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대원을 다닐 때 써두었던 논문들 중에 몇 가지를 계속 올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교회의 [축사사역]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에 대해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스터디 그룹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하였을 때 많은 찬반이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잘 다루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사역하는 이 나라에도 백인들이 세운 신학교들이 여럿 있지만
이 주제를 가지고 가르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서구신학의 한계이지요..
그러나 아프리카 흑인들에게는 이 문제는 아주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각주와 참고문헌은 생략했습니다.)
김광락 선교사 올림.
제목 : 교회의 축사사역
( How to handle with the problem of demonology in pastoral care )
I. 들어가는 말
A. 연구의 중요성
B. 연구의 방법
II. 본 론
A. 귀신론에 있어서 연구될 부분
B. 귀신론에 접근하는 바람직한 태도
C. 귀신론을 사역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안내
III. 맺는 말
IV.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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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A. 연구의 중요성
최근 한국교회는 귀신론에 대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목회자들은 귀신에 대해서 설교를 하면 이단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을까하고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귀신에 대한 설교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들 주위에 실재하는 영적 실체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귀신으로 하여금 교회에 자유롭게 역사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이와같이 된 것은 한 마디로 “김기동 신드롬”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귀신이 실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귀신이 현재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어떤이들은 성경의 중심주제가 귀신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무지를 정당화한다. 그말의 일부는 정당하다. 성경은 귀신을 연구하라고 기록된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적인 귀신론을 등한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교리적인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실재의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영적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최선인가? 그러므로 성경적인 귀신론이란 “기독교 실재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실재하는 영적존재를 무시함으로써 교회는 스스로 무능과 무지를 편하게 선택하고자 한다는 데 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열정적으로 수행했던 하나님 나라 복음전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행동복음”으로서의 “축사”(deliverance)는 “지적복음”에 비해 열등한 사역이라고 여기는 교회는 스스로 세상 가운데서 자기를 고립시킨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복음이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자유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복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은 실제적으로 복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자유케하는 사역을 세상의 손에 맡겨버리는 것 같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교회에서 지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세상에서 실질적인 만족을 추구한다. 그래서 정신치료사들, 영매들, 점술가들, 그리고 오컬트적인 현상들이 활개를 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참으로 자유케 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적 영적 실재론을 정립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
B. 연구의 방법
여기서 우리의 필요는 포괄적인 기독교 영적 실재론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실재론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필요한 항목들은 ① 성령론, ② 천사론, ③ 인간론, ④ 귀신론,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특별히 우리는 마지막 “귀신론”에만 논의를 국한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체계적인 귀신론을 정립하려고 하지 않고, 세가지 강조점에 따라 글을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이 분야에 연구되어질 분야들이 어떤 것이 있는가?과, 둘째,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무엇인가? 그리고, 셋째, 이 문제는 목회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를 살펴보고자 할 것이다.
II. 본 론
A. 귀신론에 있어서 연구될 부분
1. 귀신들은 마귀와 어떻게 다른가 ?
1. 귀신들은 어떻게 실재하는가?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귀신들의 존재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귀신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두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있는데, 첫째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악의 상징 혹은 악의 세력이라고 하여 비인격화시키는 경우이고 ( 불트만 / 칼 바르트 ), 둘째는 모든 영역에서 귀신의 존재를 강조하여 과대포장하는 경우 ( 김기동 )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능적 이신론으로서 대다수의 복음주의적 크리스챤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2. 귀신들은 어떤 조직을 가지고 있는가?
3. 귀신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4. 귀신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가?
B. 귀신론에 접근하는 바람직한 태도
1. 귀신론을 가르친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해서는 안된다.
2. 모든 질병을 귀신 탓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3.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존재로 보아서는 안된다.
4. 귀신의 이야기를 교리의 근거로 세워서는 안된다.
5. 귀신을 과대포장해서는 안된다.
C. 귀신론을 사역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안내
1. 내면축사 ( inner deliverance )
2. 일대일축사 ( one-to-one deliverance )
3. 공동체축사 ( community deliverance )
4. 지역축사 ( local deliverance )
III. 결 론
IV. 참고문헌
해결해야 할 문제들:
1. 신자들도 귀신들릴 수 있다. possession 과 demonization
2. 귀신들린 사람도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있다.
3. 귀신들은 인격체이다.
4. 부흥이 일어나려면 대장귀신이 쫓겨나야 한다.
5. 귀신들은 어디에서 사는가?
6. 귀신들은 사단과 어떤 관계인가?
7. 귀신들을 늘 의식하는 것이 옳은가? 예수님은 어떠했는가?
8. 인간의 의지와 귀신의 의지가 어떻게 조화되는가?
