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비결(1)
이번에는 약간 가벼운 주제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생각과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을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슶니다. 저의 글이 동의를 구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만 저를 아시고 저의 등불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주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볼까 합니다.
먼저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정의를 잘 내려야 하겠습니다. 특히 실용적인 언어인 영어에 비해 문화예술적인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개념정리가 되지 않아서 오해와 갈등이 자주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마다 잘 사는 삶에 대한 생각과 그림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사는 것을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정의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걱정 근심이 없이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마다 '잘 사는 삶'에 대해 정의가 다를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저는 잘 사는 삶을 '자유로운 삶'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라고 정의하고서 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이란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면 자유인으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비결'이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특징'이 더 나을 수 있겠네요..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 글을 쓰는 제 의도는 선교지에서 잘 살아야겠다는 제 열망, 그리고 저를 알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등불후원자들 한 분 한 분이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제 소망을 함께 나누기 원하는 것입니다.
1. 받기 위해서 먼저 주라.
돈이 필요하면 돈을 먼저 주고,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 베풀고, 섬김을 받고 싶으면 먼저 섬기고, 도움을 받으려면 도움을 주고, 신뢰를 얻고 싶으면 신뢰를 주는 것은 성경적인 원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풍요로운 삶이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먼저 줌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고 부요함의 문을 열 줄 아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힘들다는 이유로 움츠립니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부족하다고 인식되는 순간 우리 마음은 위축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주어야 합니다. 베풀어야 합니다. 먼저 섬겨야 합니다. 삶의 궁핍함을 극복하는 비결은 마음의 궁핍함을 부요함으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기 때문에 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가난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주는 것은 자신이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라는 정체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 잘 사는 사람입니다. 진정 잘 사는 사람은 언제나 주는 사람입니다. 궁핍함을 느낄수록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줌으로써 자신이 자유인임을 만끽하는 사람입니다. 줌으로써 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 궁핍할 수록 줌으로써 부요함을 끌어올 줄 아는 사람, 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2. 빚을 지지 말라.
우리는 빚을 지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제가 흑인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면서 관찰하게 되는 것은 흑인들은 빚을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빚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없습니다. 빚을 지게 되면 채권자에게 종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빚을 지는 것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는 행위입니다. 빚을 지게 되면 마음의 자유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우리 모두는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빚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빚이 있고, 조건적인 빚이 있습니다. 전자는 사랑의 빚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랄 때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지는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후원자들의 기도와 후원에 의지하며 살 때 제 마음에는 부담감이 점점 늘어가기만 합니다. 선교사로서 비즈니스를 하여 재정적인 자립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후원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저는 하루 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더욱 절감할 수 있고, 또 후원자들을 위하여 부담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빚과 달리 조건적인 빚은 갚지 않을 경우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강제로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빚을 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늘 근심과 걱정에 눌리게 됩니다. 이런 빚을 졌다면 가능한 빨리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결혼할 때 부모님께서 도와주신 전셋값도 빚으로 여겨 몇 년간 적금 들어 갚아드렸습니다. 빚은 자유인에서 종으로 전락하는 것이므로 잘 사는 삶을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굶는 한이 있더라도 빚을 지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재정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다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빚이 많다면 그 마음에는 자유함이 없고 늘 근심과 걱정에 눌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으면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루 하루 은혜로 살지라도 빚이 없다면 많은 재정을 갖고 있어도 빚이 있는 '형식적인 부자'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정부에서 부채상한기준을 올려서 은행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데 빚을 권하는 정부에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모양으로든 채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잘 사는 비결입니다.
3.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즐기라.
선교사로서 살아가면서 누리는 특권 중에 하나가 손님 대접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 아이들도 잘 아는 구호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손님은 천사다!"라는 말입니다. 손님을 천사같이 여기고 즐겁게 잘 대접하면 항상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도 그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교민의 집은 하숙생을 받습니다. 하숙비를 받는 하숙생과 달리 손님은 일체 숙식비용을 받지 않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하숙생을 몇 명 두면 선교사로서 살아가는데 재정적인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하숙생을 먹이고 공부시키는 등 관리하는데 얼마나 신경쓰이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역에 집중하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재정적으로 약간이 유익을 바라보고 하숙생을 들이는 것보다 재정적인 궁핍을 각오하고서라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사역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잘 했다 싶습니다. 반대로 재정적으로 어려울수록 적극적으로 손님을 잘 대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어라고 했습니다. 돈을 줄 능력이 없으면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재미(?)를 많이 보았습니다. 재정적으로 우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손님이 하룻밤이라도 왔다 가면 식품비나 전기료 등에서 지출이 늘어날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항상 손님이 왔다가면 좋은 일이 생기곤 합니다. 저에겐 그저 '좋은 일'인데 어떤 사람의 눈에는 '기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심리적으로도 부요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먼저 대접하면 대접을 받게 됩니다. 잘 사는 비결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일을 즐기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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