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설교

고난주간설교(6)-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등불지기 2012. 2. 19. 19:21

고난주간설교씨리즈(제6일째)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본문:막14:43~15:47 김 광 락 목사

I. 고난주간 제 6일 째되는 날이다. 오늘을 성금요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님이 고난 당하신 주간에 안식일 전, 즉 금요일에 일어난 사건은 체포당하시고 심문 당하신 일과 빌라도에게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일이다. 오늘 본문은 상당히 긴 본문으로서 마가는 아주 상세하며 정확하고 간결하게 하루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십자가 사건을 정확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요한 사도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정확하게 소개해주고 있지만 사건의 긴박성과 간결성은 마가의 기록이 더 낫다)

II. 오늘 성금요일에 일어났던 사건을 순서대로 소개하면 이렇다:

(1)어제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이 세족의식 전에 가룟유다는 만찬의 자리를 떴다)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로 온 밤을 지내셨다. 만찬을 끝내시고 감람산으로 가신 시각이 아마 9시나 9시 30분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본다. 겟세마네에서 약 2시간 가량 기도하신 것으로 볼 때 거의 자정 가까이 되었을 시각에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인솔한 성전경비병들에 의해서 체포당하시게 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금요일로 넘어가게 된다.

(2)금요일 자정이 넘어서부터 아침 일찍까지 예수님은 6차례에 걸쳐 심문을 당하시게 된다. 먼저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 대제사장에게 보내지게 되고 그 다음으로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보내져서 심문을 당하신다. 그 장면이 14:53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이다. 가야바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을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1.가야바는 예수님을 향해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면 예수님의 출생시에 헤롯이 적대감을 가지게 된 것같이 예수님의 출현으로 자신의 기득권과 위치가 위협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공격하셨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안식일 규례를 비판하거나 기존 전통을 거부하는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거나 자신의 견고한 틀에 과감히 도전하는 예수님의 도전적인 말씀을 수용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신성이나 능력을 못믿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2.그래서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죽일 수 없었다. 왜냐면 유대는 로마법의 관할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간음죄를 범한 자를 처단하는 문제와 같은 도덕적인 문제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으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으며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 흠이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로마법에 저해되는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증인들을 불러왔으나 종교적이고 교리적인 문제일 뿐 정치적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저 침묵하실 뿐이었다.

3.그래서 인내의 한계를 느낀 가야바는 자신이 직접 피고를 심문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야밤에 재판을 여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다가 증인이 없이 대제사장이 직접 피고를 심문하는 것은 더더욱 불법이었다. 묻기를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이 질문에 예수님은 침묵을 깨고 당시 유대적인 용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이 침묵하지 않은 것은 다른 복음서에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시켰기 때문이었다.

4.예수님의 이 대답은 대제사장이 그토록 찾고 찾던 증거물이었다.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5.가야바는 날이 밝으면 빌라도의 법정에 예수를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 확실히 예수를 빌라도가 처형하게 할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즉, 빌라도에게 “이 사람을 석방하면 당신은 가이사의 친구가 아니요”라고 대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6.이렇게 야밤에 신속하게 재판을 결정지으려고 한 의도는 모든 사람이 잠을 잘 때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고 더구나 안식일 전에 처리해야 예상되는 폭동이나 혼란한 민심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7.그래서 금요일 아침이 밝았을 때는 이미 예수님을 충실하게 따르던 자들도 따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진척되어버린 이후였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그저 되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제자들 못지 않게 주님의 십자가에 아무런 일조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고통하며 가슴을 쳤을 것이다.

(3)이 때가 캄캄한 새벽이었다. 이 때 제사장의 뜰에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게 된다. 그의 부인(denial)은 예수님이 예고하신 대로였다.

1.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아마 5-6시간 전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의기양양하게 “다른 제자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그였다.

2.죽음의 위협 앞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식으로 예수님을 철저히 부인했다. 세번씩이나 부인했다.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다.

3.이 사건은 베드로의 영적 교만이 철저하게 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믿음이 더 낫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주님이 그를 특별히 사랑한 것이지 그가 다른 제자보다 믿음이 더 좋아서가 결코 아니었다. 주님이 자기를 수제자로 삼고 가까이 하신 것은 자신의 믿음이 다른 제자들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4.오늘 우리도 그렇게 착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내 공로로 돌릴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주님이 특별히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이 내 믿음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영적 우월감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러한 영적 우월감이 철저히 깨어져야만 한다. 십자가의 은혜는 바로 그런 영적 교만을 깨뜨리는 은혜인 것이다.

5.베드로는 금요일 하루 종일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도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될 때에도 그는 참여하지 못했고 계속하여 울고만 있었을 것이다. 이 깊은 통회가 그를 정말 베드로로 만들어 주었다.

(4)새벽 녂에 72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가 급히 소집되어 결의하고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이것은 소위 날치기 통과에 해당한다.)

1.빌라도는 처음에는 자신이 예수님의 재판사건을 맡기를 꺼려했다. 왜냐면 예수님은 많은 백성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는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복음서를 보면 그의 아내가 그에게 급한 전갈을 보내기를 간밤에 예수 때문에 악몽을 꾸었으니 그 사람과 상관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2.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내었다. 헤롯은 헤롯대왕의 아들로서 갈릴리를 다스리는 분봉왕이었다. 예수님의 고향을 관할하므로 그에게 보낸 것이었다. 헤롯은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졌으나 예수님을 무시하고 욕보인 후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었다. 헤롯 역시 얼마전에 세례요한을 죽인 일로 말미암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처리하기 꺼려했다.

