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잠언29장

등불지기 2012. 3. 5. 01:50

< 제 29 장 >

 

※29장 역시 통치자들이 알아야 할 지혜의 말씀이다. 통치자들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공의로 다스릴 수 있다.

 

v.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할 것이다. 말씀 앞에 고집을 부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세례요한의 책망을 듣고도 완고한 헤롯을 보라. 모세의 책망을 듣고도 완고한 바로를 보라. 책망이나 재앙을 반복적으로 당하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완악함을 뉘우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v.2- 한 나라의 부강함은 의인에게 달려 있다. 무엇을 하고, 어떤 법을 세우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 많아지는가? 의인 한 사람이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

 

v.3- 지혜를 사모하는 제자가 그 스승을 즐겁게 한다. 사도 요한은 자기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쾌락과 이성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 재물을 없이하는 방탕한 삶이다.

 

v.4- 그러므로 왕은 공의(의리)로 나라를 견고하게 한다. 가난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왕의 영화이다. 나라는 이러한 의리(가난한 자를 도와줌)로 부강하게 된다. 그러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v.5-아첨은 이웃을 넘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이웃을 살리는 말이다. 아합왕에게 아첨한 400명의 거짓선지자들을 보라.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을 함으로써 미움을 샀다.

 

v.6- 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노래하고 기뻐한다. 의인이 기뻐하는 이유는 악인의 넘어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기 때문이다. 시4:7을 보라. 그리고 합3:17,18을 보라.

 

v.7-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지식이 있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러한 지식이 없다. 의인은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사정을 이해하는 지식이 있다. 가난한자에 대한 잠언의 교훈은 많다. 잠19:17; 14:31; 21:13; 28:27을 보라.

 

v.8-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할 정도로 분노의 불씨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할 것이다. ‘모만한 자’란 여기서 ‘조롱하는 자들’이란 뜻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말씀대로 사는 의인들을 조롱하는 자들이다. 진리를 비웃는 자들이 사회나 단체에 끼치는 악영향을 말한 것이다. 그들은 단체를 자극하고 선동할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한다.

 

v.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서로 다투는 것은 끝이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즉, 이 싸움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미련한 자는 자기 마음을 믿는 자이며, 남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 자이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과 논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7:6을 참조할 것.

 

v.10-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이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행위가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해할 궁리를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이 존재한다. 어둠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을 미워한다. 왜냐면 자기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 그들은 자신들을 정죄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인이 아벨을 얼마나 미워했는가? 거짓선지자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얼마나 미워했는가? 사울은 다윗을 얼마나 미워했는가?

 

v.11- 어리석은 자는 그 분노를 다 드러낼 것이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한다. 분노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것이다.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여 있다.(렘17:9) 마음의 분노를 다 드러내는 것이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의인들은 잘 알고 있다. 약1:19을 참조할 것.

 

v.12- 관원이 거짓말을 믿고 들으면 그의 하인도 다 악하다. 통치자는 거짓말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부하들을 거짓으로 만든다. 지도자가 진리를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v.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함께 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지으셨다.(잠22:2)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의인에게 비치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골고루 내려주신다.(마5:4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딤전2:4) 하나님은 그들에게 빛을 주시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요1:5)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권고의 역사를 말한다. 교리적으로 말하자면 외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v.14- 4절을 참조하라.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 억울함을 잘 풀어주는 것은 자신의 통치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치자의 권위는 가난한 자의 어려움을 긍휼히 여기면서 그들의 사건을 잘 맡아서 해결해주는 데 있다. 즉, 권위는 섬김에 있지 부림에 있지 않다. 힘이 있는 자일수록 더욱 더 남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것은 섬기라고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은 약자의 편에 계셨다. 언제나 하나님은 세상의 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전1:28)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 사역하셨으며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들을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v.15- 징계와 지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많이 징계를 받은 사람이 많은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징계’의 교훈은 많이 나와 있다.(히브리서 11장을 참조) 징계는 그 죄악성을 엄히 지적하고 책망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복락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징계를 주신다. 형제와 자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곧 그의 죄악성을 엄정하게 다루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v.16- 죄악이 관영한 사회나 국가는 반드시 망한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서 사는 의인들은 그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노아의 경우를 보라. 아브라함을 보라. 이스라엘은 애굽의 멸망을 보았다. 의인은 악인이 심판을 받음으로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v.17- 그러므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징계하라. 그것이 그에게 지혜를 주는 사랑이 될 것이다. 부모는 권위있게 자녀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평안과 기쁨은 참된 복음의 선포에서 시작된다.

 

v.18- 묵시는 ‘계시’ 로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내시는 주권적인 은총을 말한다. 묵시는 교회사의 ‘부흥’과 같이 주권적인 은혜이다. 묵시는 인간이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얻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계시가 없는 시대는 영적 암흑기이다.(시74:9; 호4:6참조) 다니엘 선지자 이후의 400년간의 중간기 시대는 그야 말로 영적 암흑기였다. 이러한 암흑기에 사람들은 제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할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오직 말씀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유익을 준다. 교회는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기다려야 하지만 거기에만 그치면 안 된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회복해야 하며,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해야 한다.

 

v.19- 종은 책임감이 없다. 그래서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식이 없으므로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 나가지 않는다. 종은 노예근성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두고 자율에 맡기면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노예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청지기이며, 하나님의 청지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종과 청지기는 같은 종이지만 그 책임감에 있어서 사뭇 다르다. 종의 의식을 가지지 말고 청지기 의식을 가지라. 보라. 사람이 얼마나 게으르고 나태한가! 사람은 가끔 분발하기 위해서 책망과 규제와 규율이 필요하다.

 

v.20- 잠 17:28과 26:12을 참조하라. 말에 조급하고, 말에 신중하지 못한다면 그는 늘 일을 저지를 것이다. 말에 조급함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1)욕을 당할 것이다.(잠18:13) (2)궁핍해질 것이다.(잠21:5) (3)어리석음을 나타낼 것이다.(잠14:29) (4)범죄할 것이다.(잠19: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그 말에 신중함을 기할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며 권위가 있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말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정한 재판장이심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도움이 된다. 또한 영혼의 정결함을 사모하는 자는 덕스러운 말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한다.(약1:19)

 

v.21- 종은 제 멋대로 할 수 없다. 종은 규율과 규칙을 어길 수 없다. 그러한 종을 곱게 양육하면 방종하고 반항하는 자가 될 것이다. 복음의 종이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산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종’일수록 더욱 더 자제하고 절제하고 근신해야 한다.

 

v.22- 롬1:28-31; 갈5:19-21; 딤후3:2-5;계21:8을 참조하라. 성내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곧 범죄함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v.23- 교만하면 낮아지고, 겸손하면 높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했다.(약1:9)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고 했다. 겸손은 하나님이 계심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기 때문에(시14:1) 교만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일일이 다 찾아서 낮추실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v.24- 도둑과 동역하기로 작정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미워하는 자이다. 그 사실을 직고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패망케 할 것이다. “맹세함을 듣는 것”은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도록 선언당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서하여도 그 죄를 자복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법정에서 맹세함을 들으셨으나 사실대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직고하셨다.

 

v.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시험에 든다. 인간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러나 인간통치자를 두려워하여 그를 의지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인간통치자에게 아첨함으로써 그에게 어떤 도움을 받으려고 시도하지만 그러나 사실 참된 보호는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일의 작정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 던져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마10장)

 

v.26-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과 하나님을 마음으로 인정하는 자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잘 맞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서로 조화될 수 없다. 근본적인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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