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여호와전쟁의 역사적 형성: 왕권전쟁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은 홀로 戰士(warrior)가 되시어 이스라엘을 위해 바로의 군대와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의 宇宙的 왕권을 몸으로 깨닫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바로의 손에서 자유하게 되는데 있어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하였다. 이 놀라운 체험은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에 핵심되는 思想的 土臺을 형성하게 한 사건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역사에서 실제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단지 가만히 기다리면서 용사이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만을 대망하고만 있었는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후 역사에서 적극적으로 여호와 전쟁에 참여하였다. Von Rad는 이스라엘의 전쟁이 실제로 참여한 것이지만 방어만을 위한 전쟁이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의 전쟁역사는 소극적인 측면 이 아닌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양상 을 띄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내산 언약 체결 사건 을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시내산 언약 사건은 출애굽시 나타난 용사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사건 즉, 우주의 왕이 한 족속의 왕이 되시는 사건이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모든 영역 (가나안 지경 內) 에서 오직 여호와의 왕권만을 추구하고 선전해야 하는 거룩한 의무를 일방적으로 부여받게 된다. 그 의무란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여호와의 선물로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이스라엘은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하였다. 약속의 땅을 향하여 진행하여 가는 동안, 그리고 약속의 땅에 거할 동안 언제나 여호와의 왕되심만을 수호하고 선전할 의무, 곧 율법적 의무가 있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 내에서 적극적 인 전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 의무를 이행하기를 게을리하거나 거부할 경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전쟁을 시행하셨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의 싸움은 열방 가운데 여호와의 왕권을 수호하고 그것을 열방에 증거해야 할 성질의 것으로서 율법준수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는 열방 가운데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적극적인 측면의 전쟁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했다.
A.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 ( War for the Promised Land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 가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크게 세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평화정착설, 농민반란설, 그리고 정복설이 그것이다. 각각의 이론에 따라 한계점이 있다. 비평가들은 수 1--12장의 전쟁기사가전이스라엘이 전가나안땅을 일시에 정복하였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나 사사기 1장의 전쟁을 비롯한 여러 본문들은 러한 획일적 정복전쟁이 아니었음을 말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은 여호수아에 나타난 정복전쟁이 역사적 사실 에 근거하지 않는, 후대의 역사가가 신명기적 사관에 따라 재편집 또는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주를 평화로운 이주의 과정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전 13--12 세기 경 전체적인 전쟁의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자 이 이론은 가나안 자체에서 억압받던 하층계급이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힘을 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성공하였다는 이론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그 근거는 아마르나 서신에 나타난 하비루를 스라엘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히브리인과 하비루를 동일시할 근거가 없고, K.Marx의 종교사회이론에 자극받은 시대적 이론 이 는 한계성이 있으며, 성경의 기록을 비역사화 시킴으로 믿음의 근거를 박탈하고 있다.
위에서 간략히 본대로, 이주설과 반란설은 역사 와 해석 을 이분화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복은 해석이 규정한 역사 가 아니라 역사가 규정한 해석 으로서만이 그 가치가 있다. 그러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 여호수아의 지도아래 여리고를 비롯하여 가나안의 핵심도시들이 멸절되자 그것을 가나안땅을 이미 얻은 것으로 간주하고 아직 남은 땅을 얻기위한 전쟁을 각 지파별로 수행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와 아직의 이해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이 단번에 가나안을 정복하였다는 기록(수 13--22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가나안을 송두리째 점령했다는 선포가 갖는 진리성과 역사성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여호수아의 기록이 역사적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순전히 후대의 신명기사가의 작품이라면 성경전체의 진리성이 와해되고 성경은 계시의 책이 아니라 한낱 문학서(fiction)로 전락하게 된다. 허구의 이야기로써 참믿음이 가능한가? 즉, 만약 여리고 성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라고 대답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에 근거하지 않은 계시는 믿음의 근거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나안 정복전쟁이 고대근동국가의 전쟁과 구별되는 여호와의 전쟁 이라고 말할 증거는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 또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명령에 근거하여 싸웠다. 째로,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은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 에 한 된 것이었다. 가나안 땅을 벗어나서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미의 제국주의적 정복전쟁이 아니었다. 셋째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왕과 같은 의미의 왕권제도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여호와 한분 뿐이었다. 왜냐면, 여호와께서만이 이스라엘의 구원과 국가적 형성에 유일한 공로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사사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가나안 왕들과 달랐다. 그들이 비록 군대를 거느렸고 군대장관으로 불리우지만 참된 의미에서 군대장관 혹은 戰士는 하나님 한분이심이 강조되고 있다. 넷째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약탈 의 행위가 아니라 약속의 땅 을 여호와께 거룩히 바친다는 제사행위의 의미에서의 전쟁이었다(Herem 사상의 본질). 다섯째로, 전쟁의 실제적인 지휘는 인간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담당하셨다.
