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도 세광교회 고등부 수련회를 인도할 때 준비했던 설교원고입니다.
(1)첫째날: 눅23:33~43 [용서와 구원]
환영과 기원
-은혜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3일 동안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원래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장식용 악세사리가 결코 아니었다. 십자가는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최악의 고통이며 형벌 중에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다. 즉,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다. 이 저주와 고통의 상징이었던 십자가가 언제부터 장식이 되었을까? 주후 312년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밀비안 다리 전투 때에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와 방패를 가지고 전쟁에 나가서 크게 승리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교회가 사자나 독수리의 상징을 했는데 이때로부터 저주와 수치의 십자가가 명예와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십자가의 모양은 무려 385가지나 된다고 한다. 오늘부터 우리는 십자가가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이며, 능력의 비결이다.
먼저, 고난주간에 되어진 일들을 한번 요약해보자.
-일요일: 종려주일로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성의 날)
-월요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해 교훈 하신 날(저주의 날)
-화요일: 성전에 들어가셔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하시고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시고 감람산에서 종말론을 가르치심(말씀의 날)
-수요일: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에 참여하심, 스승을 배반하기로 가룟 유다가 결심함(잔치의 날)
-목요일: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행하시고, 발을 씻기신 후,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심, 2시간이 넘게 기도하심(성찬과 기도의 날)
-금요일: 자정 경 체포되신 후 가야바의 법정에 서시고 산헤드린 공회, 헤롯, 빌라도 법정(8시경), 십자가에 못 박히심(9시), 하늘이 어두워짐(12시), 운명하심(3시), 공회원이자 부자였던 아리마데 요셉의 무덤에 안장되심(5시경), 여자들이 지켜봄(고통의 날)
-토요일: 안식일, 유대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건의, 유대당국자들이 성전경비병들을 무덤에 배치함, 여자들이 향품을 준비함(무덤의 날)
-일요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
가상칠언이란? 십자가에 6시간 동안(오전 9시~오후 3시) 달리실 때 남기신 일곱 마디 말씀
가상칠언을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처럼 중요한 말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 그 사람의 삶의 목적, 목표, 동기와 꿈을 요약해준다. 운명하시기 직전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들도 마찬가지다.
-가상칠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목적으로 생을 사셨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가상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요약이며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 남기는 말씀들을 조목조목 살펴보고 적용해보자.
우리는 인생 마지막을 어떤 말(고백)로 맞이할 것인가?
-내가 지내오면서 잊을 수 없는 임종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①내가 교구를 섬길 때 98년도, 서울대병원에서, 강혜랑 자매(28살) 백혈병, 예쁜 자매였는데 항암치료로 몰골이 많이 상함, 눈으로 신앙고백 하는 것을 지켜봄
②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분, 외할머님, 대학교 2학년 때(1986년), 물끄러미 바라보심, 목욕재계. 주님과 조용히 임종을 준비
③내가 7실 때 할아버지가 소천하셨는데, 마당에서 내 귀에 들린 그분의 음성: “살려다오”
➃작년에는 “삶의 의미가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 동익APT에서 뛰어내린 23살 청년을 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최후를 마감할 것인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를 바라보기 바란다.
첫 번째 말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희’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여) 못박는 로마군인들을 가리킨다. 로마군인들은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이 말은 로마군인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죄인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들이 들었던 말이 무엇일까? 온갖 욕설과 저주의 말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 예수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죽음을 코앞에 둔 지경에서, 굵은 쇠못이 손목을 관통하고 혈관을 터뜨리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도대체 이 예수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여러분, 이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는가?
(1)예수님은 용서하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다.
ex.하루는 집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는데 지붕이 뜯겨지고 중풍병자를 침상에 맨 채로 달아 내려졌다. 그때 예수님이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에게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의 죄값을 탕감하노라”
※주위 사람들이 놀란 이유가 무엇인가? 그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선언은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이다.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너희로 알게 한 것이다” 이 청년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죄책감을 있었을 것이다. (ex.마태의 회심과 같은 경우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 용서를 선언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청년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을 것이다. 둘러선 사람보다 그 청년이 더 놀랐을 것이다!
