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번영에 관하여

등불지기 2012. 7. 30. 23:00

 

 

번영에 관하여

 

흑인 목회자들에게 성경과 신학을 가르치면서 아프리카 교회의 문제점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가끔 흑인 교회에 초청을 받아 주일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현지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 자주 있는 편입니다. 흑인 설교에 관해서 제가 관찰해본 바로는 의사소통, 아이 컨택트, 제스추어, 다이나믹스, 등 여러가지 면에서 본받을 점도 많지만 다른 한 편으로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가 자주 노출이 됩니다. 그래서 저같은 사람이 선교사로서 일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 설교를 바라볼 때 설교의 형식은 있는데 내용에 있어서 문제가 많이 있는데요 특히 번영에 관한 설교, 율법주의적인 설교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에 계신 어떤 분들은 번영 prosperity 에 대한 설교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번영에 대한 설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은 분명히 번영 prosperity 혹은 성공 success 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타락시키는 것은 십자가 없는 번영 신학이지, 번영에 대한 성경적인 메시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번영도 문제이지만 번영 없는 십자가도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에 찌든 우리를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참여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번영은 어떤 것일까요? 성경적인 방법으로 번영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원칙대로 사는 삶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칙대로 살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칙에 일치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원활하게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게 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대항하고 대적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스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그 원칙에 거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성경적인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칙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carefully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리 혹은 원칙 principles of God 을 충분히fully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carefully 들으면서, 하나님의 원칙을 충분히 fully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번영을 누릴 수 없을 것이고, 삶은 불안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사도 바울은 분명히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은 번영으로 가는 성경적인 지름길입니다. 부모에게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좋은 것으로 돌아오는 최고 최선의 투자인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부모를 무시하고 결코 세상에서 잘 살 수 없습니다. 불효자로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라도 그러한 성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를 잘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 못 사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잘 사는 길은 부모를 하나님처럼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삶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2,3)"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he prospered, and he lived in the house of his Egyptian master. When his master saw that the LORD was with him and that the LORD gave him success in everything he did.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은 요셉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 있던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하는 일들마다 잘 되고 성공하고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러한 형통의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을 경험하려면 우선 우리가 그분의 계획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 선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여 야곱의 가족을 보존하고 구원하시려는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과 뜻이 있다는 것을 그가 17세 되던 나이에 알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계획이 어떤 계획인지 온전히 깨닫는 것은 훗날의 일이지만 그가 형통과 성공과 번영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가 잘 나고 똑똑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번영을 누리기 원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들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해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적어도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면 우리를 바라보는 지인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이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라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즈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우리가 재물을 사용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까? 혹은 우리 자식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우리 주님을 위해서입니까? 우리의 재물 사용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고, 하나님께 명예가 되는 것입니까?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는 무엇입니까? 내가 수고하고 노력하여 얻은 결과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씨를 주셨고, 비를 주셨고, 자라게 하셨기 때문에 얻은 결과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진정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는 나의 노동과 수고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행위는 어떤 것일까요? 집도 없고 땅도 없이 오직 성전일에 전념하는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봉사에 전념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지파에게도 미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재물을 사용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믿음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바울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고, 믿는 가정에서 선한 일을 행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재물이 하나님을 공경하는지 아닌지는 우리의 재물이 증언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후원을 받는 전임사역자나 선교사도 함께 적용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하여 재물을 먼저, 우선순위를 가지고, 사용함으로써 재물의 종으로사로잡히지 않고 대신 재물을 종처럼 부릴 수 있는 권세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으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내게는 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8:10-21)"

진정한 번영의 열쇠는 지혜를 획득하는데 달려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지혜를 찾으려면 명철understanding이란 주소로 찾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으로는 진정한 번영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명철'understanding이란 주소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지식'knowledge과 '근신'discretion이란 두 동역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번영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배워야 합니다. 학교에서 학업도 성실히 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보고, 여행도 다니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근신'은 신중하고 사려깊고 조심스러우며 절제하면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배우면서 조금씩 적용해나가면 깨달음과 이해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혜를 만나게 되고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으나 지식이 없이 벌어들인 부는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를 얻기까지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합니다. 갑작스러이 찾아온 번영은 갑작스럽게 나를 배신하고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연단과 준비 끝에 찾아오는 번영은 오래토록 내 곁에 머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꾸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함도 있어야 합니다. '번영을 주시면 감사하고 안주셔도 감사하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참된 번영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혜를 주셔도 그만 안 주셔도 그만! 이라는 식으로는 결코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번영, 참된 지혜, 참된 성공에 대해서 우리는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종의 소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한 두 번 시도해보고 실패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꾸준히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배고픔 때문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를 보십시오. 반대로 집요하게 성공과 번영과 축복을 갈구했던 야곱을 보십시오.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뼈가 부러지더라도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가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간절했던 야곱을 보십시오. 물에 물을 탄 것처럼 해서는 진정한 축복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악착같이 매달려야 합니다. 집요하게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교만하지 말라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범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8:11-14)"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은 좋은 것이나 다른 한편으론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은 날카로운 칼과 같은 것입니다. 쓰는 사람이 어떤 마음과 목적을 품었느냐에 따라서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듯이 물질도 그러합니다. 어린아이의 손에 들려지먼 자기를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쁜 마음을 품은 강도의 손에 들려지만 남을 해롭게 하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에 들려지면 좋은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번영 그 자체는 그래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물질의 풍요로움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려하시는 것은 우리가 궁핍한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려하시는 부분은 풍요로운 물질에 우리의 마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풍요를 얻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셨는데 풍요로움 속에 갇힌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는 까막득히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만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로 이 모든 번영을 성취했다고 여기기 쉬운 것입니다. 진정한 풍요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풍요로움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이 변질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를 보이기까지 우리는 계속 혹독한 불 가운데서 연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우려하십니다. "네가 번영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처럼 번영prosperity은 위험한 것입니다. 번영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번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에 대항할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결코 번영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축복에도 우리의 마음이 우쭐거리고 교만해진다면 어떻게 큰 축복 앞에서도 우리의 중심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작은 형통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번영을 구가한다고 할지라도 교만하면(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된다면) 금세 번영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번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늘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번영으로 가는 지름길은 다름 아니라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번영을 숫자로 판단하지 말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네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4:7)"