이 가나안 정복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이었다면 그것이 가지는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첫째로, 그것은 가나안이라는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었다.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聖殿(Temple)을 설립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통치를 열방에 나타내기 위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에서의 전쟁은 열방국가들이 수행한 방식과는 다른 거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은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을 수여받는 행위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 여호와 전쟁 의 목적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마땅히 얻는 특권 및 축복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 일에 실패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전을 받게 되었으나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의하여 여호와의 전쟁은 성취를 맛보게 되었다. 성취의 의미로서 여호와의 전쟁은 제 5 장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B. 사사기의 신정수호전쟁 ( War for Theodicy )
神政守護戰爭이란 약속의 땅에 대한 이방신의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전쟁 또는 約束의 땅에서 이방신의 영향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라고 편의상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전쟁은 적어도 가나안 땅이라는 지경 內에서는 방어전쟁 이 아닌 공격전쟁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 한분만을 왕으로 인정해야하는 선민윤리(율법윤리)를 일방적으로 부여받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전쟁 의 형식을 띄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 하나님의 왕권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사사기를 통해서 살펴보자. 먼저, 사사들은 이방신을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일에 성공할 경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적들과 싸우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실패할 경우, 하나님은 열방을 일으켜 이스라엘과 싸우셨다. 여기서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왕권을 지키시는 전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회개할 경우에는 여호와께서 출애굽 때처럼 직접 이스라엘을 위해 기적으로 싸우시지 않으시고 사사를 (왕정시대에서는 선지자를) 일으켜 그에게 여호와의 神 을 부어 싸우게 하신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얼핏 이스라엘의 패배로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승리로 충만해 있다.
여기서 사사들 과 여호와의 신 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W. Eichrodt는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 을 인간에게 매개하는 존재라고 정의하였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때와 같이 직접 기적 을 행하시는 대신 사사를 세워 그에게 성령을 부어 그로 하여금 기적 을 행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신다. 또한 사사들의 전쟁수단은 창이나 칼과 마병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방식의 수단을 용하여 기적과 같은 행위 를 보여줌으로 결국 하나님의 용사되심을 열방과 이스라엘에게 證據하게 하신다. 즉, 사사들은 용사이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출애굽 구원과 같은 의미의 구원을 이스라엘에게 再經驗 또는 現存케 하는 역활을 한다. 그러나 사사들은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만 용사 가 되는 制限性을 가지고 있다. 성령은 사사로 하여금 기적을 가능케 하시는 존재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할 것은 사사가 용사가 되어 이스라엘에 구원을 베풀어도 그는 이스라엘의 왕 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사기에 나타난 신정수호전쟁에서 특징적인 한가지 사실은 종말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루어 완전한 샬롬을 가져다 줄 메시야의 통치에 대한 기초적인 기대이다. 반복되는 사사들의 구원은 모두 국지전에 불과한 것으로서, 이는 강력한 왕정제도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사사기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해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C. 인간 왕들의 전쟁 ( War for the Kingdom of Man )
보다 강력하고 전 이스라엘적인 사사의 통치를 기대하는 것은 왕정제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정통치(theocracy)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요구에 따라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 목적은 사울왕권은 사사의 길을 버리고 이방왕들과 같은 의미에서 왕이 되려고 함으로 이스라엘에게 인간왕정의 말로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사울왕은 처음으로 상비군을 조직함으로써 하나님이 아닌 무력에 의하여 나라를 유지하려는 초대왕이라는 점에서 그 따라 용사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군대의 힘에 의존하는 왕들의 특성을 앞으로 사울전통 (Sauline tradition)이라 하겠다.( 울전통과 다윗(메시야적)전통과의 비교는 도표 3 을 참조하라)