(2)예수님은 정죄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오지 않으셨다.
§요5: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가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시다. 죄인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해주신다. 이것은 복음이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죄용서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3)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오셨다. 우리 사회가 미움과 폭력과 불신으로 가득 찬 이유는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죄용서의 은혜를 체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리고 남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고서 하나님께 용서받을 길은 없다!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인가? 예수님처럼 자신을 못박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가? 용서하는 삶을 사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십자가의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ex.일만 달란트의 비유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 vs. 500만원)
이 시간 나는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삶은 용서하는 삶이다. 주님을 만난 뒤 가장 먼저 맺어야 할 열매도 용서란 열매다.
-용서란? 빚을 거저 탕감해주는 행위
cf.남이 내게 이유 없이 상처를 입혔다면 내게 빚을 진 것이다. 남이 내 가슴에 못을 박았다면 그것은 빚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탕감해준 것 같이...(주기도: 예수님의 정신)
※용서가 없는 기도는 절대로 열납되지 못한다. 용서 없는 삶은 그 어떤 긍휼이나 구원도 없다.
-남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다.
-용서는 무조건적인 명령이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순종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마음에 못박은 자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는 자다.”
ex.어느 가정에 심방했었는데 귀신들려 파랗게 질려 넘어가는 여성도를 보았다. 그에게 문제는 이 ‘증오심’이었다.
※귀신들의 세력이 우리 가정과 마음과 삶을 황폐케 한다면 일차적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 ➀내가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➁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용서받은 나로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원한이 있을 때 귀신들은 우리를 사로잡을 근거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근거를 파괴해버려야 한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용서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듣자.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질투하시는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님” 시7: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지 못한 자는 예수님의 그 높고 넓으신 죄용서의 은총을 도저히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➀양심 ➁역사 ➂법 ➃재앙 ➄성령
❊진노 아래 있는 인생들을 위해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셨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그 진노를 피할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는 자는 그 진노를 당할 것이다. 그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가공할 정도이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기도에 대한 이해: 긍휼을 구하는 기도
ex.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기도하는 가운데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모스서-메뚜기, 불의 환상을 보고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막는 자로 오셨다!
셋째, 예수님은 인간을 알고 계셨다: “저희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인간창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신 창조주이시므로 인간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지한 자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여졌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ex.“만일 알았다면 저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ex.“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도다”(행3:17)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모를까?(원초적인 무지의 상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에 대해 무관심하다.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깨닫는 것이 용서하는 삶의 참 비결이다.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이야기: 동생에 대한 분노 but, 하나님은 나를 다루셨다.
넷째,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냄 받은 종으로 이해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신다.(사53:12)
용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첫 번째로 남기신 말씀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기도를 드리신 것이다.
-내게 상처를 주는 그 현장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계속적으로 용서의 기도를 드려라. 그를 긍휼히 여길 때까지!!
-만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용서할 마음인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않다. 용서는 주님의 명령이다.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눈물로 기도했네
귀중한 그 보배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
비웃는 그 무리들 주의 옷 벗긴 후에 주님 몸 깊이 찔렀네
귀중한 그 보배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 주소서 그 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 한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죄 씻었네
용서하라!!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오히려 긍휼히 여기라!
이제, 두 번째 말씀을 살펴보자: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좌우편에 달린 강도 중에 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함께 예수님을 비방했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도 있고, 침묵하고 무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비방하기도 한다. 왜 비방하는가? 비방심리는 상대방을 비방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방어 차원인 것이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다면 그분을 결코 비방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대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구원을 간청할 것이다.
-어떤 변명과 이유로든 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이미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증거이다.
ex.“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그런데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두 강도 중에 왜 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가?
