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시험(3)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본문:마태4:5,6 김 광 락 목사
I. 예수님이 첫 번째 시험을 이기셨지만 즉시로 두 번째 시험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A. 여기서 우리는 마귀의 속성에 대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마귀는 자신이 시험에 실패하면 절망하지 않고 다시 공격한다는 사실입니다. 욥을 시험할 때도 그랬습니다. 재물과 자녀들을 쳤어도 욥이 불평 원망하지 않으니까 마귀는 욥의 살과 뼈를 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욥2:4,5) 우리는 사단의 무서운 시험에서 한번 승리했다고 자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번 이겼다고 평생토록 이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절대로 절망하고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다시 시험하기 위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번 승리했다고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한 뒤에는 자축하지 말고 두 번째 시험을 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자세입니다.
B. 성경을 보면 한번 승리했지만 방심하는 사이에 두 번째 이어지는 시험에 넘어진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술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20여년이 지난 다음 아비멜렉 왕 앞에서 또 다시 자기 아내를 아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에 다시 돌아왔지만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숙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가정의 재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대왕 히스기야 왕은 죽을 목숨을 살려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했음에도 감사하지 않고 자기 나라의 부귀영화를 자랑하는 시험에 넘어지고 맙니다. 요시아 왕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의 군대를 대항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께로부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을 받은 후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책망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난 다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험에 승리했다고 자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험에 승리했다고 사단이 영원히 물러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번 이겼다고 평생 이겼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II. 두 번째 시험의 장소는 광야가 아니라 성전 꼭대기였습니다.
A. 우리가 예수님이 당한 세 가지 시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험장소가 어떻게 바뀌는 지 알아야 합니다. 첫번째 시험은 광야였습니다. 물도 풀도 나지 않는 광야였습니다. 두번째 시험은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세번째 시험은 그냥 지극히 높은 산이었습니다. 천하 만국의 영광이 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시험장소는 세 가지 시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광야에서의 시험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험이었고, 두 번째 성전에서의 시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험이었습니다. 세 번째 산꼭대기에서의 시험은 하나님의 상주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시험장소는 모든 신자들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의식주의 문제, 육신의 문제로 시험합니다. 둘째는 신앙문제, 영적인 문제로 시험합니다. 셋째는 부귀영화의 문제, 정치적인 문제로 시험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는 영역은 이 세 가지입니다.
B. 오늘은 두 번째 시험장소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했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성’이라고 하는 말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사52:1) 예루살렘성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었고, 하나님께서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마귀가 이렇게 한 것은 실제로 예수님의 육신을 옮겼다기 보다는 그 영을 옮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실제로 예수님의 육신을 문자 그대로 옮겼다면 예루살렘에는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채로 신비한 능력으로 마귀가 그렇게 했던 것으로 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제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마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욥의 경우를 보시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단은 조금도 욥을 시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허락받기 위해서 간청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사단이 베드로와 그 제자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의 몸을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1.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아들을 사단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잠시 허락하셨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너무나도 사랑하실 때 우리를 대적의 손에 잠시 맡겨서 원수들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고통을 주도록 맡기실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욥2:6,7절을 읽어보라.)
2.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는 자들이 더 무서운 귀신들이 공격할 수 있다. 질병으로 공격하기도 하고 생활문제로 공격하기도 한다.
3. 그러나 우리에게 닥치는 고통과 시련이 아무리 극심하더라도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신비한 섭리와 목적을 위해 시험을 잠시 허락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고 더욱더 겸손해져야 승리할 수 있다.
4. 그러나 우리가 또 알아야 하는 것은 마귀가 자기 뜻대로 우리 몸과 마음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을 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이상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울 수 있었지만 떨어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욥을 시험했지만 그 생명은 건드리지 못했음을 기억하라.
5. 아무리 극한 시험 속에서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지켜야 한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뛰어내리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그런 유혹을 심어줄 수는 있어도 우리가 믿음을 굳세게 해서 대적하는 한 우리를 떨어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6. 마귀는 유혹을 하지만 죄를 직접 짓도록 강제하지 않는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책임인 것이다.
7. 예수님은 능력이 부족해서 끌려다니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험에 인내하심으로 순종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험당할 때 인내해야 한다. 참아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
C. 두 번째 시험에서 마귀가 한 것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의 몸을 예표하는 곳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 성전에서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제사드리는 곳이 아닙니까? 바로 그 성전 꼭대기에 서 있다는 사실은 성전에 예배하고 기도하러 나아오는 자들에게 자신을 메시야로 드러낼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증거할 기회를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단이 에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높인 것은 예수님을 떨어뜨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단의 계략은 우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우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를 높이기 위해서 우리를 낮추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과 사단의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 사단이 나를 높여주는 것은 나를 낮추기 위함입니다. 이상하게 높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칭찬받고 존경받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담을 보십시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지만 짐승처럼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시니까 하나님을 그르르 부활시키시고 만유의 주로 높이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는 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높아지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낮아지십시오. 그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III. 사단은 예수님을 높이고서는 떨어뜨리기 위해서 이렇게 유혹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마귀는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이 성전을 보아라. 너를 섬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느냐? 네가 뛰어내린다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붙들어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를 숭배하게 될 것이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세주라면 예배드리러 오는 자들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어라”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된 네가 아니냐? 그렇다면 이제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오겠느냐? 네가 뛰어내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하늘에서 들린 거룩한 음성을 유대인들에게 결정적으로 입증할 기회다. 이제 행해 보여라.”