*이사야 14장 본문에서 사탄의 타락의 기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없다. 왜냐면 본문에서 그렇게 보아야 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탄의 타락을 보여주는 근거가 무엇인가? (1) ‘계명성’이 루시퍼이기 때문인가? 루시퍼가 사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다른 본문이 어디 있는가? ‘아침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인가? 성경에서 천사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곳은 있다. (시편) 아들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일개 국왕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 신약에서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루시퍼라는 말인가? 또 별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별이라고 해서 무조건 천사들을 말한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문맥과 역사적 정황을 따라 그 의미를 결정해야 한다. (2)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표현 때문인가? 우리가 구약을 해석할 때 시대착오적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즉, 앞으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뒤의 사건을 해석해서는 않된다. 즉, 신약을 가지고 구약을 해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요 조직신학적 해석이지 성경신학적 해석은 아니다. 구약은 구약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신약은 구약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70인 전도대가 돌아오면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사단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셨다고 하신 것은 실재를 말씀하셨다고 보아야 한다.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러면 이사야 14장 본문에서 이사야가 본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실체가 사단이라면 시기적으로 충돌이 되지 않는가? 사단이 두번 떨어졌다는 말인가? 이사야가 말한 “떨어졌다”는 실체는 사단이 아니다. 그것은 바벨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표현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에 적용시키셔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 (3) ‘지극히 높은자와 비기리라’라는 표현이 사단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단이 과연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가? 사단은 그 능력과 영광에 있어 하나님과 비길 수 없다. 그러나 이 표현이 사단의 타락을 암시하는 구절이라고 믿는다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단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즉, 사단은 하나님과 스스로 비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는 사단은 전적 하나님의 도구이며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이다.(욥기) 구약성경의 확신에 의하면 사단은 하나님과 스스로 비길 수 없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 그것은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영지주의 이단에 의하면 하나님과 사단은 대등한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표현을 가지고 사단의 타락을 말하게 되면 우리는 영지주의가 말하는 영원한 이원론을 받아들이는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이다. (4)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이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을 가리키지만 이차적으로는 사단의 타락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설교에 있어 해석과 적용으로 편의상 나누어 볼 수 있다. 성도의 삶에 도전을 주기 위해 이 표현을 가지고 사단을 묘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해석의 차원에 있어서 설교자는 이 본문을 가지고 사단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 본문은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지 사단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구약 예언서가 갖는 이중적 의미도 여기에는 없다. 우리가 예언의 이중적 의미라고 할 때 그것은 앞으로 성취될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사단의 타락을 이 본문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은 앞으로 성취될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단의 타락이) 과거에 이미 성취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래를 지향하는 예언의 성격은 우리는 믿는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우리가 미래를 지향하는 예언의 성격을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므로 예언의 성격 때문에 이 본문에서 사단의 타락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5) 다른 사람들은 이 본문이 이사야선지자가 사단의 타락에 대한 당시의 견해들을 빌어다가 바벨론의 멸망에 적용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그러기 때문에 이 본문에서 사단의 타락을 어느정도 암시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구약중간기 시대에나 병행시대에 그렇게 이해했다고 하는 본문이 없기 때문에 과도한 상상에 의한 해석이다. 뿐만 아니라, 사단에 대한 구약전체의 사상이 사단이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생각했거나,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 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이 사단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존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이 본문에서 사단의 타락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구약성경이 아니라 영지주의의 영원한 이원론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gap-theory에 대한 비판이 왜 중요한가?
gap-theory에 의하면 사단의 타락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서 ‘혼돈’에 대한 해석과 이사야 14장에서 “하늘에서 떨어졌다”라고 하는 표현을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히브리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1절은 창세기 전체의 표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사야서 본문에 대한 해석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시대착오적인(anachromism) 해석이기 때문에 거부되어야 한다. 즉, 이사야서 본문을 사단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데 그것을 기초로 거꾸로 창세기 1장1절과 2절을 해석하는데 도입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가 gap-theory를 반대하는가? (1)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gap-theory에 의하면 창세기 1장1절처럼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천상에서 사단의 반역이 있었고 사단과 그의 일단의 무리들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쫓겨 났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심판이 있었는데, 따라서 2절말씀처럼 우주는 다시 혼돈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혼돈의 세계를 제압하시기 위해서 질서의 세계 즉 재창조사역을 하셨다고 말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상당히 약화되고 사단의 능력이 상당히 강화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분명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다. 성경은 철저히 하나님 주권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이 해석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이 타락한 천사들을 흑암의 곳 곧 우주에 가두셨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우주창조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히 아름답게 보셨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일서에서 “세상이 악한자 안에 처했다”라고 할 때 세상은 사단을 가두기 위해 창조된 세계가 아니다. (2) 그것은 인간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gap-theory에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해 사단이 필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에 있어 그리스도의 대속사건은 인간구원이 목표가 아니라 인간구원은 사단의 심판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전락하게 될뿐이다. 또한, gap-theory에 의하면 천사들의 존재이유와 창조목적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게 된다. 천사들은 왜 창조되었는가? 피조물들, 특히 인간들을 위해 창조되었다. 천사들은 인간의 창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시편기자는 말한다. 그러나 gap-theory에 의하면 인간창조의 목적이 희미해지게 될 뿐만 아니라 천사창조의 목적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고작 타락한 사단의 심판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 어디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사단에 대해서 엄중히 경고를 하지만 인간보다 사단을 더 무대에 세워두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능히 대적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줌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사단을 더 두려워하게 만든다. 이것은 명백히 사단의 속임수이다. 사단은 자기를 높이기 위해 신학에까지 침투하여 자기를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이 gap-theory이다. 우리는 사단을 경계해야 하지만 우리 인간의 창조가 사단의 심판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거부해야 한다. 사단이 천사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천사의 창조된 목적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천사의 창조의 목적이 히브리서 1장에서 있는 것처럼 ‘섬기는 자’로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단은 후사를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높아지기로 작정한 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에스겔서 본문과 이사야서 본문이 서로 조화될 수 있는가?