3.빌라도는 처음에는 이 예수를 석방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 의해 사주된 군중들의 흥분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다. 예수님이 침묵하실 때 베드로가 기이히 여긴 것(15:5)은 예수님이 말만 하면 충분히 석방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침묵하심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있어서 신비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피하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침묵하심으로 자신의 죽음을 오히려 받아들이셨다.

4.빌라도는 결국 그 선택권을 군중에게 넘겨주기로 ‘묘안’을 찾았다. 자신의 책임도 면하기 위해서 바라바와 예수 중에 군중이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 일로 자신은 양심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얼마 있지 않아 로마황제에게 소환되어 추방당한 후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5)빌라도는 드디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 때 시각이 오전 8시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1.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온갖 조롱과 채찍을 당하신다. 15:16절에서 20절을 보라.

2.로마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십자가를 등에 지우고 끌고 나간다.

3.골고다(해골이라는 뜻이다)라는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로마군병들은 길을 빨리 재촉하기 위해 루포라는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우게 한다.

4.나중에 이 루포는 초대교회에 있어 사랑받는 일꾼이 되었고, 특별히 사도바울은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영적 어머니로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대신 짊어진 구레네 시몬이 나중에 변화되고 그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족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깨닫게 된 사람이 되어 사도 바울에게 영적 스승이요 영적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그 감화력의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의 십자가였고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도바울의 고백과 신학과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 되었다.

(6)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빌라도가 직접 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이 기록된 나무판대기가 걸렸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오셔서 온 인류의 죄값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다. 이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6시간 동안이었다. 예수님은 이 6시간 동안(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죽음을 서서히 경험하셔야만 했다. 이것은 실로 끔찍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7가지였다.

1.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에 하신 말씀은 세 번이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요19:26,27)

2.그 다음 3시에 운명하시기 직전에 네 마디를 말씀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목 마르다”(요19:28)

“다 이루었다”(요19:30)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3.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믿겠다” “다른 사람은 구원하면서 자신은 구원못하는구나”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들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4.오정 12시가 될 때 온 땅이 어두캄캄해졌다. 이 흑암은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5.예수님이 운명하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이 사건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이제 건물로서의 성전은 이제 막을 내렸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며,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찢어진 육체를 통하여 지성소로 나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주어졌다는 복음의 선포이다.

6.예수님의 운명하심을 보고 최초로 이방인이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정작 회개하고 신앙고백해야 할 유대인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가운데 백부장 이방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복음서의 내용이다.

7.예수님의 운명을 지켜보던 자들은 주로 여자들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대부분의 남자 제자들은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십자가 앞에 남은 제자는 요한 사도뿐이었다. 그러나 여자들만이 남아서 이 큰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한 면을 지니고 있다.

8.여자들 중에 특별히 세 사람의 여자이름이 언급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목격자도 여자들이 최초였다!! 그때 제자들은 절망 가운데 실의에 빠져 있었다.

9.그 세 사람은 이렇다: 막달라 마리아-제일 젊은 여자였다. 그 다음으로,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였다. 그녀는 알패오의 부인이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의 어머니였다. 세번째로 살로매였다. 살로매는 예수님의 이모로서 요한사도와 야고보 사도의 어머니였다.

10.막15:47절에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목격한 여자는 이 중에서 두 명, 즉 막달라 마리아와 알패오(=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였다. 살로매는 어디에 갔을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겼을 때 요한이 실신하게 된 마리아를 등에 업고 안정을 취할 곳으로 갈 때 요한의 어머니 살로매도 같이 따라 갓을 것이다.

(7)이제 해가 거의 저물어 갈 때에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으로서 존경받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담대히 나아가서 예수의 시신을 장사하게 해 달라고 시신을 달라고 요구했다.

1.그는 평소에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고백하지 못했으나 예수님이 죽으시자 예수님을 담대히 고백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다. 때가 늦기 전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려고 결심한 것이다.

2.그는 자신의 무덤에 예수의 시신을 모시려고 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로 했다.

3.본문에는 나와있지는 않지만 같은 공회원으로서 니고데모가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의 매장을 함께 도왔을 것이다.

III. 적용해보자.

(1)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오히려 피하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셨다. 이것은 빌라도가 가장 이상하게 여긴 부분이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더 살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정반대였다. 이것은 우리들의 죄 때문이었다. 주님이 죽으시지 않으면 내 죄문제는 해결될 수 없었다.

(2)십자가의 참혹하고 끔찍한 광경 앞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하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슴을 치며 우는 것이다. 갈보리 언덕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크게 이렇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오늘 십자가의 참혹한 광경 앞에 당신은 어떠한가?

(3)제자들이 십자가 앞에 다 도망가고 없을 때 오직 몇몇 힘없는 여자들이 끝까지 남아 주님의 운명하시는 골고다 언덕을 지킨 것을 보라. 주님이 고난당할 때 나는 도망가는가? 아니면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키는 그런 사람인가?

(4)지금까지 예수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계기로 백배의 용기를 얻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를 생각해보라. 용기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십자가를 바라보라. 두려움을 이기고 싶은가? 그러면 십자가를 응시하라. 질병이나 마음의 쓴 뿌리로 인해 고통스러운가? 그러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주님의 고통을 마음으로 그려보라. 내게 상처입힌 원수를 향해 용서하기가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라: “주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