사무엘상 15 장에 나타난 사울과 아멜렉과의 전쟁이야기는 여호와의 전쟁을 세속적 정치이데올로기로 격하시키는 사울의 죄악을 고발하고 있다. 필경 사울이 전리품을 진멸하지 않고 아각왕을 살려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관용의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위르겐 에바하는 여호와 전쟁 이 인간의 정치 手段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즉, 비록 가나안 족속이 聖戰神學 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왕들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정치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다. 면 본래 이스라엘의 여호와 전쟁 는 왕들의 입지를 위한 정치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왕들의 정치-이데올로기적 전쟁과 여호와의 전쟁을 구별하는 문제는 원래 律法에 명시된 것으로 왕에게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요구되는 選民倫理였다 (신 17:14--17). 律法에 나타난 王의 條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왕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세울 것, 타국인을 세우지 말 것. 말(馬)을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은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 것. 이 조항들은 위의 두가지 성격의 전쟁을 구별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사적 힘에 의한 평화는 솔로몬 시대에 절정에 다다랐는데 솔로몬의 사후, 왕국은 분열됨으로 무력에 의한 평화의 왕국은 위선 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분열왕국 시기에 北이스라엘과 南유다는 각기 자기 왕국의 평화로운 존립을 위하여 군사정책과 동맹정책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왕들의 나라는 끊임없는 반역으로 점철되어졌으며, 무력에 의존하는 왕들의 전쟁(Sauline tradition)은 단지 일시적인 평화를 보장해주었을 뿐 오히려 더 크고 무서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였다.
이러한 왕들의 전쟁은 당시 인접국가의 위협에 대하여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군대조직에 의지하였는데 그러면서도 여호와께서는 강한군대와 함께하신다는 전쟁신학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이방국가의 聖戰神學과 동일한 것이다: 즉, 강한 군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민족신이 함께 하는 증거로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신학은 출애굽 때 경험한 여호와 전쟁 의 世俗化 내지 政治이데올로기化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왕들의 통치 사이에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변하는 선지자들을 보내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속적인 啓示를 보여주셨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왕권을 강조하며 때로는 기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심으로 그들에게 출애굽구원을 상기하게 하셨다. 그러면, 王政時期를 전후하여 활동한 선지자들은 이러한 왕들의 武力依存的인 전쟁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게 되었는가?
Sauline Kingdom: Yahweh as the King vs. Man as the King
Davidic Kingdom: Yahweh as the King and Man as the Servant
(or, prophet )
< 도 표 (3) >
D. 선지자들의 전쟁예언 ( prophecy of divine wars against the Kingdom of Man)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에 있어 선지자들의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의 이방신과 싸우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 에 참여하도록 鼓舞(incite)하는 것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을 열렬히 옹호하던 대표적인 선지자들이었다. 원래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이라는 말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을 위해 바로의 군대와 싸우신 전사이신 하나님을 의미하였으나 하나님의 대리자인 선지자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
특별히, 선지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병거와 마병에 의지하는 타락한 왕정을 향하여서 이스라엘의 의지하여야 할 병거와 마병 은 한분 여호와이심을 '기적과 말씀'으로써 증거하였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오므리 왕조를 대항하여 행한 모든 기적과 기사는 모두 용사이신 여호와 를 증거한 것이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군대를 사르게 한 것이나, 엘리사가 하늘의 병거를 보이고, 사마리아 성에 갖힌 아람군대를 칼로 멸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이고 돌려보낸 사건(황하 6:14--23)과, 이스라엘의 원수인 아람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말씀으로 깨끗게 한 사건(황하 5:1--19) 등은 가나안의 거룩한 전쟁개념과는 다른 여호와 전쟁 개념의 참된 본질을 설명해주는 實例들이라 하겠다.