없다. 에스겔서 28장에서 보면 두로왕에 대한 심판의 말씀에서 우리는 천사의 타락을 암시하는 명백한 구절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사단의 타락은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덮는 그룹은 에덴동산에 있었다. 하늘에서 타락하여 에덴동산으로 들어온것이 아니다. 에스겔서 본문에서는 이사야서 본문과는 달리 어떤 그룹의 타락에 대한 당시의 견해들을 빌어서 두로왕에게 적용한것이다. 즉, 이사야가 본문을 표현한 양식과 에스겔이 표현한 양식은 비슷하지만 그 차용한 양식이 무엇을 암시하는 가에 대해서는 상이하게 다르다. 이사야가 차용한 표현양식은 국가를 가리키고 에스겔이 차용한 표현양식은 덮는 그룹을 가리킨다. 에스겔은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에 많이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이사야는 국가 혹은 국왕을 별이나 아들로 묘사하는 고대근동지방의 표현양식을 많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두본문을 모두 가지고 사단의 타락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은 상호충돌을 가져온다.
* 지역영들(local spirits)에 대한 성경적 입증
이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는 ‘지역 영들’(local spirits)에 대한 문제로 압축된다. 즉, 사탄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나라와 지역별로 부하들을 배치해놓았는데 한 국가나 지역을 영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영적인 세력들을 분별하고 강력한 기도로 대항하는 등 구체적인 전략을 교회가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은 주로 한 개인의 사역이 아니라 목회자들이나 교회의 연합사역의 형태를 띄고 있다.
티모씨 와너, pp.152-155 ; 피터 와그너 외, [선교현장과 영적전쟁](서울:나눔터,1994) 제 3 장과 10 장을 참조. 피터 와그너는 티모씨 와너의 ‘지역 영들’(local spirits)에 대한 개념들을 받아들여 발전시키고 있다. 그는 여기에 대한 성경구절로서, 엡6:12 마12:29; 신32장; 단10:10-21; 수24:14 ; 삿 3:7 등을 들고 있다. 그는 특히 신 32:8에 대한 F.F.Bruce의 해석을 인용하면서, 70인역의 원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 하나님의 천사들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즉, 여러나라들의 통치영역은 천상의 천사들의 수요와 동일하게 분류할 수 있으며 그것은 사도바울이 엡 6:12에서 의미하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단 10장에서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보낸 천사가 바사국군에 의해 21일 동안 제한되었다고 해석하면서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지연된 것은 이와 같이 어두움의 세상 통치자들(local spirits)에 의한 방해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우상들의 이름들은 지역영들의 이름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영들의 개념은 주로 선교학에서 활발하게 연구되어지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비한 가운데 있다. 본인은 한국교회가 ‘사회정의’라는 윤리적 책임의식에 대한 교육과 함께 이 사회국가의 치유라는 쪽에 눈을 크게 뜨고 비젼을 세워야 하리라 본다. 선교학에서만이 아니라 목회학에서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검토와 함께 성경신학적이고 역사신학적인 연구작업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 사단에 대한 성경적 태도
(1)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무관심은 해롭다.
(2) 사단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거부해야 한다.
(3)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사단을 이야기 해서는 안된다.
(4) 하나님에 대한 관심보다 귀신론을 더 가르쳐서는 안된다.
(5) 그러나 귀신론을 가르친다고 해서 다 이단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6) 모든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질병이 영적인 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7)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8) 치유를 받아들이기 보다 차라리 축사를 받아들이느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볼 수 있다.
(9) 우리의 관심은 사단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앎이 되어야 한다.
(10)
*축사방법론
*사탄의 기원, 기능, 전술, 사탄과 귀신의 관계, 용어정의, 천년왕국해석문제
*하나님의 주권과 사탄의 자유의지 문제
이단적 사유형태: 이원론적 경향 // 상호대립하는 능력대결
성경적 사유형태: 하나님의 주권에 도구로 쓰이는 사단의 모습(구약)
*샤마니즘에서 말하는 축사와 성경이 말하는 축사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귀신들림에 대한 개념정의
귀신들림에 대한 정의는 한마디로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용어사용에 있어서 구별해야 할 문제가 있다. 티모씨 와너는 그의 책 [영적전투] 제 7 장 “그리스도인의 방어”에서 이 용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귀신들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귀신들림”이라는 표현이 영어에서는 귀신에 의한 “소유”(possession)라는 말로 번역된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영어에서 귀신을 뜻하는 demon은 헬라어의 daimon이라는 말에서 음역한 것이다. 그런데 그 동사형인 daimonizomai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즉, 영어에서 possess가 아니라 demonize로 번역되었다면 우리는 귀신에 의해서 ‘소유되고 소유되지 않고의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즉, 귀신들림의 문제를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영향력의 정도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심각할 정도로 영향을 미칠수는 있지만 그 영혼을 소유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티모씨 와너는 이 문제를 유물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즉, 내 몸안에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악령은 내 몸 안에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추론이다. 문제는 자신의 영으로써 뇌를 통제하는 정도와 성령께서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뇌를 통제하시는 정도와, 혹은 귀신이 나를 속여서 믿도록 만든 그 거짓말을 통해서 뇌를 통제하는 정도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사탄이 심지어 예수님의 마음 속에도 유혹을 집어넣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적에게 근거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적은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세무얼 사다드, [마귀론과 정신질환](서울:생명의 말씀,1987), 제 4 장 “심리적 장애의 판정” 부분을 읽기 바람. 저자는 정신분열증 및 노이로제 등 몇가지 영역에 있어서 마귀에 의한 것인지 정서적 문제인지 분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귀신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우리가 함부로 귀신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예컨데, 정서적인 문제로 예기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한다든지 갑작스럽게 과격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런 말을 사용하게 될 경우 그의 문제는 치유되기는 커녕 더 상처가 심화될 수 있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축사자들이 실패하는 부분이다.
