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기도응답의 비밀 III

등불지기 2012. 8. 10. 18:20

 

 

기도응답의 비밀 III

 

앞에서는 기도응답의 은혜가 어떻게 오는지 원칙적인 측면에서 묵상한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은혜가 어떻게 오는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제 경험에 근거한 것이므로 참고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1. 재정문제에 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재정문제로 기도합니다. 재정문제에는 빚문제, 보증, 투자, 주식, 등의 문제도 있고, 무언가 구입하기 위해 재정이 필요한데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습니다. 빚과 보증의 문제와 같이 성경에 명백하게 가르쳐주시는 영역과 달리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구입하기 위해 재정을 필요로 할 때는 "하나님, 제게 돈을 주십시오." 이렇게 직접적으로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필요한 재정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어떻게 오는 걸까요? 우선 자녀를 키우면서 배우는 것은 자녀가 무엇인가 필요할 때 "아빠 돈 좀 주세요" 이렇게 요청하지 않고, "아빠, 무엇이 필요해요." 이렇게 하듯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돈을 얼마치 주세요" 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겸손하게 아뢰는 것이 중요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따지듯이 "하나님, 1억만 주세요!"라는 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계산과 생각대로 얼마의 돈을 요구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겸손히 우리의 필요를 아뢰고, 잠잠히 내 필요를 채우시는 그분의 은혜를 신뢰하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재정에 관한 우리의 잘못된 태도와 습관에 대해 깨닫게 해주시기도 합니다. 응답은 그 깨달음에 따라 회개한 직후에 올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것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하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응답은 하나님의 도전에 즉시 기쁘게 온전하게 순종한 직후에 올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필요를 영광 가운데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우리에게 "네가 먼저 주어라" 혹은 "네가 먼저 남을 섬겨라"고 거룩한 부담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받기 전에 먼저 주어야 했습니다. 섬김 받기 전에 먼저 남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재정이 필요할 때면 모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먼저 주려고 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많은 경우에 있어 재정문제에 관해 기도할 때 우리는 큰 영적 전투가 내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 내 삶의 참된 주인인지 갈등하고 씨름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돈아! 너는 내 주인이 아니야!"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냐, 이 둘 중에 갈등하고 전쟁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재정문제에 관련하여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순종이 선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 응답을 바라며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잘 듣는 것입니다.

 

2. 배우자 선택에 관하여

많은 청년들과 이 문제에 관해 상담을 하며 결혼을 도운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결혼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독신의 은사'라는 표현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자신과 하나님을 위해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고 독신의 상태를 즐기고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배우자 선택을 놓고 기도하는 젊은 형제 자매들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로 '배우자상'을 그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선생들이 배우자 기준을 놓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이런 가르침은 이 영역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이러한 배우자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응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응답이 된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면 끔찍한 '재앙'disaster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배우자상 목록'을 가지고 기도했더니 응답되었다는 이야기를 누가 한다면 믿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랑스러운 간증이 아니라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적인 기도는 "이러이러한 배우자를 주십시오."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배우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여야 합니다. 있지도 않는 사람을 상상하며 기도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좁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배우자를 그려가면서 기도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네요. 대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신이 책임을 질 건강하고 성숙한 배우자로 준비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또 어떤 청년은 제게 와서 고민을 털어놓기를 "목사님, 수많은 자매들 중에 누가 하나님이 정해주신 배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결정론적 사고방식 또한 이 문제에 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배우자를 찾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선택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혼은 믿음으로 삶을 주기로(생명을 주기로) 결단을 내리고, 믿음으로 삶을 맡기기로 (순종하기)로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배우자 선택을 놓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오는 것입니다. 즉, 응답이라기보다는 '인도하심'의 은혜입니다. 또 많은 형제 자매들이 (특히 자매들이) 감정의 문제로 힘들어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배우자 선택을 앞두고 자신의 생각, 감정, 가치관, 태도 등이 혼합되어 혼동을 겪는 시기입니다. 먼저 결혼하여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선배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배우자 선택을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제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하여 깊이 묵상해보라는 것입니다. 형제라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하셨는지, 자매라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반응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은 이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은혜를 응답받는 가장 중요한 준비입니다. 형제라면 자신이 선택할 자매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할 수 있는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 것처럼 할 수 있는지를 놓고 기도해야 하고, 자매라면 자신을 선택할 형제를 위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온전하게 복종할 수 있는지를 놓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는 내 기준에 따라 '만나지는 것'도 아니고 또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3. 전공, 학과, 학교 선택에 관하여

