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성공에 관하여

등불지기 2012. 6. 9. 23:18

 

성공에 관하여

 

성공success에 관한 두 가지 관점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셔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0-24)" 십자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땐 실패와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땐 성공과 축복의 상징입니다. 저는 성공이 무엇인가에 대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성공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성공과 소유는 별개의 것입니다. 성공은 남들보다 얼마나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성공은 나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루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지식에서 시작합니다. 남들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더 큰 책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성공과 소유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중에서 부동산 재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몇 백억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등..그러나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바라보며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가졌다는 것, 좋은 것을 가졌다는 것,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더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보다 더 가진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들보다 덜 가진 나는 훨씬 홀가분 사람입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면 그것은 주님이 나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워주신 것입니다. 재물만이 아니라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성공과 소유는 전혀 별개인 것입니다.

 

요셉의 성공
"...because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gave him success in whatever he did.(Gen39:23)"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는 요셉을 향해 성경은 그를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성공과 성경이 말하는 성공은 얼마나 다른지요! 요셉의 성공은 그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지가 기준이었습니다. 그의 형통은 그의 생각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그는 분명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감옥생활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성공적인 삶이요, 형통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멋진 계획이 있다는 것-비록 내가 그것을 완벽히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이 진짜 성공적인 인생의 조건인 것입니다.
 
성공만능주의시대
우리는 지금 성공만능주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것도 다름아니라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성공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물크기, 출석수, 헌금액수 등이 목회성공의 기준이 된지 오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함께 했기에 그만큼 커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합니다. 그렇다면 수십만의 이단집회가 가능한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증거일까요? 사람의 눈에는 문제없고 재정이 풍족한 라오디게아교회가 좋은 교회겠지만 실은 주님이 토하고싶은 교회였지요. 어떤이는 S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하는데 웃기는 소립니다. 어쩌면 시골이나 낙도의 이름없는 교회가 진짜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세상적인 성공기준을 붙들고 살지 않는지요?
 
하나님이 있으라는 곳에 있는 것이 성공
얼마전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교사님은 국내에서 목회를 하셔도 성공하실 분입니다." 제게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인지 압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은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선교지에 있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이 있으라는 곳에서 그냥 있다는 것이 저의 행복이요 성공이라고 나름 자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으라는 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게 된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실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그 어떤 가시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공이란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처럼 그곳이 설령 감옥이라면 그곳에서 사는 것이 성공이요 형통일 것입니다.
 
선교지에서의 성공
선교사로서 살아갈 때에 어떤 분들은 얼마나 많은 교회를 개척했느냐, 어떤 건물을 지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느냐 등으로 선교사의 성공을 판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물량주의, 건물지상주의, 외형주의가 선교지에서도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자신이 얼마의 펀드를 모금하고 어떤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지를 가지고서 자신의 선교를 성공적인 선교라고 자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씁쓸합니다. 더욱 아쉬운 것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기관조차 규모의 논리, 명예의 논리로 선교사역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지원금액을 책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정말 필요한 사역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데도 매스컴을 잘 이용해서 기독교 신문에도 나오고 기독교 TV에서도 방송되는 것을 보면 씁쓸해집니다. 이처럼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이 선교지에서조차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준에 적응하고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하고 대항할 것인가? 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둘 중에 끼여서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정의
제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하고 싶은 일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되고 그것이 나아가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급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단지 열심으로 하는 일이 아닌 자신의 온 마음과 삶을 다 쏟아부어서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적어도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쓸 일이 적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 일을 하면서 만족이 있고, 보람이 있고, 열정을 느끼고,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이 잘 하네 못 하네 비난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 속에 이미 충분히 상급을 받으며 누리며 살기 때문입니다.
 