[목회와 신학]( 1990년 10월 ), 최영민, “정신의학으로 본 마귀역사” pp.65-67 참조. 몇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① “귀신들린 것을 구별해주는 중요한 표시는 새로운 인격이 자동적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그인격은 끈질기고도 일관되게 힘을 발휘한다.” ( 존 네비우스 선교사 )
② 정신질환은 다른 인격의 존재를 못느끼는 반면에 귓니들림에서는 또 다른 자신의 자기파괴적인 부분을 뚜렷이 상반되는 인격으로 느낀다.
③ 정신질환은 드러내놓고 마귀의 역활을 하지 않는반면에 귀신들림은 공개적이고 일관적으로 마귀의 정체를 드러낸다.
④ 귀신들림은 지속적으로 파괴적이고 남을 희생시키는 행동을 하는데 때론 매우 교묘하게 그런 행동을 한다. 반면 정신병 환자들은 일반적을 매우 착하고 순수한 성격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남을 희생시키기 위해 꾀를 부리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패배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⑤ 둘 다 자기가 매우 가치있는 존재처럼 느끼고 인정받으려는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 정신병자들은 경쟁이 되는 타인에 대해 분노와 증오심을 어린아이처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반면, 귀신들린자는 교묘하게 꾸미고 숨기려 한다.
⑥ 정신병에서는 아주 만성적인 지적퇴행이 오지 않는 한 지적능력의 장애는 없는 편이나 귀신들린자는 지적으로 악하게 왜곡되어 있다. 즉, 정신병자는 악하기 보다는 순수하다는 인상을 준다.
⑦ 정신병자들은 자신이 위협받을 때 대체로 위축되는 반면에 귀신들린자는 격렬한 분노를 보인다.
※ 성경 및 다른 축사자들이 말하는 귀신들린 징후에 대해서는 조현, [성경이 말하는 귀신 쫓는 방법](서울:할렐루야 서원,1990), pp.100-108. 참조바람. 성경이 보여주는 귀신들린 징후들 중눅 8:26-39이 보여주는 징후들은 다음과 같다 :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아니함(눅8:26), 집에 거하지 않고 무덤에 거함, 강력한 힘을 소유함, 예수에 대한 정상적인 고백을 함, 무저갱에 들어가기를 원치않음, 등이다. 이 외에도 귀신들은 벙어리, 귀먹음, 꼬부라짐, 등 육체불구의 원인으로 나타나기도한다(막9:17;눅13:11) 반면, 종교적으로 상당한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으며(막5:7;9:20), 점을 치든지(행16:16), 마술을 행할 때도 있다(행19:13).
※ 어떤 이들은 귀신들린 증거로서, 습관성 거짓말, 습관적이고 과도한 정욕, 억제할 수 없는 성욕이나 범죄욕구, 하나님을 모독함, 폭력과 저주, 영적인 것에 대한 저항과 증오심, 예수의 이름을 높이지 않음, 초자연적 능력, 목회자를 거역하고 거부함, 다른 말을 함, 과도한 신체적인 힘, 원인모를 질병, 눈동자의 변화, 과도한 불안과 초조, 기도와 찬양을 방해함, 심한 오한이나 심한 두통증세, 신앙고백을 하지 않음, 악행을 저지름, 악몽에 시달림, 자기신체를 상하게 함, 양신의 역사, 횡설수설, 동성연애 및 변태성욕, 지나치게 신경질적임, 음식에 대한 무절제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는 못하겠지만 참조할 수 있다고 본다.
*사단에 관한 세계관 패러다임
티모씨 와너, [영적전투](서울:죠이,1993), 제 2 장 “세계관의 싸움”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책에서 Warner는 우리가 영적싸움에 관한 이론에 대해서는 어려워하지 않는데 현실에 적용하려고 할 때 상당히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가 우리 안에 내제된 세계관이 서양적 세계관으로서 영들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세가지 종류의 세계관을 소개하고 있다:
① 정령숭배적 세계관 - 물리적 영역과 영적 영역은 서로 하나라는, 즉, 하나의 영적영역 만을 주장하는 관점으로 범신론(汎神論)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동양적인 세계관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② 서구적 세계관 - 이것은 과학적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물리적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이 라는 두 영역이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법칙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理神論, 혹은 機能主義 神觀이라 할수 있다.
