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시험(5)
내게 절하라
본문:마태4:8,9 김 광 락 목사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I.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귀가 멤피스트텔레스라는 사람으로 번장한 뒤 파우스트라는 청년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하기를 ‘당신의 영혼을 내게 팔면 내가 부귀와 권세와 영화를 당신에게 주겠소’ 그래서 파우스트라는 청년은 그 제안대로 자기의 영혼을 파는 대신에 평생토록 부귀영화와 권세와 지식을 누리면서 호화롭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됩니다. 마귀는 파우스트에게 제안한 것같이 예수님에게도 제안하고 있고 오늘 우리에게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냥 절하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A.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번째 시험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마귀는 예수님을 세 번만 시험하도록 하나님께 허락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시험 당해도 그것은 다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주님은 사랑하시는 서머나 교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공격하고 시험하는 것은 때가 되면 중지될 것입니다. 반드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B.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할 마지막 기회인 줄 알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는 처음에는 그럴 듯하게 접근합니다. 우리의 육체적 필요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마귀의 시험은 노골적으로 되어갑니다. 보십시오. 마귀는 처음부터 ‘내게 엎드려 절하라’고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시험, 육신의 필요에 근거한 시험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화투나 포커에 손을 대었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도박중독증에 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목사님은 피로회복과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알콜 중독자가 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그러나 이게 안 통하면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시험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시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노골적으로 공격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종말의 때입니다.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못된 줄 알고 분노하여 날뛰는 시대입니다. 자기 정체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공격하는 시대입니다. 교회는 지금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C. 마귀는 지금 자신이 시험하는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예수님을 시험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의 몸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몸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원래는 마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허락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극히 높은 산’이 구체적으로 어느 산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유대지역에서 제일 높은 산을 의미할 것입니다. 아마도 여리고 맞은 편 사해 근처에 위치한 비스가산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기 전에 비스가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모세에게 풍요로운 가나안 땅을 보여주셨듯이(신34:1) 마귀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모방했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D. 여기서 우리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장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은 광야에서 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필요를 가지고 시험한 것입니다. 둘째, 뛰어내리라는 시험은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필요를 가지고 시험한 것입니다. 셋째, 엎드려 절하라는 시험은 가장 높은 산에서 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필요를 가지고 시험한 것입니다. 마귀가 이용한 것은 육적인 욕구, 영적인 욕구, 정치적인 욕구입니다.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 세 가지 욕구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고 싶고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숭배받고 싶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고 영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은 영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고 싶은 정치적인 욕구가 다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생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시험을 친히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리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인생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II. 마귀가 예수님께 한 세 번째 시험은 제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상에 서고 싶은 욕망이 다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싶은 정치적 욕구가 다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을 보고 우리는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나는 적어도 안 그렇다’ ‘나는 적어도 그런 자리에 있으면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내가 그런 자리를 동경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높은 자리를 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어보십시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연약성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제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간 것은 바로 이러한 인생의 연약함을 이용한 것입니다.
A. 지극히 높은 산 정상에서 마귀는 예수님에게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환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세계의 수많은 통치자들과 열왕들이 누렸던 부귀영화와 권세가 부채가 펼쳐지듯이 촤악 펼쳐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이 환상 중에 바라본 광경은 예수님에게 주어지기로 원래 약속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 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실 때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장면을 우리는 봅니다. 지상의 모든 만국과 부귀영화와 권세는 원래 예수님의 것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를 계속해서 읽어보면 인자가 그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마귀가 실제로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고난을 받지 않고서도 그렇게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세를 얻도록 해주겠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간계입니까? 십자가 고난이 없이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서도 약속된 그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마귀는 이제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실제적으로 제안을 하는 겁니다. 마귀가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결국 이것이 아니냐? 그러나 당신이 고통을 겪지 않고서도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B. 여러분, 똑같은 마귀는 같은 방식으로 우리 인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의식주 문제와 같이 생활의 작은 문제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이것이 안통하면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시험합니다. 이것도 안 통하면 정체를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시험합니다. 어떻게요? 우리가 정말 바라고 원하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도 환상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상입니까? 성공에 대한 환상입니다. 제일 높은 자리에 대한 환상입니다. 많은 사람을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환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명령을 내리는 그런 환상을 보게 합니다. 성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세를 누리는 그런 환상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전략이요 시험입니다.
