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회복학교

회복(38)-영적권위II

등불지기 2012. 3. 10. 21:45

 

 

영 적 권 위 (2)

 

본문: 삼상 15;22,23

 

지난 시간에는 진정한 권위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참된 권위, 영적인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계속 해서 오늘은 이 영적 권위를 어떻게 얻는 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늘날은 영적 권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정보와 첨단 기술이 발달할수록, 교통과 문화가 발달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더 살기 편해질수록 더더욱 영적 권위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혹은 어느 나라건 간에 영적 권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영적 권위를 상실하면 공동체는 흑암과 혼돈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영적 권위를 잃게 되면 개인은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면서 삶의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권위를 잃어버리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질서가 없다고 느낀다면 먼저 영적 권위부터 회복할 때임을 명심하십시오. 무질서를 느끼는데도 좀 더 열심히 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영적 권위가 없는 삶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실은 방황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방황할 때 사람이나 공동체는 곤고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이 절망하고 깊이 탄식할 때 소망의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깊은 탄식소리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서 무질서 속에 개입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권위와 권력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권력(power)은 지위나 직책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권위(authority)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에서 나옵니다. 오늘은 이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권위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나 능력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권위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품, 원칙, 그리고 기름부으심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참된 권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성품입니다. 이것을 인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품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론 성격이 좋은 것과 성품이 좋은 것은 다릅니다. 성품이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얼마나 반영하는가? 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과 위배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방식은 바로 성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할 때에도 성품으로 분별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알면 알수록 분별은 쉬워집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영적인 세계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성품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인 권위자가 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이 성품의 영역에서 배우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방언과 같은 은사를 가지면 자신이 영적인 권위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대한 착각입니다. 성품이 은사보다 우선입니다. 영분별은 은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으로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은사를 받으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성품에 대해서 다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품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사를 추구하면 매우 위험한 권위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직책과 지위는 있지만 성품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면 자연적인 권위가 생깁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의 성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관계에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나이가 든다고 다 정서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소위 '성인아이'란 마음의 병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인아이란 몸은 어른인데 전혀 성품개발이 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결코 성인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품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은사를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은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은사보다 성품이 우선이란 말입니다. 성품개발을 무시하고 은사개발부터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성품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은사개발을 한 결과는 혼란과 분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 있지 않나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품개발을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추구해야 합니다. 누구를 닮아가려면 친해져야 합니다. 다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품이란 말은 하나님을 닮은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성품개발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참된 성품은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감 속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 권위를 갖기 위해서 먼저 성품개발을 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말씀을 봐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쉬워질 것이고 하나님의 친밀감을 누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친밀감을 알 수 있고 또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성령과 말씀에 대해 어려움을 느낀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면서 충분히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영적 권위를 소유하기 위해서 첫째로 중요한 것이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둘째로 살펴볼 것은 순종에 대한 것입니다. 성품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품에서 자연스럽게 순종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순종을 '원칙'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품만으로 권위가 주어지지 않고 순종할 때 비로소 권위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영적 권위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보다 순종심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기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은 권위를 집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권위를 집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게와라는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령하였을 때 귀신이 오히려 그들을 제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이 뒷받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삼손의 머리가 밀렸을 때 힘을 쓰려고 해도 되지 않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가져도 그것은 힘을 잃는 것입니다. 이같이 권위는 철저히 순종에서 나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게 되면 하나님의 권위가 우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당신의 권위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받고 사람들에게 귀중히 여김을 받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살았던 생애를 보십시오. 그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친밀감 가운데 거하려고 부단히 애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언제나 충성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한 사람들입니다.