성공보다 성품이다
학교 교육은 성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성공을 향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나름 보란듯이 성공을 거두워도 성품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성공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성품입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성품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가르칠진 몰라도 그 성공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보람을 찾고, 행복을 찾게 해주는 능력인 성품에 대해선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학교교육의 근본적인 한계이겠지요. 학교교육은 인생에서 유치원 과정과도 같습니다. 진짜 배워야 할 것은 학교가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후에 배우기 시작합니다. 인생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것은 성품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성공의 조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만드신 그분의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 이루어 드려야 할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를 지으신 그분은 나를 지으실 때 내 안에 그분의 목적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씨앗을 심어주셨는데 그것을 찾아야 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그 씨앗은 '열정'이라고 할 수 있고, '은사' 혹은 '비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작은 것이어서 언뜻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내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실 때 내 안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내 안에 있던 그 씨앗이 싹을 틔고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물을 주고 가꾸기 시작하면 할수록 그것은 내 안에서 크게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열정'과 '즐거움'의 형태로 다가옵니다. 그러다 점점 자라면 '유능함'과 '익숙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자라면 '부담감'과 '의무감'으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내게 '고통'과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성공의 열매: 유언
어떤 사람이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다'라고 평가하는 말에 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 '이 정도면 나는 성공자야!'라는 자부심에 있는 걸까요? 솔로몬이 쓴 전도서를 읽어보면 성공에 대한 그의 묵상을 접할 수 있는데요. 그는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심을 가졌었으나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이 다 헛됨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엔 적어도 한 인생이 그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는 자신도 그 어느 누구도 잘 알 수 없을 것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그가 어떤 최후의 말을 남기는가를 보면 적어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끔찍한 고통을 당하며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누가 시작은 반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마지막은 전부입니다. 성공의 열매는 인생의 최후의 순간에서야 밝혀지고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최후의 순간에 어떤 말로 인생을 마감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면 그 말이 제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열매: 평강
요셉의 삶을 묵상하면서 성공의 열매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삶은 참으로 굴곡이 많은 삶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그가 형들에게 버림받고(상처), 노예로 팔려가고(고통), 무고히 감옥에 갇히는(저주) 삶을 살 때에 성경은 그를 성공적인 삶, 형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공을 주셨다He gave him success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적인 삶과 반드시 함께 따라나오는 것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의해보았습니다. "성공적인 삶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다!" 이 말을 좀 쉽게 이렇게 풀어볼 수 있겠지요. "성공적인 삶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들을 보는 삶이다!"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모함을 쓰는 억울함의 연속 가운데서도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고, 또 그렇게 느낄만한 어떤 증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증거signs는 외적인 증거보다는 내적인 증거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생활로 살면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모함을 받아 인격적인 외상을 겪는 가운데서도 그의 마음은 평안이 있었고 이해하지 못할 어떤 확신과 평강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그런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내 생각과 계획이 무너지고 좌절되는 순간에도..이상하게 내 마음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공의 열매: 용서
요셉의 삶을 좀 더 생각해보았습니다. 다른 많은 믿음의 조상들과 선배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요셉의 삶은 두드러진 성공의 열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80년 동안이나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고 애굽의 모든 부귀 영화를 누렸지만 우리는 그러한 화려한 삶에서 어떤 영감이나 도전이나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요셉이 삶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영감을 주는 것은 바로 그 형들을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고, 자신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그는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상처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성공은 상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는 참된 용서를 잘 보여줍니다. 그가 형들을 용서한 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은 그의 눈물에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형들의 자녀들까지 자신이 책임지고 양육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성공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발견하는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짜 성공자만이 진정한 용서를 베풀 수 있고, 참된 용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공의 열매는 용서이고, 용서의 열매는 곧 성공의 열매입니다.
 
성공의 열매: 사람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동물의 왕 사자는 힘이 있을 때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삽니다. 많은 사자들이 먹잇감을 사냥해서 갖다 바칩니다. 그러나 힘을 잃으면 무리에게서 쫓겨나서 외로이 먹잇감을 사냥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자형 리더가 많습니다. 리더의 자리에 있을 때 군림하고 지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려고 줄을 섭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성공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아무도 그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성공자는 권력이나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장사 잘 한 사람이 진짜 성공자입니다. 진짜 친구를 얻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공의 참 열매는 사람입니다. 지위, 권력, 재물, 소유, 건강을 잃을 때 사람이 남아 있으면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늘 재판정에 섰을 때 아는 척하는 사람이 없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오. 내가 어려웠을 때 나를 도와주었소."라고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16:9)" 여러분은 재물과 지위와 권세가 사라졌을 때 여러분을 영접할 친구가 얼마나 있습니까?
 
2012.6.9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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