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회복학교

회복(26)-마음을 새롭게 하라

등불지기 2012. 3. 10. 20:39

 

 

회복과 부흥은 어떻게 다를까요?

둘 다 본질로 되돌아가는 의미가 있지만

회복은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반면, 부흥은 집단과 지역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점점 다원화되고 분화된 21세기 사회에서는 부흥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부흥보다는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회복을 위해 부족한 저의 메시지가 쓰여진다면 주님께 영광이요 제게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역은 바로 '마음'의 영역이지요..

지금까지 마음에 관해 몇 번 메시지를 소개했습니다.

회복이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란 사고방식의 변화, 성경적 사고방식으로 무장된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에 대한 제 연속설교를 [사고방식] 시리즈라고 이름붙이기도 합니다.

사고방식은 영성회복훈련에 핵심입니다.

Blessing to you all who read this...

김광락 선교사 올림.

 

 

마음을 새롭게 하라

 

본문: 롬12:2

 

 

계속해서 마음의 문제에 관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 마음을 새롭게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우리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인지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우리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우리의 마음이 마치 그릇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릇은 무엇을 담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릇은 귀할 수도 있고 천할 수도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쓴 Your Best Life Now(긍정의 힘으로 번역됨)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에 아주 깊은 숲속에 여러 나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나무들 중에서 특별히 꿈을 가진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그저 만족하면서 사는 것을 거부하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 중에 올리브 나무가 있었는데 올리브 나무가 가진 비전은 아주 귀하고 화려한 보석상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담고 싶어했습니다. 비전을 가진 또 다른 나무가 있었는데 떡갈나무였습니다. 떡갈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왕을 태우고 바다로 나가는 배가 되고 싶은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전을 가진 또 다른 나무는 소나무였는데 그 소나무는 사람들이 자신을 올려다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그 세 나무를 보고 비웃었고 바람도 세 나무를 향해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세 나무들은 서로를 격려해주면서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무꾼이 오더니 올리브 나무를 베어갔습니다. 그리고 떡갈나무도 베어갔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도 베어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올리브 나무는 보석상자가 되지 못하고 그만 짐승들의 먹이를 담는 구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떡갈나무는 왕을 태우는 커다란 배가 아니라 아주 작은 낚싯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는 벼락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세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꿈이 좌절된 것에 대해 상심하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유에는 아기 예수님이 누이셨고, 또 어느 날 작은 낚싯배는 하나님의 아들이 타는 배가 되었고, 불에 탄 소나무는 하나님의 아들이 달리는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자기들의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자기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특별히 사고방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패요 절망이요 상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큰 영광을 나타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도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본문의 말씀은 낡은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릇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을 담아주시려고 하시는데 우리가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면 결코 담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할 그릇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새포도주는 새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새포도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주의라는 낡은 사고의 틀 속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결코 담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된 복음의 능력을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능력이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하고 또 충분한 것입니다. 문제는 낡은 가죽부대에 새포도주를 담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둘 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은혜를 마음에 채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해서 둘 다 버리게 되는 경우를 보셨습니까? 젊었을 때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고 체험하고 은혜에 감격해서 봉사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구원의 감격은 사라지고 오히려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고 체험하는 이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때로는 모함하며 핍박하는 일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바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 포도주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달라고 구해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채워달라고 애원해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둘 다 버리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가죽부대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사고의 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은혜를 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낡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한 은혜를 받으면 안 됩니다. 둘 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도 쏟게 되고, 자신도 상처받고 남도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고방식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각자 삶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와 사랑과 능력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인지 묻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변할 수 있는지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서 이렇게만 도와주신다면 저는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릇을 준비하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나 너를 채울 것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그릇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새롭게 하라”인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는 것입니다.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충만한 새포도주의 부어주심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을 본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의 사고방식,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으로 구원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팔로 자신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전적인 은혜로 자유인의 신분을 받았지만 자유인처럼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의 가치관, 그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애굽을 본받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어주시려고 하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들의 보고에 탄식하고 절망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종의 사고방식이었고, 메뚜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우상숭배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모자라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옛 사고방식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새롭게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안에서,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크고 놀랍고 새로운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방식은 세상의 사고방식을 본받고 있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철저히 우리 밖으로 내몰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우리도 모르게 세상적인 사고방식들이 침투해 들어와서 견고한 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세상은 철저히 하나님을 부인하며, 철저히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자기유익을 위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철저히 거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그 놀라운 축복들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소극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철저히 거부하고 배격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거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의 틀을 조사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고방식의 틀을 바꾸라는 오늘 말씀에 바르게 반응하려면 사고방식의 틀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어떤 틀을 따르는지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다음의 몇 가지로 조사해보십시오. 먼저,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이나 상황을 볼 때 언제나 부정적인 면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일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상황을 언제나 좋은 쪽으로만 보자는 것이 언제나 진리는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거짓선지자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과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참 선지자들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전했습니다. 언제나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보다는 회개를 촉구하며 책망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부정적인 메시지가 다 나쁜 것은 아니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언제나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아무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악한 것입니다. 모세가 약속의 탕에 파송한 정탐들을 보십시오. 10명의 정탐이 한 이야기들은 나름대로 정직한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을 보세요. 