영적 권위를 물리치는 가장 두드러진 죄가 바로 불순종과 거역의 죄입니다. 어쩌면 죄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일 것입니다. 거역하고 반항하고 대적하고 완고하며 불순종하며 고집불통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형통과 축복이 흘러나오는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역하고 싶은 충동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거역하고 반역하며 저항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죄의 중요한 본성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4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나 고집스럽게도 자기 생각대로만 하고 자기 길로만 가려고 하는 북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완강한 암소같은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불순종이란 간단합니다.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자기 생각, 자기 논리를 더 우선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순종의 특징은 고집이 세고, 완고하며,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논리에 집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경청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순종하는 사람의 특징은 경청하는 것, 진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 진리에 따라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정직함과 용기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을 지금 들여다보십시오. 고집이 세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잘 들리지 않습니까? 자기 생각과 자기 논리에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면에 자기 생각이 강한 요새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분주하고 마음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없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강한 의견이 때로는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자신의 내면이, 자신의 사고방식이 잘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제대로 다룰 수 있고 이끌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좀더 유연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열린 사고방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열린 마음, 열린 사고방식이란 이것입니다. 진리가 아니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용기,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강조하는 것은 순종과 권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이 온 이스라엘의 어떤 사람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백부장은 순종과 권위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입니다. 순종할 때 참 권위가 주어지고, 순종치 않을 때 권력은 될 수 있으나 참 권위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이 아니라 권위를 사모해야 합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참 권위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백부장이 가졌던 참 권위에 대한 지식을 우리도 만일 갖게 된다면 우리 역시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리라." 주님은 자신을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물론 거역하고 불순종하던 사울에게도 성령을 주신 적이 있으시지만 그것은 매우일시적인 것입니다. 거역하는 사람이 성령을 간절히 추구하여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잠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무엇에 순종한단 말입니까? 복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인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받은 성령은 결코 오래 머물지 않으시고 떠나시는 것입니다.

역대상 10:13,14절을 보면 사울이 죽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죽게 된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은 자신을 세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자 그는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말씀을 어기고 자기 손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기다림은 순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조급하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인내할 줄 알아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셨나요? "차선은 최선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사울은 최선을 기다리지 못하고 언제나 차선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늘 하던 말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사울처럼 살까봐 심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결코 사울과 같이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하면서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권위를 잃어버리고 권력만 남은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는 참 권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깨닫습니다. 사울은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늘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거나 자기 권위를 보호하고, 변호하고, 내세우고, 주장하려고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신경 쓰지 말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존경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입니다! 참 권위를 잃어버린 사울의 삶에 중요한 특징을 또 말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위를 잃어버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더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을 보세요. 그는 자기 아들을 징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울은 자기체면, 자기 자리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사무엘이 책망하고 있을 때에조차 사울은 백성들이 자신을 존경하지 않을까봐 더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떠난다는 두려움보다 백성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 내 안에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울의 삶 속에서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찾아볼 수 없었듯이 오늘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경외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권위 인정하지 않는 사울의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참 권위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순종을 배우라! 이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과 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권위를 얻으려면 먼저 순종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순종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 이끄는데도 문제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아론과 미리암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반역을 꾀한 고라의 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권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먼저 내가 따르는 권위자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를 다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판단인지 아니면 내 생각과 내 논리에 의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은 자기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침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하듯이 직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를 함부로 취급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를 겸손히 기다리기로 결정함으로써 참된 권위자가 될 자격을 얻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을 제거했었더라면 다윗의 권위도 보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다윗과 같이 사울이라는 파괴적인 권위자 아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권위자가 거짓 선지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지 않고 거짓 메시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의 책임과 결단으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윗은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옮기면 복을 못 받는다고 하는 말은 권위를 잃어버린 사람이 하는 거짓 메시지의 일종입니다. 사울과 같은 파괴적인 지도자 아래 있을 때 쿠테타를 일으키려고 하지 말고 조용한 개혁을 시도하십시오. 비방이 아닌 중보기도를 하십시오. 침묵이 아닌 직면하십시오. 조급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를 적절하게 다루어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오늘 저는 영적 권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성품이고, 둘째,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성품과 순종으로 다져진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부여해주십니다. 오늘 저는 이것을 '기름부으심'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기름부으심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혹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삶은 바로 이러한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삶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삼상3:19-21) 사무엘의 삶은 영적 권위가 분명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권위는 하나님의 친밀함을 누림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그 사무엘 선지자가 오늘 사울왕에게 하는 말씀을 우리가 읽은 것입니다. 선지자는 왕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왕이라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권위를 잃어버린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약 거역함과 완고함으로 반응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저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유연해야 합니다. 생각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고집이 세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 강하면 안 됩니다. 자기주장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강하면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것은 우상숭배와 진배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권위를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우리 모두는 성품과 순종을 배웁시다. 그래서 주님의 기름부으심이 늘 우리에게 머물러 있도록 합시다. 바로 그것이 세상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주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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