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응답의 비밀 II
한국에 있을 때보다 선교지에 있을 때 더 기도를 많이 할까요? 사실은 아닙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요기도, 금식기도, 산기도, 등 많은 기도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또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한다고 기도응답을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체험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저의 개인적인 삶을 놓고 보면 별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해 늘 죄책감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선교지에서의 삶이 오히려 기도응답의 역사도 많고 체험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선교지에 와서 영성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지에 와서 살면서 수없이 많이, 그것도 극적으로 응답하여 주신 은혜를 돌아보면서 '그러면 무엇일까?'라고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열납되는 기도, 응답되는 기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를 들어 "무엇을 주십시오"라고 간구했을 때 내가 구한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경험을 '기도응답'이라고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하나님이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계시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이 간구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표현은 안 하지만 속으로 실망도 하고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걸까?'라고 의심하기도 하지요. 기도응답을 간증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그럼 나는 믿음이 부족한걸까?' '나는 하나님이 덜 사랑하시는걸까?'라고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요. 제가 선교지에 와서 느끼게 되고 확신하게 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간구가 응답(성취)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덜 사랑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란 사실입니다. 내가 간구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응답되는 '신기한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내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응답보다 열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간구한 그것이 내가 간구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너무나 쉽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느끼기란 쉬운 것입니다. 지각이 약하고 감각에 의존하는 어린아이의 경우 때론 그런 '응답의 은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계속 신앙의 길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그런 '기적'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응답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납되는 것입니다. 내가 간구한 것을 응답받는 체험이 놀라운 것 같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응답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나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사건입니다. 저는 '기도응답'을 간증하고 자랑하는 많은 분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드립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별로 기도응답의 체험이 없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덜 사랑을 받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간구한 대로 이루어주셨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받아주셨는가입니다. 기도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열납입니다. 내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나 자신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손을 구하는 기도, 얼굴을 구하는 기도
대체로 막 신앙의 길에 접어든 초신자의 경우 자신의 필요와 소원을 따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초신자의 단계에서 놀랍고도 기적적인 '응답'과 '성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또 신앙생활에 대해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도는 자신의 문제, 소원, 필요에 의한 간구입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이 손을 구하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이런 류의 기도를 저급하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매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때론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이런 류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라고 생각하여서도 안 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도 합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을 항상 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내 필요와 소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 기도가 응답되는 것만을 기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정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은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필요가 기막히게 채워지고,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기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내 필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로 남아 있을지라도, 내 삶이 여전히 고통으로 신음할지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것(기도응답)은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하는 것(기도열납)은 더욱 기쁘고 즐거운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주님께 우리가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우리와 마음을 나누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은 성숙의 표지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기도응답을 성숙한 믿음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에 대해 간증하는 것을 보고 큰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기도응답이 적거나 혹은 없다고 해서 내 믿음이 적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도응답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아직도 영적으로 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여겨서도 안 됩니다. 기도응답과 성숙의 문제를 서로 결부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간증한다고 뭐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때로는 기도응답에 대한 간증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생활에 대한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놀라운 간증이 자신이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간증거리가 없는 자신이 믿음이 없다고 자책하게 만들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기도응답과 기도열납의 차이
그러면 기도응답과 기도열납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것과 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하는 차이입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일까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손보다 하나님의 얼굴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어느 한 부분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다 중요하고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하나님과 오래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느 정도 성숙한 신앙의 단계에 접어든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것도 기뻐하지만 하나님이 얼굴을 보는 것이 더욱 기쁜 일이 됩니다. 기도응답의 은혜만을 알고 있다면 대게 아직도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단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간구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거나 의심 혹은 자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자신을 덜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니까요..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문제와 고통과 필요를 다 알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고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알게 될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 여전히 자신의 간구가 응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도응답이 이루어질 때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의 비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해서 응답이 되는 걸까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려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해야 한다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응답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방식으로 응답이 되는 것은 극히 일부이며 매우 드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응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많은 경우에 있어 내 뜻대로 응답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엎드려 감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뜻보다 언제나 선하고, 더욱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주시지 않으셔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분이 나를 알고 계신다는 것은 나의 간구가 이루어지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내가 기도한 것이 시간낭비가 되는 건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아도 우리가 간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횡설수설하며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입과 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못알아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다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도에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간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의도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응답을 경험하는 아주 좋은 경건의 습관입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건의 비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읽기와 기도를 별개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기도는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기도생활에 있어 놀라운 응답을 경험하려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의 뜻에 맡길 것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내가 간구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잠시 실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이 약하지는 않는지 자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저는 군복무를 면제시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간절히 간구한 이유는 교회도 봉사하고 복음도 전해야 하는데 군복무를 한다는 것이 시간낭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복무를 면제시켜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굳게 믿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 의도와 정반대로 저는 최전방에 군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도 했고 나이도 많아서 편한 보직으로 옮겨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전방에서 온갖 힘들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다 받으면서 생고생을 다 했습니다.