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잠언29장

등불지기 2012. 3. 5. 01:47

< 제 28 장 >

 

※잠언 28, 29장은 주권자가 가져야 할 지혜의 본질에 대해서 많이 가르쳐주고 있다.

 

v.1-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뒤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 양심이 그를 고발하기 때문에 그는 진리를 피해서 자꾸만 도망간다. 그 마음속에는 죄 때문에 생긴 원초적인 두려움이 그를 압박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라 단지 ‘두려운 마음’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어린 아기를 사랑하는 부모는 그 아기가 위험에 처할 때 담대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는 환난 속에서도 사자같이 용맹을 발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서를 보라. 다윗의 담대함을 보라. 모세의 담대함을 보라.(히11:27) 의인이 담대해지는 이유는 자신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의 연약함을 잘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고 했다.(고후12:10) 사도 요한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함”이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v.2- 죄가 있기 때문에 한 나라에 많은 당파와 당쟁이 생긴다. 당파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솔로몬 이후에 주관자가 많아진 것을 생각해 보라. 내란이 발생하는 것은 나라에 죄가 있다는 증거이다.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나라가 회개해야 할 징조이다. 반면에, 나라가 장구할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통치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배워야만 한다.

 

v.3- 힘있는 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하물며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더더욱 견디기 힘든 죄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한 일이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이 있었는가? 공산주의가 그러했다.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힘없는 자들을 압박하는 어리석음을 버할 수 있다.

 

v.4-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율법을 버린 자는 죄를 정당화한다.(롬1:32을 참조)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곧 악인을 대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모든 죄인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사람들로 정죄하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의인과 악인은 서로 동역할 수 없고 멍에를 같이 맬 수 없다. 악인을 대적하는 것은 악인과 다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자체가 악인을 정죄하는 것이다.(노아의 삶 참조)

 

v.5-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당연히 공의를 깨달을 수 없다. 율법을 버린 인생이 무엇이 공의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4절은 5절의 원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폐기론자들도 되어서는 안되고, 율법주의자들도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성취주의자들이 되어야 한다. 모든 율법은 사랑하는 계명에서 완성됨을 기억하여야 한다.

 

v.6- 사곡히 행하는 것은 ‘두 길로 속인다’는 히브리적인 뜻이 있다. 두 길로 속이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은 악한 길로 가면서 겉으로는 선한 길로 가는 척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 의의 길을 정직하게 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위선으로 포장된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눅12장에서 부자의 이야기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라. 부자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을 보라.(딤전6:9f.)

 

v.7-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자를 사귀고, 탐식자를 사귀지 말라. 탐식자들은 정욕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쉽게 율법을 버릴 것이다. 그들은 공의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사무엘의 두 아들, 엘리의 두 아들, 아론의 두 아들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진정한 중심이자 권위로 삼는 자를 친구로 사귀라. 탐심을 숭배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그것은 자기 영혼에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심지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할 것이다.

 

v.8-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은 재산을 흩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는 돈을 빌려주되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이 율법이었다.(출22:25; 레25:35-37; 신23:19; 느5:7,10) 없는 자가 있는 자에게 돈을 빌어가는 것인데 이자까지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재물을 탐하는 자의 재산을 하나님이 흩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이외에 재물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 재물을 치워버리심으로 당신의 주되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기 재산이 되지 않는다. 부자들이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v.9- 사람이 고의적으로 율법을 듣지 않으려고 하면 그의 기도 역시 가증한 것이다. 말씀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또 다른 간음이요, 가증한 행위이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을 고의적으로 어긴 후에 제사 드리겠다고 했지만 그의 제사는 가증한 것일 뿐이다. 기도는 오직 순종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유효하다.

 

v.10- 진리에 대해 합당한 태도를 보이는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미혹하는 자들이 그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미혹한 자들이 불못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미혹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만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정직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은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v.11- 본문의 진정한 뜻은 이것이다: “가난하더라도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부자보다 훨씬 낫다.”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명철은 진리를 이해하는 힘이기 때문에 사람됨을 잘 파악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처럼 진리를 알고 또 사람을 잘 안다.(고전2:10-16; 잠20:5)

 

v.12- 의인이 기뻐하면 은혜와 축복이 크게 임하지만 악인이 득세하면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아합왕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의인들이 숨었는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며 두려워하며 기뻐하고 섬기는 자들이 기뻐하는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될 때 얼마나 좋을까?

 

v.13- 회개의 축복을 생각하라. 죄를 숨기지 말라. 죄는 드러내어야 한다.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고집은 스스로 화를 재촉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자복하고 버리라. 이것이 날마다 긍휼을 체험하며 사는 길이다. (요일1:9을 참조할 것)

 

v.14-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자기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

 

v.15,16- 모든 관원들과 지도자들이여!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는가? 하나님을 떠난 관원이 이토록 무서운 일을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지도자들은 포학을 크게 행할 것이다. 그러나 탐욕을 미워하는 자가 장수하리라는 약속을 기억하라. 관원일수록 탐심을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자신의 자리가 오래가기 원한다면 탐심을 미워하는 것을 보여라!

 

v.17,18- 재리를 얻기 위해서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죄를 짓는 것은 스스로 함정으로 달려가는 모습과도 같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를 말려도 말릴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히 행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고민한 것을 보라. 그러나 오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사곡하게' 즉, 이중 플레이를 좋아하는 자는 즉각적으로 넘어질 것이다. 이중 플레이가 무엇인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닌가?(마6:24) 우리는 악인들이 성공하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성실한 의인들이 실족할 수 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시37, 73참조)

 

v.19,20- 그러면, 성실한 자의 모습은 어떤가? 그는 자기의 토지를 경장할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물려준 조상들의 기업에 충성할 것이다. 그러나 헛된 것(술과 여색과 재리, 등)을 따르는 자는 점점 더 영적으로 곤고해질 것이다. 이것이 아모스선지자가 말한 영적 기갈의 시대의 모습이다. 성실한 자는 곧 충성하는 자이다. 그러나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 부자되기를 힘쓰는 자들은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딤전6참조) 헛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라! 그리스도께서 분노하시는 날에 남아 있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v.21,22- 친분과 인맥을 핑계로 공의를 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리고 작은 이익을 위해 율법의 정신을 어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하나님의 관점대로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 자의 눈은 재물을 얻는 데만 관심이 있을 것이다. 빈궁이 자기에게 임할 줄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v.23-사람을 경책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책하는 자는 아첨하는 자보다 더욱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재물사용을 중심으로 한 의리에 대해서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가? 사회나 공동체 안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기준해서 바른 말로 경책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v.24,25- 본문은 계속 탐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도 죄가 아니라는 것은 멸망케 하는 자의 친구이다. 부모의 것과 자신의 것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마음에 탐심이 가득한 자는 다툼을 일으킬 것이다. 왜냐면 자기 손익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해를 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라. 그가 참된 만족을 얻을 것이다.

 

v.26-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믿지 말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 오직 지혜롭게 행하도록 하라.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뜻을 항상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v.27-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므로 궁핍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다. 참된 공의란 가난한 자들에게 부의 잉여가 흘러가는 것이다.

 

v.28-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많이 망해야 국가의 기강이 바로 잡히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의로운 재판장이 현재 많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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