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Aardklop

등불지기 2012. 10. 18. 16:50

 

Aardklop은 "아르뜨클롶"이라고 발음하는 아프리칸스어(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델란드계 백인들의 언어로서 화란어와 7-80% 유사함)를 구사하는 아프리카너(Afrikaaner)의 문화축제cultural arts festival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구 약 5천만명 중에서 8% 정도가 네델란드계 백인으로서 영어가 아닌 아프리칸스(화란어가 변형된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매년 제가 사는 타운인 포체스트롬에서 문화축제를 벌입니다.

 

 

인구 5만 정도 되는 작은 도시인 포체스트롬에 전국에서부터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백인들이 15만여명이나 모여듭니다.

매년 9월 마지막 주 혹은 10월 첫 주가 되면 열리는 이 행사는 1998년부터 시작되었고 2012년 15회를 맞이했습니다.

이 축제를 통해 아프리카너의 의식과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도시에 음식업을 하시는 교민 가정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아르뜨클롶'에서 한 자리를 임대하여 가게를 차렸습니다.

사람많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아주 싫어하지만 얼굴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왔습니다.

 

 

일명 "회오리감자"를 팔고 계시는군요..핫도그도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아프리카너의 축제이지만 여러 인종이 와서 장사를 합니다. 오래 전 시리아에 전도여행을 갔을 때 먹어본 음식인데 이름이...생각나지 않네요..이분은 실제로 다마스쿠스가 고향인 무슬림입니다.

 

 

다양한 모양의 점포, 상품, 행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딸들이 좋아하는 구슬아이스크림입니다..일년에 한 번 이곳에서 사줍니다..

저는 여자들이 먹는 모습만 보며 눈으로만 먹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왁자지껄하고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는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것을 너무 싫어합니다.

스피커와 우퍼를 얼마나 크게 틀어놓았는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입니다.

 

 

 

음식만 아니라 각종 그림이나 공예품crafts도 팝니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너무 비싸서 구경만 합니다.

 

 

각종 공예품도 팝니다.

 

 

아프리칸스Afrikaans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프리카너Afrikaner는 주로 내륙에 살고, 해변 도시에 가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영국계 백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백인이라고 해서 다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나이든 사람 중에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들에게 영어는 한국사람과 같이 외국어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영어로 물어보면 일부러 아프리칸스어로 대답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너들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정착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하고, 특히 다이아몬드와 황금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계 백인과 화란계 백인간에 벌인 전쟁인 보어전쟁Boer War (1899.10.11-1902.5.31)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은 영국이 1차 세계대전 전에 벌인 최대의 전쟁으로서 이 전쟁때 화란계 백인은 영국계 백인들로부터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아프리칸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들에게 영어가 아닌 아프리칸스어로 몇 마디 해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아프리카너들은 매우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백인들입니다. 사귀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친절하게 대하는 것같지만 결코 자신들의 마음을 열어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길에서 만나면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이지만 그것은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오"라는 뜻이고, 그들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같은 성향은 그들이 이땅에 정착한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이땅에 정착할 때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하려고 애써왔기 때문에 그들의 성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교회에 가보면 영어가 아닌 아프리칸스어로 예배가 진행되고 설교도 이루어집니다. 대부분의 백인교회가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데 간혹 나름 깨어있고 선교를 강조하는 교회는 영어로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하느냐'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너들의 교회 중에서 흑인타운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거나 사역을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만의 예배요, 그들만의 교회인 것입니다. 혹 그들이 선교를 한다고 해도 이웃에 있는 흑인마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에 대한 것일 뿐입니다.

 

 

아프리카너들은 화란 개혁주의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의 신앙 역시 보수적입니다. 그러나 선교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아파르트헤이트 기간에 흑인들이 백인정권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소외를 당할 때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보수적인 신학으로 유명한 백인들의 신학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불의가 강물같이 흐르던 시절에 침묵했습니다. 백인 목사들과 신학박사들과 교수들은 흑인들이 압제받고 차별당할 때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백인정부를 옹호했고, 하나님도 만물을 그 종류대로 만들지 않으셨냐고 하면서 그들은 단지 구별했지 차별하지 않았노라고 궤변을 만들어 자신의 침묵을 정당화했습니다. 지금도 포체스트롬 신학교 교수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닌 신대원은 화란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학교였는데 아프리카에서 보는 화란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는 선교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신학과 설교는 선교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왜 현실에서는 이웃이 고통당하고 있었을 때 철저히 침묵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웃이 고통당할 때 침묵하면 그때는 좋고 편할지 몰라도 나중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복음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져버렸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프리카에서 바라보는 화란 개혁주의와 칼빈주의의 한계입니다.

