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성품 중에 단연 으뜸은 충성입니다.
물론 사랑도 회복하고 온유함도 회복해야 할 성품이지만
특히 재정문제와 관련되어서 이야기할 때
청지기됨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
혹은 리더십 문제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으뜸되는 성품은 충성faithfulness입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충 성
본문: 눅16:10-12
제가 재정에 관한 설교를 하면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성품에 관한 것입니다. 성품이 왜 이토록 중요하냐면 성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모든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격과 성품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저는 ‘충성’이란 제목으로 연초부터 해온 DTS 설교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충성(loyalty)이란 성품은 재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성품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성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성품에 대해서 지혜, 충성,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은 충성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충성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충성하라고 많이 설교하지만 진정한 충성이 아닌 것이 많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충성에 대해서 바로 알고 바로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과연 충성스러웠는가? 한번 자신의 삶을 점검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충성이란 어떤 삶인가? 한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충성인가? 충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이란 단어의 어근 ‘아마’는 ‘세우다’ ‘지탱하다’는 뜻이고 헬라어는 ‘피스티스’인데 그 어근인 ‘페이도’란 뜻은 ‘설득을 당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충성을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득을 당한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충성의 기본은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충성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충성이 아닌 것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빠진 것은 결코 충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헌신, 열심, 노력, 수고는 모두 참된 충성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각자 나름대로 부지런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먹고 살기에 바쁘게 일 년 동안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나름대로 교회일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다면 그 열심과 수고는 충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이 땅을 살펴보시면서 충성된 자를 찾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를 찾고 계시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에스겔서 22장 3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로 멸하지 못 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 찾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구원을 베풀기 위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은 충성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성된 자가 되기를 항상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충성된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과 함께 평생 동고동락했던 용사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은 충성된 사람을 늘 찾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역시 이 땅에 충성된 사람을 부지런히 찾고 계십니다. 하루는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베들레헴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성문곁 우물물을 누가 마시게 할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에게 가서 우물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사모하여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말이 부하들에게 흘러들어가게 되었을 때 야소브암, 엘르아살과 요압 세 사람이 올라가서 블레셋 군대를 다 물리치고 우물물을 떠서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리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대상11:19) 다윗에게는 이러한 충성된 용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나라를 견고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세워 왕을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대상11:10)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이것이 충성의 기준입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보여준 행동을 잘 보십시오. 그들은 명령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마음을 헤아리고 스스로 행동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다윗의 세 용사와 같이 다윗이 명령하지도 않아도 다윗의 마음을 읽고 자기 목숨을 걸고 헌신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반면 사울왕에게는 충성된 용사들이 없었습니다. 사울왕이 힘이 있을 때에는 주변에 용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이 위기에 몰리자 그들은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입니까? 시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일을 맡겨주고 하라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까? 명령을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서있는 사람들입니까? 어떤 분들은 주님이 나에게 구체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신다면 순종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충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시키는 일만 하고 명령이 떨어져야만 열심히 한다면 결코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 충성된 종이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헌신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 우리는 잘못된 충성과 참된 충성을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잘못된 충성이란 무턱대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열심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이 열심내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이루기 위해 교회에서 충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충성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충성은 주님이 원하시는 충성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다윗의 세 용사들이 충성한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했기 때문에 그들의 충성은 참되고 바른 충성이었습니다. 여러분, 충성이란 단어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충성(忠誠)이란 단어는 “마음 가운데 말씀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마음 한 가운데 말씀이 없다면 헛된 충성, 공허한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빠진 충성은 공허합니다.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많은 바리새인들의 충성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로마서 10장 2절과 3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들의 열심을 헛된 충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 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충성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헛되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빠진 충성은 다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7:24-27절)
우리는 성경에서 충성되지 못한 자의 비극을 사울왕에게서 발견합니다. 사울왕의 비극적인 최후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충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성경 역대상 10장 13, 14절에 사울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를 내립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사울왕의 비극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빠졌기 때문에 그의 헌신은 결국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성해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행동주의, 말씀이 없는 헌신, 말씀이 빠진 열심은 얼마나 위험한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세가 범한 실수를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향해 명하라고 하셨지만 모세는 반석을 두 번씩 치고 말았습니다. 이 한 가지 실수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는 열심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이러한 열심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극적이고 매우 영웅적인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세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노력과 헌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헌신한 사람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경우입니다. 