③ 성경적 세계관 -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 인간의 영역, 그리고 천사들의 영역이라는 세 영적 영역들이 이 서로 교통하며 존재한다는 관점으로 이 세계를 과학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움직여지는 것으로 본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사실은 이신론적 세계관을 버리리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세속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세속주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도 사실은 이러한 성경적 세계관이 아니라 기능주의적 이신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현실적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질병은 귀신이 가져다 준 것인가?
모든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자가 귀신은 아니지만 질병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탄적’이기 때문에 모든 질병을 ‘인격화’하여 꾸짖는 기도형식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악’의 실체를 ‘인격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이성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비성경적’이라고 볼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자를 귀신으로 일괄적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질병을 ‘인격화’하여 ‘책망하고 꾸짖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왜냐면 질병은 그 자체로는 비인격적인 물리적 현상이지만 상당수의 경우 귀신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탄의 세력이 궁극적인 원인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질병을 대할 때,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탄이 먼저 속였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질병의 책임에 대해서 인간의 윤리적 책임과 사탄의 영향은 엄밀하게 나누기가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예수께서 지상에서 치유사역을 수행하신 경우를 보면 인간의 윤리적 책임을 먼저 요구하신 것보다는 믿음을 보시고 사탄의 멍에로부터 먼저 자유케 하신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사탄의 속박에서 자유케 하시려는 은혜, 즉, 자비의 현실적인 베품이 윤리적인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었다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윤리적인 가르침을 무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산상수훈을 비롯한 많은 말씀들은 치유사역 못지않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사는 살의 원리들을 보여주고 계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가 치유사역을 행할 때 하나님 나라의 윤리라는 의의 측면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탄이 타락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사탄이 타락한 동기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여기서 발생되는 신학적 난제는 사탄의 타락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사탄의 타락 시기가 인간창조 이전인가 아니면 후인가 하는 문제이다. 혹자는 사탄의 타락이 천지창조 이전에 혹은 빛의 창조 이후에 있었는데 자기 처소를 떠난 사탄을 심판하실 근거를 설정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들은 ‘혼돈’ ‘공허’ ‘흑압’ ‘어두움’이라는 단어에서 그러한 논리적 근거를 추론해낸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인 유추이지 성경적 증거가 약하다. D.G.반하우스는 창 1장 1절과 2절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 사탄이 반역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심판하셨기 때문에 땅이 공허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창 1:1은 2절과 시간적으로 연결되는 구절이라기 보다는 창세기 전체의 표제어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우기, 사탄의 타락이 인간창조 이전에 일어났다면 하나님께서 그 지은신 것을 보시고 “심히 아름다왔다,” “안식하셨다”라고 하는 말씀과 맞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어에 의한 논리적인 유추보다는 성경의 문맥으로 생각해볼 때 사탄의 타락의 시기는 천지창조의 완성 이후 즉, 사람의 창조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완성된 피조세계 특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바라볼 때 비교의식에 따라 질투와 교만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처소를 떠나서 세계통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속여서 그 통치권을 빼앗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섬기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탄의 타락시기와 장소는 천지창조의 완성 이후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티모씨 와너, pp.17-26 ; 마이클 그린, [나는 사탄의 멸망을 믿는다](서울:장로회신학교,1994), 45--56 ; 도날드 G.반하우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서울:아가페,1994), 제 1 장과 2 장을 참조바람.
*축사사역의 신학적 근거: 여호와 전쟁 개념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영적전쟁으로 받아들일 때 혼동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직접적으로 대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존 윔버, [능력전도](서울:나단,1993), pp.41-42. 참조 )
Ibid., pp.51-58. 윔버는 창 11장의 바벨심판 이후 다시 언어를 통일하고(방언현상), 연합하게 하심으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국제적인 군대를 창설하셨다고 말함으로써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에 이루어진 하나의 능력대결(power encounter)로 보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분열은 사탄의 공격의 결과이며 연합은 하나님 나라의 승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 여호와 전쟁 ( 영적전쟁 )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 나라는 특별히 치유와 아주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창조시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조하실 때에는 질병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질병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궁극적으로 사탄의 속임수에 의한 것이었기에 질병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치유에 대한 소망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있어 축사는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단의 나라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던 사단의 권세가 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임금이 심판을 받고 이 세상임금 아래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자유를 얻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고 할 때, 그것을 특별히 인간편에서 볼 때, [치유]를 가리키는 것이다. 치유는 인간의 소망의 핵심내용이다. 즉, 치유는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 동산으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이루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왕권을 물려받아 피조세계를 대리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창 1:26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통치’개념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을 질투함으로써 하나님의 천사들 중 일부가 타락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비할 수 없었고 또 도전할 수 없었지만 속임수의 방법으로 사람을 타락시키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마귀에게 속음으로써 마귀의 거짓말에 순종함으로써, 마귀에게 자신의 통치권, 즉,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세계통치의 왕좌를 물려주었다. 그래서 에덴 왕국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인간에게 찾아온 것은 세계통치의 반대개념인 고통, 질병, 그리고 분열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고통과 질병이 없는 에덴으로의 회복을 이루시고자 하심이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은 다시 세계통치의 역활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본받아서 질병과 귀신과 싸우는 일 - 즉, 치유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2. 구약에서 본 영적전쟁
