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야기한것을 설교에 국한하여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설교를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 정보로서의 설교,
둘째, 지식으로서의 설교,
셋째, 지혜로서의 설교
정보로서의 설교는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것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설교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로서의 설교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있다면 그것이 설교자의 경험을 통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하여 교육적인 효과가 약간 있을지 모르나 청중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의 특징은 아카데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중에게 체계적인 자료를 전달해주지만 청중이 삶속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에 대해서 설교자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서의 설교는 설교자가 충분한 묵상을 통해 자신이 먼저 자신의 삶에 적용한 다음에 설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설교자가 먼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청중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삶속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만 설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재림설교를 설교자가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혹은 유일하시다라는 교리를 설교자가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직접적으로 적용하기 힘들지라도 모든 진리는 삶을 변혁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삶속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진리라 할지라도 그러한 진리로 인하여 설교자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확인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설교를 "깨달음의 설교"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지요. 설교자가 경험을 통과한 말씀을 전할 때 청중들은 설교자가 비로소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혜로서의 설교는 설교자가 청중에게 분별력을 공유하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낚시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정보로서의 설교라면, 실제로 바늘에 미끼를 끼우게 하고 낚시대를 어떻게 던지며 물고기가 어떻게 입질하는지 느끼게 해주면서 가르치는 것은 지식으로서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서의 설교는 바람, 물결, 자리, 시각 등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것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지혜로서의 설교는 복잡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돕는 설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보로서의 설교는 청중에게 균형잡힌 자료를 제공하는 교육적인 측면이 있지만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기에는 힘이 없습니다.
지식으로서릐 설교는 청중과 호흡하고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절제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서의 설교는 청중에게 분별력을 제공하고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순종하도록 도와줍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한 편의 설교를 위해 여러 책을 참고하고 다른 사람의 설교도 참고합니다.
설교자들은 자신이 논문과 같이 '충분히 균형잡힌' 설교를 한다고 자신하지만
설교자 자신은 정작 청중이 인내심을 가지고 끈기있게 설교자의 설교를 경청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좋은 정보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되지 않기 때문에 청중은 사실 어떤 면에서 설교시간이 고문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물론 설교자 자신에게는 자신의 설교에 청중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약간 짜증을 느끼기도 합니다만
설교자가 진리를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먼저 적용하고 자신이 그 진리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확인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정보라도 삶에 영향impact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먼저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지 않고 학구적으로 정보를 나열하는 것은 아무리 큰 소리로 외치는 설교라 할지라도 청중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청중이 공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공감에서 시작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공감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해서 참된 영향을 끼친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시련을 통과해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 불을 통과해도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정보, 지식, 지혜로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정보의 수준인지, 아니면 지식의 수준인지, 혹은 지혜의 수준인지 각각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보로서 아는 것은 수많은 책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신학교에서 많은 신학생들에게 멋진 강의를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경험하는 깊이가 매우 얕거나 없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보로서 아는 단계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정보는 얕을지라도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주셨던 분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는 분이셨으나 제가 아는 그 어느 그리스도인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알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서 아는 단계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알게 되는 단계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죄인인지 알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경험하면 할수록 자신이 우쭐해지기 쉽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을 가진 사람이 빠지기 쉬운 대착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면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단계에서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불같은 시련을 통과하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을 지혜로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유혹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분별하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선택하고 순종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의 단계인 것입니다.
그러면 정보, 지식, 그리고 지혜를 신앙인에 적용해볼까요?
정보로서의 신앙의 수준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웠으나 아직 경험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매년 치르는 암송대회나 성경고사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신앙이 최우수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피아노 반주도 성실히 잘 하고 주일학교 봉사도 잘하고 잘 가르친다고 해서 그의 신앙이 훌륭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패와 좌절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배운 것이 정말 맞는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 배운 것을 직접 적용해보기 전에는 그가 온전한 지식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학교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책을 보며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지 않은 정보를 전하는 경우가 가능한 것입니다.
지식으로서의 신앙은 적용과 경험을 통해 확실한 지식에 이르렀으나 지식은 사람으로 교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이 경험할수록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들과 넓은 범위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따르면 이 또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우쭐거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몸이나 환경에 가시를 두시기도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가르쳐주는 스승을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지식은 능력입니다. 지식은 일종의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사람에게 굉장히 큰 유익을 줄 수도 있지만 상처도 줄 수 있는 무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지혜로서의 신앙은 불같은 시련을 통과한 사람으로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남들보다 낮추는 겸손함과, 자신을 오해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품고 포용하는 온유함을 갖춘 단계입니다. 지혜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로 알 수 있습니다. 온갖 변수와 돌발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성실함과 충성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늑대가 아무리 양의 탈을 쓰고 접근하여도 그 간사한 말에 흔들리거나 넘어가지 않은 채 선한 목자를 묵묵히 따르는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정보는 사물에 대한 체계화된 자료들입니다.
지식은 경험된 정보입니다.
지혜는 시련을 통과한 지식입니다.
전도자는 청년들의 신앙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주일학교를 다닐 때 가졌던 신앙이 아무리 뜨거웠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좋은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100가지를 알지라도 중요한 것은 한 가지라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많이 안다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이 혹은 자신의 설교가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순종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많은 책을 보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람 앞에서 주눅들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는 자를 주님은 사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가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사람입니다. 듣고 행하는 자는 시련을 너끈히 통과할 것입니다. 신앙의 단계는 다음과 같이 세 단계가 있습니다.
정보로서의 신앙-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배우는 단계
지식으로서의 단계-집을 짓는 단계
지혜로서의 단계-비바람과 풍랑을 통과하는 단계
신앙인은 이 세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기를 사모하며..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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