어떤 학생은 자신이 원하던 '경영학과'에 들어가지 못하고 '경제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입학을 포기하고 한 해를 재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울 수 있고, 나중에 경영할 때 경제학이 큰 도움을 줄 것을 생각하지 못하더군요. 사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곧바로 진학하기를 고대하고 준비했던 제가 일반대학에 들어가서 안 믿는 친구들과 '세상학문'을 하고,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것에 대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뒤돌아보니까 어릴 적 내 생각이 참 어리석게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대학교 시절에 배운 전공을 살려서 직장을 다니고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대학교 때 영문학을 전공하였어도 20년 목회하고, 또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직업을 구하고 직장을 다닐 때 대학교 때 전공보다는 직업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배운 것이 더 유용할 수 있습니다. 내 관점을 넓혀주기 때문에 유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하여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관점을 넓히고 다양한 전공분야를 갖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영역'에서 전공, 학과, 그리고 학교를 고집하지 않고 반대의 관점에서 기도하며 선택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자녀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합력하여 최선을 이루시고 내가 생각한 차선을 최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4. 건강문제에 관해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 기도를 부탁하고 요청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병낫기를 위해 기도할 때 때로는 그 병을 짊어지는 것이 내게 유익할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기도를 포기하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시를 없애기 위해 세 번 주께 간절히 부르짖었고, "내 능력이 네가 약할 때 온전해진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통이나 고난 속에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고 어떤 이들은 끝까지 싸우고 물리치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통과 고난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는 중에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 육체의 질병은 마음의 문제 혹은 습관의 문제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자신의 문제의 뿌리를 발견하는 것이 이 부분에서 응답을 받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

 

5. 가족의 변화

많은 분들이 가족의 변화를 놓고 기도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부모는 자식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자식이 부모의 변화를 놓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대부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쉽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편이 변하면 자신이 참 행복할텐데"라고 기도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혹은 믿지 않는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응답은 대게 나 자신이 변화한 이후에 찾아옵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변화를 위해서 내가 먼저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기도, 응답받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6. 지도자에 관하여

이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서 마음고생하고 있고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지도자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경우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영적 지도자든 세상 지도자든 함께 중보기도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 방패기도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참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주님께만 영향을 받기로 결심하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그런 경우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자문하며서 반면교사로 삼아서 스스로 리더십 훈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은 사람 지도자에게 대해서 쉽게 영향을 받고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주님께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여러 모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7. 직업, 사역지의 선택에 관하여

모든 직업은 거룩한 것입니다. 목회사역, 선교사역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거룩하고,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자녀를 양육하고 남편을 섬기는 것도 거룩한 일입니다. 모든 일터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보내신 선교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 직장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나 교회 목회지, 혹은 선교지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원리는 똑같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응답하심을 위하여 기도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직업, 사역지, 선교지를 선택할 것인지, 혹은 언제 어떻게 그만둘 것인지 등에 대해서 기도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최선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내 생각에 지름길이 아닌 한참을 둘러가는 우회로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최선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차선을 구속하셔서 최선으로 바꾸어주실 지혜와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니까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경험하려면 우리의 정체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이 '선한 일'(직업, 목회지, 혹은 선교지)을 잘 할 수 있도록,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씨를 뿌리셨고, 나를 준비시키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내 삶에 뿌리신 씨앗을 관찰해보면 하나님께서 어디로 어떻게 나를 인도하실 것인지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훨씬 이전, 제가 코흘리개 아이였을 시절이었을 때에 저는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세계, 미지의 세계에 대해 늘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호기심을 따라 새로운 동네, 마을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리고 자주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저의 부모는 제가 집을 나가서 집을 잃어버릴까봐 늘 노심초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선교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주님이 내 안에 씨를 뿌려주셨다는 사실을 선교지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낯선 마을로 여행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음식을 먹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스겠지만 제게는 신나는 일입니다. 어릴 적 호기심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실수할 때가 많지만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설레는 것입니다. 제가 14살 때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때가 기억납니다. 그 시절에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이 없었고, 여권을 발급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 저는 온 세상을 다니며 영어로 주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소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1980년도는 해외여행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눈만 감으면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졌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무엇을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준비시켜주셨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됩니다. 어릴 적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던 시절이 지금 마을을 다니며 영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신학을 가르치면서 묘한 감동을 줍니다. 어떤 분들은 고생한다고 혹은 수고가 많다고 하지만 글쎄요..저는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것입니다. 지금 제가 누리는 즐거움은 사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가운데 뿌리셨던 씨앗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하심이니라.(엡2:10)" 하나님이 오래 전에 예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오래 전에 내 삶속에 역사하셔서 나를 준비시키셨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인도하심을 받을 것이란 확신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잠잠히 신뢰하고, 결코 조급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음성도, 표적도, sign도 보이지 않을지라도, 때로는 우리가 먼저 용감하게 행동해야 할 때가 있을지라도 기도하고 전적으로 맡기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란 믿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일'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나를 준비시키셨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두시기를 원하시는 곳에 두실 것임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과정일 수 있음을 알고서 하나님을 섬기듯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잠시 하는 일이고, 임시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듯이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두기를 원하시는 그곳'으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회의감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는 것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같이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내 마음에 소원을 부어주셨던 때로부터 선교지에 나오기까지 정확하게 30년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여러 가지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역도 해보았지만 모두 지금 하는 사역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지식도 배운 경험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려면 결코 헛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계산법과 하나님의 시간계산법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그 어떤 일도 무의미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어떤 일도 시간낭비일 수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 어떤 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속에서 의미도, 열정도 발견할 수 없다면 그 원인은 그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도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도 아닌,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자들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012년 8월 10일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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