세대주의자들이 보는 사탄의 타락설과 구속사관
창 3:15
아브람의 선택과 땅의 구속의 의미
출애굽 사건
가나안 정복 사건
선지자들의 성전(holy war) 메세지
3. 중간기에 나타난 영적전쟁
묵시문학에 나타난 사탄론
두세대구조: 현실과 미래의 긴장구조
4. 신약에서 본 영적전쟁
그러나 ‘여호와 라파’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적극적으로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나타나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선포하시기 시작하시면서 바로 행하신 일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로 보았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보셨다. 그러나, 이 치유사역은 예수님께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에수님 자신의 치유사역을 계속해나가시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막 3:14, 15절을 보면 제자들을 선택하신 세가지 이유가 세가지로 제시된다. 첫째는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 즉, 전도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예수님처럼 치유사역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교회는 얼마나 치유사역에 헌신하고 있는가? 눅 9장 1,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두가지 명령을 내리신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과 치유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도사명을 수행하려고 하는 교회는 너무나 전도에만 그쳐버리는데 만족하는 것 같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배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주신 능력과 권세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이다(요 1:12). 눅 10:20을 보면 파송받은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긍정적인 보고를 할 때, 예수님께서“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치유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권능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분--바로 거기서 치유사역의 권능이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 믿음이다. 막 16장 17, 18절을 보면 특별한 능력,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했다. 마가복음에서 믿는 자란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가리킨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이미 예수님의 모든 권능을 소유한 자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행 3:12을 보면 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가 그 치유능력의 근원이 특별한 믿음이나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이 거룩한 이름이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본받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마귀는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너는 할 수 없어. 왜냐면 너는 그런 특별한 은사가 없기 때문이야. 그 은사를 받기 전에는 일찌감치 포기하는게 좋을걸.” 그러나, 고전 13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할 의무에서 제외될 수 없다. 전도의 은사가 없다고 해서 전도할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언과 통역과 같은 기도의 은사가 없다고 해서 기도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은사가 없다고 해서 믿지 않아도 될 이유가 있지 않다. 가르치는 은사가 없다고 해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다. 넷째, 성령의 내주하심이다.(고전 12:13;롬8:9;갈5:25) 성령의 내주하심은 체험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순종을 요구한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주님의 지상명령이다(마 28:18) 티모씨 와너는 예수께서 교회에 지상명령을 주셨다는 것은 교회가 그 명령에 순종하고자 할 때 권세와 능력을 지원하신다는 약속을 하셨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교회에 주어지는 권위는 항존적이라기 보다는 위임된 권세라고 할 수 있다.
5. 사역의 현장 속에 나타난 영적전쟁
6. 영적 전투로서의 치유사역
교회의 치유사역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영적전투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티모씨 와너는 그의 저서 [영적전투]에서 사단의 궤계를 대적하는 5가지 사역이 있는데 그것은 전도, 신비종교에 관련된 물체를 파괴하는 것, 치유사역, 공개적인 능력대결, 축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치유의 범위를 육체의 질병에 제한시키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치유사역이라는 말로 통합될 수 있다. 어쨌든 치유사역이 개인적인 유익에서 그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표를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치유사역이 사탄과의 영적전투라는 맥락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교회의 치유사역은 기능화되고 내면화되기 쉬울 것이다.
2. 진단을 위한 몇가지 조언
치유사역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의 과정, 즉, 발병의 원인자들은 대게 복합적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자를 찾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몇가지 원칙들을 나열하고자 한다; ① 위에서 인위적으로 구분하였지만 대개의 경우 여러가지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만큼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증상의 원인을 단순하게 진단내리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사람은 위에서 어느 것이 가장 근본적인 질병인지 먼저 분별해내어야만 비로소 효과적인 치유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 (정확한 분별, 즉, 진단이 필요한 이유는 구체적인 기도를 하기 위해서이다.) ② 분별하는 과정과 치유하는 과정에서 주체는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나 그의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③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진단과 치유의 가장 근본적인 원천이지만 상담가나 의학적 치유를 무시하지 말고 때론 그것들을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④ 모든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을 귀신의 영향으로만 돌리려고 하는 축사자들의 경향에 주의해야 하며 무엇보다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을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 ⑤ 반면, 흔히 축사사역자들은 내적치유사역자들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⑥ 영적 혹은 내적 치유만 고집하려는 경향도 버려야 한다. ⑦ 대개는 위에서 언급한 질병의 순서대로 밟아나가는 것이 효과적인 치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E. 치유사역과 축사사역과의 관계
치유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자를 규명하는 분별의 단계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의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주장한다. 즉, 질병을 인격체로서 간주하여 꾸짖을 때 치유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인간의 질병과 마귀가 깊은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눅 10:38;눅13:16). 치유사역과 축사사역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고 사탄은 질병을 통해서만 역사한다는 것도 잘못되었을뿥더러 모든 질병을 축사의 방법으로 일관하려는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마귀의 힘은 자기를 은폐 엄폐하는 데 있는데 스스로 격동하여 자기를 노출하지 않는 한 귀신이라고 단정할 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은 분명히 치유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축사사역 역시 치유사역의 한 과정인데 다음의 3가지로 구분될 수 있겠다.