많은 사람들이 번영prosperity를 수치로 평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번영은 수치로 파악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번영은 숫자가 아니라 삶이요 태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출석수나 헌금액수를 가지고 교회의 크기나 성공 유무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영은 단지 은행 잔고balance의 액수로 파악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은행 잔고에 1억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한 달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는 빚을 많이 떠안고 있습니다. 은행에 갚아야 할 채무가 있습니다. 혹은 그의 신체는 그가 알지 못하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병원비로 다 날리게 될 것을 그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런 경우 진정한 번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많은 재물을 지녔다 할지라도 누리지 못한다면 참 번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을지라도 오늘밤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을 보고 번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거지 나사로를 보면서 호위호식하던 부자를 향해 번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보다는 신체 건강하고, 매달 수입과 지출을 겨우 맞추면서 살지라도 매일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고, 남에게 빚을 지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베풀어 주며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사람이 진정한 번영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번영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수치가 아니라 내면의 태도, 혹은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돔의 번영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소돔과 고모라는 고대 아주 번영했던 도시였습니다. 롯은 소돔에 거주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땅이 풍요롭게 보였고 물이 넉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마음이 가득한 도시였고, 죄악이 충만한 도시였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소돔사람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13:13)" 우리가 번영을 논할 때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을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진정한 풍요로움은 성결해야 합니다. 죄악이 가득한 삶은 아무리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번영이 아닙니다. 왜냐면 곧 그 모든 풍요로운 물질은 심판의 불에 태워지고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님대접은 번영의 척도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19:5)"

멸망의 징조는 손님대접의 정신이 사라진 것입니다. 반대로 번영의 증거는 손님대접의 정신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소돔과 고모라는 손님에 대한 예의가 없었습니다. 저는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손님대접의 정신이 죽은 교회는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을 교회입니다. 손님에 대해 무관심한 교회는 곧 촛대가 옮겨질 교회입니다. 소돔성을 보십시오. 소돔은 외부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했습니다. 나그네와 낯선 사람에 대한 증오심으로 충만했습니다. 손님을 증오하는 삶은 멸망의 징조입니다. 번영에 관해 교회에서 설교할 때 빼놓지 않는 본문이 있다면 단연 요한삼서 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누구나 잘 되는 삶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로 잘 되고, 신체적으로도 잘 되고, 영적으로도 잘 되기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네 영혼이 잘 됨같이"입니다. 내 영혼의 번영이 없이 물질의 번영은 다 헛된 것이요 일시적인 것이요 소돔과 고모라의 영화와 같이 불에 태워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내 영혼이 잘 되는 줄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요한삼서를 계속 읽어보면 이러한 축복을 받는 인물인 가이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우선그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에 대해서 다른 형제들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한 대로 번영은 단지 숫자가 아닌 삶이라고 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요한삼서 5절은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인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렇습니다. 요한 사도로부터 형통과 번영과 성공에 대한 축복을 받는 가이오의 삶은 손님 대접의 정신이 살아 있는 삶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나그네는 7절에 말한 대로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순회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곧 복음을 위해 수고하면서도 현지인으로부터 아무 보상도 받지 않는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러한 형제들을 대접하는 행위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의 중요한 척도요 열매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번영으로 이르는 길은 무엇보다 내 영혼이 잘 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이 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의 척도는 다름 아니라 손님 대접의 정신이 살아 있느냐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수고하는 형제들이 주변에, 그리고 세상에 참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물질의 장애물도 무너지고 물질이 원할하게 흘러들어오고 나가는 '대로'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 지켜본 우리 부모 세대의 삶은 비록 고단하고 빈궁하였어도 손님대접의 정신이 살아 있던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손님을 대접하려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같아 보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손님대접의 정신이 희박해져가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점점 빈궁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궁핍할수록 힘을 다하여 손님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손님대접을 잘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번영에 이르는 성경적인 길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리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기도할 때마다 희한하게도 주님은 제게 손님을 보내주셔서 대접하게 하셨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은 손님대접이야말로 막힌 재정이 물꼬를 트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니 손님대접의 정신을 가지고 적용한 모든 의인들이 영적이고 재정적인 번영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잘 되는 개인, 잘 되지 않을 개인, 잘 될 나라, 잘 되지 않을 나라, 개인과 교회 그리고 국가의 흥망성쇠의 열쇠는 '손님대접의 정신'이 살아있느냐 죽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투기로 인한 번영은 헛된 것이다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미2:1-3)"

불로소득으로 인한 부의 증가는 결코 오래 가지 않습니다. 부동산투기, 이자놀이, 카지노 등 사행산업으로 인한 부의 증가는 참된 번영이 아닙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특히 땅투기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투기의 대표는 땅투기입니다. 땅투기를 일삼는 개인과 국가는 스스로 패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참된 번영의 기초는 하나님의 원칙, 특히 공의입니다. 공의가 무너지면 참된 번영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공의가 무너진 삶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다할지라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서이르기를술을 가져다가 우리로마시게하라 하는도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러하리라.(암4:1,2)"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개인, 국가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를 행하는 개인 국가는 번영의 길로 갈 것입니다. 공의는 성경적인 번영을 위한 초석입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