예수님의 관점은 사람들의 관점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깨닫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일도 많고 열심도 많은 교회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사랑이 식은 교회였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가난한 교회였지만 주님 눈에는 참으로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살아있다는 칭찬을 받는 교회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실상은 거반 죽은 교회였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승리하는 교회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내부적으로 패배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가장 큰 능력을 소유한 교회였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부유한 교회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가장 가련하고 가난하고 벌거벗은 비참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각각 어느 교회를 말씀하는지 직접 찾아보고 확인해보십시오. 주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품는 묵상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묵상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일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번 여름에 다시 한 번 묵상을 연습하기를 바랍니다. 묵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주님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상을 통해 그러한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말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안경으로 모든 상황을 보십시오. 믿음이 아니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불평하고 원망할 조건을 찾기보다는 감사하고 찬양할 조건을 찾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모세가 보낸 10명의 정탐이 한 말은 나름대로의 관점으로는 정직한 보고였지만 그들의 보고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악한 영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해 불신하며 불평하였던 것입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은 확실히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연약한 백성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북돋아주는 선한 영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는 낡은 가죽부대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이란 낡은 가죽부대를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갈렙이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했듯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높이며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틀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우리 삶으로 흘러들러오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사고방식의 틀은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인가, 아니면 이웃 중심의 사고방식인가 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섬김 받고자하는 사고방식이고 후자는 섬기고자 하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섬기려는 사람은 결코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천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러한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사고방식은 섬김의 마인드입니다. 내 문제, 내 필요에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의 문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것이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은 결코 상처받는 일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받은 상처들 때문에 지금 그리고 앞으로 부어주시는 은혜를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용서할 자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용서를 구할 것은 구하십시오. 그럼으로써 과거를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자유하십시오. 더 이상 과거의 어떤 아픔과 상처가 지금 나의 사고방식에 좋지 않는 영향을 주도록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주님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자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복의 근원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치유자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며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그렇게 하십시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사고방식의 패러다임은 이것입니다. 나는 받는 자인가 아니면 주는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받는 자로서 사는 것입니다. 주는 자로서 사는 것은 언제나 손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사고방식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받는 자로서의 사고방식을 본받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는 자로서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는 자로서 살기 시작할 때에 주님은 우리가 더 잘 주기 위해서 하늘의 창고를 열어주셔서 우리에게 마구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어주실 것입니다. 사랑이 필요합니까? 그러면 사랑을 주십시오. 치유가 필요합니까? 그러면 치유의 은혜를 주십시오. 재정이 필요합니까? 그러면 재정을 주십시오. 받으려면 먼저 주십시오. 많이 받으려면 먼저 많이 주십시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마음, 변화된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언제나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고 세상을 본받아 살아가는 한 우리는 결코 세상을 이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사고방식을 본받지 않고 그것들을 거절하며 세상의 사고방식과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때에 우리는 세상을 이길 하나님의 능력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블레셋 시대의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블레셋은 당시 철기문명이었고, 당시 이스라엘은 청동기문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낫이나 칼을 벼리기 위해서는 블레셋으로 내려가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그 시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대적해올 때는 여지없이 패하고 무너집니다. 세상이 나보다 앞서간다고 조급하지 마십시오. 다윗이 아직까지도 존경받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골리앗을 물리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무너뜨리셨고, 연약한 다윗을 들어서 강력한 철기문명을 자랑했던 블레셋을 굴복시키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0,31) 세상이 저만치 앞서간다고 조급하지 마십시오.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하십시오. 그것이 느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도태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행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들어서 세상을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거절하고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합당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절해야 할 세상적인 사고방식이 무엇이며, 그리고 또한 우리가 새롭게 가져야 할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려면 너무나 시간이 부족합니다. 몇 일, 몇 달, 몇 년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걸려도 우리는 계속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 두 권만 추천합니다. 하나는 [당신의 생각, 바꿔야 바뀐다](Battle for the Mind)란 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뀌기를 원합니까? 정말 다른 삶을 살기 원합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면서 살기 원합니까? 성경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묵상하십시오. 그것이 힘들다면 제가 추천한 이 두 권의 책을 이번 여름에 꼭 읽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반드시 유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버리고 성경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의 상황도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을 바꿔주시면 내가 변화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상황을 바꾸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을 두 눈으로 보기 원한다면 최소한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새 가죽부대로 교체하는 일인 것입니다. 새 가죽부대로 교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거기에 주님이 예비하신 충만한 은혜와 축복을 담으십시오. 그것들을 부어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구하며 선포하십시오. 주님이 기꺼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실 새 일을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새로운 사고방식의 틀을 갖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제 그러한 나를 사용하셔서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적극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내 마음에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째,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선한 것입니다. 둘째,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내 마음에 참 기쁨, 곧 하나님의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는, 나를 온전케 하시는 계획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사고방식, 사고의 틀을 점검해보십시오. 세상에 영향을 받은 영역이 있다면 벗어던지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옷을 입으십시오. 새로운 가죽부대를 가지십시오. 손에 낡은 가죽부대를 붙들고 살지 마십시오. 그것이 한 때 잘 나갔다고 앞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행하실 새 일에 적합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과감히 버리십시오.

 

특별히 이번 여름 수련회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여러분의 사고방식을 다룰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변화를 기대하는 분들이라면 실망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먼 안목을 가지고 볼 때 이것은 놀라운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은혜의 오아시스에 여러분 자신을 담그는 것--이것은 여러분의 특권입니다. 권리를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는 제 책임이 아닙니다. 여러분 책임인 것입니다. 나중에 후회한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에 주님은 특별히 새 포도주의 은혜를 주시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뜨겁거나 굉장한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새 가죽부대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 손에 있는 낡은 가죽부대를 기꺼이 버릴 최소한의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주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새 가죽부대를 손에 쥐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어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신선한 포도주, 새 포도주가 부어지는 것을 삶 속에 곧 경험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새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이들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