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3대 사이비 신앙

등불지기 2012. 3. 26. 21:58

 

 

3대 사이비 신앙

 

 

그리스도인에게 최대의 적은 신앙의 모습을 입고 접근해오는 어둠의 세력입니다. 이른바 '사이비 신앙'입니다. "사이비(似而非)"는 말 그대로 비슷한 것 같지만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의 모습은 가졌지만 기독교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단(異端)"이란 말도 비슷하지요. 처음은 같은데 끝은 아니란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이비 혹은 이단에 현혹되어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가졌던 자유, 기쁨, 만족, 행복, 생명, 등과 같이 가치 있는 보배들을 잃어버립니다.

 

 

쉽게 현혹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도 멋진 '천사의 모습'을 하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유혹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신앙의 전도자는 교회 밖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고, 가까이 교제하고 있고, 마음을 나누고 신뢰하는 이들 중에서 일어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이비 신앙을 열렬히 추종하거나 혹은 전파하는 그런 이들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을 유혹하는 치명적이고도 무서운 사이비 신앙 3가지 정체를 폭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복주의 신앙, 율법주의 신앙, 그리고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선물로 받는 기쁨, 자유, 생명, 행복, 만족 등을 강탈해가는 3大 사이비 신앙의 정체를 하나씩 뜯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분별하고, 어떻게 대처하며,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지, 그래서 우리가 은혜로 받은 영적 보배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지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고 누리는 삶(요10:10; 빌3:3)입니다.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이란 하나님의 자원을 가지고with 살며,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for 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by 사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가르치심을 순종하여 나아갈 때(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이비 신앙은 교묘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방했으나 결코 아닌 가르침을 제시하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무서운 체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비슷한 것같으나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비슷하나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비슷하나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삶의 자원, 삶의 목적, 그리고 삶의 방법에 대해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자원resource으로 사는가?에 관해서, 사이비 신앙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의(義)가 아니라 자기 의(義)를 자원으로 삼게 하는 율법주의 신앙이 있고, 둘째로, 하나님의 목적purpose을 따라 사는가?에 관해서,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아닌 사람의 영광(榮光)을 목적으로 삼는 기복주의 신앙이 있으며, 셋째로, 하나님의 방법way대로 사는가?에 관해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육체의 힘을 의지하는 인본주의 신앙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삶의 자원(resource)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따라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의 의(義)뿐이라고 대답하는 반면, 사이비 신앙인 율법주의 신앙은 자기 의(義)를 중요한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목적(purpose)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대답하는 반면, 사이비 신앙인 기복주의 신앙은 사람의 영광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방법(method)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참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라고 대답하는 반면 사이비 신앙인 인본주의는 "육신의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자원인 그리스도의 의(義)를 사람의 의(義)로 교묘하게 바꾸어놓았고, 기복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으로 대체한 것이고, 인본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하나님의 영'을 '육신의 노력과 방법'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자기 의를 더 중요한 자원으로 여기는 율법주의 신앙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의(義)만을 붙드는 참 신앙을 은혜주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람의 영광을 더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는 기복주의 신앙에 대해 하나님의 얼굴을 추구하는 참 신앙을 경건주의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고, 사람의 방법을 의지하는 인본주의 신앙에 대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참 신앙을 신본주의 신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이비 신앙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이비 신앙을 쉽게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신념 그리고 가치를 형성하는 체계system입니다. 일종의 신념체계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율법주의는 "이 정도면"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라는 사고체계입니다. 그리고 기복주의는 "그래도 내가 잘 돼야" "우선 내가 잘 되어야만" "최소한 내가"의 사고체계입니다. 그리고 인본주의는 "이렇게 한다면" "내가 먼저 해야만"이란 사고체계입니다. 이러한 사고체계는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체계는 삶의 태도와 성품에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율법주의는 자기의를 내세우고 자랑하게 만들며, 기복주의는 성공과 형통에 관해 자기 환상에 빠지게 만들며, 인본주의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모두 열심을 내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으나 기쁨과 만족과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씩 자세히 살펴볼까요? 첫째 율법주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율법주의란 삶의 자원(resourse)이신 그리스도의 의를 자기 의로 대체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나는 어떤 자원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율법주의는 자기 의를 강조합니다. 자기 의를 내세웁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도록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묘하게 그리스도의 의를 가립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율법주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탈해가는 전형적인 주범입니다. 열심을 강조합니다만 그 안에 자유가 없습니다. 원칙을 강조합니다만 그 안에 기쁨이 없습니다. 행동강령이 많습니다만 그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믿고 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자유를 빼앗아가는 율법주의는 초대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복음의 최대 원수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를 위해 열심히 사는 것처럼 무섭고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의에 사로잡힌 사람의 눈에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고 사는 사람은 미움과 적개심의 대상으로 비쳐집니다. 성경과 교회사를 보면 언제나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핍박한 세력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율법주의 신앙을 추종하던 세력이었습니다.