세속화된 여호와 전쟁 개념으로서 전락된 王들의 戰爭을 옹호하는 일단의 직업적 (궁정) 선지자들이 왕들의 주위에 있었는데 이들은 왕들의 전쟁을 비판하는 선지자들과 첨예한 갈등을 이루었다. 그것은 출애굽 때 용사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군사적으로 무방비상태의 이스라엘을 위해 세계적 강대국인 애굽의 군대를 격퇴한 여호와의 전쟁 에 대한 해석에 대한 싸움이었다. 즉,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대결은 이데올로기화된 世俗 聖戰神學과 이를 다시 非이데올로기化하려는 여호와 전쟁 신학과의 葛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용사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와 무기 그리고 同盟國의 힘을 의지할 때, 더이상 샬롬 이 없다고 외쳤다. 그 이유는 그들과 싸우시려는 여호와의 전쟁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참 선지자의 요구는 군대의 강함 을 의지하지 말고, 과거 강한 군대 를 물리치신 용사이신 하나님 을 의지하고, 그의 명하신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해서는 군대의 힘이 아닌 용사이신 여호와를 참 군대 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선지자의 요구는 음의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무력의존에의 포기, 율법준수, 용사이신 여호와에 대한 신뢰.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원한 샬롬을 얻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군사무기를 쓸데 없는 것으로 간주하시는 것을 깨달았기에 하나님은 그러한 무기를 폐하실 것임을 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아니하리라. (이사야 2장 4절)
즉, 그러한 귀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마지막 때에 세우심에 있어서 인간의 무기나 전쟁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홀로 (solely) 자신의 나라를 위하여 마지막 전쟁을 치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종국에(the last days) 세우실 시온의 새성전 은 그러한 인간전쟁폐기 의 中心이 될 것임을 말한다. 러므로, 시온의 聖殿은 세계민족들의 희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사 60:1--17; 학 2:7--22; 슥 2:14,15; 8:7,8). 결국, 이같은 전면적인 무장해제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는 제각기 샬롬의 나라 를 위하여 전쟁으로 각축을 벌여온 열국의 이상(dream)에 대한 허구성을 드러내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샬롬의 왕국은 결코 무기나 군대의 힘으로 서지 않을 것이다. 무력에 의한 전쟁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전적 무능하게 될 것이며 그 가치가 무효화될 것이다.
또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 참 병거가 되시며 용사가 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이방국가처럼 군대에 의존하려고 할 때,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싸우실 하나님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호세아, 미가, 이사야, 아모스, 스바냐 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전쟁 이 더이상 이스라엘의 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에 대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아모스는 최초로 여호와의 날을 말하면서 그날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셔서 승리하는 날로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의미로도 선포되고 있다(욜 2:28 이하.).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가 끝나고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또한 선포하였는데, 이 경우에 선지자들은 과거 출애굽 전통을 상기시키곤 하였다. B.W. Anderson은 이사야서 후반부의 중심 모티프가 새로운 출애굽 사건 (New Exodus) 이라고 말한다. 이사야는 임박한 이스라엘의 포로상태에서의 구원을 과거 출애굽과 광야 전통을 상기시키는 이미지로서 선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그 새로운 구원 을 태초의 창조의 사건과 결부시킨다. 즉, 이사야 선지자는 미래적 출애굽 을 위하여 용사이신 여호와의 개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사 51:9--11). 이사야 선지자의 출애굽 모티프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할 수 있겠다:
과거적 출애굽 ------- 同一視 -------과거적 흑암과 혼돈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대적하는 세력)
용사이신 여호와의 개입
홍해바다==현재적 고난==흑암과 혼돈
용사이신 여호와의 개입
미래적 출애굽 ------- 同一視 ------- 미래적 새창조
< 도 표 (4) >
E. 요약 및 의의
출애굽이후 포로사건까지의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여호와 전쟁 개념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기 전에 몇가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구약에 나타난 폭력 과 여호와 전쟁 과의 관련성 문제이다. 즉, 여호와 전쟁 은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가? 기독교 역시 폭력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면서 행사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두가지의 폭력과 전쟁을 구별할 수 있음을 보았다: 왕들의 정치-이데올로기적 전쟁과 여호와의 기적에 의한 전쟁, 그리고 가인의 폭력과 출애굽의 폭력. 에바하가 잘 지적하였듯이, 여호와의 전쟁기사에서 강조되는 바는 전쟁이 정치의 수단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소위 전쟁정치 의 批判이 그 핵심이지 폭력과 전쟁을 正當化 혹은 美化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왜 폭력과 평화라는 개념을 섞어서 사용하는가? 이에 대하여 에바하는 이 세계 자체가 폭력적이며 동시에 인간이 선과 파멸, 사랑과 살인 이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러므로 성경의 메세지는 인간과 세계의 현실과 무관한 추상적 메세지가 아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에바하는 여호와 전쟁 이 과격한 양상을 띄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구약성경이 두가지 근본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약성경은 섬멸, 증오, 복수를 향한 인간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폭로한다.
