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아프리카 신학사역의 새로운 모델

등불지기 2012. 5. 25. 17:21

 

아프리카 신학사역의 새로운 모델

 

아프리카에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내딛기 시작한 것은 한국의 선교역사보다 훨씬 이른 18세기 초반입니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의 발걸음은 동부 아프리카의 경우 이제 30년을 넘었고,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20년을 갓 넘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할 때 가장 우선적인 사역으로 대두되는 것이 목회자를 훈련하고 양성하는 신학훈련사역입니다. 사실 목회자 훈련사역은 모든 나라와 지역을 불문하고 선교의 본질적인 사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지상명령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였지요. 제자를 삼는다는 말은 지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바울이 보여준 사역이 제자를 삼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선교역사에서 신학사역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신학교 건물을 세워서 현지인들을 불러모아서 훈련하는 형태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일찍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데 가족을 내버려두고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큰 도전일 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문제가 크기 때문입니다. 신학교를 세우게 되면 건물을 유지하고 학교를 운영하는데 큰 재정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학생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서구신학교의 신학적 한계가 있습니다. 대부분 서구신학은 합리주의와 비평주의라는 근간에 서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신학교들이 많이 있으나 대부분 신학적인 내용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등 인본주의와 비평주의 경향이 농후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흑인 목회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경험주의적 세계관에 익숙한 흑인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습니다.

 

셋째, 서구세계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 또한 서구신학교가 극복해야 하는 또 다른 난관입니다. 서구 기독교에 있어서 리빙스턴은 존경받는 선교사이지만 흑인들에게 있어 리빙스턴은 서구 열강들의 침략에 물꼬를 터준 전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다분히 있습니다. 백인들이 세운 신학교 교육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신학사역의 모델을 찾는 것은 이제 20년을 갓 넘은 한국선교사역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교사역의 본질적인 사역이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 사역이라면 서구 기독교의 전철을 되밟지 않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건물 없는 신학교

건물을 짓는 것은 운영에 있어 큰 재정이 들어갑니다. 교수요원, 건물, 기숙사, 직원, 등 비용이 큽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모 신학교의 경우 현지인 학생이 30여명 되는데 매달 들어가는 비용만 5-6천만원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건물 없는 신학교 사역을 지향하고 있는데 200여명의 현지인 목회자 학생들이 훈련받고 있는데 1년 예산이 500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인 패러다임일 수 있습니다.

 

둘째, 찾아가는 신학교

기존의 신학교 사역은 건무을 세우고 기숙사를 짓고 학생들을 불러 모집하는 식이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면 현지인 마을로 직접 찾아가서 신학을 가르치고 목회자를 훈련하는 모바일 신학교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것은 훨씬 효율적이어서 더 많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데 매우 탁월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차고에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나무 그늘에서도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건물은 현지인 학생들이 직접 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바일 신학교의 형태는 백인이나 백인 선교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시골 구석 구석까지 복음의 손길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성경중심의 신학교

기존의 신학교 사역이라고 하면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귀납법적 성경연구, 온갖 비평주의의 도입,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인본적인 잣대로 마구 뭉개버리는 식으로 목회자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을 끄는 소방소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교 사역에 의하면 철저히 성경의 권위에 입각하여 성경의 본문에 충실한 사역이어야 합니다. 기존의 신학교육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성경본문에 대한 연구와 실제적인 설교훈련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서구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묵상훈련과 기도훈련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목이 되고 있습니다.

 

넷째, 동역이 이루어지는 신학교

기존의 신학교 사역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역과 다른 점은 한 지역을 두 선교사 혹은 세 선교사가 한 팀을 이루어서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책임진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서 시골에 꾸준히 들어가서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강의와 훈련을 함께 진행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신학교 사역은 한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혹은 다수의 패컬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새로운 패러다임음 보다 성경적인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보내시며 전도하게 하셨고, 사도행전에서도 둘 혹은 셋이서 팀을 이루어서 복음을 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위임과 파송이 이루어지는 신학교

기존의 신학교 사역의 한계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으로 끝나는, 단절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면 졸업생 중에 탁월한 학생을 찾아서 곧바로 강의를 맡기는 '강사선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졸업생 중에 강사로 임명하게 되면 둘씩 짝지어서 팀을 형성하게 하고 그 팀이 또 다른 마을에 찾아가서 '스쿨'을 시작하도록 격려합니다. 이때 선교사가 함께 동행하고 동역하면서 토착화된 신학교사역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으로 끝나버린 전통적인 신학교 사역과 달리 위임과 파송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선교사역에 가까운 방식인 것입니다.

 

여섯째, 연합을 도모하는 선교

지역의 연합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모토입니다. 기존의 신학교 사역은 여러 지역에서 찾아오도록 하는 방식이었으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신학교 사역은 한 지역에 여러 교단과 교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이 서로 연합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2년 정도 스쿨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교단의 배경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이 서로 연합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졸업이후에도 1년에 최소한 두 차례 정도는 전체 졸업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체육대회나 설교대회 등 특정 주제를 가지고 집중 칸퍼런스alumni conference를 가짐으로써 서로 유대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신학교 사역이 특정 교단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우 다양한 교단이 서로 연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더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하는 선교

전통적인 신학교 사역은 고비용 저효율이었습니다.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 것에 비하면 졸업생 수나 영향력 등에서 효율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면 저비용 고효율의 선교가 가능합니다. 건물이 필요없고, 학교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위임하고 이양하기 좋은 구조입니다. 반면 고비용의 신학교 사역의 경우 현지인들에게 이양하는 것은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덟째, 신학의 토착화를 도모하는 선교

전통적인 신학교사역은 음식을 주었으나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토착 신학교를 지향합니다. 현지인들을 강사로 세워서, 현지인들이 운영하게 하는 신학교를 지향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프리카적인 신학교, 아프리카 신학의 정립이 가능한 것입니다. 신학적 자립이야말로 모든 선교의 궁극적인 꽃이요 열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년후 선교사들이 떠날 때 현지에 무엇이 남게 될 것인지를 항상 물어보아야 합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떠나면 학교가 문을 닫게 되고 주저앉는다면 '신학적 자립'이란 과제는 실패한 것입니다. 현지인들에게 계속 위임하고, 이양하며, 현지인들이 건전한 신학을 가르치고 신학자를 배출하도록 돕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추구하는 선교방향입니다.

 

South Africa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사역을 소명으로 여기는

김광락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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