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좌절된 꿈의 치유

등불지기 2012. 6. 20. 23:19

 

 

좌절된 꿈의 치유

 

요즘 창세기에서 족장들의 삶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받았지만 그 성취를 맛보기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위험도 겪으며 고생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결코 하룻밤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듯 축복의 경험은 언제나 고생과 고난의 끝에 찾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하는데 어디까지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내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답답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히11:39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잠13:12)" 누구나 마음의 소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갈 때 어느 순간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란 징조와 함께 마음에 큰 확신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확신이 너무나도 크고 강하기 때문에 결코 실패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더욱 확신하게 하는 징조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종 실망스럽게도 좌절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내 모든 기대와 소망이 무너질 때 하나님에 대한 기대도 무너지고 긴 영적침체의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때일수록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내 소원이고 내 모든 것이 되시고 내 생명이심을 고백해야 할 때입니다.

 

저의 동역자 중에 불치병의 아들을 둔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치유를 기대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치유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치유의 주님의 이름을 외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믿음의 청년들 중에 많은 이들이 결혼을 소망하며 주님을 찾고 주님 안에 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겠습니까? 혹은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혹은 세상에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진학을 하려고 공부하고 또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일반인들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은 것인데 소원을 가지고 그 소원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뻐하며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응답받았다고, 소원 이루어주셨다고 간증하는 사람보다 말 못할 좌절감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자녀의 성결을 위해 소원하며 기도하였을 뿐인데 좌절을 맛본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런이들에게 주님의 뜻이 아니니까, 혹은 기도가 부족하니까, 혹은 이런 저런 이유로 좌절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위로는 커녕 더욱 마음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좌절된 꿈은 일종의 계류유산과 같이 고통스럽습니다..결혼후 오랫동안 아기를 바라다가 그토록 고대하던 아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태몽도 꾸었습니다. 이름도 지어두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기뻐해줍니다. 부모는 장미꽃 한 다발을 사와서 근사하게 환영식도 가집니다. 날마다 축복하며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희망은 커져만 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갑자기 복통이 찾아와서 병원을 찾았더니 계류유산miscarriage이라고 합니다.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술 후에 극도로 아픈 몸은 둘째치고 상실감에 서럽게 울음을 터뜨립니다. 심리적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육체의 회복 또한 더딥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고통이 찾아옵니다..소중한 꿈이 좌절되면 이와 비슷한 상실감과 고통이 뒤따르지요. 이것이 주님의 징벌인가요? 혹은 연단? 나의 죄 때문인가요?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치유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이까..(삼하12:21)" 소중한 꿈이 무산되고, 기대가 무너지고, 소망이 물거품이 되고,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 다윗이 보여준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깊은 상실감의 늪에 빠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상실감을 훌훌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그는 실망과 상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신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는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의 전에 먼저 들어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맛난 음식을 마음껏 '흡입'하였습니다. 그는 이유와 원인을 찾는데 골몰하는 대신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맡겨"버렸"습니다..소망이 좌절로 바뀔 때 다윗이 보여준 본을 기억합시다. 슬픔에 잠기는 것보다 예쁘게 화장하고 멋지게 차려입고 맛난 음식을 기쁘게 먹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수원에서 목회하던 때입니다. 몇 달 간 금식기도하고 작정기도하는 등 고뇌와 진통 끝에 목회를 내려놓고 유학을 떠나기로 결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저를 힘들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목회를 그만두는 것은 더욱 아니었고, 다만 주님이 함께 하시는 내적인 확신이 들지 않아 내적으로 공허했기 때문에 고민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목회하기에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해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했습니다. 공부할 내용까지 다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논문의 개요까지 다 준비했습니다. 학교 입학허가서도 받았습니다. 현지에서 체류할 방도 준비했습니다. 비자 서류는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전세금을 팔아서 공부할 자금도 준비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사관에서 보기좋게 거절당했습니다. 하필 공교롭게도 그때 유학하려는 나라에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비자 발급이 갑자기 까다로워졌던 것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날 대사관에서 나와서 서울역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납니다....저는 그 다음날 훌훌 털어버리고 제주도 있는 열방대학에 가족과 함께 등록하고 이집트와 이스라엘로 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슬픔과 비탄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것은 내가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얼마든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 내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3년 여가 흐른 후에 저는 선교지로 파송받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 있으면서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땅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경험한 내 계획의 실패는 이제 추억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잘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조금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었음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로 가려던 바울을 강력하게 막으셨던 분,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던 바울의 계획을 좌절시킨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훗날 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좌절된 것에 대해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인도하여 새로운 지경으로 인도하셔서 복음의 문을 여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것입니다. 나의 실패와 좌절은 순간이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에는 결코 좌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오직 성공과 성취만 있을 뿐입니다. 그분께 내 삶을 맡긴 이상 내 삶에서 경험하는 실패와 좌절은 생각지 못한 더 큰 성공과 성취를 향한 도약이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행16:7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렘29:5)" 포로생활은 절망과 좌절의 삶입니다. 원하지 않는 땅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매일 한 숨 지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즐기라고 말씀합니다. 절망으로 가득찬 현실을 생명의 환희로 가득 찬 축복의 현실로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실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서 집을 지으십시오. 그리고 그 집에서 사십시오. 그리고 텃밭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고 가꾸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열매를 먹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드디어 때가 찼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그렇게 현실적인 삶을 사십시오. 집을 지으라는 것은 건설적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집에 살라는 말은 안정감을 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텃밭을 만들라는 것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라는 것은 창조적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라는 말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소중한 꿈이 좌절되었을 때 하나님은 비탄에 잠겨 한 숨 쉬며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런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말고,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찾아보십시오.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좌절을 극복하는 현실적인 신앙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포로생활이 재앙이 아니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재앙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기약없이 살아야 할 때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걸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가 마치 한 달처럼 느껴지는 시간들, 세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데 시간이 마치 정지된 것 같은 그런 시간들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열정도 식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 생애에 이런 재앙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재앙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평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삶이 미래와 희망을 보장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포로생활과 같이 끔찍한 시간들이 어떻게 나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해주십니다. "그것은 너희가 그런 시간 속에 있어야만 내게 부르짖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속에 있을 때만이 너희가 나를 온 마음으로 구하고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가 그렇게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찾을 때 비로소 나는 너희를 만나줄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예전에 전방에서 군복무할 때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내 삶은 재앙 그 자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프리카 선교지에 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 있으면서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패턴이 있습니다. 먼저 고통이 찾아옵니다. 제법 고통이 심각해지고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의심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밖에는 바라볼 데가 사라집니다. 기도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기에 기도는 저절로 됩니다. 하나님만 간절히 찾게 되고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신기하게 역사하심을 경험합니다. 결과적으로 내 꿈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좌절된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언제나 내 생각과 계획보다 더 엄청난 것으로 후대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미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4-9)"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에 빠지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로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시107:23-32)" 

