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설교를 할 때만 해도 제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선교지에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청년들과 함께 선교지를 다니면서도 제 자신이 선교지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에 파송될 수는 없겠지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선교적인 삶을 살도록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교적인 삶은 회복된 삶의 열매입니다.
선교적인 삶은 종말을 준비하는 진정한 삶입니다.
선교적인 삶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교적인 삶은 영성의 최후 종착역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선교를 놓고 기도할 수 있고 후원할 수 있고 소식지를 나눌 수 있습니다.
구두를 수선하면서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보며 기도했던 윌리엄 캐리처럼
우리는 설겆이를 하면서, 길을 가면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적이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도 없거나 잃어버린 종족이나 나라에 대한 관심도 없다면 저는 그 사람의 영성이 진짜인지 의심해볼 것입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은 복음전도, 세계선교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는 증거는 경계를 넘어beyond the border 복음을 전하는 것,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사는 어디 있는 걸까요?
나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가 문화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확장하는 것인가요?
회복에 대한 부족한 저의 메시지가 약간이라도 유익을 주었다면
선교적인 삶을 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아프리카에 복음의 등불 환히 밝힐 수 있도록 중보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선교적인 삶
본문: 마28:18-20
이제 DTS설교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DTS는 영성회복학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의 회복위한 말씀학교입니다. 참된 영적인 삶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의도대로의 ‘온전한 삶’(integral life)을 의미합니다. spirituality is integrity 여기서 ‘온전함’(integrity)이란 생각과 신념이 일치하는 삶, 안과 밖이 이중적이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회복은 이 온전함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영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은사운동이나 신비주의운동이 영성회복운동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비주의운동이나 체험주의 신앙은 음란한 것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진정한 영성의 핵심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요17:3절) 이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 때 회복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며 교제하며 친밀하게 동행할 때 하나님이 의도하신 가장 인간다운 삶, 온전한 삶이 시작됩니다. 영성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이름과 의를 위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친밀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성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감정은 바로 ‘친밀감’과 ‘안정감’입니다.
최근 교회들 가운데서는 영성회복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무당의 사고방식이 지배했던 이 대구시의 경우는 신비주의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성회복은 어떤 신비한 체험이나 현상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영성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성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삶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성의 기준과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의 성품과 원칙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성품과 원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충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즐거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 영성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즐거이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말씀하지 않으셨고, 보여주지 않으신 것은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즐거이 충성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영성회복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성회복을 위해 5가지 주요 관계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DTS훈련은 관계훈련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회복은 관점회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묵상, 예배, 십자가의 도, 성령세례,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 중보기도... 등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둘째, 나와 나의 관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를 치유함으로서 나와 이웃에 대해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정체성, 내적치유, 다림줄, 아버지의 마음, 사고방식... 등의 문제를 말씀으로 다루었습니다. 셋째, 나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사랑과 위탁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관계, 충성, 위탁, 영적권위와 성숙...등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넷째, 나와 사단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원수들에 대해서 승리하는 관계를 맺기 위하여 영적전쟁, 영적전투, 세계관 등의 문제를 말씀으로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다섯째, 나와 세상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청지기로서 살아가기 위해 세계관, 소명과 직업, 선교적인 삶...등에 대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청지기의 삶에 있어 중요한 성품은 주도성, 충성, 성실성 등입니다. (우리는 DTS훈련을 통해 영성회복이 온전히 다 이루어졌다고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DTS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함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즐거이 충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관해서는 미가서 6:8, 요6:29, 살전4:3, 그리고 살전5:16-18에 명확히 계시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얼굴빛으로 온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영성회복의 핵심은 (하나님을) 섬김과 (세상을) 다스림입니다. 그것은 친밀함과 영향력입니다. 즉, 교제와 권세입니다. 첫 시간에 강조한 친밀함과 오늘 마지막에 강조할 선교적 삶이 영성회복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영성회복이란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영성회복의 마지막 종착지(목표와 목적)은 선교적인 삶(Missionary life)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정체성), 잃어버린 영혼과 족속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각자에게 주어진 기름부으심과 은사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최종 완성을 향해 협력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영적인 삶입니다. 아직까지도 나의 은사와 재정과 체험들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사용되지 않는다면 나의 영성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치유의 단계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치유의 단계에 있으면서 영성이 회복된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치유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회복은 목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유에서 회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선교적인 삶이라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 나라는 설교와 삶의 주제였습니다.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우리 삶의 최종 목표와 목적이 될 때 비로소 영성회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성회복의 종착역은 ‘선교적인 삶’(즉,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교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선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은 선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라는 뜻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저는 선교는 관점이며, 선교적인 삶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섯 가지 관점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Mission is a life with a view)