A. 사단이 시험한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구세주임을 증명하는 이적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시허과 두번째 시험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중에 바리새인들로부터도 그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에게 그 증거를 보이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겠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들 앞에서는 하나도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이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지만 이적이나 기사를 행하는 것 자체가 사역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사역의 최우선 목표는 복음전파와 가르침이었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은 믿음을 주기 위해서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말씀이 우선이고 기적은 그 말씀을 보증하기 위해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을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표적이 있어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먼저 있어야 표적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떤 교회에서는 말씀보다는 기적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봅니다. 미국의 존 윔버에 영향을 받은 몇몇 은사주의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먼저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믿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여러 가지 이적으로 보증해주시는 것입니다.
B. 사단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사단이 인용한 성경말씀은 시편 91:11,12절입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사단도 성경말씀을 인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 종종 광명의 천사로 위장합니다.(고후11:14) 사단은 때로 사무엘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사울왕을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사단은 때로는 성경지식에 해박한 목사나 신학교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단이 성경을 사용하는 방법과 예수님이 성경을 사용하는 방법을 구별해야 합니다.
1. 사단은 성경을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합니다.
2. 사단은 이기주의적이고 자기본위적으로 성경을 인용하는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성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3. 사단은 문맥을 무시한 채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반면에 예수님은 문맥에 일치되게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인용한 말씀 중에서 “네 모든 길에”라는 말을 빠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약속은 내가 임의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의의 길을 갈 때 유효한 것입니다. 내 이익을 위한 길이 아니라 주님이 가라고 하신 길을 갈 때에 주님이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보호하신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 문맥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4. 이처럼 우리가 성경을 잘 알고 성경말씀을 인용한다고 해서 우리가 다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알고 풍부하게 인용하기 이전에 중요한 것은 내가 의의 길, 가야하는 소명의 길을 가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순종하는 삶이 선행되지 않는 가운데서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사단적인 신앙입니다. 내 개인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C. 사단이 성경을 인용한 것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노린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어떤 위험에 스스로 던져놓고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심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가 예배 시에 독극물을 가져다 놓고 믿음이 있는 자는 앞으로 나와서 마셔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죽었고, 결국 그 목사는 살인혐의죄로 체포당한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사실은 믿음이 아니라 사단의 시험에 넘어진 것입니다. 성경을 인용하면서 그 말씀대로 행해보라고 도전하는 것은 믿음인 것 같지만 믿음이 아니라 정반대로 사단의 시험입니다. 내 목적을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말씀은 우리가 순종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이 인용되고 있다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중에 성경말씀이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단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주기도 합니다.
IV. 두 번째 사단의 시험은 예수님이 너무나도 사랑하셨던 성경말씀을 가지고 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교묘하고 간교한 것이었습니다.
A. 첫 번째 시험은 의식주 문제, 생활의 필요문제, 육신의 갈급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 두 번째 시험은 좀더 영적으로 교묘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과 능력에 대해 과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모한 행동에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과신하게 만듭니다.
B. 우리를 넘어지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낮추기 위해서 우리를 높여주는 척 합니다. 우리가 성급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우쭐대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엎드려 절하게 하고 존경하게 만들고 숭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입증해 보이고 싶은 충동을 갖게 만듭니다.
C. 이런 마귀의 시험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우쭐거리면서 “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내가 한번 증명해 보이지”하면서 뛰어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지만 그 때에는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고 떠나시고 난 이후가 될 것입니다. 삼손이 머리를 깍인 후에 힘을 한번 써보려고 하지만 전혀 힘이 안 생기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V. 우리는 어떤 배고픔과 굶주림에 처해도 그리스도로 만족하고, 부유함과 형통함을 만나도 그리스도로 만족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높은 자리에 올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과신하고 함부로 뛰어내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낮추기 위해서 높이는 척 합니다. 그럴 때, 기억합시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것만이 두 번째 영적 시험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6)-내게 절하라 (0) | 2012.02.19 |
---|---|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4)-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0) | 2012.02.19 |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2)-돌을 떡으로 만들라 (0) | 2012.02.19 |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1)-성령이 주도하시는 시험 (0) | 2012.02.19 |
시편23편 강해(7)-나는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0) | 2012.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