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재정원칙은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가르침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훨씬 다양하고 훨씬 풍부하게 이 실제적인 문제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매우 실제적인데 왜 교회에서는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걸까요?
김광락 선교사 올림.
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2)
본문: 고후9:6-8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섬길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도전은 모든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해당됩니다. 우리는 재물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이용하여야 합니다. 이 둘 사이에 결코 중간지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맘몬이라 불리는 재물신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보면 모든 결정을 재물과 상의합니다. 그리고 재물이 결정합니다. 직장도 진로도 재물이 결정합니다. 요즘 고3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나 부모가 자녀의 진학을 조언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돈을 잘 벌 수 있느냐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재물이 더욱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재물이 은행잔고에 들어올 때 사실 더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재물이 얼마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받고 숭배를 받는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조차도 하나님보다도 재물을 더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는 재정적인 능력을 먼저 따집니다. 심지어 직분자를 세울 때에도 그 사람의 재정능력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개념 없는 어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는 얼마나 많은 연봉을 주느냐로 임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곰곰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재물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재물을 더 믿고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하나님으로 만족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재물에 더 만족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만족과 행복과 기쁨이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결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우리 삶속에서 이렇게 강력하게 권세를 행사하고 있는 맘몬, 즉 재물신의 영향력을 끊어버려야 할 것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끊어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섬길 것을 믿음으로 결정할 때 맘몬의 영향력을 내 삶속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이러한 재정싸움에서 승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재정적인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사람이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삶속에서 맘몬의 영향력을 끊어버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원칙을 가지고 재정을 종으로 부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재정을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사용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재정원칙과 세상 나라의 재정원칙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칙은 이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반면 세상 나라의 경제원칙은 이것입니다. 사고파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고파는 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큰 권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나라는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도록 유혹합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세요. 모든 것이 광고가 아닙니까? 광고를 잘 하면 대박날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홍보를 잘 해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고 부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교회도 마케팅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어떻게 하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린 예배’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파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세상에서 살아갈지라도 우리의 정신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칙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도에 가면 나갈랜드라는 주가 있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완전 몽골과 중국계입니다만 그들은 인도의 법을 따라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을 때 30, 60, 100배의 결실을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수확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농부로서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농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선한 농부와 같이 심고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심는 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 않고 거두는 삶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아 선한 농부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부와 재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란 사실입니다. 여기서 부와 돈에 대해서 한 가지 개념정리를 해야 합니다. 부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돈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고파는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서 돈은 사소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또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하나님께서 부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 돈을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딤전6:10) 부가 돈으로 바뀔 때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 나라의 체계로 전환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럴 때 맘몬의 영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의 부를 돈으로 바꾸었을 때 사단에게 사로잡히게 된 것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맘몬을 섬기기로 선택한 것이고 결국 그들은 끔찍한 결과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돈을 사소한 것으로, 남의 것으로 여겨야 하며, 돈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하고 부림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6:20)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면 주식이나 채권이나 적금이나 예금 혹은 금이나 석유와 같은 보물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러한 보물에 안정감을 둡니다. 그러나 사단의 전략은 그러한 보물을 도적질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사단이 도적질하기 전에 그것을 참된 부로 전환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땅의 보물에 안정감을 둔 한 청년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그 청년은 맘몬의 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에 보화를 두는 법을 가르쳐주셨지만 그 청년은 순종하기를 스스로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맘몬의 영향력이 그 청년에게는 매우 막강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께 안정감을 두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재정에 안정감을 두고 살아갑니까?
