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응답의 비밀 IV : 야베스의 기도를 중심으로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9,10)"
기도응답을 받은 성경인물들을 관찰하면서 묵상해보면 나름 기도응답에 관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기도응답의 비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응답의 열쇠는 이름에 담겨 있다!
이게 무슨 말이나고요? 모든 사람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통해 행하시려는 놀라운 계획과 비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입니다. 저의 이름 뜻은 "빛" 그리고 "물"입니다. 세상에 빛과 물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저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사역을 '등불사역'LAMP ministry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저의 정체성, 사역의 정체성은 제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선교지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제 정체성과 사명을 붙들고 기도할 때마다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혹시나 교리적으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다시 설명하지요. 우리의 기도는 믿는 모든 자에게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바로 알고 계시는 분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심을 믿으며)을 받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때 각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려는 독특한 계획과 목적과 사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기도응답을 경험하려면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이름에 암시되어 있다고 또한 믿는 것입니다.
야베스란 인물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야베스의 이름 뜻은 '고통'입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태어난 사랑스런 아기에게 "네 이름은 이제부터 고통이다"라고 할까요? 그런 면에서 야베스는 매우 독특한 이름과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야베스란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아닌 그의 어머니가 붙여준 사실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는 안계셨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을 '고통'pain이라고 명명할 때 그 고통이 어떤 고통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룻기를 읽으면 나오미란 여인이 모압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자신을 나오미("희락"이란 뜻)라 부르지 말고 '마라'("슬픔"이란 뜻)라고 불러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나오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이름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비슷하게도 요셉의 어머니 라헬이 요셉의 동생을 낳으며 죽어갈 때에 아들의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란 뜻의 이름인 '베노니'라고 이름 지었지만 야곱은 '오른 손의 아들'이란 뜻의 베냐민으로 정정했습니다. 실제로 베냐민의 삶이나 베냐민 지파의 역사를 보면 매우 작은 지파이나 유다지파와 함께 매우 힘있는 삶과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유다지파의 '오른손 지파'였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에 그의 삶과 역사가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모가 대충 지어준 이름이 우리의 삶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승리하는 자가 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정체성은 우리의 옛 이름을 구속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응답의 비밀에 관해 유독 '정체성'identity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향해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에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응답의 열쇠가 정체성에 있는 이유입니다.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는 '고통'이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고통이란 어떤 고통일까요?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낳을 때 고통 중에 낳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은 후에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어주는 어머니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하진 않을 것입니다. 아들을 낳은 모든 어머니는 육체적인 고통은 잊어버리고 생명을 얻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인데 야베스의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육적인 고통이 아닌 영적인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불러달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은 후 자신이 겪은 그 특별한 의미의 고통, 영적인 고통, 하나님의 징계를 겪으면서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하게 된 그 특별한 의미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남편을 데려가시기까지 하시면서 자신을 낮추시고 연단하시며 징계하신 하나님의 회초리를 결코 잊지 않으려고 다짐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역대상 초반에 나오는 족보의 기록 목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족보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확보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입니다. 제가 고국에 계신 아버님을 만날 때마다 늘 저에게 "너는 경순왕 몇 대 손이다"라고 늘 족보를 자랑하시곤 합니다. 저에게 경순왕 몇 대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게는 오직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튼 역대기는 갓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황폐한 땅에 다시 터전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는 유대의 남은 백성들을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유대의 남은 자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그 특별한 고통과 고난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 또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했던 자들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말씀이 족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베스의 기도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모든 남은 자들의 기도를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야베스이었기 때문에 그가 '주의 손으로 도와주셔서 고통에서 건져주소서'라고 했던 그의 기도가 응답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어떻게 기도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기도하느냐이다!
