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자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없이 하나님 앞에 완전해질 수 없다. ‘칭의’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러나 의를 소유하지 못한 인생은 그 불신 때문에 실족하게 될 것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v.6- 같은 의미가 반복된다. 완전한 자는 곧 정직한 자이다.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 진리에 대해 정직한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재물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는 자(사특한 자)는 악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v.7- 그러므로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게 된다. 그가 평생에 간직했던 소망도 없어지게 된다. 진정한 의인은 죽음 앞에 소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v.8- 의인은 환난을 만날지라도 그 속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악인은 의인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악인은 의인을 위해 존재한다.

 

v.9- 재물을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그 이웃을 향해 험담하며 저주한다. 반면에 의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재물과 그리스도,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

 

v.10- 그러므로 의인이 형통할 때 공동체는 즐거워하게 된다. 그리고 악인이 패망할 때 기뻐한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부강함은 의인의 형통함에 달려 있는 것이다.

 

v.11- 악인은 이웃을 입으로 망하게 하지만, 의인은 축원함으로 ‘성읍’을 흥왕시킨다. 악인의 말과 의인의 말이 얼마나 다른가! 진정한 혀의 권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완성된다.

 

v.12-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이웃을 멸시하지만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자는 침묵할 줄 안다.

 

v.13- 계속해서 언어생활로써 그 지혜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자신이 재판장인양 생각하고 그것을 누설하며 다니기를 좋아한다.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마음이 신실한 자이므로 이웃의 비밀을 숨긴다. 사도바울은 아무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v.14- 그러므로 가정이나 사회의 흥망성쇠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를 모으는가에 달려 있다. 이 지혜는 영적인 지혜이다. 의인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지체하셨다.

 

v.15- '보증‘이 되는 것은 그 말을 하나님처럼 과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 보증하게 된다.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가 누군가? 그는 하나님의 말을 진정 두려워하며, 사람의 약속을 과신하지 않는 자이다.

 

v.16- 이러한 지혜는 존영과 재물에 관련되어 있다. 입술의 덕이 있는 여자가 존영을 얻는다. 진노하시는 날을 기억하는 자가 재물을 모을 자격이 있다.

 

v.17-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곧 이웃을 향한 ‘인자함’을 낳는다. 그것은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잔인함’을 낳는다. 잔인함은 자기 건강에 해를 줄뿐이다. 실제로 잔인함이 얼마나 육체에 독소를 뿌리는가!

 

v.18-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성실하게 일하여도 그 삯은 허무하다. 그러나 눈물로 씨를 뿌린 인생이 받을 상급은 ‘기쁨으로 정녕 단을 거두어 돌아오는 것’이다.

 

v.19-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의를 붙잡는 인생이 생명에 이른다. 하나님의 의를 버리는 자는 사망에 이를 것이다. 잠언은 단순한 처세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생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v.20- 마음에 재물을 향한 숭배로 가득한 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할 수 없다. 세상을 사랑함은 곧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주의하며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행함은 기뻐하심을 받는다.

 

v.21- 16:5을 참조할 것. 그리스도인들은 교제의 원칙을 기억하라. 악인과 멍에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은 언약적 구원으로서 그 자손까지 구원하시는 것이다. 부모가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그 자손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생활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뜻이다.

 

v.22- 외모를 중요시한 나머지 죄를 등한시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외모를 중요시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약) 지혜는 외모나 외관이나 스타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v.23-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인생이 품는 소원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소원이 악을 이룰 뿐이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지 말라.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소원을 품으라.

 

v.24- 흩어 구제하는 삶은 ‘의리’에 속한다. 재물을 모으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어떻게 모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v.25- 그러므로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더욱 풍족하여 질 것이다. 의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남을 윤택하는 자는 스스로를 윤택하게 하는 행위이다. 의인은 점점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

 

v.26- 그러나 구제를 싫어하는 자(의리를 거부하는 자, 마25장의 염소와 같은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이 왼편에 섰는 자들을 향하여 ‘저주를 받을 자들이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임의로 장부를 조작한 불의한 청지기를 부자가 칭찬한 것은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v.27-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지식을 저버리는 자에게는 악이 임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저버리는 자들이 악을 행하게 될 것이며, 악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신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이 생명을 위한 길이다.

 

v.28- 그러나 자기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재물을 의지하는 것과 흩어 구제하는 것은 정반대이다. 구제한다는 것은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재물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의를 알고 의리를 행하는 자는 푸른 잎사귀 같이(생명력) 번성할 것이다.

 

v.29- 그러나 자기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의 소득은 바람과 같다. 미련한 자는 결국 지혜를 가진 자들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믿음 없는 자들을 심판하면서 왕노릇할 것이다.

 

v.30- 의를 아는 인생, 은혜를 아는 인생,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인생은 결국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될 것이다. 잠언에서 ‘생명나무’의 위치가 어떠한지 연구해보라. 요한계시록에서 생명나무의 과실은 승리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다.(계2:7) 그리스도인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두루마기를 빠는 인생이다.(계22:14)

 

v.31- 의인은 이 세상에서 징계를 받는 자들이다. 의인이 이 세상에서 징계를 받는다면 악인은 어떤 결과가 주어질것인가? 의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겸손함 때문에 저 영원한 복락을 얻기 전에 이 땅에서 잠시 징계를 받고 악인은 그 교만함 때문에 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참조설명: 구약의 지혜서와 신약의 관계(=예언과 성취의 관계)

구약의 지혜는 신약의 수많은 가르침의 그림자요, 모형이다. 구약의 지혜는 하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참된 지혜의 가르침을 주셨다. 따라서 우리가 구약의 지혜와 신약의 가르침과 함께 병행하여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잠언의 교훈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 잠언의 교훈은 바울의 서신서에서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고 있는가? 따라서 신약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말씀으로 구약의 잠언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잠언을 비롯한 지혜서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산상수훈, 재물에 대한 가르침, 야고보서, 천국비유의 가르침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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