오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늘 계좌를 개설한 사람들입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재정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들이 계좌를 만들어줍니다. 이 계좌는 출금과 입금이 있습니다. 하늘계좌 역시 출금과 입금의 기능이 있습니다. 지상은행은 이자가 매우 적지만 하늘은행은 이자가 매우 많습니다! 마가복음 12장을 보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할 때 예수님은 매우 많은 이자를 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성경을 보면 이렇게 하늘계좌를 잘 운용한 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빌4:14-17) 사도 바울은 계속 심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읫ㄹ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8,19) 우리는 빌립보 교인들처럼 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심는 일을 하지 않고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우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은혜를 기대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넬료를 보세요. 그는 복음을 받기도 전부터,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기도 전에 하늘계좌를 잘 관리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0:4절에,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여도 그가 바로 심는 것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늘계좌에 입금할 수 있듯이 필요에 따라 출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습니까? 하늘계좌를 관리하는 일도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으로 입금하듯이 믿음으로 출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하늘계좌에 잔고가 바닥인데도 믿음으로 출금할 수는 없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과 같이 믿음으로 입금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출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사렙다 과부가 공양한 것도, 엘리사 선지자를 수넴의 여인이 공양한 것도 다 믿음으로 입금한 행동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 아뢰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 아뢰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두 가지를 반드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첫째, 하늘계좌에 잔고를 점검해보십시오. 둘째, 우리가 필요가 아닌 욕심을 따라 구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십시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필요를 따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따라 구합니다. 정말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인가 물어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심었고,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의 필요를 아뢰었다면 주님은 반드시 그 약속대로 풍성하게 우리의 쓸 것,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사람들은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말해서, 막힌 재정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말해서, 남는 재정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에 대해서 큰 관심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사실 같은 문제입니다. 실제적인 방법보다는 성경적인 원리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맘몬의 영을 내 삶에서 끊고 몰아내며 대적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맘몬의 영에 붙잡혀 있는 한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고 그리고 헌금한다고 할지라도 재정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묶인 재정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맘몬의 영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묶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상계좌가 아니라 하늘계좌에 믿음으로 심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공식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식과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지혜를 달라고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또 심는 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필요합니다. 제가 속한 예수전도단이란 선교단체에서는 플로잉(flowing)이란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재정을 심는 일을 플로잉이라고 표현하지요. DTS 훈련을 할 때 꼭 플로잉 데이를 가집니다. 이때는 무엇을 플로잉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받고 싶은 것인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가르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무엇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주실 때 믿음으로 순종할 것을 가르치고 플로잉 데이를 통해 실습해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간증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이런 훈련을 하고 나면 스스로 플로잉을 잘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플로잉 데이를 앞두고 주님 앞에 기도할 때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직접 기도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기도를 하고 결정하라고 맡겼는데 아내가 기도하는 중에 플로잉 할 사람의 얼굴과 금액을 보여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믿음으로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일단 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면서 어떤 필요가 생기게 되면 ‘아주 담대하게’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 아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떨 때는 주님께서 저에게 어떻게 심을 것에 대해서 마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급하게 재정문제를 해결해야 할 경우 먼저 주님께 묻기도 합니다. “주님, 제가 누구에게 어떻게 심으면 좋을까요?” 저와 저의 가족은 이렇게 해서 재정문제를 많이 해결하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제가 한 가지 배운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인자하신지 배웁니다.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의 공급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분은 공중에 나는 참새도 먹이시는 분이시며 나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란 사실도 배우게 됩니다. 나의 필요가 놀랍게 채워지는 것보다 더 기쁘고 감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제적인 필요에 대해 관심이 많으실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풍성하게 채우실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가 믿음으로 심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심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은행에 가서 출금요구서에 금액을 적고 도장을 찍고 창구에 내미는 것과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인을 하고 우리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적어서 천사의 손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출하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친히 약속하여주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렇게 복된 약속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 이 세 가지 원칙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맘몬의 영을 끊고 묶는 일, 하늘계좌에 심는 일,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믿음으로 적용해나가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결코 재정적인 압박이나 쪼들림이나 궁핍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풍요롭게 하며 부요하게 하는 복의 근원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원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해보면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재정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지혜란 성품입니다. 