첫째, 성경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 분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목적(purpose)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전체의 일관된 주제와 흐름은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시며, 이 목적을 위해 아브라함과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특정 족속, 민족, 국가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온 세상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주도하시는 분이시며, 이러한 일에 우리를 참여시키고자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세상에 복을 나눠주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복을 받고 복을 나눠주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이같은 선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같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때 어떤 위험이 찾아오게 될까? 성경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나 이세벨과 같은 존재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는 만민이,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 되기 위해 주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반드시 선교를 알게 됩니다. 왜냐면 성경의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열정(passion)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만군의 주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십시오. 선교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배타적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랄프 윈터스가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를 400년 단위로 10개의 시대로 나눈 것은 유명한 말입니다. a.주전2000-주전1600: 약속의 시기-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b.주전1600-주전1200: 연단의 시기-애굽의 종살이, 광야방랑 c.주전1200-주전800: 형성의 시기-정복시대, 사사시대, 다윗왕국 d.주전800-주전400: 쇠퇴 & 포로의 시기 e.주전400-그리스도: 침묵 & 메시야 대망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신 이후에도 400년 주기의 선교역사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a.주후-주후400: 로마선교-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 제국의 국경까지 확장, 고트족. b.주후400-주후800: 야만인선교-아일랜드의 켈트족, 패트릭 c.주후800-주후1200: 바이킹선교-스칸디나비아반도 d.주후1200-주후1600: 사라센선교-십자군전쟁, 이슬람 세력 대두됨. e..주후1600-주후2000: 땅끝선교-침묵(종교개혁자, 수도원말살) & 선교의 대약진시대- 모라비안, 진젠도르프, 윌리엄 캐리, 허드슨테일러...윈터의 글은 매우 독창적이며 세계역사를 전체적으로 그려주는 좋은 청사진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주적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주적이시며 전세계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복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갈 것인가?(타문화로 지경을 넘어감) 아니면 비자발적으로 갈 것인가?(포로됨) 혹은, 내가 가진 것을 가지기 위해 세상이 나에게 자발적으로 올 것인가?(유학, 구도자적 여행) 아니면 비자발적으로 올 것인가?(침략)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은 반드시 나누어져야 합니다. 만일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를 통해 보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문제와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개혁에만 집중한 나머지 세계선교에는 등한히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선교를 주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열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열정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을 어떻게 하든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적인 삶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전략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wisdom)를 날마다 간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성부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전략가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복음화(world evangelization)입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24:14절은 꼭 암송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갈수록 더욱 더 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선교는 이 시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라보다 종족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6,000 여개 미전도 종족 중에 하나 정도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종족 가운데 진정한 세계관변화가 일어나고 대대적인 회심과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 종족 안에 그리스도께 헌신된 일꾼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권에만 관심을 가지면 안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관심이 온 세상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빚진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와서 헌신하며 피를 흘리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지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빚을 갚을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문화권 전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이웃에도, 섬들에도, 시골에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세계선교를 과소평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웃과 시골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계선교와 미전도종족에 대한 접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선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를 기준으로 전도와 선교를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E0(공동체내부)-E1(동일문화권)-E2(유사문화권)-E3(이질문화권). E0과 E1은 일반적으로 ‘전도(evangelism),’라고 하고, E2, E3는 ‘선교(mission)’라 합니다. E-1이 효과적이지만, E-3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형평성의 원리를 가지고서 선교에 집중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저는 그분들이 진정 성경을 읽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경을 알면 반드시 선교를 알게 됩니다. 