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응답의 비밀 I
선교지에서 살면서 받는 축복 중에 하나가 기도 응답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치안, 건강, 사고, 비자, 학교, 재정 등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기도 역시 극적인 응답을 종종 체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선교지에서 더 많이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교회를 섬길 때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기도 등 그야말로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기도하는 것같이 많이 기도하지 못하는 제 모습에 솔직히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경험했던 기도응답보다 선교지에서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자주 경험합니다. 선교사가 엎드려 기도할 때 종종 절박한 문제가 많습니다. 벼랑 끝에서 기도하는 때도 많습니다. 실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도에 관하여 묵상을 해볼까 합니다.
은밀하게 기도하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기도에 관해서는 이 말씀 하나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잘못된 기도의 유형으로서 외식하는 기도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외식하는 기도의 반대는 은밀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기도입니다. 은밀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만 고하는 기도입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동기가 강한 기도입니다. 반면 은밀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만 인정받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은밀히 계신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도는 은밀히 하는 것이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고,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영성이 있다고 자랑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대로 된 영성은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추고 숨기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섬길 때는 공적인 기도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기도하는 것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기도 등 모든 기도가 공적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했지만 은밀한 기도를 얼마나 깊게 했는지 돌아보면 공적인 기도사역(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기도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도는 가장 은밀한 행위여야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그러면 은밀한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예수님은 "네 골방에 들어가라" 그리고 "네 문을 닫으라"고 하십니다. 골방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가장 은밀한 장소였던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염두에 두신 듯 합니다. 골방은 가장 은밀한 곳이고,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골방은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있다면 바로 골방의 부재일 것입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골방이 내 삶 속에 들어올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의 삶은 상대적으로 골방을 만들기가 쉬운 편입니다. 빈들에 나가서 기도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없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힘들 때는 신음소리마저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격리시켜야 합니다. 자신을 외로운 곳에 가두어 두어야 합니다. 적적하고 적막한 공간에 두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자신을 감옥에 가두어야 합니다. 사실은 감옥이 아니라 지성소이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골방에 들어갈 때에는 숨막히는 감옥과 같은 느낌일 것입니다. 자신을 가둘 뿐만 아니라 문을 닫아야 합니다. 사람을 기대하는 마음도 접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는 마음도 접어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의지하려는 마음도 접어야 합니다.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만을 응시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을 닫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기는 하여도 문을 열어둔 채로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왕 골방에 들어갈 때에는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아뢰면서 기도합니다만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필요를 다 털어놓기도 합니다. 병낫기를 위해 서로 죄를 고하며 서로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내 마음에 있는 소원을 그 어떤 사람에게도 비밀로 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아뢰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늘 아버지를 응시하라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힘들어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의 대상에 대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해야 할 일은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늘 아버지를 응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밀한 중에 들어가십시오. 뒷문을 단단히 잠그십시오. 그런 다음 하늘 아빠를 응시하십시오. 때로는 잠잠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인 기도가 됩니다. 관건은 내 아빠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뢰와 경외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만으로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움직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만이 기도의 전부가 아닙니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선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담아 시선을 하늘 아빠에게 고정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늘 아빠는 하늘 지성소에 좌정하여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늘 지성소에 앉아 계시는 분은 우리의 하늘 아빠이십니다. 아빠를 응시하듯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기도 전에 우리의 시선만 보시고도 무엇을 가지고 당신께 왔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 아빠를 잠잠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은밀한 것을 보신다.
"..and pray to your Father...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은밀한 곳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는 아주 은밀한 행위입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질수록 더욱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은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라는 행위는 단지 우리가 말로써 떠들어대는 행위가 결코 아닙니다. 기도는 무엇인가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기도행위는 무엇인가 이루어지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기도할 때 하늘 아빠와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깊숙히 감추어져있던 소원의 보따리를 풀어놓는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완전히 맡겨드리는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늘의 아버지께서만이 받으시는 무엇인가가 쏟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에게만 아뢰는 것입니다. 오늘 아프리카 흑인 목회자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면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여러 흑인 목회자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들은 틈만 나면 제게 '은밀히'in secret 다가와서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합니다. "Pastor! I need something..I need a car..I need food to eat...I need a church building...I need a material.."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매우 당황합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분들의 아버지가 아니야..그런데 왜 이분들은 나를 자신들의 아버지처럼 대하는거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깜짝 놀랍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왜 응답이 없는가?
한번은 얼마전에 제가 반장 목사님에게 학생들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지 기도제목을 좀 정리해서 달라고 개인적으로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어떤 문제로 기도하는지 알고 싶었고 같이 기도하고 싶었을 뿐인데 현지인 흑인 목회자들은 '아 저 선교사가 자신들을 도와주려고 하는구나! 이번 기회에 내가 필요한 것을 잘 말해서 도움을 받아야지!' 이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클라스 안에 서로 시기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수업에서는 제가 작심하고 이 부분을 지적한 것입니다. 저는 학생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친구일뿐 여러분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제발 저를 여러분의 아버지처럼 여기고 다가오지 마세요! 나는 한 달 한 달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한국 선교사일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아빠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는 있으나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제가 채워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만 아니라 모든 선교의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선교사가 현지인들의 모든 필요에 하나님처럼 반응하기 때문에 사실 선교를 망치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혹은 담임목사님이 마치 하나님처럼 행도하기 때문에 자녀를 망치고, 교인들을 망치는spoil 하는 것입니다. 내적치유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전능자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부모나 목사나 선교사나 좀 능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려고 애쓰는 '전능자 역할'을 하면 자녀나 교인이나 현지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부터 필요한 것을 공급받도록 하는 기회를 가로막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교회가 신학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재정적으로도 여전히 어린아이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까닭은 오랜 세월 동안 선교사들이 '전능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무엇입니까? 다시 정리해보면 첫째, 골방에 들어가는 것, 둘째, 뒷문을 잠그는 것, 셋째, 하늘 아빠를 잠잠히 응시하는 것, 그리고 넷째,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토해놓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아주 은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거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토론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돈 내놓으시오!!"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필요는 이것이니 채워달라고 징얼거리는 것도 아닙니다. "이루어주지 않으면 나 죽겠소"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빠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
예수님은 두 가지 잘못된 기도의 유형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기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종교적 동기가 자신들의 기도생활에 큰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은밀한 기도생활'에 대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하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에서도 기도행위는 쉽게 볼 수 있는 의식입니다. 이방 종교의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주문을 외우는 것같은 기도라고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 되풀이 하면서 오래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인정받고 싶은 동기와 달리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동기는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이기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의 기도의 특징은 내가 기도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 하나님(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든지 상관없이)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문제는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인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능한 기계machine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자신의 노력과 정성에 집중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시도는 하나님을 결코 감동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대신 예수님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인격적인 대화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무엇을 가지고 기도할지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다면 왜 굳이 기도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나의 필요, 내 문제, 내 중심에서 해왔던 분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문제로 옮겨가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에서 하나님의 필요로 초점을 변경해야 합니다. 내 문제에서 아뢰던 기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문제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내 마음도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문 곳에 내 시선이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인격적인 사귐이요 대화인 것입니다.
(계속)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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