성격과 성품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성격은 노력하고 훈련해서 바꿀 수 있고 모방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가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품은 노력과 훈련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성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때 하나님의 성품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나타납니다. 혹은 징계와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에서 개발되기도 합니다. 혹은 적극적으로 간구하여 응답의 형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성령의 충만한 다스림 안에 들어갈 때 선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솔로몬의 부함이 극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의 성품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지혜를 간구해서 응답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정문제를 어떻게 풀고, 재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이 필요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100억의 재산이 있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다 “말아먹을” 수 있습니다. 재정에 있어서 형통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지혜의 성품을 응답받아야 합니다. 우선 성경에서 지혜에 관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품묵상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을 다 찾아서 묵상해나가십시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도 찾아서 묵상해나가십시오. 그리고 지혜란 단어를 다 찾아서 묵상해나가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혜로우심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이 믿음에 하나님은 반드시 기뻐하심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둘째,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목적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재정적인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 주변에 가난한 자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가난한 분들이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보내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제가 예수전도단에 들어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가난한 자라고 다 받지 않습니다. 플로잉(flowing) 하는 것도 받는 것도 훈련이 안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정원칙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전도단에서 풀타임으로 섬기는 간사들은 하나같이 다들 가난합니다. 그러면서도 받는 법도 알고 주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예수전도단으로 인도하신 목적 중에 하나가 재정적으로 복을 주시기 위함임을 저는 요즘 들어서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재정을 공급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배우는 것이지요. 보세요. 우리 교회에서는 아주 비싼 피자로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청년들을 섬겨도 감사의 마음을 느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별로 다들 잘 먹어서 그다지 대수롭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수전도단에서는 밥 한 그릇으로 대접하는 것도 얼마나 큰 격려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지 모릅니다. 식사 한 끼 대접에 감동 그 자체입니다. 왜 어떤 밭에서는 뿌려도 적게 거두고, 어떤 밭은 뿌리는 것마다 30, 60, 100배로 거두는가? 이것은 밭의 문제입니다. 길가와 가시밭에 뿌리기보다는 옥토에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사모하며 받을 줄 알고 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의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가난한 자들이 있다는 것은 교회로서는 축복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위로받고 있다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셋째, 본문 10절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실 때 언제나 심을 양식과 먹을 양식을 함께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프고 가뭄이 찾아와도 절대로 종자는 먹지 않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배가 고프단 이유로 종자를 먹어버립니다. 우리에겐 선한 농부이신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심을 것을 같이 주셨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필요해도 종자를 먹어치우지 않을 것을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먹으려면 당장 배고파도 먹을 양식을 줄이더라도 점차적으로 심을 양식을 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재정원칙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종자는 무엇입니까?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먹을 양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비생활을 말합니다. 소비생활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소비생활에 필요한 원칙은 우선순위를 따라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대로 균형 있게 집행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예산원칙을 말씀드리면, 모든 항목을 나열해놓고 책임, 필요와 소원에 따라 나눕니다. 십일조는 일순위로 떼어놓습니다. 그런 다음 각종 세금을 비롯한 빚에 관해서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런 다음 필요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교육과 자기훈련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리고 저축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취미를 비롯한 소원을 따라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특강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일반적인 것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의 열매를 배가시키는 일을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이란 성품이 필요한 단계입니다. 인색한 자는 결코 재정에 관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재정의 형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관대하신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조건적으로 주는 것은 결코 관대함과 거리가 멉니다. 또 우리가 관대한 마음만이 아니라 전략적인 마음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멍에로부터 풀어주기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이나 복음전도와 세계선교사업에 우리의 재정을 사용하는 것은 의의 열매를 배가시키는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다 살펴볼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재정원칙에 대해서 다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거나, 빚을 해결하는 문제라든지, 보증을 서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나, 혹은 주식과 부동산 문제 등에 관해 다 다룰 수 없습니다. 다만 오늘 저는 이 한 가지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것을 맡은 관리인이란 점입니다. 우리는 재정을 다스리고 부리도록 하기 위해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성품을 닮아가는 일입니다. 이 일에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당신의 성품을 나눠주시고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젊었을 때 지혜의 성품을 개발함으로 남은 생애 동안 맘몬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마음껏 재정을 다스리고 부리며 사용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영성회복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복(49)-충성 (0) | 2012.03.10 |
---|---|
회복(48)-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III (0) | 2012.03.10 |
회복(46)-그리스도인의 재정원칙 I (0) | 2012.03.10 |
회복(45)-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IV (0) | 2012.03.10 |
회복(4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III (0) | 2012.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