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회복학교

회복(27)-세상속의 그리스도인: 꿈, 연단, 상급

등불지기 2012. 3. 10. 20:50

 

 

마음의 문제가 회복 메시지의 정점이라면

이제 세상속에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지금까지 회복은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묵상, 예배, 중보기도 등에 대해 다루었고,

원수와의 관계에 관해 영적전쟁과 영적전투를 다루었고,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마음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세상과의 관계를 다룰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김광락 선교사 올림.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꿈, 연단, 상급

 

빌2:13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행하실 때 어떤 원칙을 가지고 계시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어떤 원칙을 가지고 행하시는지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그려드리는 그림을 한번 보십시오. 여기 거대한 강물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너편으로 건너가고자 합니다. 건너가야만 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수영에 있어서 선수들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실력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매우 쉽게 휘파람을 불면서 매우 쉽게 건너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매우 힘들게 건너갑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것입니다. 한 사람은 물결을 타면서 건너가고, 다른 사람은 물결을 거슬러서 건너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큰 물결이 우리 안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물결을 타면서 삶을 누리는데 어떤 사람은 그 물결에 거스르면서 스스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는 강물에 있지 않습니다. 그 물결의 힘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외국에는 바닷가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파도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파도를 즐깁니다. 파도를 타는 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서퍼들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파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물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하나님의 거대한 파도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물결에 대항하려고 하거나 내 힘으로 강이나 대양을 건너려고 하지 마십시오. 물결을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목적을 보다 쉽게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행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생애 중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하며 가장 스릴 넘치는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물결을 탈 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난 수련회 동안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는 선교관을 정립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관입니다. 성경관, 역사관, 문화관, 등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진정한 관점들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관점들을 통해서 우리가 한 가지 마음이 일관되게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정, 그리고 그 목적과 열정에 맞게 우리는 지혜롭게 겸손하게 그리고 서로 동역하면서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만일 우리가 온 세상에 들려주고 싶으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우리 안에는 참된 열정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열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과 열정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을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게 되고 또한 기쁘게 자신의 삶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야기를 알고, 그리고 온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되어져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사실상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들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가치와 목표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내 삶의 모든 열정과 소유와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비전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통해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열매를 거두기 위해 먼저 씨앗을 심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씨앗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 심어두신 씨앗을 알면 앞으로 나타날 열매를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알고 소중히 여기며 물을 주며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은 우리 마음에 씨앗과 같이 심어졌습니다.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은 내 안에 거룩한 열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 안에 어떤 열정이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열정이 없다면 그것은 삶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될 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열정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살펴볼 것은 과연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삶의 목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내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떤 것이 열정인지 아니면 욕망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질문은 청년들로서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열정과 욕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참된 비전과 야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열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할 때 생기는 것이고, 욕망은 자신의 목적을 설정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꿈은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고, 야망은 정욕과 욕심 안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비전과 야망-이 둘이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이 환난을 통과하는가? 환난 속에서도 기쁨이 있는가? 하나님의 친밀감으로 인도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 꿈이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틀림이 없다면 그는 온갖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위한 사업가가 되어 재정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흘려보내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를 위해 이기적으로 만들어낸 것인지 처음부터 잘 분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잘 될 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내 생각대로 잘 안 될 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 불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불을 통과하면 정금인 것입니다. 불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정금이 아닌 것입니다. 시련을 통과하면서 내 안에 참된 것만 남게 되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소원과 꿈과 비전은 하나님의 불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만 남게 됩니다. 오로지 참된 것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아브람을 보십시오. 그러나 아브람과 함께 한 조카 롯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함께 동행했지만 누가 참된 부르심을 받았는지는 불을 통과할 때 판명이 나는 것입니다. 불을 통과한 사람들을 생각해봅시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불을 통과하여 열방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불을 통과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사모했고 또 받았습니다. 그러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하나님의 불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또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내 그를 불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13년간이나 끔찍하고도 무서운 불을 통과함으로써 요셉은 비로소 정결하게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써 쓰임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어릴 적부터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자라났습니다. 그의 소원은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소원은 불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정결하게 된 것입니다. 40년간 미디안 광야라는 하나님의 불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끄는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을 다른 말로 광야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는 우리 마음에 있는 참된 소원을 더욱 더 분명하게 해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광야생활을 통하지 않으면 온갖 불순물이 우리 안에 쌓이게 되어서 하나님께 효과적으로 쓰임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하면서 노예근성과 노예의 사고방식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라는 하나님의 불을 통과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정결하게 될 수 있었고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또 다윗을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차기 왕이 될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그를 시기했고, 사울왕이 그를 시기했고 마침내 3000명의 정예병을 모아서 그를 죽이려고 추격해왔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지만 광야를 통과하면서 비로소 정결함을 입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으신 직후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가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역시 하나님의 불을 통과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비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참된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금은 반드시 불을 통과하는 법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참된 것이라면 불을 통과하면서 더욱 더 빛날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치유하시고 자유케 하실 것이며 여러분을 정결케 하실 것이며 회복케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연단의 불,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자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정결함과 거룩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갖고 있다면 그 불을 통과하면서 더욱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기쁨과 환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과 시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신 비전과 거룩한 목적의식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결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것을 다시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며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내가 잃어버린 비전을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YWAM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도끼머리 원칙’이라는 용어입니다. 