 

 

둘째, 기복주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기복주의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삶의 목적(purpose)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외치지만 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인 것입니다. 자신이 잘 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득이 되고 영광이 될 것이란 믿음입니다. 나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고 굳게 믿게 만드는 신념체계인 것입니다. 수능시험일이 되면 고3 자녀를 둔 엄마들이 교회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좋은데 어떻게 기도하느냐입니다. 자녀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복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가 그것입니다. 내 계획이 성공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멋진 결과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기복주의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복주의 신앙은 나의 영안을 흐리게 하는 무서운 복음의 원수입니다. 이 신앙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욱 더 확신과 자기 환희에 빠져 자아도취를 하게 합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서도 결코 하나님의 얼굴은 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으로 믿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본주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인본주의란 내 삶의 방법(method)으로 '성령'을 '육신'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육신'의 방법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개입할 여지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의 방법을 의지함으로서 성령의 임재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성령이여 오소서!'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개입할 여지가 없으면 개입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과 사람은 길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하고 예상하고 기대하는 그런 '합리적이고' '그럴 듯 한' 방법으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의 기대와 예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하나님이 움직일 때까지 결코 참고 기다리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것이란 신념체계입니다. 인본주의는 사람이 '시작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그저 '반응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마지막 하루를 참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직접 한 것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앞세우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가 있는 곳에 하나님은 결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분별할까요? 사이비 신앙은 각각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요? 분별은 뚜렷한 행위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고 성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율법주의 신앙의 특징은 많은 규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기쁨과 자유가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기복주의는 자기 성공에 대한 환상과 자아도취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자기 영광은 더욱 환해집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대면이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본주의는 열심과 노력은 있으나 성령의 임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성공의 확신은 있으나 그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에 많은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강과 확신은 없습니다. 또한 그 사람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내세우는지, 그가 무엇을 자랑하는지,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 말을 통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는 내가 정말 자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자기 의를 자랑합니다. 기복주의는 자기 성공을 자랑합니다. 인본주의는 자기 방법을 자랑합니다.

 

 

그러면 참 신앙의 본질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요? 첫째로 무엇보다 거짓 신앙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거짓 신앙을 전파하는 이들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목사일 수 있고, 장로일 수 있고, 권사일 수 있고, 주일학교 교사일 수 있습니다. 사이비 신앙의 전파자들은 권위자들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을 수 없습니다. 권위자들의 가르침을 무조건 아멘으로 받기 전에 먼저 그 가르침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복음서를 깊이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길(method)이 무엇인지, 그분이 가르치셨던 것, 다시 말해서 그분이 소중하게 여기셨던 목적(purpose)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분의 삶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생명이 무엇이었는지 깊이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참 신앙의 본질을 힘써 지킴으로써 거짓 신앙에 대항해나가는 것입니다. 첫째로 자기 의(義)를 자랑하는 율법주의 신앙에 대해 그리스도 예수의 의(義)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외에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영광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기복주의 신앙에 대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경건훈련에 힘쓰는 것입니다. 셋째로, 육신을 의지하는 인본주의 신앙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3;3)"

 

 

참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첫째, '그리스도의 의'외에는 자랑하지 않는 은혜주의, 둘째, 하나님의 얼굴을 추구하는 경건주의, 셋째,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신본주의입니다. 먼저, 은혜주의입니다. 많은 이들이 '은혜'란 단어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다행'이나 '요행'이 아닙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전가된) 그리스도의 의(義)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의(義)를 내 삶의 중요한 자원이요, 원천으로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義)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으며, 내세우지 않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둘째, 참 신앙의 본질은 경건주의입니다. 기복주의는 사람의 영광을 추구한다면 경건주의는 하나님의 얼굴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나의 계획이 성공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참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잘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경건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건을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 대해 이같이 말합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 경건은 내 생각과 계획과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경건은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내 생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굴을 뵙는 것으로 내 영혼의 참된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 참 신앙의 본질은 신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육신을 의지한다면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 사람의 방법으로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인지 아니면 사람의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방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자기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믿음으로 거저'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피곤하고 낙심하고 절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그분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낙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놀라고 있습니다.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를 가만히 보면 참 경건의 본질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목사, 좋은 교사는 사이비 신앙을 구별할 줄 알고, 참된 신앙의 본질을 가르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참 신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그 중심에 목사와 교사가 서 있어야 합니다. 참 신앙의 본질회복을 위해 디모데전후서와 성경 전체를 다 살펴볼 수 없겠지만 실제적인 제안 몇 가지만 해보려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의를 알지 못하면 자기 의를 붙들게 됩니다. 복음의 말씀을 잘 밝혀서 그리스도의 의를 명확히 드러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십자가를 붙들지 아니하면 헛된 영광에 붙들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나의 실패, 나의 좌절, 심지어 나의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내 생각과 욕심을 못 박는 것이 참 신앙의 본질회복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결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듭 확인하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얼굴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구하는 경건의 연습을 계속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참 경건의 본질회복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직전의 시대, 즉 종말의 시대입니다. 종말의 때에 대해 성경은 여러 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사이비 신앙인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기짓말 하는 자들이라.(딤전4:1,2)"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신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 신앙인지 배워야 하고,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과 교제하면서 나의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우리가 전도를 위해 불신자들이나 그 어떤 사람과도 교제할 수 있어야 하나 신앙을 위해서는 사이비 신앙을 따르는 자들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사이비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겉보기엔 얼마나 열심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열심히 배우는 자세도 있습니다. 진지한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 참 진리의 지식에 다다르는 일, 참 신앙의 본질 회복을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12년 3월 26일

남아프리카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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