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선교지에서의 삶이란

등불지기 2012. 2. 19. 04:29

(1) 한국에서의 삶과 선교지에서의 삶을 비교해보면 이곳에서의 삶이 훨씬 단조롭다. 그리고 외롭다.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나눌 데가 없기에, 가족 외에는, 그러나 아침에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해가 지면 가족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무한한 행복인 듯. 한국의 밤문화가 없는 것이 가족에게는 축복이다.

 

(2) 가장 큰 위기는 재정도 관계도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인 영성의 위기이다. 한국에서는 도전받고 공급받을 데가 많지만 이곳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도와달라고 할 데가 없다. 갈급할 때 누가 와서 채워주는 일이 없다. 오직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혼자서 영의 양식을 찾아 먹어야 한다. 누가 먹여주길 기다리다간 굶어 죽는다. 그래서 더 깊은 영성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영성이 광야처럼 메말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묵상은 선교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다.

 

(3) 한국보다 단순하고 단조롭지만 더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자동차고장, 교통사고, 건강악화, 비자문제, 기타 등등. 그렇기 때문에 기도응답은 더욱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경험한 응답보다 최근 2-3년이 훨씬 더 많고 기억에 남을 듯.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광야로 나가야 한다. 로렌 커닝햄이 말했듯 순종함으로 벼랑 끝에 설 때만 나를 붙잡아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경험한다.

 

(4) 재정적으로 힘들어도 굳이 선교지로 나가려는 분이 계셨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선교지에 와보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위험도 어려움도 문제도 많지만 그럼에도 얻는 것 누리는 것이 참 많다. 그래서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다. 선교사라 불리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행복하고 감사하다.

 

(5) 선교사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사역 다음으로 자녀교육문제이다. 학교에 잘 적응하는지 고민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집 안에서는 영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자주 한국어 책을 읽게 하며 가정예배 때는 성경을 읽게 한다. 한국에서는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한글교육에 관심이 많다.

 

(6) 선교지에 사는 선교사들과 교민(저희가 사는 포체스트롬에는 교민이 10가정 정도) 가정에 있는 아이들 청소년들 청년들을 보면 다들 인사를 잘 한다.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아무래도 예절교육을 시키기엔 한국보단 선교지가 나은 것 같다. 밤문화가 없으니 아이들이 밤에 밖에 나가 탈선할 일도 없고, 한국에서의 문제아도 이곳에 오면 다들 착해진다. 공부 외에 나가서 놀 일이 없으니...

 

(7) 한국의 많은 분들이 선교지에서 사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엄청 많이 들어간다. 아프리카라 노동력은 싸고 농산물은 한국보다 싸지만 공산품은 한국보다 훨씬 비싸며 대중교통이 전무하니 유류비도 많이 들고 전세가 없고 월세만 있는데 검소하게 산다고 해도 월세가 100만원을 육박한다. 교육비는 대도시의 경우 1명당 100만원 가까이 들기도 한다. 단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지역 같은 곳은 교육비가 3분의 1로 줄어들기도 한다. 나름대로 주변의 선교사들 중에서 제일 가난하다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음.

 

(8) 강의사역은 주로 영어로 하고, 간단한 인삿말 정도는 부족어를 구사한다.(줄루어와 수투어, 그리고 쯔와나어 정도) 선교지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대화 토론 의사소통에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점점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어는 그 언어구조상 토론과 대화가 어렵다. 한국문화는 실용주의와 거리가 먼 예술문화민족이다. 선교지에서는 어른에게 존댓말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싫을 때 No! 라고 하면 아무도 마음에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문화에서는 No! 라고 단호히 말하면 거절감으로 상처를 받는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하면 경청해준다. 그러나 한국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공격한다고 느낀다. 한국어는 배울수록 어렵다. 영어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굉장히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9) 한국에서 교회사역할 때는 하지 않으면 한 될 일이 참 많았다. 그러나 선교지에서는 내 분량에 맞게 사역일정을 조정하기에 수월하다. 억지로 하거나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는 것은 사역자에게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10)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선교지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비전과 소명과 은사가 확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지에서의 삶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11) 선교사로서 현지인과 최대한 가까이 지내며 그들과 같이 먹고 자고 일해야 하지만 선교사는 결코 현지인이 될 수 없다. 현지인에게 선교사는 영원히 외국인 일뿐이다. 외국인으로서 받는 고통은 결코 피할 수 없다.

