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에 나타나는 '여인'은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잠언의 '여인'은 생명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필요로하는 모든 '죄인' 모든 '인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 제 14 장 >
v.1-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운다. 그러나 미려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 집을 헌다. 가정의 하나됨은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에 더 의존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디모데가 받은 영향력이 그러했으며, 사도 바울 역시 루포의 어머니를 자기의 어머니로 부를 정도로 영향력을 받았다. 성경과 세계 역사는 어머니의 지혜를 찬양한다. 그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지혜는 생명에 관한 것이다. 이 시대는 지혜를 가진 어머니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이다. 사무엘을 낳은 한나와 같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아내, 믿음의 어머니가 가문을 일으키고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v.2- 자신에게 정직한 자,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정직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는 다름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그러나 작은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긴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제사를 경멸히 여긴 것을 자세히 보라.
v.3- 자신이 미련한 자임을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자는 교만하여지게 되고, 그 입으로 매를 자청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인생은 그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게 된다.
v.4-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귀찮고 힘들어보이는 ‘멍에’와 같다. 이 ‘멍에’만 없으면 자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멍에’ 때문에 얻는 유익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내 멍에는 작고 가벼움이라’고 약속하셨다. 진리의 멍에는 잠간 우리를 귀찮게 할 것이지만 우리 영혼을 영원히 자유하게 한다. 우리는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음을 깨달아야 한다.
v.5- 그러므로 진리의 멍에를 매는 것을 기뻐하는 자는 거짓말을 아니한다. 그러나 이것을 ‘무거운 멍에’라고 여기는 자들은 거짓말을 뱉는다.
v.6- 그러므로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할 것이다. 좁은 길로 가고자 하여도 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에게 ‘명철’(이해력)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이해력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 은총이 없이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지식은 얻을 수 없다.
v.7- 따라서 스스로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 그의 입술에 지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오직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깊이 낮추는 자와 함께 사귀도록 하라. 그를 통해 지식을 보게 될 것이다.
v.8- 그러나 마음이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안다. 지혜의 성령은 우리에게 부르심의 소망을 알려주신다. 그러나 미련한 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그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속는다. 지혜의 성령이 거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이 어느 길을 가고 있는 지도 알지 못한다.
v.9- 그러므로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심상히 여긴다. 그들은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죄성으로 고민하고 근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문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로 불렀다. 사도는 자신의 죄성을 깊이 바라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탄식하였다.
v.10-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은 타인이 알지 못한다. 이처럼 지혜의 즐거움은 오직 그것을 소유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진리를 즐거워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만이 그 즐거움을 바로 이해한다.
v.1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집은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정직한 자)의 집은 흥할 것이다.
v.12- 사람이 보는 것이 항상 올바를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미련한 자임을 말해준다. 사람은 사망의 길을 가면서도 자기가 보기에는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이 필요하다. 지혜의 성령이 그 눈을 밝히 보도록 뜨게 해 주셔야 한다.
v.13- 그러므로 사람은 웃을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행복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 아닐 수 있다. 즐겁게 웃다가 혼자 있을 때 근심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들은 지혜자이신 그리스도가 임하셔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그들에게 진정한 웃음과 즐거움을 주실 수 있다.
v.14- 악인이나 의인이나 모두 자기 방식대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v.15- 모든 말이 다 선한 말이 아니다.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는 지혜가 있다. 지혜로운 자는 모든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신빙성 있는 말인지 스스로 분별할 것이다.
v.16-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악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를 믿는다. 원죄는 스스로 하나님처럼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믿는 자들인가? 당신이 진정 의뢰하는 것이 무엇인가?
v.1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노하기를 속히 한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되며, 악한 계교를 꾀하게 되며, 결국 미움을 받을 것이다.
v.18- 자신이 죄인이며 미련한 인생임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만족한다. 기업은 전 재산이다. 그가 믿고 의지하며 소망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참된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
v.19- 최후의 심판, 마지막 추수의 대에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가끔씩 이런 심판을 행하심으로 마지막에 있을 위대한 심판을 예고하신다. 모르드개 앞에 하만이 엎드러진 것을 보라.
v.20- 가난한 자는 미움을 받으며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다. 진정한 부자는 누군가? 천국을 소유한 인생이 아닌가?
v.21-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복을 받을 것이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복음사역자들이 얼마나 복된가?
v.22- 그러나 악을 계획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성령은 그에게 충만한 은혜와 진리로써 임하셨다.
v.23- 믿음의 수고에는 상급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입술의 말은 매우 위험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v.24-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재물은 면류관처럼 빛날 것이다. 왜냐며 그는 은혜를 베풀기 위해 그것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재물은 그에게 의로움과 상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재물은 다만 그 미련한 그 자체일 뿐이다.
v.25- 이 시대는 진실한 증인, 복음의 증인이 절실히 요구된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진리이다. 이 진리가 사람들의 빛이며 생명이다. 다른 말은 우리를 현혹시키는 것일 뿐이다. (딤전6:3이하 참조)
v.2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지가 있다. 그를 두렵게 할 것은 더 이상 없다. 심지어 그 자녀들에게도 피난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자손들까지도 피난처가 되어주기를 원하신다.
v.27-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샘이다. 성령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신다. 성령은 생명의 샘물에서 흘러나오는 샘물 그 자체이시다. 그 생명수를 마시고 만국이 소성함을 얻을 수 있다. 민족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이 성령의 샘물이 충만히 흐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부흥이 오기 전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v.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점점 많아져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v.29-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노하기를 더디 하게 되며, 그는 크게 명철하다. 그는 진리를 바로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명철과 반대가 바로 조급한 마음이다. 진리에 대한 피상성과 조급함은 죄성의 본질이다.
v.30- 마음의 평화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함에서 비롯되는 은총인데 이것은 육체의 건강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시기와 근심은 뼈의 썩음과 같이 건강에 해를 준다.
v.3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게 되며, 결국 창조주를 멸시하게 된다. 그러나 가나나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근본이다.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응답하심을 얻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v.3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환난에서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죽음까지도 그를 두렵게 만들지 못한다.
v.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문다. 진리는 이해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깨닫지 못하는 자에는 있는 것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다. 깨닫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진리는 무한한 축복을 가져다 주지만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어둠과 정죄감뿐이다. 죄인의 마음 속에 있는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다.
v.34- 그러므로 의는 한 국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회참여가 아니라 죄를 고발하고 영혼들을 회심시키는 일이다.
v.35- 국가에 있어 지혜를 가진 신하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는 은총을 얻을 것이다. 하물며 지혜를 가진 종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받을 은총이 얼마나 위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