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선교지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5천만 인구 중에 3분 2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인터넷 통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매주일 주일 출석하며 예배드리는 현지인은 3%도 되지 않는 나라, 법을 만드는 의회와 돈을 만드는 상권에 대부분을 무슬림이 장악한 이 나라, 넘쳐나는 명목상 그리스도인들과 신학훈련을 받지도 않은 채 목회하는 이 나라, 교회가 세상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세계제일 빈부격차가 큰 나라, 세계제일의 에이즈감염율로 신음하는 이 나라, 한국이 625전쟁때 신음할 때 군대를 파병해준 고마운 나라가 이제는 영적으로 신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증거들이 나타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김광락 선교사 올림.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본문: 마6:31-34
지난 시간에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참된 기도의 원리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런 원리들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원리들이란 예배의 원리, 친밀감의 원리, 우선순위의 원리 즉,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기, 사람의 필요의 원리, 그리고 관계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님이 주신 말씀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었다면 오늘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도제목은 무엇인가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기도제목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기도제목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도생활에 어떤 모습을 요구할까요?
먼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봅시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우선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첫 메시지의 주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선포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막1:14)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메시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행1:1-8) 또한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가르침의 목표이며 목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8:10) 성경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까지도 ‘하나님 나라의 표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 세상의 모든 종족에게 전파되기 전까지는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14) 이토록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중요합니까?
하나님 나라가 어떤 의미인지 먼저 생각해봅시다. ‘나라’(헬=바실레이아;영=kingdom)는 통치와 주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말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편 103:19에는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라고 하였을 때 ‘그 정권’이 바로 ‘나라’(kingdom)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온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왕권, 통치, 권위, 주권을 포함하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을 때 하나님 나라를 받든다는 말은 교회나 낙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이것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해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 복음과 세계 복음화를 위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하나님의 통치의 전권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가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1:8)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말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그분의 다스리심 안에 들어가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좀 더 깊게 살펴봅시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첫째, 복음전파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소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죽음의 공포에 눌려 사는 인생들로 하여금 사단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사망 앞에서 두려워 떨어야 하는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망권세가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 사망은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은 이 놀라운 복음이 전파되어져야 할 영역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중보기도의 참된 정신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영적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 나라의 원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시간에 사단의 세력과 영향력과 싸우며 대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2:28) 예수님은 사단을 패배시키고 그 안에 무기력하게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이미 사망으로 인생들을 다스리는 사단을 패배시키셨습니다. 사단은 이미 결정적으로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남은 세력은 남아서 자신들의 힘을 결집하여 교회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중보기도를 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러한 영적 세력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자는 영적 전투를 벌이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반역하는 모든 세력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런 기도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죄와 싸우는 삶, 거룩한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 나라의 원수인 것입니다. 죄는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신문과 뉴스는 죄가 세상 사람들을 얼마나 강력하게 지해하고 있는지를 날마다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죄를 없이 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완벽한 순종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는 죄와 싸우는 기도인 것이며, 거룩한 삶을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온 세상과 열방을 위해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가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에 대해서 반발하고 반역하는 모든 것이 기도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확립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다스리심에 우리가 기도함으로써 동참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예를 들어봅시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 자신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통치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부와 권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통치가 확립되기를 간절히 열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열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배우자를 구합니까? 지혜를 구합니까? 건강을 구합니까? 재정을 구합니까? 성공과 출세를 구합니까? 무엇을 구하든지 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써 점검해보십시오. 첫째, 소극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것을 누구의 유익을 위해 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누구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구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효과적인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오만 번씩이나 응답받은 죠지 뮬러의 기도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응답받는 체험을 하려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에 대한 첫 번째 말씀에서 제가 강조한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진심으로 남의 유익을 위해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적극적으로 말해서, 나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확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통치권의 확립을 위해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어떤 상관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 삶이 드려지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기도제목을 여러분의 기도에 추가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첫째, 복음화의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해 알지 못하는 땅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입니다. 구체적으로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6,000여개의 미전도 종족 중에 하나를 품고 기도할 수 있도록 종족입약을 한번 시도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둘째, 여러분의 기도시간에 영적전투를 벌이십시오. 하나님의 통치를 반역하는 세력들과 싸우십시오. 이를 위해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활용하십시오. 셋째,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 통치를 확립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확립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바로 그것을 구하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머리로는 동의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이러한 기도를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려고 할 때 반드시 우리 안에 이러한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견고한 요새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염려인 것입니다. 걱정 근심 염려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견고한 요새인 것입니다. 염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적인 염려가 있습니다. 둘째는 회개에 이르게 하는 거룩한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론 나를 분발하게 하고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염려가 있습니다. 고후7:10,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거룩한 근심이 있고 악한 근심이 있습니다. 거룩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들 때문에 하는 근심입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 악한 근심은 자기 기준, 자기 욕심 때문에 하는 근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염려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만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는 욕망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염려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세상 염려는 내 마음을 떠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내 안에 있는 견고한 요새는 바로 자기사랑입니다. 사실 염려도 자기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기사랑은 모든 교만과 염려의 뿌리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열정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새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에 있는 자기사랑이란 견고한 진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받아들였는데 실제 생활은 옛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생각이 변해야 진짜 변한 것입니다. 세계관이 바뀌지 않은 채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견고한 세계관은 기복주의입니다. 수천 년 동안 한국 사람들은 기복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여도 기복주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다니고, 내가 헌금하고, 내가 기도하는 모든 것은 사실 내가 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고방식이 달라지지 않은 채 신앙생활하는 경우처럼 기도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간절히 무엇인가를 구해보지만 사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 자기 왕국, 자기 집을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바뀌어야 진정한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내 안에 있는 견고한 요새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결코 남을 위해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중보기도를 할 수도 없고, 민족과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에 대해서 오늘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내일 일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지금 기도하는 것이 배우자를 위한 기도, 직장을 위한 기도, 진로를 위한 기도, 기술과 재정을 위한 기도 등등인 것입니다. 만약 미래에 대한 염려를 전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미래에 대해서 여러분보다 더 완벽하고 화려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신뢰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 모든 기도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환상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저는 그것이 여러분이 기도하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 시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나의 유익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게 된다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걸까요? 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게 된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 저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중보기도의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의 영역인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로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광을 위해 놀랍게 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집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6장 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의를 위해 기도하는 패러다임에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 기도하는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을 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6장 전체에서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을 내는가에 대해서 계속 반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6장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열심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계획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의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당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계획을 가지고 세상 역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계획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줄 압니다. 이제는 이렇게 기도해보십시오. 여러분을 위한 여러분의 계획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구해보십시오. 온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열심내고 계시는지 탐구하십시오. 하나님의 그 계획을 여러분의 계획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열정을 여러분의 열정으로 받으십시오. 이것이 중보기도의 기본정신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자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약속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교묘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잘 되면 하나님을 위해서도 한 몫 감당하겠습니다.”라고 자기와 하나님을 기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분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주님, 내가 이 사업에서 성공하게 되면 소득의 십의 이조를 바치겠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 마음의 동기를 잘 아십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 저를 진정 사랑하신다면 배우자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는 거의 응답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구하여도 응받 받지 못한 까닭은 자기 유익을 위해 구했기 때문”이라고 야고보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 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계획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시는 그 놀라운 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주님 우리 안에 능력 있는 중보기도의 용사들을 일으켜주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의 사람들을 세워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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