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선교의 빛과 그림자
최근 열흘 일정으로 급히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 나온지 4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생신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신대원을 졸업한지 20년만에 처음으로 동문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대원 다닐 때 다들 변함없는 모습에 큰 격려를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선교하시는 동기 목사님들도 여럿 만날 수 있어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동문이 목회하는 서울의 어느 교회를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는데 예전에 남아공에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수천만원의 건축헌금을 보냈는데 건축하지 않고 돈을 갖고 미국으로 도망간 모 선교사의 일로 남아공 선교에 대해 상처와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가슴 아팠었습니다. 20년만에 만난 여러 동문들과 교제하는 중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분이 거의 없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염창동에 있는 선교본부에 잠시 들렀는데 선교본부에서조차 남아공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남아공에서의 선교적 필요가 무엇인지, 그리고 남아공 선교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남아공 선교에 대해 오해하거나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이 남아공은 기독교 국가라는 것입니다. 실제 정부통계에 의하면 65%~70%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전통종교와 이단과 사이비를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상당수는 평생에 한 번 교회에 갈까 말까 한 것을 가지고 기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마을의 인구수와 교회수, 그리고 출석수를 비교해보면 실제로 3%가 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3%를 목회하는 현지인 목회자들의 95%가 신학훈련을 받지 않고서 목회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가정이 파송되어 이곳에 올 때 어떤 분들은 너무 멀다는 이유로 선교지를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강력하게 권하였습니다. 한번 방문하기에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에 선교지로서 적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보좌를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에 비하면 결코 멀다고 할 수 없지요. 또한 수개월 동안 파도와 씨름하며 태평양을 건너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의 눈물과 땀과 피를 힘입어 지금까지 성장하게 된 한국교회로서는 적절한 발언이라고 할 수 없지요. 6.25 때 군대를 파병해준 나라임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적절하지 않습니다.
남아공에 한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역사는 이제 20년을 갓 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이나 파라과이 등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역사보다 짧고, 파라과이 한인보다 적습니다. 한국과 인구는 비슷하나(5천만), 땅 넓이는 12배인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한인 가정수는 2012년 현재 700가정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선교사들과 기업들이 점차 들어오는 추세이긴 하나 남미 파라과이 교민의 10분의 1도 채 안됩니다. 그러나 3년전 통계에 의하면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의 수는 30만명이 넘습니다. 제가 요하네스버그 공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한국인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노리고 오래전부터 선점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은 여전히 이 나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아공의 선교적 필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선교본부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나라의 선교적 필요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현지 목회자들을 신학훈련하여 바로 세우는 일이고, 둘째는 폭력과 에이즈에 방치된 어린이들을 돌보며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전자는 매우 시급한 필요이고, 후자는 매우 중요한 필요입니다. 이 나라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신학훈련사역을 한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유명한 신학교가 많이 있는데 굳이 또 다시 신학훈련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남아공에 유명한 신학교가 몇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스텔렌보쉬, 블룸폰테인, 그리고 프레토리아 등에 좋은 신학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에 3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 현지인들에게 10배가 넘는 신학교 학비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현지인들은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거치면서 인종차별정책에 신학적 기반을 제공했던 백인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는 것이 현지인들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신학훈련없이 목회하는 흑인 목회자라 할지라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만 백인 신학교에서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백인교수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사람의 책이라고 믿고 가르치니 신학교가 있다고 하여도 흑인 목회자들에게는 전혀 관심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백인교수나 백인 목사들은 흑인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4년간 있으면서도 백인 교수나 목사가 흑인 마을에 들어가서 사역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상황이 이렇습니다. 오직 한국 선교사들만이 흑인 마을에 용감하게 들어가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선교사 100여 가정 중에 신학훈련을 목적으로 마을에 들어가는 선교사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란 사실입니다.