 

(12) 선교사로서 자녀가 많을수록 좋다. 사역하는데도 유리하다. 아이를 보면 현지인들은 마음을 열어준다. 세 아이를 집에 놓아두고 어디 잠시 다녀와도 안심이다. 큰 아이가 동생들을 가르친다. 때로는 큰 아이가 동생들을 불러서 묵상시간을 인도하기도 한다. 하나 혹은 둘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처음에 잠시 힘들어도 나중에는 하나보단 둘, 둘 보다 셋, 셋보다는 넷이 더 키우기 수월해진다.

 

(13) 선교지에서 사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일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교지 나름대로의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겪는 고충을 나누는 것이 덕스럽지 못하기에 말하지 않을 뿐. 어디든 마음고생 없는 곳이 없다. 선교지도 마음고생 나름대로 많다. 지금도 사라져가는 내 머리카락이 그 증인이다.^^

 

(14) 한국에서 수없이 하던 설교를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 큰 아이가 아빠 설교 듣고 싶다고 말할 때 더욱 그랬다. 현지인들에게 강의도 하고 가끔 설교도 하지만 이곳에선 한국어로 설교할 일이 없다. 설교감각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한 때 아쉬운 마음 들었지만 지금은 포기한 지 오래다. 대신 복잡함이 사라지고 단순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인 듯. 현지인들에게 하는 강의도 결코 복잡하지 않다. 책도 단순하고 강의도 단순하다. 점점 단순화되어서 주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15) 주일예배는 현지인 교회에서 드린다. 30여명 모이는 한인교회가 있는데 그곳은 아내와 아이들이 출석한다. 한인교회사역과 선교사역은 그 성질이 많이 다르다. 선교사로서 한인목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한인교회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 교제하고 있다. 젊은 분이라 대화도 잘 된다. 한인교회에 수련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땐 아낌없이 측면지원 한다. 도움을 요청할 땐 언제든지 반응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니까 당연히 잘 되어야 하기에. 그러나 한인교회 목사님이 부담을 가질까봐 한인교회보다는 현지인교회를 출석하려고 한다.

 

(16) 선교지에서 자동차는 발과 같다. 특히 아프리카는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차 없이 사역은 불가능하다. 택시가 있긴 해도 흑인들만 이용하고, 백인이나 한국인이 이용하면 강도를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사역의 특성상 장거리 운전이 잦은데 가깝게는 왕복 2시간, 먼 곳은 왕복 4시간을 다니는데(작년 한 해 동안 98년식 차를 가지고 50,000km를 주행했었다!!) 중간에 차가 고장이 나 서버리면 참으로 난감하다. 한국처럼 전화 한 통이면 견인차가 달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차 정비에 신경 쓴다. 운전할 때도 언제나 타이어상태와 잡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사전 정비가 최고다. 주유할 때마다 엔진오일을 체크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말씀에 대한 지식보다 자동차 정비에 관한 지식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ㅠㅠ

 

(17) 이곳에도 한인들이 있고 선교사들이 있지만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아는 분이 방문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라면, 짜파게티 같은 한국식품과 과자를 맛볼 수 있어서다. 사람이 좋기에 손님대접하기 위해 손님방도 따로 마련해두었다. 다른 교민집은 하숙비를 받지만 지금까지 우리 집에 온 손님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엔 주님께서 백배로 갚아주신다. Praise be to the my Lord!!

 

(18) 선교지에 있으면서 가장 큰 마음이 부담은 무엇보다 부모님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명절이 되면 특히 많이 생각나는데 한국에서처럼 자주 찾아뵙고 문안드리지도 못하고 늘 한국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 가득하다. 한국에 있는 동생네에게는 더더욱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런데 백인들을 보면서 한 가지 배우는 것은 자식을 잘 떠나보낸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길러주고 스스로 살아가게 한다. 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떠나보내고 또 떠나가는 것은 한국인이 배워야 할 듯.

 

(19) 외국에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 한국이 잘 되어야 교민이나 선교사가 잘 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영국과 시간차가 2시간 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것은 프리미어리거에서 뛰는 한국선수(박지성이나 이청용 같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한국에선 잘 몰랐는데 이곳에서 보니 정말 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또 그들이 한국인이라는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20) 선교지에서의 삶이 단조롭고 외로우며 때론 힘든 것도 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돌아갈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격려해주고 후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는 곳. 돌아가면 언제나 환영해줄 것이란 믿음이 이곳에서의 삶을 넉넉히 견디게 만들어 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곧 선교지에서의 삶이 아닐까. 우리가 돌아갈 참 고향. 우리를 언제나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의인들이 있는 곳. 그곳에 대한 소망이 이 땅에서의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준다.

