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예수님의 씨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사상

등불지기 2012. 3. 21. 21:52

 

 

제가 신대원을 다니면서 써두었던 소논문 중에 하나인

예수님의 씨비유에 대한 글을 올려봅니다.

선교지에서 사역하면서 이보다 더 격려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농부의 마음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씨)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신 예수님의 탁월한 교수방법을 본받기를 원하며...

(편의상 각주와 참고문헌은 생략했습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씨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사상

I.서 론

우리는 예수님의 선포에 있어 핵심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씨(seed)'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씨’와 관련된 비유가 네 가지가 발견된다. 이 비유의 말씀들은 제각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우리에게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하여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사역과 함께 구약에서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고 가르치신다. 동시에 그 왕국의 도래에 합당한 제자의 삶을 가르치신다. 우리는 이 네 가지의 씨 비유들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삶에 대하여서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와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가르침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본 론

 

II.공관복음의 비유

 

문자적 의미에서의 비유(구약의 ‘마샬,‘ 신약의 ’파라볼레‘)란, 일종의 말의 문체로서 간결한, 혹은 보다 넓은 비교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의사소통의 방법으로서 엄밀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비유의 형식은 구약에도 있었지만 신약에서 그것은 예수님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의미를 소유한다. 구약의 사건들이 신약의 사건들을 예기할 때, ’모형‘이라 할 수 있고, 어떤 사건이 다른 영적 실체에 관련 또는 응용될 때, 그것은 ’비유‘라고 할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그 나라의 진상을 사람들이 보다 분명히 이해하도록 가르치신 방법이 곧 비유이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천국은 은밀한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 즉 천국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는데 그것이 비유로 말씀하신 또 하나의 이유이다.  비유로써 예수님은 천국의 실체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비유를 통하여 예수께서 의도하신 하나의 핵심이 무엇인가 살펴보아야 한다.  그 핵심은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를 띈다. 예수님의 여러 비유들 중에서 특히 씨비유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III. 4가지 씨 비유 해석

 

A.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13:1--9; 막4:1--9; 눅8:4--8)

이 비유의 핵심은 씨뿌리는 자에 있지 않고 뿌려진 ’씨’ 에 있다. 왜냐면, 씨뿌리는 자의 모습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씨비유’ 라 불리워져야 함이 옳다. 또 농부의 인간적인 수고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의 강조점은 씨의 성장에 있다. 농부는 길가, 돌짝밭, 가시밭에서는 수확을 상실하지만 마지막에는 기여코 풍요한 수확을 얻는다. 이 사실이 그 농부에게 힘이 된다. 그는 실망치 않는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하나님 나라 계획이 결국 성취될 것을 말씀하신다. ‘씨 ’는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종국에 이르러서는 결실하게 된다.   메세지는 그 당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배척당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의 제자들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하심과 동시에 제자들에게 믿음의 ‘인내’를 요구하시고 계신다.

 

B.은밀히 자라는 씨 비유(막 4.26--29)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이 스스로 자라나는 씨에 대한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임을 전제하고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농부는 많은 추수를 거둠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스스로’ 자라남이 강조된다. 이 ‘스스로’ 자라남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가 있음이 암시되어 있다. 이 비유에는 추수기가 자연히 오게 되리라는 확신이 그 저변에 놓여 있다. 즉, 하나님의 시간에 자연히 추수되어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밀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그 결정된 순간은 분명히 올 것이며 또 오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루시아는 하나님 말씀 사역의 결과일 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현재와 미래의 긴장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은밀하게’  행되며 확장되어 간다. 고로 이 비유에서도 인내의 교훈이 강조된다. 인내의 부족은 인간의 특성이다. 이 비유의 마지막 부분인 추수는 요엘 3:13과 계14:12--16의 심판과 연관되여 있다. 하나님 나라는 마지막 추수(파루시아)를 향하여 생명력으로 다가간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성장의 비유라 할 수 있다. 이 생명력 있는 성장에 농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또한 생명의 비유라 할 슈 있다. 이 생명은 기적이며 그 기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C.곡식과 가라지 비유(마13.24--30)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이 비유의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으나 악한 자들과 같이 끝날까지 그냥 지낼 것이다.” 첫째로, 여기서는 주인의 배려가 특징이다. 가라지를 뽑으면 곡식의 뿌리가 위험하다. 또한, 만약 곡식이 충실하지 못한 채로 추수기 이전에 수확을 한다면 곡식 그 자체는 빈약할 것이다. 그것은 주인에게도 손해가 된다. 둘째로, 심판의 도래가 강조된다.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와의 대결에서 만드시 종국의 때에 이르러서는 사단의 나라가 패배할 것이다. 주인은 곡식과 가라지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곡식의 충실함과 하나님 나라의 분명한 승리를 위해서 ‘정한 때’를 기다리신다. 셋째로, 이 밭은 주인의 것이다. 즉 곡식인 우리는 그의 밭에 심기워져 살고 있다. 악한 자도 그의 땅에 하나님나라 백성과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그 밭은 합법적으로 곡식의 것이다.  곡식은 그러나 인내하여야 한다.  재성의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갈등과 긴장 가운데 있으나 미래의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러나 승리를 이미 확보한 기 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비유는 추수비유라고 할 수 있다.