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전역하기 전까지도 하나님께서 나를 과연 사랑하시는지 의심하면서 지냈습니다. 기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역하기 몇 달 전에 하나님은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를 만져주셨고 신선한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전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님은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군복무를 하던 시절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10여년 앓았던 위염증세가 말끔히 치유되었습니다. 음식을 가리는 일도 사라졌고 아무거나 잘 먹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감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통을 피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였지만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제가 영육간에 더욱 강해지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알게 된 것은 비록 제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받아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들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응답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제 삶에 이러한 일들은 많습니다. 내가 간구한 대로 기막힌 방법으로 응답해주신 일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대로, 내가 예상하지 못한 축복으로, 훨씬 더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주신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간구할지라도 언제나 마지막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맡겨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의 비밀: 정체성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설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게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아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수요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3:6-10)"
유명한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솔로몬이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지 '지혜'를 달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놀랍게 응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하기 전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이 이해하시는 대로 자신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대로 자신의 존재와 위치와 직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self-understanding는 것은 기도응답을 위해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정체성identity은 기도응답의 핵심 열쇠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응답을 바라며 열심히 기도합니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합심기도, 철야기도, 산기도..등등. 그러나 기도를 단지 많이, 열심히, 그리고 오래 한다고 기도응답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문제와 필요에 초점을 맞추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부분 놓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이, 오래,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지식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응답의 비밀은 정체성에 있습니다.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기 전에 자신이 누구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 자신을 어떻게 보시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왜 이곳에 있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의 그 모습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정체성에 근거해서 자신의 문제, 필요, 등을 간구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비결입니다.
기도응답의 역설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기도응답의 역설paradox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이 기도를 하지만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기도응답 받은 장면을 보면서 그가 자신과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간구하기 전에 고백했던 것을 잘 보면 첫째, 그는 아버지 다윗이 성실하고 공의롭게 정직하게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자신이 이미 큰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간구하기 전에 내가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을 받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결핍의 심리'로 기도하는 것이면 결코 부요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솔로몬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아버지 다윗을 위해서임을 깨닫고 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응답을 체험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믿음이 대단해서가 결코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솔로몬은 자신을 '종'이요 '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정체성을 '종'과 '아이'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사명을 위해 어떤 자리에, 어떤 모양으로 보내셨는지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게 하고, 또 응답받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넷째, 솔로몬은 자신을 왕으로 여기지 않고, 택하신 백성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왕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대리하는 위치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정체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게 하는 기도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의 기도응답
처음에 언급하였듯이 선교지에 와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놀라운 기도응답의 체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기도응답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만큼 문제도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응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가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선교지에서 생기는 문제는 한국에서 겪었던 그런 문제들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비자문제는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 아이들 학교 문제 역시 한국에 있을 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또 재정문제도 그렇습니다. 또 건강문제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좋은 병원도, 좋은 약도, 좋은 의사도 많지만 선교지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선교사가 겪는 문제는 대부분 실제적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한 번은 비자문제에 어려움이 생겨서 한국으로 추방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고 기대하시는데 쫓겨났다고 한국에 돌아가버리면 얼마나 챙피하고, 또 주의 영광을 가릴까 생각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이런 문제 앞에 선교사는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이곳에 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셨기 때문에 올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하고 저를 이땅에 보내주셨다면 이 문제에 관해 다시 염려하지 않도록 해결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저의 기도는 결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 작정기도, 철야기도, 산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복음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붙들고 엎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의 하나님은 매우 기적적인 방법으로 비자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저는 극적인 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저를 어떤 모양으로 보고 계시는지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응답의 은혜는 저의 정체성self-understanding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었습니다. 솔로몬이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에 대해서 놀라고 감사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더욱 확실하고 견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기도응답의 은혜로 인도하여줍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기도응답은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해줍니다.
기도응답을 바란다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문제, 필요, 고통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기도할 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습니다. 박쥐의 정체성을 갖고서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려 한다면 아무리 애쓰고 부르짖어도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 대부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 혹은 당면한 필요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내 간구에 놀랍게 응답해주시기 보다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셨다고, 자신의 모난 모습을 보게 하셨고,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셨다고..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한 손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붙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약하거나 흔들리면 하나님의 손(기도응답)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과 방법을 동원하여, 힘을 다하여, 정성껏, 간절히, 오래...기도를 하는데도 '응답'의 역사가 없다면 한번쯤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지 돌아보십시오. 동물의 세계에서 박쥐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존재를 잘 설명해줍니다. 박쥐는 스스로 자신이 새인지 혹은 쥐인지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박쥐와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교사 중에서도 박쥐와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유학생인지 혹은 선교사인지, 사업가인지 선교사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많은 기도를 할지라도 응답이 없다면 정체성이 희박하거나 흔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던 기도를 잠시 멈추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은혜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어떤 사명으로 이 자리에 있는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모양으로 바라보시는지..자신의 흔들리는 정체성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기도응답의 열쇠는 정체성이 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평생 살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면서 평생 살기를 바라며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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