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본문: 전12:1-8
사람은 왜 있는 것인가? 삶은 왜 있는 것인가? 어떤 삶이 의미 있는 것인가?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물음입니다. 전도서는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구도자들을 위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해오던 전도자는 11장과 12장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11장에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삶, 구제하는 삶을 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12장에 들어와서는 나를 만드신 창조자를 만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창조주를 만나는 것은 청년의 때에 용이합니다. 나이 들어 늙으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창조자를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9,10절) 진리의 말씀을 대할 때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진리가 박힌 못과 같이 내 가슴속에 박히게 되면 가장 안전한 삶이 됩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삶--이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이라는 것이 전도자의 최종 결론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 1-8절: 늦기 전에 자신의 창조자를 만나라.
◉ 9-12: 어떻게 창조자를 만날 수 있는가?
◉ 13,14: 전도자의 최종결론: 사람의 본문(=모든 것)
1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전도자는 먼저 늦기 전에 자신을 지은 분을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기억하라’는 말씀은 ‘만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만드신 분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은 인생을 만드신 창조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생을 설계하신 분이십니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은 창조주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 스스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까? 청년의 때입니다. 청년의 때는 아직도 기회가 많은 때입니다. 모든 기회가 사라지기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영원한 후회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인생들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인생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시도를 해야 하고 성공해야 합니다. 더 이상 기회를 잡고 싶어도 되지 않을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는 하나님을 만나기 쉽습니다. 왜냐면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고방식이 유연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틀이 굳어져버린 다음에는 그것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바꾸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통계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의 삶을 목회자나 선교사의 삶으로 헌신한 사람들은 대부분 10대에 삶의 방향을 정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대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여러 가지 욕망으로 영혼에 때가 찌들기 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때가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청년들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포기할 것이 없기 때문에 쉽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세상적으로 가진 것이 많이 않아서 하나님을 찾기가 쉽습니다. 반면 세상적으로 많이 가지면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려워집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부자 청년을 기억합니까? 너무 많은 것을 젊어서 가진 그는 예수님을 아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왔다가 그냥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의 때’는 단지 문자적인 나이나 세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언제든지 권리를 포기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청년들은 진리를 향해 갈망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순수하게 진리의 말씀에 대해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만나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많은 세월들을 허송하고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당신을 만드셨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말은 단지 개념적인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인격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인생이 살면서 반드시 모험할만한 최대 최고의 일입니다. 세상을 보세요. 자신을 낳은 부모를 찾아서 헤매는 자들도 있는데, 하물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것은 더욱 더 가치가 있고 모험할만하지 않겠습니까? 방법을 찾기 전에 방향을 정하는 일에 시간을 충분히 들이십시오. 인생의 방향이 무엇이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2절,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언제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까? 네, 기회가 주어졌을 때입니다. 기회가 지나가버리기 전에 말입니다. 전도자는 사람이 일단 늙어버리면 믿음을 갖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는 것은 사람의 총명이 어두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면 고집만 늘어갑니다. 자기 생각만 강조합니다. 자기 틀을 쉽게 못 벗어납니다. 그래서 진리를 새롭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말할 때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어린아이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의 특징을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기만 합니다. 그럴 때에 진리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회심하는 사람이 적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명이란 태양이 가장 밝게 빛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는 바로 그런 때입니다. 총명이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난다”는 말은 몸에 열이 내려가는 것, 그래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면 육신도 마음도 열정을 잃어버리고 냉랭해지게 됩니다. 일단 열정이 식어버리면 알면서도 잘 안 될 것입니다. 열정이 식어지면 변화에 대한 모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열정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기회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열정이 식기 전에 하나님을 찾는 모험에 뛰어들기 바랍니다!