 

D.겨자씨 비유(마13.31; 막4.30--32; 눅13.18--19)

이 비유는 누룩 비유와 함께 ‘천국 성장’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즉, 겨자씨 비유는 외적 성장을, 누룩비유는 내적 성장을 다룬다. 이 성장을 다윈과 헤겔의 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서양식의 진화론적 낙관주의로서 보아서는 안된다. 즉 이 비유는 성장보다 처음과 끝의 대조적인 영광의 현저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성의 하나님 나라의 미약함과 미래성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그 핵심이다. 이 엄청난 차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다. 미약하지만 지금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장래의 영광스런 모습을 기지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 나라의 시작으로 생각하셨고   시작은 미약하지만 종국에서의 자신의 영광스런 승리를 말씀하시는 듯하다. 자신이 가져온 하나님 나라는 지금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으로서 존재한다. 예수님의 뜻은 “지금 비록 외관상 보잘 것 없더라도 낙심하지 마라! 때가 차면,지금 작은 씨와 같은 그 하나님 나라가 커다란 나무와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왕국은 지금 작은 규모로 눈에 띄지 않고 또한 매우 보잘 것 없이 시작하나 그 날에는 눈에 띄게 놀라운 영광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이미 그 영광을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을 통하여 증명(demo)되고 있다. 우리는 그때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그 나라의 비밀을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다.

 

IV.씨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적 측면

모든 씨비유들은 공통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능력과 영광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가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 사람들의 예기치 않는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핵심으로 한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란 그것이 지금 ‘현존’하고 있으나 불가항력적인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나약한 모습으로 깨지기 쉬운 모습으로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지금 현존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 거부, 배척 당할 수 있다.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는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약하고 힘없는 모습인 씨와 같이 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동적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미래성이자 현재성이며 비밀이면서 동시에 계시이다. 씨에는 또한 심판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씨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과 심판과 종말이 동시에 도래하였다.  그 범위는 실로 전세계적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형적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우리에게 가까이 왔으나 완성된 것은 ‘아직(not yet)'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미’ 그 나라의 충만한 것(fulfillment)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엡 1:3,18,19).

 

V. 씨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성격

 

A.역동성:

하나님 나라는 생명력이 있다. 씨비유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생명성을 강조한다. 뿌려진 씨는 시련과 환란, 재리의 유혹등을 이겨내고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 생명력을, 스스로 자라나는 씨는 아무 도움 없이도 눈에 띄지 않지만 점진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생명력을, 곡식과 가라지 비유는 가라지의 해로움에도 불구하고 추수 때까지 기다리는 생명력을,겨자씨는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결국엔 능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움에 이르는 생명력을 각각 내포하고 있다.  이 생명력은 바로 인내의 열매로 나타난다.

 

B.역설성:

하나님 나라는 처음과 끝이 역설적으로 대조된다. 옥토에 뿌려진 씨앗은 길가나 가시밭에서의 내용들과 대조를 이루며, 곡식과 가라지는 갈등과 긴장이 최후 분리와 역설적으로 연결되며 스스로 자라나는 씨는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한 가운데 처음과 나중이 이어지며, 겨자씨는 처음과 나중의 영광이 대조를 이룬다.

 

C.확장성:

하나님 나라는 확장한다. 시험과 환란이 있어도, 비록 미약하지만, 가라지의 침해를 받지만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흥황하게된다. 그것은 생명력을 증거하며 그 생명력은 충실한 결실을 위해 어려움을 통과한다. 그 최종 목표는 결실하며 추수되어지는 것이다.

 

D.은밀성:

하나님 나라는 우리 눈에 띄게 역사하지 않는다. 농부는 그 자라나는 과정이 어찌되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눈에 띄지 않는 확장이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 안에 감취어진 은밀한 하나님 나라를 잘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계시이자 은폐의 수단으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는 감추어져 역사한다.

