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전도서강해(19)-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11:1-10)

등불지기 2012. 3. 7. 18:22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본문: 전11:1-10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세상에는 변수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수들이 작용하여 모순들을 만들어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예측불허의 변수들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순들에 잘 대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한 원인은 소유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수로 가득 찬 세상에 잘 적응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변수가 많아서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것도 모순과 의문투성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변수가 많은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까요?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세상의 수많은 모순들은 우리로 하여금 변칙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모순들 가운데서도 정도를 걷게 합니다. 건강한 원칙과 성품을 붙잡게 해줍니다. 우리는 변칙보다는 원칙으로 모순들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걸어야 할 정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전도서는 특히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아주 유익한 지침을 내려줍니다. 전도서 11장과 12장은 전도서 전체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전도자의 대답입니다. 이에 대해서 전도자는 가능한 최선을 다하여 변수에 대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침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0가지 지침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구제: 베풀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절,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신라시대에 포석정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 술잔을 채워서 물위를 띄우면 한 바퀴 돌아서 자신에게 그 잔이 되돌아오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신라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술잔치를 벌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때에는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내가 먹을 음식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합니다. 내가 먹을 떡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소비가 아니라 낭비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멋이 아니라 무모한 모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무모하게 보이는 것이 미래를 가장 잘 대비하는 지혜입니다. 내가 먹을 양식을 그냥 내다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구제하는 데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행위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행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넬료가 가난한 자를 구제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행위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천국은행에 입금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반드시 찾게 될 것입니다. 구제에 힘쓰는 사람은 그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구제하는 삶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먹고 남으면 구제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영원히 구제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왜냐면 구제는 ‘내가 먹을 떡’을 나눠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절,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일지 못함이니라.”

그러면 구제하는 데 어떤 원칙이 있을까요? 전도자는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제가 편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정인에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구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혹은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주는 것도 바람직한 구제가 아닙니다.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에게도 구제의 손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직한 구제는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구제할 때 어떤 혜택이 찾아오게 됩니까? 갑자기 재앙이 임하는 날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재앙의 날이 임할 때에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재앙의 날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은 IMF시절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우성을 칩니다. 진정으로 미래를 잘 준비하여 온 사람들은 오히려 위기의 때를 기회의 때로 여깁니다. 위기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위험한 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기회의 때가 되기도 합니다. 구제하는 삶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을 비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저축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나눠주는 선한 사업을 하십시오. 선한 사업에 부요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런 사람은 위기의 때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때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절,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나무가 어느 한쪽으로 쓰러지면 그냥 그대로 있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통해 우리는 당연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이러한 순리대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흐름을 거부하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믿음의 삶’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믿음이란 현실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말고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럴 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물결을 거슬러서 헤엄칩니다. 그러나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는 물고기는 죽은 것입니다. 죽었기 때문에 흐름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돛이 있는 배와 돛이 없는 뗏목의 차이는 여기 있습니다. 돛이 있기 때문에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에게 돛과 같습니다. 저는 믿음이 없는 인생은 뗏목과 같은 인생이라고 봅니다. 환경에 그저 반응만 하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 현재에 집중하십시오.

 

4절,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상황에 집중하다가 결국 해야 할 일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은 환경과 상황 탓을 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살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현재를 가장 위대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 이유로 상황과 환경에 그 탓을 돌립니다.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저것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완벽한 상황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풍세를 바라보다가 아무 것도 못합니다. 구름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내게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내게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풍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씨를 뿌릴 때를 놓치고 있습니다. 구름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둘 때를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건 안좋건 간에 언제나 씨를 뿌려야 하고 언제나 거두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늘 이렇습니다. ‘언제나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때가 찾아올 것인가?’ ‘혹시 비가 내리면 어쩌지?’ 이런 생각에 잠겨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추수할 때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십시오.

 

넷째, 겸손하십시오.

 

5절,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지를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태아가 어떻게 자라는지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아이를 길러보면서 느끼는 것은 확실히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란 사실입니다. 성장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비를 다 헤아리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내가 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때를 성취하시는 방법도 내가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때와 방법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제게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종종 내 마음대로 때와 방법을 결정해서 하나님께 강요하곤 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이 나의 삶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배워가고 있는 과정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때와 그 때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나는 완전히 무지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는 온 몸과 마음으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결코 조급하지 않습니다. 초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항상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부지런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6절,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농부이십니다. 농부의 근면함과 성실함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도시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우리는 농부의 심정을 갖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도시생활은 참을성이 없습니다. 조급합니다. 기다릴 줄 모릅니다. 요행으로 살도록 요구합니다. 운에 맞기라고 강요합니다.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을 바보로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농부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습니다. 부지런하십시오.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기회가 있건 없건 늘 씨를 뿌리는 자의 태도로 사십시오. 해가 질 저녁에는 쉬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요즘같이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내가 하느 s일이 잘 안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잘 안 될 수 있음을 언제나 예상하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셔서 하나님의 최선으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생각대로 안 될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뜻을 갖고 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언제나 최선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여섯째, 감사하십시오.