여기에 남아공 선교의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시골 구석구석 들어가서 지역 목회자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무료로 신학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훈련시키고 성경적인 목회관을 정립하도록 도와주는 일은 남아공 선교에 있어서 빛입니다. 이 일은 남아공 한인 선교사들 중에 겨우 몇몇만 하고 있는 사역입니다. 십 수 년 동안 이 나라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라 할지라도 이 사역을 하지 않고 건축을 하거나 혹은 빵을 나눠주는 구제사역을 하긴 하여도 지역의 목회자들을 불러서 신학을 훈련하는 데 헌신한 선교사들은 매우 희귀합니다. 가장 시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도 있는 법이지요. 남아공 선교의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것은 건축사역과 구제사역을 구실로 큰 금액을 모금하는 일입니다. 예배당 건축사역은 남아공 선교의 어두운 그림자에 속합니다. 교회건축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남아공에서 예배당 건축은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냐면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벽돌로 큰 건물을 지어서 목회를 한다면 주변에 나름대로 양철과 함석으로 예배당을 짓고 열심히 목회하려는 흑인 목회자들의 입장에서는 '양떼 도둑'으로 선교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남아공에서 제일 하기 쉬운 사역이 건축사역입니다. 왜냐면 돈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과 함께 하자고 현지인들은 줄을 서게 됩니다. 만일 그 중에 언어나 리더십이 뛰어난 현지인과 손을 잡고 건축을 하게 되면 한국교회에 보고하기에는 참 좋지요. 그러나 이것은 지역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나쁜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선교사에게 간택을 받지 못한 주변의 다른 흑인 목회자들은 선교사와 손을 잡은 현지인 목회자와 선교사를 향하여 시기와 질투와 분노의 눈초리를 보내게 됩니다. 결국 선교사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역의 연합이 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남아공 선교의 그림자는 구제사역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빵과 옥수수 가루를 나눠주는 구제사역은 한국교회에 사진을 찍어 보고하기에는 좋습니다. 더 많은 후원자들을 불러모을 수 있고 더 큰 금액을 모금하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빵을 받는 현지인 중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빵을 나눠주는 선교사에게 존경심을 갖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흑인 정부가 백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가난한 현지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최저생계배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지인들 또한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이용하여 큰 돈을 모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구제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은 '부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남아공에서는 권총강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남아공 정부의 복지혜택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난민촌에서 구제사역을 한다는 것은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선교에 있어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선교지의 필요를 잘 알아야 하고, 선교사가 그 필요에 따라 충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반대로 파송한 교회의 필요에 따라 선교사가 맞추어야 하고 충성해야 한다면 성숙한 선교라고 할 수 없겠지요. 남아공 선교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한국교회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신학훈련사역이 매우 중요한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을 크게 짓고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빵을 나눠주는 모습보다는 덜 감동을 준다는 것입니다. 많은 선교단체나 한국교회가 '보여주는 선교'에 돈을 많이 보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여줄만한 것이 아닌 것에는,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가 아닌 것에는 별로 감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매스컴을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모금하는 기현상이 있습니다. 반면 정말 중요한 사역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궁핍하게 살아가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교의 슬픈 그림자인 것입니다.
어떤 선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일까요? 건물을 짓는 일? 빵과 옥수수 가루를 나눠주는 일? 현지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선교사마다 각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봅시다. "지역을 살리는 선교가 좋은 선교이고, 지역을 파괴하는 선교는 나쁜 선교이다"라고 말입니다. 선교사역의 좋고 나쁨을 후원하는 한국교회나 선교단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현지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특정 지역에 있는 지도자들이 서로 연합하게 하고, 그들이 가진 역량을 끌어내어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해준다면 이것은 좋은 선교의 그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헌신과 수고가 오히려 지역의 리더들로 하여금 서로 분쟁하게 하고 시기 질투하게 한다면 아무리 큰 건물을 짓고 많은 빵을 나눠준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나쁜 선교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하나님의 관점이어야 하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역을 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이어야 합니다. 혹은 '지역의 리더들이 서로 연합하게 하느냐, 혹은 분열하게 하느냐'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할 때에는 반드시 지역의 목회자들이 서로 연합하는 모습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어느 대형교회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다른 목회자들을 초청하는 모습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한 교회만이 성장하는 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흥은 지역의 모든 교회와 지도자들이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선교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개인 선교사가 큰 건물을 짓고 큰 금액을 모금하여 큰 사역을 하는 것이 좋은 선교사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선교사가 은퇴하거나 물러나면 반드시 이권문제로 분쟁과 다툼이 생길 것이니까요. 그러나 선교사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의 모든 목회자들이 서로 연합하게 된다면 참 멋진 선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선교, 나쁜 선교의 기준은 '지역의 연합' '지역을 살리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량주의 선교를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구제사역은 좋지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공개적인 구제사역은 모금을 위한 장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해야 한다면 현지인들이 하게 해야 합니다. 선교사가 건축하고, 큰 건물에서 선교사가 직접 목회하는 것은 적어도 남아공 현지의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면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 행사를 기획하고 매스컴을 이용하고 기독교방송에도 나오는 것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보여주는 선교는 적어도 남아공 현지에서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지의 진정한 필요를 이해하고 필요한 사역, 중요한 사역, 참으로 시급한 사역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그런 한국교회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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