 

E.불완전성:

하나님 나라는 불완전하다. 아직도 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충실한 결실을 위해서 더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완전함은 완전함을 내포한 불완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성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희망도 요구된다. 왜냐면 지금 미약하지만, ‘필연적인’ 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VI.씨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시간개념

 

우리는 두 가지 이단적 역사관을 경계하여야 한다. 첬째, 헬라인들의 순환적 역사 견해이며, 둘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의 무역사적 견해이다. 시간은 결코 되풀이 되지 않으며 단지 종말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즉, 역사는 단회적이며 직선적이다. 이 역사의 중심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스카 쿨만은 창조 이전 세대, 현재 세대, 다가오는 세대로 나누면서 현재는 이미 종말의 때라고 지적하였다.  현재는 종말의 때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종말은 오지않았다. 이러한 긴장은 기독교 신학의 전체적 구조를 형성한다. 그것은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변증법이자 유일한 이원론이다.

 

A. 미래성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는 현재성: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임했다는 데에 촛점이 있다. 그것은 ‘씨’로서 비유된다. G. 보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해서,

첫째, 현재성은 점차 임하나 종국의 나라는 격변적으로 임한다.

둘째, 현재성은 내면적으로 임하나 종국의 나라는 외면적으로 임한다.

셋째, 현재성은 불완전으로 있으나 종국의 나라는 완전하게 임한다 라고 말했다.  모든 씨비유들은 미래의 완전성을 포함한 현재성으로서의 하나님 나라 비유이다. 현재성과 동시에 미래성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비유의 핵심주제이며 또한 천국 비밀이다. 청중들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 땅에 현재성의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인격과 사역으로 가져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를 통하여 계시하고자 하신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씨 비유들은 예수님의 오심과 더불어 ’시작된(inaugurated)‘  국에 대해 말한다.

 

B.’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교회는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의 긴장 속에 있으며이  장에 책임감으로 응답할 때 교회는 유지되고 성장된다. 신약의 신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던 종말론적 시대 속에 이미 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신자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활될 육체를 소유하지 못한 채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신약새대의 독특한 특징이다. 현재적 천국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으나 아직 미래적 천국은 이르지 않았다. 이 긴장은 예수 그리그도의 재림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 긴장은 또한 교회의 자화상이며 교 의 고난당하는 데 분명한 이유를 제공한다. 이 긴장은 종말의 시기인 '이 세대‘의 특징인 것이다.

 

C.’연기성‘과 ’홀연성‘: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대심판은 연기된다. 이것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한없이 연기되는 것이 아니다. 그날이 홀연히 임할 것이다. 그것은 왜 연기되는가? 첫째로, 하나님 자신의 크신 긍휼 때문이요, 둘째로, 신자의 ’결실‘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의 경륜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난님의 심판은 연기되나 그 때가 오면 홀연히 임할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역사관 위에서 인내하며 깨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자체의 구조라기보다 외적 시간구조라 볼 수 있다.

 

D.’영원성‘: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경륜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존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의 신앙고백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삶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투영된 곳이며, 현재성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초청이며 미래성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확증이요 선포인 것이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씨’와 같이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원전부터 영원까지를 다 포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전우주적 성격을 가진다.

 

VII.결 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이미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천국은 이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임해 있다. 이 천국은 ’씨‘에 비유될 만하다. 이 땅에 임한 천국은 보잘것 없고 사람들의 배척을 받으며 악의 세력과 함께 존재한다. 그러나 천국은 반드시 결실하여 30배, 60배, 100배 결실할 것이며 사람들이 그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르익어 추수될 것이며 현재의 그것과 능히 비교될 수 없는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이 천국은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인내로써 그 나라의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현재의 천국은 미래의 완전될 천국을 기다리며 그 완성을 향해 돌진해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비유를 통하여 자신이 가져온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선포하시며 사람들을 그 나라에로 초청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의 제자들은 바로 그 나라를 전파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르침의 본질 역시 그러한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요약 도표--1>

 

뿌려진 씨

스스로 자라는 씨

곡식과 가라지

겨자씨

하나님 나라의 시작

하나님 나라의 과정

하나님 나라의 결말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결말

하나님 나라의 환난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

하나님 나라의 존재양식

하나님 나라의 영광

반드시 결실하는 하나님 나라

은밀히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

악과 같이 있는 하나님 나라

큰 영광을 가진 하나님 나라

승 리(결실)

생 명

승 리(심판)

영 광

하나님 나라는 시험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결실하고야 만다

하나님 나라는 어느 누구의 도움없이도 진행되어 나간다

하나님 나라는 심판의 때까지 악의 세력과 긴장관계에 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보잘 것 없지만 큰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

마13:1-9

막4:1-9

눅8:4-8

막4:26-29

마13:24-30

마13:31-32

막4:30-32

눅13:18-19

선 교

양 육

생 활

가치관

공통적인 메시지

1. 인내하라. 그리고 소망을 가지라.

2. 현재 하나님 나라는 겉보기엔 보잘 것 없다.

3. 하나님 나라는 지금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4. 현재 하나님 나라는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5.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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