 

7절,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우리는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빛은 실로 아름ㄷ운 것이라.”는 말씀은 빛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생명 있음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감미로운지 알아야 합니다.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전도자는 삶 자체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삶은 그 자체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삶에 대해서 감사와 환희를 느끼는 인생이 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먹을 양식을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완전히 주저앉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그 다음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삶의 환희를 느끼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일곱째, 어려울 때를 항상 염두에 두십시오.

 

8절,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계속해서 구제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사는 삶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날도 올 것에 대해서 예상하라고 권면합니다. 어려울 때를 언제나 염두에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다가올 일은 다 헛되다.”는 전도자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십시오. 우리에게 어려운 날들이 다가올지라도 겁먹지 마십시오. 왜냐면 그 날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잠시 잠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일시적이란 점에서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캄캄한 날들이 다가올 것에 대해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그러나 겁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여덟째, 기회가 주어진 것을 기뻐하십시오.

 

9절,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여기서 ‘청년’과 ‘어린 때’는 ‘기회가 많음’을 의미합니다. 기회가 많음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청년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게 기회가 적다고 생각하면 10대라고 사실은 노인입니다. 작년에 보니까 수능시험에 실수해서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자살한 학생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가 몇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이가 10대이든 혹은 80대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적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청년입니다. 어린 때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많은 기회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점 기회가 지나갈수록, 기회를 날려버리면 버릴수록 사람은 초조해집니다. 조급해집니다. 그리고 신중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은 도전정신이 있는 것입니다.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일단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기회가 적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무엇을 새롭게 시도하거나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전도자는 도전정신을 잃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많다고 생각될 때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일단 시도해보라는 것입니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10대인데도 너무 신중한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너무 신중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너무 계산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합니다. 계산하는 일에 시간을 다 허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3은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수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은 경영학과에 들어가기 원했는데 경제학과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수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학생을 말렸습니다. 일단 공부하면서 대학원에서 경영을 전공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경제학에 대한 공부가 나중에 경영학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원했던 학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조급한 행동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집착하는 것 때문에 결국 자신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일단 도전해보십시오. 일단 시도해보십시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시도해보십시오. 삶의 주도권을 놓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뜻을 따라 결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홉째, 준비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를 준비하십시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자유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질 각오가 없다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설 자신감이 없다면 그 일을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주도성과 책임성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도적으로(pro-active) 해야 합니다. 내가 결정하는 일에 다른 어떤 사람이 개입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내린 결정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결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를 의식하면서 결정하십시오. 주도성과 책임성이란 두 기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열째, 염려와 근심을 물리치십시오.

 

10절,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고민하는 청년이 되십시오. 그러나 근심하는 청년은 되지 마십시오. 근심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존재감, 자신의 성품과 원칙, 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혀서 현재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고민이 아니라 근심이 있습니까? 근심과 염려가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근심과 걱정과 싸우셔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근심과 염려에 붙잡히게 되면 악을 범하게 됩니다. 내 마음에 근심이 찾아오면 내 몸에도 악이 찾아옵니다. 악을 물러나게 하는 비결은 내 마음에 근심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말합니다.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무슨 말입니까? 청년의 때는 금방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많던 기회는 금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말은 ‘일시적이다’ ‘순간적이다’란 뜻입니다. 금새 지나가버립니다. 그러므로 기회의 때를 잘 선용하십시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임박해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즉, 기회를 사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을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기회를 살 수 있을까요? 성경은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말합니다. 중독성향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술취함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옆구리에 끼고 살면서 24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어서 바쁘게 사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끼고 살아도 세월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나아가야 할 푯대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방법으로 살기 전에 먼저 방향을 정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방향을 정하기도 전에 방법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과녁을 바라보기도 전에 시위를 떠나보냅니다. 그렇게 소중하고 아까운 기회들을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금새 지나갑니다. 내 손에 주어진 그 많던 기회란 이름의 화살들을 담아둔 통은 어느새 텅 비고 말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기회가 많습니다. 기회를 사십시오. 기회를 만드십시오. 한번 실수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신껏 사십시오. 주도적으로 사십시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도전해보십시오. 남이 시킨다고 하지 마십시오.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선택하고, 여러분이 즐기기로 작정한 그 일을 하십시오. 일단 결정했으면 부지런히 하십시오. 성실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아예 포기하십시오. 그것이 시간을 버는 길입니다. 무엇보다 주어진 기회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배우십시오. 시위를 당겨서 날리는 법부터 배우지 말고 과녁을 조준하는 법을 먼저 배우십시오. 방법을 구하기 전에 먼저 방향을 정하십시오. 푯대를 정하고 달려가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다 눈먼 시각장애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없이 그냥 달려갑니다. 그들이 뛰어간다고 여러분도 같이 뛰면 안 됩니다. 여러분도 세상사람들처럼 같이 뛰면 반드시 후회합니다. 뛰기 전에 먼저 보십시오. 과녁을 보십시오. 푯대를 바라보십시오. 삶의 방향을 잘 정하고 달려가십시오. 지금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을 보고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올바른 방향을 정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역전될 것입니다. 앞서 달려간 이들이 나중에 후회하고 방황할 사이에 여러분은 웃으면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할 것입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레이스에서 승리하려면 방향을 잘 정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페이스를 잃어버리면 레이스를 잃어버립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어떤 방향과 어떤 페이스로 경주를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지혜를 얻어서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