어느 젊은 선지자 하나가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그만 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빌어 온 것입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나왔을 때 엘리사는 어디서 잃어버렸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도끼를 잃어버린 그곳이 어디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갔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했고 순종했을 때 물에서 도끼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회복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비전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거룩한 열정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처음의 장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향해 우리 주님은 어디서 그것을 잃어버렸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하다가 언제 어디서 그것을 잃어버린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비전과 열정을 회복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소원을 주시고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결코 우리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해하기까지 기다리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지로 가라고 하시면 어쩌지? 그러나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으로 대답하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예,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혹시나 나를 선교지로 보내실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먼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의 길(원칙)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원칙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진정 그것이 자유하게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안식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 안에서 참된 소원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소원을 내가 하나님을 알기 훨씬 이전에,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훨씬 이전에 내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으신 것들을 보면 우리를 통해서 행하실 일들 또한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이스라엘의 참된 지도자로 부르심(소명)과 보내심(사명)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리라는 소원은 그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이미 심어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훨씬 이전에, 자신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참된 목자가 되리라는 소원이 그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기 훨씬 이전에 여러분이 아주 어렸을 적에 하나님은 어쩌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소원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학교 2학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났지만 그전에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주님을 알기 전까지 저의 꿈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꿈을 갖기도 전에 저는 한 곳에 머물러서 오랫동안 있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모님은 제가 집을 나가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계속 간다는 것을 알고 늘 제가 집을 잃어버릴 것에 대해, 집을 떠날 것에 대해서 늘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런 제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제 안에 한 가지 소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어릴 적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리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교회사역에 뛰어들면서 그러한 소원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제가 DTS를 마치고 기도하는 중에 대구땅에 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대구에서 사역하는 것이 싫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오직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몇 달 동안 매우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곳 아멘교회로 오게 인도해주셨습니다. 아멘교회로 오면서 주님은 왜 하필 아멘교회로 나를 인도하셧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차를 타고 교회를 오가면서 놀란 것은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자전거로 혹은 걸어서 통학하던 그 길을 제가 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길을 다니면서 그 시절 제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다녔었는지 다시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깜짝 놀란 것은 주님이 저를 그 꿈으로 다시 초청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님은 제가 어릴 적 가졌던 그 소원을 다시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7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삶에 대해서 기쁨으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단 한 번도 선교사가 되라거나 혹은 선교지로 나가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저의 주님은 저에게 너무나도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단 한 번도 제게 비인격적으로 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내가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내 생각이 너무나 강하고 내 고집이 강하고 내 욕심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를 힘들게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주님은 오래 전부터 저의 마음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정말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주님은 정말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해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지로 나가기로 결심하고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저는 더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사실 어릴 적부터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결혼 13년차가 될 때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주님은 정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넓은 세상을 늘 동경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넓은 세상으로 늘 나가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개인적으로 알기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제가 주님에 대해서 놀라게 되는 사실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내가 기쁘게 선교지로 나갈 수 있도록 사실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행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내가 주님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내 안에서 행하고 계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도 여러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알기를 바랍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모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중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나 먼 하나님처럼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기도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여러분 안에서 소원을 심어놓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미 심어놓으신 것에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미 은혜로 주신 것들 속에 여러분이 행할 일이 있습니다! 미국의 풀러신학교의 교수로 있는 로버트 클린턴이 쓴 The Making of a Leader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리더로 키우는 과정을 6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제 1 단계는 주권적 기초단계인데 인성의 형성기에 하나님께서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관계, 출생, 질병, 빈부, 상처, 기질, 성격 등에서 하나님께서 리더의 씨앗을 심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1 단계를 주목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일을 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나를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알고서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행할 수 있도록 내가 어릴 적부터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선교사로 헌신하기 훨씬 이전에 아마 어릴 적에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두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 꿈을 포기하기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심어놓으신 것을 조사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기쁘게 행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파도를 타는 길이며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입니다. 잠시 불을 통과할 것입니다. 잠시 광야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는 반드시 정금같게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광야를 통과한 자들에게 예비하신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 하나님이 주시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결코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열정이 있습니까? 만일 내 안에 열정이 사그라졌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 열정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추구할 때 열정이 생겨납니다.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열정을 따라 사십시오. 어떻게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십시오. 도끼를 잃은 곳으로 주님과 함께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다시 되찾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잃은 열정을 다시 되찾아주시는데 관심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을 바라십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주신 그것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그것은 남이 되지 말고 진정한 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것은 남이 바라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님이 바라시는 대로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