① 內面的 축사 : 마음의 전쟁에서 마귀의 영향을 몰아내는 개인의 내면사역
닐 앤더슨의 책이 가장 잘 가르쳐주고 있다.
② 對人的 축사 : 귀신들린자 혹은 귀신에게 영향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사역
원인불명의 질병 내지 불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③ 地域的 축사 : 특정지역, 교회공동체, 도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
존 도슨의 책이 이 부분에서 권위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사역은 사회정의구현이라는 예언자적 의미가 있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는 누구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는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인가? 성경은 축사의 권세 역시 치유의 능력과 동일하게 특정 소수만이 점유할 수 있는 교회사역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축사를 포함하여 치유의 능력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축사사역에 전담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특정 사역에 전담하도록 성령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권적으로 은사를 주어 그들을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전임사역자로 세우신 것은 교회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그리스도인의 보편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축사의 방버은?
그러면, 축사의 방법은 무엇인가 ? 이 분야의 많은 사역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첫번째의 과정은 영분별의 과정이다. 그런 후에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맥너트는 다음의 5가지의 과정을 말한다.
① 적의 정체를 밝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적을 대적하게 하라.
② 적의 말할 권리를 결박하고 잠잠하게 하라.
③ 자녀된 권세 : 주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라. 그가 하나님 자녀임을 선포하라.
④ 그를 이하여 내적 치유기도를 하여 그가 성령으로 채움받도록 기도하라.
⑤ 후속 상담하기 : 교회 안에서 성장권면, 마귀를 대적하는 삶에 대해 권면하라.
지역적 축사란?
지역적 축사는 부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느 특정지역 내에서 심령들을 일깨우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갈망하게 만드는데 있어 지역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지역영들을 결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역적 축사에 대해 존 도슨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① 경배하기 : 영적전쟁은 바로 이 경배에서부터 시작된다.
②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 숨겨진 죄를 발견하고 지역을 주관하는 영들의 정체를 분별하라. 도슨은 모든 도시들(cities)이 독특한 ‘은사’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지 않고 사탄에 의해서 오용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한 도시의 영적인 특성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③ 공동체의 죄를 나의 죄로 동일시하여 회개하라
④ 산고의 고통으로 인내하라 : 끈질긴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⑤ 축복하기 : 피터 와그너는 몇가지 형태의 중보기도를 제안하고 있다 : 단체기도, 찬양행진, 거리기도, 원정기도, 기도여행 등이다.
⑥ 순종하기 : 지역영(local spirits)들은 한 도시나 국가의 영적상태를 결정한다. 이때 순 종의 의미는 지역영들의 영적 상태와 반대되는 성품을 가지고 계발하는 것을 말한다.
*귀신(daimonion)에 대한 성경본문
귀신들린자의 존재에 대한 성경의 증거-마4:24;8:16,28,33;막1:32;5:15,16,18,눅8:36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에 대한 약속-마7:22
사람들이 귀신들린자를 올수 있다-마8:16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할 수 있다-마8:31
귀신이 벙어리됨의 원인이다-마9:32,33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마9:34;12:24,27;막3:22;눅11:15,18,19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는 거저 받은 것이다-마10:8
사람들이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귀신들림에 대한 오해하다-마11:18;눅7:33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의 증거이다-마12:28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나중에 들어가게 되어 전보다 형편이 악화되다-마12:45
흉악히 귀신들리다-마15:22
귀신이 나가자 비로소 아이가 낫게 되다-마17:18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쫓으셨(신)다-막1:34,39;6: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신)다-막3:15;눅9:1
귀신쫓아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막7:26
주님은 귀신이 나갔다고 선언하시다-막7:29
벙어리 귀신이 존재한다-막9:17
귀신이 어디서든지 사람을 잡을 수 있다-막9:18
귀신이 예수를 알아보다-막9:20
귀신이 사람을 죽이려고 불과 물에 던질수 있다-막9:22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시다-막9:25
귀신이 소리지르며 사람으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다-막9:26
권능받은 제자들이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다-막9:28;눅9:49
일곱귀신이 들리다-막16:9;눅8:2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막16:17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눅4:33
귀신이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오다-눅4:35;9:42
여러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다-눅4:41
귀신들린자가 예수를 만나다-눅8:27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다-눅8:29
귀신이 가끔 사람을 붙잡다-눅8:29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다-눅8:29
귀신의 이름이 군대이며 이뜻은 많은 귀신이 들렸다는 뜻이다-눅8:30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간구하다/들어가다-눅8:32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다-눅8:33
귀신들린 자가 정신이 온전하여 지다-눅8:35
귀신나간 사람이 간구하다-눅8:38
귀신이 사람을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다-눅9:39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제자에게 항복하다-눅10:17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눅10:20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다-눅11:20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다-눅11:26
십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다-눅13:11
오늘과 내일 주님이 귀신을 쫓아내며-13:32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오판하다-요7:20;8:48,49,52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하다-요10:20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말이 귀신들린자의 말이 아니라고 판단하다-요10:21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고전10:20
제사는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는 것이다-고전10:20
그리스도인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참예/마셔서는 안된다-고전10:21
말세에 사람들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을 것이다-딤전4:1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분이심을 믿고 (두려워) 떤다-약2:19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귀신에게(우상에게) 절하다-계9:20
귀신의 영이 이적을 행하다-계16:14
큰 성 바벨론(세상)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처소이다-계18:2
*마귀(diabolos)에 대한 성경본문
마귀에게 하였다-신32:17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시다-마4:4;눅4:2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다-마4:5
마귀가 또 예수를 데리고 가다-마4:8;눅4:5
마귀는 예수를 떠나다-마4:11;눅4:13
마귀가 가라지를 심은 원수이다-마13:39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처소이다-마25:41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예수님께 말하다-눅4:3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다-눅8:12