구약성경은 그러한 경향을 거부한다.
두번째 문제는 복수의 시편에 대한 해석문제이다. 원수의 멸망을 기뻐하는 시편의 내용(시 3, 10, 18 등)은 전쟁의 잔혹성을 지지하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것에 의하면, 그 시편은 인간의 복수정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의 복수정신을 거부하고, 그 복수를 행할 자격이 인간자신에게 있지 않고 대신 그 자격을 용사이신 하나님께 돌리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악인에 대한 증오를 시행할 권리와 자격(용사되심)은 오직 여호와 한분 이심을 복수의 시편은 말하고 있다. 신약의 로마서 12: 17--21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악에 대한 복수의 정신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그 권리를 맡기고 도리어 선을 베풀 것을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복수의 시편과 동일한 사상적 맥락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세번째 문제는 십계명의 살인금지 명령과 여호와의 전쟁과의 관계문제이다. 제 6 계명에 나타난 살인 금지명령은 전쟁과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P.C. Craigie가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보인다. Craigie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인 끼리 서로 싸워 죽이는 데 사용되는 동사 ( 차 )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 쓰이는 동사 ( ㄱ하 ; ㄹ따카 ) 가 구별되고 있음을 밝히면서 제 6 계명의 목적은 보복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상( 차 )을 금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 6 계명을 가지고 전쟁이나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논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본 것은 당하다고 본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전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출애굽 이후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권과 이방신, 하나님의 왕권과 인간왕권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 왕권을 수호하는 전쟁은 율법준수에 의한 전쟁이었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한분만의 왕권을 인정하는 사상이었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방과의 전쟁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율법을 준수하지 않는 왕들의 전쟁 (사울과 분열왕국이후의 왕들) 은 그것이 아무리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일시적인 샬롬 밖에 가져다 주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역사는 율법을 온전히 준수하고 최후의 전쟁을 통하여 궁극적인 샬롬을 가져다 줄 종말의 메시야왕을 대망하게 되는 기초가 되었다.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완전한 왕권을 실현하도록 하는 거룩한 의무(율법)를 이스라엘이 부여받았다. 이스라엘이 이 의무(율법)에 충성하지 못할 경우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체를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시고 전쟁을 수행하셨다. 이스라엘의 범죄의 시기에 하나님은 대리자를 세워 그에게 성령를 부으시고 그로 하여금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출애굽 구원을 재경험케 하셨다.
분열왕국 이후의 왕들이 사울전통을 따라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인간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할 때에,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전쟁이 임박함을 예고 또는 경계하였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전쟁메세지는 포로사건이 있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선지자들의 전쟁메세지는 포로사건을 전후로 하여 절정에 다다르게 되고 아울러 한 걸음 더 나아가 묵시(apocalypse) 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포로 전후시기에 여호와의 전쟁 이 선지자들에게 어떻게 선포되었는지를 메시야 대망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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