 

(21)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는 중요하다. 선교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이다. 복음을 위한 삶에는 실수는 있어도 결단코 패배란 없기에.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해나갈 때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아니 실패하여도 영광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실수를 통해서도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패배한 것이다.

 

(22) 선교지에 나오려는 분을 위해 꼭 당부하고픈 것은 부족어는 현지에 와서 준비하더라도 영어는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홀로 영의 양식을 찾아먹는 묵상은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다. 관계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 선교지에 나오기 전에 재정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선교관과 기독교세계관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자신의 비전과 소명과 은사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거기에다 기독교교리적인 틀을 확립하여 바른 교리를 선교지에서 가르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23) 문화적 차이로 오해받는 일이 가끔 있다. 해외경험이 있거나 사고방식이 열려있는 젊은이들은 쉽게 이해해주는데 반해 그렇지 않은 경우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 선교사가 큰 집에 사는 경우. 그러나 이 나라는 한국보다 땅이 12배가 넓으니 집을 다 크게 짓는다. 또 다른 예로 골프의 경우 한국에선 비싼 운동이지만 이곳은 18홀에 2만원 정도. 한국에서 볼링대회를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 종종 골프대회를 교회에서 주최한다. 차도 BMW는 이곳에서 흔한 차다. 그런 것들로 과시하는 한국풍토가 여긴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오해를 안 받으려고 노력한다. 운동은 워낙 취미가 없고, 집은 월세로 살고, 메이드나 가드너 없이 혼자 집안일 한다. 이것도 자랑인지 모르겠지만 주변 선교사들 중에서 제일 가난하다고 자부한다.^^

 

(24) 한국에선 잘 안했는데 올해부터 지출사항을 적어나가고 있다. 최선을 다해 지출을 막으려 애쓴다. 연금도 중지했고, 다른 교민들이 다 들고 있는 의료보험도, 집 보험도 끊은 지 오래다. 절약하려고 애쓰지만 저축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생각지 않은 부분에서 지출이 나간다. 그래도 빚을 지지 않고 살고 있으니 감사 감사.

 

(25) 선교지에서도 한국에서도 내 집, 내 땅은 한 평도 없다. 환영해 줄 친구들은 많으나 편히 안식할 곳은 어디에나 없다. 그래도 천국소망으로 가슴 뿌듯하다. 내 돌아갈 고향은 하늘나라이다.

 

(26) 살면서 제일 잘 했다고 생각 드는 것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내 삶을 드리기로 헌신한 것이고, 둘째, 20년 국내목회를 내려놓고 선교지에서 가난한 흑인 목회자들을 섬기면서 또 다른 20년을 주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27) 선교지에서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냥 화살같이 흘러가버린다. 시간을 내어서 꾸준히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성경 66권에 대한 쉬운 주해를 써내려가 볼까 아니면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서 영어의 달인이 되어볼까^^

 

(28) 한국에서의 사역과 달리 워낙 넓은 지역을 다니고 또 새로운 지역으로 여행하는 일이 잦다보니 자연스럽게 손님대접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낯선 땅에 갔을 때 주의 이름으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믿음의 형제를 만나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실제로 신세를 많이 졌다. 그래서 이런 사랑을 받았으니 나도 손님을 잘 대접하고 싶은 소원이 생기게 되었다. 주님은 그 소원을 기뻐하셨다. 소원을 주셨고 소원을 따라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응답하셨다. 가끔 게스트룸을 운영하는 가정이나 교회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게스트룸을 운영하는 교회가 한국엔 얼마나 있을까 싶다.

 

(29) 손님대접(hospitality)이란 단어를 잘 보면 재미있는데,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손님을 잘 치유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피곤함과 두려움에 지친 나그네에게 쉼과 용기를 주는 것 이것이 손님대접의 정신이다. 현대교회는 이 손님대접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것으로 복을 받았고 신약의 그리스도인 역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성경은 말한다(히 13:2). 말로만 위로하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약 2:16). 손님대접을 금하는 디오드레베같은 자들이 교회 안에도 있는데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성경은 말한다(요삼 9). 나의 집에는 손님을 맞아들일 게스트룸이 있는가? 손님을 치유할 능력이 과연 우리 집에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