3절,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전도자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 죽는 과정을 매우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떤다는 말은 손과 다리가 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면 손과 발이 떨립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집입니다. 나의 신체는 집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신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집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기회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기회는 사야합니다. 대가를 지불하고서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는 것은 일생일대의 최고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또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진다는 말은 허리가 구부러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친다는 말은 이빨이 안 좋아서 씹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얼마나 잘 먹습니까? 그래서 원기가 왕성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몸과 마음의 원기가 떨어지면 영적으로도 떨어집니다. 건강할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기력이 쇠할 때는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하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몸과 마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들로 내어보는 자가 어두워진다는 말은 시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십시오. 보려고 해도 잘 안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력이 떨어지기 전에 성경을 한 자라도 더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4절,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 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 진다는 말은 눈앞이 자꾸 흐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눈이 잘 보일 때 열심히 성경을 읽으십시오!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은 음식을 왕성하게 먹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난다는 것은 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을 깰 것입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은 죽음의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옆에서 뭐라고 해도 깊은 잠을 잡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잠이 적어집니다. 잠을 자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염려 때문에 잠을 자지도 못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잠을 깊게 잘 자는지 모릅니다. 자는 아이를 업고가도 아이는 깨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든 분들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을 깹니다.
음악 하는 여자들이 쇠한다는 말은 고운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을 때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십시오! 노래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5절,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쫓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마음이 약해져서 새로운 모험이나 시도를 하려들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과 안전을 추구합니다. 변화와 모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인생에서 최고의 변화와 모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알고도 못하게 됩니다.
또한 길에서는 놀란다는 말은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게 될 정도로 마음이 여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었을 때는 어떤 일이든지 두렴 없이 왕성하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작은 것에도 자주 놀라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 살구나무가 꽃이 핀다는 말은 흰머리가 생기고, 얼굴에 버섯이 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고운 피부를 가졌어도 언젠가는 쭈글쭈글해질 것입니다. 멋진 외모, 예쁜 얼굴은 다 순간입니다.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란 말은 작은 것에도 피곤해하고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었을 때는 모든 어려움을 다 감내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작은 것에도 귀찮아하게 됩니다. 별 것이 아닌 것에도 힘들어하게 되고 귀찮아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진리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면 진리는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전과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또한 본문에서 “정욕이 그치리니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된다”는 말은 어떤 뜻이겠습니까? 먹고 마시고 하는 원초적인 욕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죽음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다. 정욕이 그칠 때 사람은 죽음의 그림자가 (조문객으로서) 자기에게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6절,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계속해서 청년의 때가 기회의 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은줄과 금그릇은 사람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고개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진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진다는 말은 심장박동이 멈추어서 피가 돌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샘에서 항아리로 물을 길어올 수 없는 상태, 그것은 심장이 멈추어서 피를 운반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진다는 것은 인생의 수레바퀴가 중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레바퀴는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 설치한 것입니다.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진 것은 물을 길어 올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피를 운반할 심방이 멈춘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심장이 멈추면 다른 방법으로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늙으면 더 이상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리인줄 알고도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능력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7절,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죽음입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싫든 좋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전도자는 계속해서 ‘--하기 전에’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회가 있을 때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죽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생은 그 자체로 기회입니다. 이생에서의 삶은 저 생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8절,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1장에서 선언한 것을 다시 한 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왜 만드셨고,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참된 삶의 의미와 목적인가에 대해서는 사람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죽어버리고 나면 평생 한 것이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데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어버리면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게 되는 인생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죽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과녁을 겨누지 않은 채로 화살들을 날리지 마십시오. 화살들을 다 허비하고 나면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합니까?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과녁을 보십시오. 그리고 과녁을 잘 겨누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화살을 다 허비한 후에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방법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왜 사는가에 대해서 고민하십시오.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묻기 전에 삶은 왜 존재하느냐고 물으십시오. 방법을 찾는 일에 시간을 들이십시오. 그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분명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알고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축복입니다. 여러분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이 존재하는 이유와 삶의 의미있고 가치있는 방향에 대해서 보여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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