 

 

무엇이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를 이렇게 선교에 있어서 꽉 막힌 한계에 가두어버렸을까요?

제가 이해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교회가 진리와 싸워 거짓을 드러낸 것에 대해선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았ㅈ만 그러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엄중한 책망을 들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교회와 신학교 지도자들이 진리를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고 진리가 아닌 것과 싸우기 시작하면 점점 선교적 열정은 사라지게 되고 선교는 이론으로서만 남게 되고 현실에서는 선교에 관심도 실천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견지하고 붙들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그 말씀, 진리를 전파하려는 그 열정입니다. 진리를 전파하려는 그 열정은 교회가 잃지 말아야 할 처음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처음 들어온 아프리카너들에게는 복음전파가 목적이 아니라 정착이 목적이었고 이땅의 보물들을 차지하여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학 역시 선교보다는 보수주의적 개혁주의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교회역사를 보더라도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주도한 개혁자들 시대에 선교는 사실 후퇴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틴 루터는 대부분 선교공동체였던 수도원을 없애버렸지요. 마찬가지로 원래 이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토착민들로부터 자신들의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식민주의 백인들로서는 그러한 개혁주의 성향과 맞아떨어졌습니다. 자신들끼리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는데 열심이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때 침묵했던 것은 그들의 신학적 전통과 경향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를 보호하는데 관심을 두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균형을 상실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은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모든 것을 잘 지키도록 하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목표가 되어버리면 위의 사진과 같은 꼴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견고한 울타리를 만들어 안전하게 하고 조그만 창을 하나 내는 정도입니다. 기독교 신학과 신학교의 목표는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수비가 아니라 공격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멋지게 보이는 것 뒤에 허탈함이 있고 화려함 이면에 공허함이 있습니다. 멋지게 보이려는 것에 신경쓰다보면 정말 멋진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사수하기위해 분투하다가 결국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종종 거짓과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정말 중요한 것(복음의 열정)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선교사인 제게도, 혹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단체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ㄱ회 사역자를 길러내는 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사역과 신학교육의 최우선 목표는 진리사수가 아니라 진리전파여야 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진리는 사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파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들이나 민족들을 향한 복음의 열정이 없다면, 복음으로 세상에 선한 충격을 주는데 관심이 없이 다만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면, 자기들끼리만 구원받겠다고 하는 사이비 집단과 무슨 차이가 있으며, 신학교가 자기들만의 주장과 논리를 지키는 것이 전부라면 세상을 벗어나 은둔하였던 중세 수도원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주님의 분부를 어떻게 하든 이루는 것이 신학의 목표요, 교회의 비전이요, 삶의 의미여야 합니다. 아프리카너들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행사도 하고 공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만의 행사에 불과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많은 모임도 있고 행사도 잦지만 자기들만의 모임, 끼리끼리의 행사일 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큰 분부에는 관심도 없어보이고, 주님의 분부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상관이 없어보입니다.

 

 

Aardklop은 포체스트롬에서 매년 열리는 문화축제로서 아프리카너들만의 축제입니다.

왜 이 축제를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인 포체스트롬에서 열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포체스트롬이 지금은 비록 작아도 옛날 아프리칸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아프리카너들이 내륙지방에 오렌지 팔 공화국이란 이름의 나라를 세웠는데 그때 수도capital city가 바로 포체스트롬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라벌'이었던 경주인 셈입니다.

Aardklop을 둘러보면서 아프리카너(아프리칸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화란계 백인)의 사고방식, 가치관, 의식과 생활양식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포체스트롬Potchefstroom에서의 아르뜨클롶이었습니다.

 

2012년 10워 18일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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