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리

교리공부(35)-하나님의 예정과 소명

등불지기 2012. 3. 9. 17:08

 

 

예정론 역시 구원론 범주 안에서 다루어야 안전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예정을 신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유입니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큰 일의 신비에 대한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정론 교리는 구원의 감격에 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러한 예정론을 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예정론은 이해하기 위한 교리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 교리이며,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동을 담은 '노래'인 것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하나님의 예정과 소명

 

본문: 롬8:29,30

 

 

1.본문확장의역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기 이전에 미리 아신 자들(예지)이 있었고, 영원하신 독생자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리 정하셨는데(예정), 이것은 모두 그 아들을 위해 하신 일이었다. 이처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고(소명),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셨고(칭의), 의롭다 하신 그들을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영화)

 

 

2.예정과 소명은 구원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기독교 신앙과 교리에 있어서 가장 난해한 것이 바로 예정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칼빈의 교리]라 규정하면서 부정하기 전에 먼저 성경이 명확하게 이것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교리의 참된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예정(foreordination)을 선택(election)이란 단어와 혼용하지만 영원 전에 미리 예정하신 일에는 선택과 유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예정은 ‘예지’와 ‘선택’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선택이란 예정의 긍정적인 측면을, 유기란 예정의 부정적인 측면을 가리킨다.

 

 

3.끝없는 논쟁: 칼빈주의 vs. 알미니안주의 / 하나님의 주권이냐 인간의 의지냐?

①칼빈주의의 5대교리: 전적부패, 무조건적 예정,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②알미니안주의의 5대교리: 자유의지, 조건선택, 보편구속, 저항할 수 있는 은혜, 은혜로부터 떨어질 가능성

 

 

4.예정론의 의미

①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결정하신 일은 반드시 실현된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근거다! 예정론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자들을 위한 표적(sign)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양떼"를 영원히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요10)

②어떤 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 예수님 자신을 믿게 하지는 못하셨다! 예수님조차 예정된 길로 가는 가룟유다의 완고한 마음과 배교의 결심을 돌리지 못하셨다!

③예정은 전도나 선교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복음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예정의 여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예정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해보면 예정의 여부를 알 수 있다!

④은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셔야만 한다!

 

 

5.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지, 예정하신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 “소명으로”

①하나님의 소명(calling, 召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유효적 소명, 보편적 소명(*마22:14)

②유효적 소명(effectual calling)은 실제적인 구원에 ‘반드시’ 선행하는 것이다. ‘회심’은 이 ‘유효적 소명’의 결과이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죄 가운데 있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으며 영적으로 소경이 되었고, 믿고 순종할 능력조차도 없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불러주지 않으시면 인간은 자기의지로 응답할 수 없다. ‘유효적 소명’은 오로지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이것을 ‘특별소명’이라고도 한다.(*행16:14) 이 ‘특별소명’을 ‘성령의 조명하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령의 사역이 아니면 복음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③보편적 소명(universal calling)은 택자뿐 아니라 비택자까지도 포함된 범우주적인 초대이다. 유효적 소명 혹은 특별소명은 구원을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다면, 보편적 소명은 예배와 심판을 목적으로 주어진다.

 

 

6.맺는 말: 성령의 역사는 예정된 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듣게 하심으로써 회심케 한다!

①성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신다.(*고전1:18;2:11) 그리스도의 죽음이란 역사적 사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하신다. 이 의미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조명에 의해서만 명확히 깨달아질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복음을 들은 자에게도 계속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 수없이 들었던 복음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란 특별한 방식으로 계시되지 않고서는 죄의 영향력 아래 눌려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신뢰/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모든 사람에게 보편소명이 주어지지만 그러나 오직 택함 받은 자에게 유효한, 특별한 소명이 주어지므로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에게는 계속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하고, 혹은 이미 복음에 나타난 의와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오직 복음이 선포될 때에야 참된 구원의 확신과 기쁨과 평강을 맛볼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은 반드시 부르신다.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부르시는 방법은 ‘복음의 효과적인 선포로써’이다. 이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이 부르심에 신실하게 반응하지 않고서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7. 참조: 우리가 예정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정되었는지를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대답하는 불가지론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하실 것이란 대답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우리가 복음전하는 거룩한 책임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의 예정하심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예정받지 못한 이들'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즉,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혹은 누군가가 예정하심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을 받았는지, 혹은 그가 예정을 입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들이 택하심에 대한 확신을 논할 때는 언제나 '택하심의 열매'로서 나타나는 '성품'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성경이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면 그러한 '변화'(회개와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구절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1)살전1:4f.-"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2)벧후1: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3)행13: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예정의 여부는 오직 복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통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복음에 대해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을 했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닮아가는 성품의 변화가 있다면

확실히 그는 "예정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4)예수님께서 예정과 소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잘 말씀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 스스로 이성의 능력을 더 믿고 하나님의 계시를 의지하지 않으려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자신의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계시를 의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나타내심(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으로 예정된 자들을 부르시는 은혜, 즉 유효한 소명의 은혜를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보편적 소명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나 유효적 소명은 어린아이들에게만 효과적이도록 하신 일은 아버지께서 원하시고 정하신 원칙)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쎴으니(예수님은 유효적 부르심의 모든 것이시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6,27)"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양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은 하나님의 유효적 부르심(=복음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