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반드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교훈, 거짓 교훈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을 수 십 년 동안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게 하여 주십시오!
에베소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이 중보기도했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함으로써 치유가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핵심입니다.
주님, 저에게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주십시오.
김광락 선교사 올림
< 제 15 장 >
v.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분노를 그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과격한 말을 하게 되고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과격한 말을 삼가야 한다.
v.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식을 베풀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참된 교사는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는 자는 미련한 말을 쏟을 뿐이다.
v.3- 오직 이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시139편 참조)
v.4- 그러므로 온유한 자의 말은 곧 생명나무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기뻐하지 않는 자,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의 말은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온유한 자의 말씀과 생명나무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라. (잠언에서 생명나무와 지혜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보라.)
v.5-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그러나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경계)을 받을 때 슬기를 얻게 될 것이다.
v.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집에는 진정한 삶의 가치가 풍성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소득을 얻어도 진정한 영혼의 만족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v.7-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생명의 지식을 전파한다. 그러나 죄인들의 마음은 정함이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가?
v.8- 경건의 모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형식과 종교는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제사드리는 가보다 어떤 우리가 제사드리는 가에 관심이 많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직한 자의 기도를 받으신다.
v.9- 그러므로 악인의 길은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오직 의를 따라가는 자, 믿음으로 사는 자를 기뻐하신다.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믿음이다.
v.10- 말슴을 배반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말씀은 말씀하신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진리의 도는 견책의 모양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은 자신을 향한 그분의 말씀을 싫어한다. 결국 생명의 말씀(복음)을 싫어하는 자는 스스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v.11- 죽음과 지옥의 세계도 하나님 앞에 숨기우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은 더욱 하나님에 드러나지 않겠는가? 하나님 앞에 감추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v.12- 그러므로 거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 감추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지혜있는 자에게로 가서 가르침을 구하지도 않는다. 니고데모는 가르침을 구했기 때문에 중생에 관한 교리를 배울 수 있었다.
v.13- 진리로 만족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진정한 행복감이 깃들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그 속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심령을 스스로 상하게 할 뿐이다.
v.14- 이해력이 있는 자의 마음은 참된 생명의 말씀을 요구하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미련한 것을 즐긴다. 우리는 참된 분별력을 더해 주실 것을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v.15- 고난 받는 가운데서도,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야곱과 같이 고백할지라도, 야곱은 진리의 말씀을 알아 가는 기쁨이 있었다. 그가 바로에게 축복한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이 진리를 알고 진리로 즐거워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셉 역시 험악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v.16- 그러므로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두려워하면서 사는 것이 근심하는 큰 부자보다 훨씬 낫다.
v.17- 그러므로 채소를 먹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v.18- 그런데 미련한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분을 쉽게 내며, 다툼을 일으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아는 인생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그는 시비를 그치게 할 것이다. 그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v.19- 자기 영혼을 구하는 일에 게으른 자는 가시 울타리에 막혀 결실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묵상하고 진리 앞에 겸비한 자의 길에는 대로가 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다.
v.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지만 미련한 자는 그 낳은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사도 바울은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다.
v.21- 말씀에 대해 무지한 자는 미련한 행동을 즐긴다. 그러나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는 길을 바르게 한다.
v.22-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사가 되신다. 그리스도가 없이 참된 경영이 가능하겠는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난다.(16:1)
v.23- 사람의 기쁨은 그 말의 성취를 통해 얻는다. 자기가 한 말이 이루어질 때 그 사람은 참으로 기뻐하게 된다. 성취되는 말이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16:1을 참조하여 보라.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서 주신다.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은 유우머나 위트의 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때를 이루는 말, 때를 성취하는 말을 가리킨다.
v.24-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을 가게 됨으로써 아래를 향한 지옥길을 피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v.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신다. 하만의 집을 허무신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의 통치는 지금도 계속된다. 하나님은 과부의 지계(landmark)를 정하여 주심으로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신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돌이켜 가난한 자가 되지 못하면, 스스로 어린아이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없다. 예수님께 나아온 부자청년의 경우를 보라.
v.26-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악한 꾀를 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는 모든 말은 정결하다.
v.27- 작은 재리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탐심을 버려야 한다. 탐심과 신앙생활은 함께 갈 수 없다.
v.28-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는 함부로 말을 내뱉지는 않을 것이다.
v.29-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를 하나님이 멀리하시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신다.
v.30- 분명하게 사물을 파악하는 눈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진리를 파악함으로 우리는 복음을 발견하게 되고, 복음의 발견은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해 줄 것이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v.31- 그러므로 생명의 경계를 드는 귀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이다.
v.32- 그러나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책망하면서 회개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을 달게 받는 자가 그리스도를 아는 생명의 지식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