가룟유다를 마귀라 하시다-요6:70
바리새인들의 아비를 마귀라고 하시며 마귀에게 났다고 하시다-요8:44
마귀의 자녀는 마귀의 욕심을 그대로 행하고자 한다-요8:44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요8:44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때마다 제것으로 말한다-요8:44
마귀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요8:44
마귀가 가룟유다의 마음에 생각을 집어넣다-요13:2
예수님은 마귀에게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행10:38
엘루마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이다-행13:10
해질때까지 분을 품게 되면 마귀가 틈을 타게 될 것이다-엡4:27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엡6:11
초신자는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지기 쉽다-딤전3:6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3:7
온유한 징계는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게 할수 있다-딤후2;26
예수께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자 마귀를 없이 하기 위함이다-히2:14
시기와 다툼으로 말미암는 지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약3:15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할 것이다-약4:7
신자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벧전5: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요일3:8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였다-요일3:8
예수께서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요일3:8
마귀의 자녀들이 있다-요일3:10
미가엘이 마귀와 다투어 변론하다-유1:9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사람을 시험할 것이다-계2:10
마귀는 곧 사단이다-계12:9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못된 줄을 알다-계12:12
옛 뱀이 곧 마귀요 사단이다-계20:2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울것이다-게20:10
*사단(satanas)에 대한 성경본문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다-대상21:1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있어 하나님 앞에 서다-욥1:6;2:1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으시다. 사단이 대답하다-욥1:7;2: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하나님의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는지 물으시고 칭찬하시다-욥1:8
사단이 여호와께 욥에 대해서 까닭없이 경외하지 않는다고 송사하다-욥1:9
사단이 여호와께 욥을 치실것을 간구하다-욥1:11;2:4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그 소유물을 붙이시다. 허락을 받고 사단은 나가다-욥1:12
사단이 여호와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욥을 치게 하다-욥2:3
여호와께서 욥의 몸을 사단에게 붙이시다. 생명은 붙이지 않으시다-욥2:6
사단이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하다-욥2:7
사단은 그의 우편에서서 그를 대적하다-슥3:1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사탄, 송사하는자)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시109:6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마4:10
사단이 사단을 쫓아낼수 없다-마12:26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다-막1:13
만일 사단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막3:26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게게 뿌리운 씨를 가져가다-막4:15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시다-눅10:18
사단은 스스로 분쟁하지 않는다-눅11:18
십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되다-13:16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다-눅22:3;요13:27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다-눅22:31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여 거짓말하다-행5:3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다-행26:18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 상하게 하실 것이다-롬16:20
이런자를 사단에게 내어주다-고전5:5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다-고전7:5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고후2:11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11:14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한다-고후11:15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바울에게 주시다-고후12:7
너희에게 가고자 한 우리의 계획을 사단이 막다-살전2:18
악한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다-살후2:9,10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신 것은 진리를 믿지 않고 물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딤전1:20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다-딤전5:15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모임이다-계2:9;3:9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다-계2:13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계2:24
사단은 온천하를 꾀는 자다-계12:9
사단을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다-계20:2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이다-계20:7
*악귀(πνευμα πονηρου)에 대한 성경본문
고통과 및 악귀들린자-눅7:21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눅8:2
시험적으로 악귀들린자에게 명하다-행19:13
악귀가 대답하되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는 누구냐-행19:15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사람을 해하다-행19:16
*악신에 대한 성경본문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다-삿9:23
16:14,15,16,23
18:10
19:9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을 번뇌케 하다-삼상16:14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니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다-삼상16: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다-삼상18:10
다윗이 수금을 탈때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임하자 사울이 창을 던지려 하다-삼상19:9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부활로 말미암아 교회는 이미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승리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원수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최선을 다해 교회를 대적하고자 한다. 원수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발 아래 있으나 교회는 원수의 치열한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전쟁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C.S 루이스가 말한 대로 원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모두 원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어진 국지전에서 승리하여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원수의 교묘한 계략에 속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원수의 존재와 전략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교회를 섬기는 영적 지도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충성과 함께 균형잡힌 성경적인 지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교인들에게 말씀으로 바르게 지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승리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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