많은 분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따라서 합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를 그대로 모방한다고 다 응답되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느냐인 것입니다. 야베스가 "주의 손으로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고통이란 이름의 야베스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기억하고 있는 야베스가 기도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야베스는 모든 형제들 중에서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가 존귀한 자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참된 고통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의미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았습니다. 참 고통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과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배웠고, 그의 아들 역시 배운 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당시에는 슬퍼보이나 나중에는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통과하면서 죄를 미워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그의 형제들 중에서 존귀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진정 '존귀한 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기도하느냐인 것입니다. 참 존귀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주어집니다. 참 존귀는 연단을 받은 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없애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고통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발견하는 기도응답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응답을 받기 전에 '존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고, 그의 존귀는 그의 연단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또 한 가지 그의 존귀함은 그의 섬김과 봉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야베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야베스가 기도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셔서 나의 지역을 확장시켜주십시오."이고, 다른 하나는 "주의 손으로 저를 도와주셔서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입니다. 제가 시작을 야베스의 이름 뜻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두 번째를 먼저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내게 복을 주셔서 내 지역을 확장시켜 주소서"란 야베스의 첫번째 간구를 다루어야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 지역을 확장시켜주십시오."라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세확장, 사업확장, 재정확장, 영토확장..등 확장을 위한 기도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야베스의 기도는 매력적인 기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확장케 해달라고 한 그 지역이 어떤 지역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자기가 원하는 영역에 야베스의 기도를 끼워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베스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지역확장'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힌트를 제공하고 있는 말씀이 역대상 2장 55절입니다.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 종족 곧 디랏 종족과 시므앗 종족과 수갓 종족이니 이는 다 레갑 가문이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 여기서 야베스는 지역 이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은 서기관 종족이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 말씀을 보존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과 전 생애를 바쳤던 사람들입니다. 단지 기록만 할 뿐만 아니라 말씀의 의미를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헌신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야베스가 자신의 지역을 확장케 해달라고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살던 지역이 그의 이름을 따서 불리우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볼 때 야베스가 기도한 '지역확장'은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땅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역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말해서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구한 영역의 확장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말씀사역의 확장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베스는 말씀의 사람이었고,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지역이 확장'케 해달라고 기도한 것은 자신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유익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대상4:9). 야베스가 기도한 "확장의 은혜"는 섬김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3.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손을 구하라!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한번 더 살펴볼까요? 야베스의 기도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주께서 복을 주셔서 내 지경이 확장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주의 손으로 도와주셔서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야베스가 기도하는 것은 '지역확장'과 '고통에서의 구원'이었지만 야베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야베스가 진정 경험하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먼저,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십시오."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복일까요? 야베스의 시각에서 '복'bless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야베스가 확신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매우 중요한 섬김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한 섬김이 제대로 된 섬김이 되고, 더욱 확장이 되고, 후세에 가서도 계속 되려면 하나님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야만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문제가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기뻐하며 만족합니다.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얼굴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금송아지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대신 천사를 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하였을 때(출33), 모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시려거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출33:15). 소원성취보다, 문제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임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33:18)"라고 담대하게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그러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얼굴, 주님의 함께 하심, 주님의 임재가 아니면 내 사역이 확장되는 것은 결코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내 사역이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야베스는 이러한 믿음으로 '은혜와 사역의 확장'이란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간구했던 갈렙의 후손입니다. 갈렙이 가졌던 믿음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했고, 다들 편안한 땅에서 안주하려고 했던 다른 지파들과 달리 갈렙은 정복하기 힘든 산지, 강력한 요새가 진을 치고 있는 산지를 유업으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갈렙이 생각한 것은 강력한 요새가 있는 산지를 정복하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할 것이란 기대였습니다. 지금까지 광야에서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함께 하실 것을 경험하기를 갈구했던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갈렙의 후손인 야베스 또한 다들 생업에 바쁘고 생존하기에 급급한 시대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던 일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의 당대에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기쁘게 응답하여 주셔서 그가 살던 도시가 그의 일을 계승하려는 제자들도 가득차게 하셨습니다. 그가 간구한 대로 하나님은 그의 지경이 확장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그를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갈렙의 믿음이나 야베스의 믿음이나 사실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을 삶의 모든 목표이자 목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 땅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으로 복(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기여하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여 주고 계십니다.
야베스는 또한 "주의 얼굴"만 아니라 "주의 손"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성경을 가르치고 필사하고 보존하는 일이 아무리 선하고 귀한 섬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더러, 주님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구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저를 도와주셔서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야베스는 자신의 이름이 '고통'이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연단하심이었습니다. 야베스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를 간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기쁘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야베스는 매순간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며 그 손을 의지하였습니다. 자기 힘과 능력으로 자신이 겪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사역이 아무리 선하고 거룩한 섬김이라 할지라도 열매맺을 수 없다는 사실이고, 우리가 겪는 문제로부터 우리 힘과 능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얼굴을 종에게 향하여 주셔서 이스라엘을 위한 나의 섬김이 열매를 맺게 하시고,
주의 손으로 종을 도와주셔서 종이 겪는 모든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삶속에 야베스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응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2년 8월 10일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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