역사를 알면 반드시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우리는 최전방개척선교의 무기로서 강력한 중보기도, 영적세계의 승리가 필수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즉 전략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략가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 문화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modesty)을 이해하자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겸손과 온유로 옷 입으시고 사람의 몸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선교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교사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고통과 문제를 배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올바른 선교사는 따라서 교사의 관점이 아니라 학생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겸손히 나누고 경청하는 상인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나라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설교하려들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과 문화와 방식을 존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방식과 문화를 존중하여야 합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혹은 나와 같은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함으로써 괴롭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문화의 구조를 파악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에도 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행동-가치관-신념-세계관) 그것이 선교적인 삶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 세 가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다른 것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복음의 본질이 아닌 내 방식을 고집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본질과 방식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성급하게 판단내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종족에게 접근할 때는 먼저 신중하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접촉점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선한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좋지 않은 것이나 개선해야 할 점이나 죄악된 행동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선교사적 마인드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즉, 선교사의 삶이란 이웃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경청하며,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겸손한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다리며 참으며 관대하며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본질과 그 복음을 담는 그릇인 문화를 잘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 나는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할 능력이 있습니까? 나는 틀린 것에 저항하고, 다른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의 겸손과 온유를 본받고, 드러내며 살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지혜롭게 겸손하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동역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은 결코 혼자서 해낼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팀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대로 충성해야 하며,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을 존중히 여기며 그들과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선교적인 마인드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삶 중에 하나를 기쁘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며 축복하며 함께 손을 잡을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① 가는 자 (*장기레이스) cf. 단기선교, 정탐여행(비전트립), 장기선교, 전도여행...
② 보내는 자: 선교에 대한 이해함(관점)이 없을 때...조종, 간섭, 지시
③ 동원하는 자: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동원할 수 있다!
④ 환대하는 자(=손님 대접하기): 고난에 동참하는 삶
⑤ 중보기도자: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파가’(=만남), 최전방개척자의 고통 체험함
⑥ 개발사역: NGO후원과 참여, 모든 직업과 은사들이 필요함, 단기사역, 실버미션...
우리는 무엇보다 팀사역을 해야 합니다. 결코 혼자 힘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선교는 특히 팀웍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탁월한 재능과 능력과 은사의 소유자였지만 그는 언제나 가는 곳마다 팀으로 사역하였습니다. 개인사역과 팀사역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장기선교사와 단기선교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개발사역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사역과 기도사역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번 적용해봅시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나의 은사와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세계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나는 동역자의 관점으로 복음에 협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전방사역자와 동역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교사적인 마인드로 살아야 합니다. 왜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그 아들이신 예수님 역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에 의해 세상으로 파송된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선교는 잃어버린 영혼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관점)을 품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입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또한 선교는 모든 신자의 최종 목표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전히 임하는 그 날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든 우리의 모든 삶과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는 교회의 제일된 우선순위입니다. 전도는 필요하지만 선교는 중요합니다. 특히 선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의 대표적인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끊임없이 선교마인드를 공유해야 합니다. 성경의 빌립보교회, 안디옥교회, 빌라델비아교회...등등. 지금도 선교를 잘 하는 교회를 탐방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및 교회의 예산과 재정집행의 원칙에서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영성회복학교에 오셔서 말씀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시작이 반이라지만 끝은 전부란 것을. 선교적인 삶은 영성회복학교의 전부입니다. 첫째 시간부터 지난 시간까지 다룬 모든 말씀은 바로 오늘 이 주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들은 것을 다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선교적인 삶을 사는데 성공하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영성회복이 된 것입니다. 선교는 영성회복의 끝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빌1:27,28; 4:10,14)
'영성회복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균형잡힌 그리스도인, 균형잡힌 교회사역 (0) | 2012.03.10 |
---|---|
영성회복메시지 목차 (0) | 2012.03.10 |
회복(50)-위탁 (0) | 2012.03.10 |
회복(49)-충성 (0) | 2012.03.10 |
회복(48)-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III (0) | 2012.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