모세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앞서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열심보다는 내 생각을 이루려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생각과 내 경험을 더 의지하여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헌신과 노력은 반드시 실패로 끝나버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충성된 인물들에 대해서 잘 보여줍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느헤미야 9장 7, 8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충성된 마음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갈대아 우르에서 잘 살고 있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열국의 아비로, 모든 민족에게 복을 전하는 복의 근원으로 세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충성된 성품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한 번의 실수를 범했지만 모세 역시 매우 충성된 인물이었습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 마음으로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또 갈렙과 여호수아 역시 매우 충성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2절에 하나님께서는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충성된 사람은 그 마음이 다른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다윗 역시 매우 충성스러운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충성된 자로서 충성된 사람을 두루 찾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충성된 자를 두루 찾아다니십니다. 신약에 넘어와서 바울은 매우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만나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가 충성된 성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 바울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자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충성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여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헌신할 줄 압니다. 바울은 온갖 어려운 고난에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이 맡겨주신 복음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전 생애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보다 충성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2장 17절에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고, 히브리서 3장 6절에,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충성이 어느 정도일까요? 요한복음 12장 49, 5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 19절,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만 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충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자기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재능으로 충성하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불법입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나름대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이루는 일에 열심 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헌신과 수고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충성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 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되고 바른 충성을 할 수 없습니다. 충성을 한다고 하여도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언제나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더 좋아하고 부러워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이것이 충성의 성품이 결여된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충성된 삶을 살려면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지 내게 주신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셋째,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충성이란 성품이 결여된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이 불평과 원망과 비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충성해야 할 영역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주목해볼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재정도 주시고 시간도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큰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작은 것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테스트해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충성된 사람인지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충성이란 성품을 주님께 보여드릴 때 주님은 더 큰 것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충성해야 할 영역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특히 작은 것에, 다시 말해서 사소한 것에 충성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작은 것과 큰 것’ 그리고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 그리고 ‘남의 것과 나의 것’으로 계속 병행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 충성할 때 님은 큰 것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작은 것에 소홀히 하면서 큰 것을 기대하고 달라고 기도한다면 결코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품의 원칙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아버지의 사소한 심부름에 충성했기 때문에 나중에 큰 나라의 재정에도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들판의 양떼를 지키는 사소한 일에도 충성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에게 맡겨주셨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이드로의 양떼를 지키는 충성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이끄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 삶속에 얽키고 섥힌 실타래와 같은 문제가 있다면, 혹은 더 큰 것을 받기 원한다면, 그것이 재정이든 무엇이든 간에, 먼저 우리가 사소한 것, 작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부터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재물에 충성해야 합니다. 재물은 사소한 것이고 작은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큰 것을 주십니다. 재물에 충성하면 영생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는 재물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보이지 영생이란 선물을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사소한 것에 충성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큰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접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충성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충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이것을 맡겨주셨는가를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충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충성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따를까요? 첫째, 충성된 자가 치료자가 됩니다. 잠언 13장 17절에 보면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충성된 자가 사회와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치유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말씀으로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세움받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충성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충성된 사람은 주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성품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얼음냉수가 얼마나 시원한지 여러분은 경험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이처럼 충성된 성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라고 찬송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은 오직 충성스러운 성품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한 여름에 시원한 냉수 한 그릇과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은 많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라도 여러분의 마음 한 가운데 머물지 않는다면 그 많은 말씀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무엇에 충성했는지 돌아봅시다. 내 생각에 따라 열심히 살았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헌신하면서 살았나요?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는 모든 헌신과 열심은 헛된 것이란 오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제대로 충성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헌신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시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정합시다. 우리 안에 충성된 성품들이 많이 계발되어지기를 다시 한 번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얼음냉수가 우리 안에서 많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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