 

나의 계획이 좌절되고, 내 소중한 꿈이 수포로 돌아가버릴 때 사랑스런 아이를 사산한 것같은 아픔이 임할 때 포로생활와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할 때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일 때 아무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아보일 때..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모하는 마음이 준비되는 기간인 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계획이 좌절되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 계획을 성취하실 분이십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진정한 기적입니다. 내가 계획을 세울 때는 어떤 의도가 있고 바라는 것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내 계획이 좌절되고 꿈이 수포로 돌아갈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신기한 방법으로 내 의도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 순간 내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참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선교지에 있으면서 이러한 일을 몇 번 겪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의 소원을 따라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은 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소원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럴 때 허탈함과 공허함과 분노와 실망감은 극도에 다다릅니다. 그럴 때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때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때가 찾아오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 소원을 소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을 소원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에 내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러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시37:4

 

저는 꿈이 많았던 아이였습니다. 상상과 공상을 즐기며 자랐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서도 그런 기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꿈이 많을수록 좌절도 많더군요. 부모님의 좌절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저 역시 좌절을 경험하면서 자랐습니다. 형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선교지에 나와 있으면서도 크고 작은 좌절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그 모든 좌절을 다 다루려면 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인생의 후반전을 달리고 있는 이 즈음 하나님께서 저의 좌절을 다루고 계시는 분이심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 꿈이 물거품이 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 영혼을 만족시키는 분이심을 알아갑니다. 이제 저는 그 어떤 좌절의 순간에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좌절된 꿈을 치유하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안정된 성읍에 거주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하나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2012년 6월 28일

South Africa 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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