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시험(4)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본문:마태4:7 김 광 락 목사
I. 오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시험한다는 말은 진실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A. 예수님께서 사단의 두번째 시험을 물리치신 말씀은 신명기6:1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흐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맛사에서 어떻게 했느냐를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출17장을 읽어보시면 맛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르비딤이란 곳에 장막을 쳤는데 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모세에게 심하게 항의했습니다. 모세를 심하게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치려고 저마다 손에 돌을 들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그들은 또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를 “과연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불평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호렙 산 반석을 통해 물이 쏫아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곳을 가리켜서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일컫게 된 것입니다.
B.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어떤 행위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먹이시고 보호하심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함께 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실을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부를 당장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말로써 할 수도 있고 마음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78:18절 이하를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정말 이 광야에서 식탁을 준비하실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자주 시험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분명히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불신하고 비판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분명한 증거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고 조급하게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C. 신약에서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을 바침으로써 성령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성령을 시험하려고 했씁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정말 일부만을 드려도 성령께서 우리의 속임수를 아실 수 있는지 여부를 테스트해보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일부를 감추고 일부를 드려도 사도들이 알 수 있겠는가 한번 시험해보자는 것입니다. 성령이 정말 아시는 지 여부를 테스트한 것입니다.
II.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말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고 진실한 지 여부를 알아보는 시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말 하시는 지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충분하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확인해보려고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허용한 것이 몇 가지 나옵니다.
A. 첫째는 십일조에 대한 시험입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하나님의 약속이 정말 신실한 지 시험하는 것은 불법인데 십일조의 약속에 대해서는 허용되었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성하고 선행을 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상급을 기대하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하고 봉사하고 선행하는 것은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십일조에 있어서는 우리가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말씀입니다.
B. 둘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입니다. 엡 5:10에,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은 선하고아름다운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이 일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행해보면 알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성경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가지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행함으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진정 주님의 기쁨이 되기 원합니까? 그러면 주님의 기쁨이 되는지 아닌지 테스트해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행함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C. 셋째는 소명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증거를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의 기드온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그를 용사로 세우실 때 기드온은 정말 자신이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받았는지 믿음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믿음없는 것을 인정하면서 큰 믿음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삿6:39)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불신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험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강한 소명감을 갖기 위해서 자신의 나약함과 믿음부족을 인정하고 강한 소명감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소명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뒤따르는 많은 부하들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무엇보다 강한 소명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강한 소명감을 얻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증거를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바람직한 것은 못됩니다. 왜냐면 자신의 연약함을 더 의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권장할 것은 못되는 것입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의심한 것, 표징을 간구하는 히스기야에게 표징을 보여주신 것 등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III. 이렇게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이 있지만 대부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게 됩니까?
A. 첫째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함께 하신 것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을 헤아려보십시오. 우리들은 과거의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놀라운 간증거리를 잊어버리고 현재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의심하기 잘 합니다. 그러나, 현재가 힘들 때마다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그 풍성한 은혜와 복을 곰곰히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떼를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 그런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도 과거에 충분히 그 증거를 체험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선한 일을 행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B. 둘째로, 우리는 믿음이 약해질 때 하나님께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는 시험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이 약해지면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풍성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약해진다고 해서 하나님께 믿음을 위해 표적이나 기적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 표적을 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게 됩니다.
C.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욕심과 개인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할 때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시편78:18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욕구, 이기적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자판기처럼 믿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정 금액을 투입구에 넣고 나서 내 입맛대로 단추를 누르면 원하는 메뉴대로 툭 튀어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태도입니다. 내 입맛대로 메뉴가 나오지 않으면 자판기를 탕탕 두드리듯이 내 계획대로 하나님이 안 이루어주시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인 것입니디. 그러나 기계에 대해서는 그럴지라도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시험죄인 것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는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자판기를 손으로 마구 치는 것같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는 단추를 눌렀는 대도 안나오면 ‘이게 고장났네’라고 의심하듯이 하지 마십시오. 내 뜻대로 이루어주시지 않으셔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 계획대로 수년 동안 기도했는데 그 기도하고 준비한 계획이 무산되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이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할 때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뜻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 때는 끝까지 이루어주실 줄 믿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내가 부르짖고 기도했음에도 하나님이 내 계획을 취소시킨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내 뜻이 과연 주님의 뜻인가 다시 한번 확인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뜨리기 위해 마귀가 시험하고 있는 가능성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성경의 약속을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중대한 범죄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기한과 때에 하나님을 맞추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의 때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맞추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의 방식에 내가 맞추어야 합니다.
D. 내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나 기적을 간구 할 때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성전 꼭대기에 올라섰습니다. 이제 뛰어 내리겠으니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유기을 구치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내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이나 능력을 구할 때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표적을 구하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구하여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은사를 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남의 유익을 위해 능력을 구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 우리가 일반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그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성전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숨에 뛰어내리는 방법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물위를 걸으신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셨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제자들을 보내어서 음식을 사오게 하셨습니다.(요4:8)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이나 설교나 예배 등, 일반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언기도라든지 무슨 은사집회라든지 다른 특별한 방법을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F. 심지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갈6) 수고하지 않고 축복을 받으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찾고 구하지 않고서 얻으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을 엄격하게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지 않고서 경건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택하심을 확실히 하는 삶이 없이 구원의 확신만 가지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G.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것이 아닌 것인데도 불 속에 자기 자신을 던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천사에게 지시하셔서 보호하시는 것은 우리가 믿음의 길 순종의 길을 가는 동안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 이 길을 벗어나서 성전 꼭대기에 마음대로 올라가서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H. 이외에도 죄악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고,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도 섬기는 것도 그것이고, 하나님이 부르지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그것입니다.
IV.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지 모릅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가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보다 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보다 더 신실하고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의 여부를 확인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냥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선하시고 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 때 우리는 그분을 감히 시험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약속이 의심됩니까? 그러나 그 약속의 신실하심은 먼저 믿고 순종할 때 그 여부가 밝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 그 여부를 알고자 하는 것은 성경이 엄격히 금지하는 것입니다.
A.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 하나님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뜻과 우리 방식과 우리 생각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당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제 보여주십시오. 이러이러하게 약속하셨으니 이제 그 약속대로 행해보십시오”라고 간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 성전 꼭대기에 섰으니 보호하시겠노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지켜주십시오”라고 하는 식의 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B.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단의 두 번째 간교한 시험을 승리하신 원리가 무엇입니까? 그 원리는 이것입니다: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령입니다. 사단의 두 번째 시험에서 승리하려면 이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약속의 말씀을 선택하지 말고 명령의 말씀을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승리한 대표적인 예로서,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이삭을 통해 약속의 자손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그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약속과 명령 이 둘 사이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명령을 어기고 약속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보다 명령을 더 우선했을 때 아브라함은 참으로 그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약속들을 우리가 자칫 잘못 사용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데 사용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네가 가는 길에서 주님은 우리를 그 천사들을 보내어서 지켜주십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이 따르는 것입니다. 명령을 무시하고 약속만 붙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주장하기 전에 명령의 말씀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약속을 주장하기 전에 명령하신 길을 가야합니다. 여러분, 이 두 번째 시험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기억하십시다: 약속의 말씀보다 명령의 말씀이 우선입니다.
C.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그 길을 순종함으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서 성전 꼭대기로 올라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중대한 죄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 속에 물도 나지 않고 풀도 나지 않고 외양간에 송아지도 없고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고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없을지라도--그래서 우리간이 텅 빌지라도--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왜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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