C. 여러분, 우리가 이런 환상을 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왜냐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실 때에 제자들이 노상에서 서로 다투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누가 큰 자리,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가지고 서로 논쟁을 벌이고 실랑이를 벌이고 질투의 말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3,44)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크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눅19장을 보시면 열 므나를 가지고 충성한 사람에게는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는 상을 내리십니다. 많은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 그러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으뜸이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큰 자리, 높은 자리에 앉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십자가에까지 내려가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은 그 앞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으뜸이 되려고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고 큰 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방법의 문제입니다. 고난 없이, 십자가 없이, 섬김의 수고가 없이,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D. 사람들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합니다. ‘난 안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일 겁니다. 왜냐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낮은 자리보다 높은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다섯 고을 권세보다는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열망이 없이 그냥 되는 대로 그냥 살아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들은 말하기를 “나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한다. 더 큰 상급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더 큰 상급을 사모하지 않거나 바라지 않는 것은 주어진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상급을 분명히 믿어야 하고 또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가? 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는 목적달성보다는 과정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차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권세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권세를 얻기 위해서 하늘보좌를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낮아지셨습니다. 병자들을 위해 피곤하지만 기도로 섬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III. 그러나 마귀의 시험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낮아지지 않아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손쉽게 목적달성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섬기지 않아도 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섬기지 않아도 높아지도록 해주겠다는 겁니다.
A. 목적달성, 소원성취를 위해 지름길을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섬김과 낮아짐과 수고와 봉사와 눈물과 땀과 피와 그리고 십자가 죽음의 방식이 아니라 쉬운 방식으로 높은 자리로 올려주겠다는 마귀의 속삭임을 예수 이름으로 거부해야 합니다. 굳이 섬김이나 죽음의 고통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소원대로 이루어주겠다고 하는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고통없이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마귀는 가시면류관이 없이도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가 제공하는 이런 지름길로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B. 여러분, 마귀는 넓은 길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여러분, 마귀는 지름길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더라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마귀는 섬김의 고통 없이 높은 자리로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라리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할 망정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C. 이 말씀을 확대해서 적용해보십시다. 말씀이야 정통이든 사이비이든 어떻든 간에 병이 낫는다고 하면 무조건 찾아가서 머리를 들이미는 것도 지름길로 가려고 만드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귀도 신유의 은사를 모방할 수 있습니다. 질병이 낫는 것 같은데 사실은 더 악한 귀신들이 찾아오는 것을 왜 모릅니까?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기를 이용해도 좋다는 생각. 또, 돈만 많이 벌 수만 있다면 퇴폐업소나 여관업을 해도 좋다는 생각도 다 마귀가 집어넣어 준 생각입니다.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부동산투기해서 불로소득을 쌓아도 좋다는 생각도 그것입니다. 축복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이 성경에서 뭐라고 얘기하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해보자는 생각, 직장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향응도 제공해야 하고 때로는 음란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 다 마귀가 집어넣어 준 생각인 것입니다. 이렇듯 마귀는 목적만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공에 대한 환상에만 도취되도록 만듭니다. 이런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과정이나 방법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주 분별하는 감각을 약화시킵니다.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은 경시하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마귀의 고난도 전략입니다.
IV.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 큰 권세, 많은 축복, 많은 상급을 진정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큰 상급을 받는 것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최종 목적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환상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마귀가 제공하는 지름길, 넓은 길, 쉬운 길로 가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성공에 대한 환상에만 사로잡혀서 수단과 방법을 분별하지 않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귀가 제공하는 지름길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좁은 길, 가시밭길, 섬김의 길, 고독한 길, 고통의 길, 배반당하는 길, 멸시당하는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둘러가는 한이 있더라도 마귀가 제공하는 그런 길로 가지 마십시오. 차라지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넓은 길, 지름길로는 가지 마십시오.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우리가 따라가면 주님이 얻으신 그 엄청난 상급과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도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영광의 환상을 먼저 보여주었지만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V. 여러분, A.J.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를 읽어보십시오. 그 책에는 두 사람이 서로 대조되면서 그려집니다. 주인공 프랜시스 치셤 신부는 중국선교에 자기 생애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의 동기생이자 라이벌인 안셀모 밀리는 출세가도를 달려 나중에는 높은 주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는 인생과 넓은 길을 걸어가는 인생, 이 두 인생 중에 어떤 인생이 참으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가?” 여러분은 지금 좁은 길 인생입니까? 아니면 넓은 길 인생 혹은 지름길 인생입니까?
VI. 기도
주님, 마귀가 보여주는 성공의 환상, 축복의 환상에 현혹되지 않고 변함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믿음 주소서. 넓은 길, 지름길에 대한 환상이 보여도 싸워 승리함으로 주님이 원하는 그 좁은 길로 가게 하소서. 조급하고 성급하게 목적을 달성하려고 잘못된 수단을 이용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소서. 세상의 부귀영화, 높은 자리에 대한 환상을 품기 이전에 주님이 가신 그 섬김의 길을 겸손히 가게 하소서. 주님이 얻으신 그 면류관 나도 얻기 위하여 주님의 걸으신 그 길을 기쁘게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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