-두 강도는 처음에는 같이 예수님을 비방했다.(마,막) 그런데 둘 중 하나만 낙원에 들어갈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둘 중 한 사람이 도중에 마음이 변했다. 운명을 결정짓는 변화였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냈는가? (40,41절 참조)
cf.본문 39절을 보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당신이 하나님이라고?
이 사람은 예수님의 무기력함을 비웃고 있다. 그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네가 그리스도라면 이렇게 될 수 있느냐?’
cf.본문 40,41절을 읽자.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눈 여겨 볼 사실이 있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이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둘 다 고통에 못 이겨서 일그러진 얼굴모습으로 예수님을 향해 욕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의 마음에 뭔가 변화가 있었다. 충격적인 깨달음이 있었다.
-믿음이 무엇인가? “깨달음”이다. 그러면 내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➀정죄된 인생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➁하나님의 진노에 의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➂당연한 보응을 받는 것이란 사실
➃그러나 이 예수란 분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다!!
-그가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이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분명히 여러 번 ‘죄인들을 위해 용서를 비시는 기도’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을 박는 자들을 향해, 비난하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심각한 충격을 받았고 심령의 변화를 받은 것이다. 갈보리에 오르면 우린 먼저 들리는 이 음성에 도전 받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우리 심령이 변화된다!!
※거룩한 충격(holy shock)을 받지 않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도 없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거룩한 충격이 언제 있었는가? 죄인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적이 언제 있었는가?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도대체 이분이 누군가?”라고 충격을 받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인격을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놀라워 해야 한다. 그분의 인격에 대해 새롭게 주목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막9:13절)
-여러분은 한때 ‘잃어버린 자’임을 아는가? (엡2:1참조)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받은 구원이 실로 어마어마한 것임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강도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강도가 생각한 구원: 미래적 구원
-구원받는다는 말의 의미? 죽은 다음에 천당 가는 것인가?
-오늘 구원을 받아야 한다: 삭게오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가?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의 정의: 사후세계와 재림의 관계
-천국과 낙원의 관계?
-바울이 경험한 낙원(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낙원이 왜 복된가? 천국과 낙원의 차이점? 예수님이 그곳에 계심, 예수님의 임재
ex. 내가 아는 집사님 중 낙원에 가보았다는 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주님을 보면서 낙원을 알게 된다. 성령은 이 낙원의 기쁨을 나눠주신다.
결론
➀용서와 구원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➁믿음으로 용서를 하라. 감정 때문이 아니라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하라. 그러면 구원을 주실 것이다.
➂그대의 가슴에 못박은 자들이 누구인가? 십자가의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반응하기 바란다.
➃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탕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자.
그것보다 더 비싼 것이 또 있겠는가?
ex. 강재구 소령은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 많은 부하의 생명을 건진 인물이다. 훈련 중 중대원들의 실수로 수류탄이 땅에 떨어졌다. 수 십 명이 죽음의 위험에 처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던져 수류탄을 몸으로 덮고 “발리 엎드려”라고 외쳤다. 영문도 모르고 엎드린 부하들은 다 살고 중대장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죽은 후 주머니에서 기드온 성경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한 알의 밀알이 죽어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어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부대가 그 사건을 사고로 처리하자 군목실장이 부하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치른 장교의 기독교정신을 칭송해야 한다고 탄원하게 되었고, 다시 진상을 조사한 뒤 그를 소령으로 일계급 특진시키고 그가 졸업한 육군사관학교에 동상을 건립하도록 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십자가에서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렸는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강도에게 낙원의 약속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참 목자가 되신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위해 대신 목숨을 버리셨다. 아니 우리 죄와 허물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은 것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신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나를 기억해주소서” “나를 구원해주소서”라고 용서하시는 주님을 신뢰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낙원을 약속하신다.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 위대한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드리자!!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영원의 문제를 결정하기 바란다.
함께 찬송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 144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 190장
함께 기도
① 내게 못박은 자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기
②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회복시켜주시도록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기
구원받은 강도는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구원은 이 강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도적이 아닌가? 십자가의 주님께 대해 여러분의 고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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