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Boer War

등불지기 2012. 10. 18. 19:12

 

여행은 늘 현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역사공부는 아주 의미있는 여행입니다. 역사여행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남아프리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보어전쟁터'로 여러분을 안내할까 합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성장과정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한 나라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반드시 그 나라의 역사를 현지인 못지 않게 공부해야만 합니다.)

 

 

보어인Boers은 남아프리카(남아공,나미비아,짐바브웨,잠비아,보츠와나,등)에 정착하여 사는 네델란드계 백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어전쟁Boer War이란 보어인들과 영국인들과 벌인 전쟁입니다.(1899.10.11~1902.5.31) 당시 지도를 보면..

 

 

지금의 나미비아는 독일이 다스리고 있었고, 지금의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이, 그리고 남부 아프리카는 대부분 영국이 식민지배하고 있었고, 가운데 오렌지 색의 영토는 네델란드계 백인(보어인)이 오렌지-트래스발Transvaal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자치국을 이루며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어인들이 세운 공화국은 두 개였습니다. 북부 공화국은 트랜스발 공화국으로서 수도는 제가 현재 살고 있는 포체스트롬이었고, 남부 공화국은 오렌지 공화국으로 수도는 블룸폰테인이었습니다.)

 

 

보어전쟁은 나폴레옹 전쟁과 세계 1차 대전 중간에 영국이 벌인 가장 크고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전쟁이었습니다.

영국군의 군대는 약 50만명, 보어인들은 9만여명 정도였습니다.

보어인들의 규모나 무기에 있어서 매우 열세였으나 영국군은 보급로가 길었고 반면 보어인들은 수비위주의 전술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었습니다.

 

 

잘 훈련된 영국군과 달리 보어인들은 대부분 농부들로 구성되었고, 전술은 주로 게릴라전 형태로 수행되었습니다.

아래 영국군의 잘 훈련되고 조직된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전쟁은 1899년 10월 11일 시작되었는데 전쟁의 원인은 오렌지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파울 크뤼에르 대통령이 보어인들에게 외국인으로 불렸던 영국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영국이 반발했기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트랜스발 공화국에 세계적인 금광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은 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의 통화시스템과 특히 영국의 통화가 금에 의존하기 시작했었는데 당시 세계 최대의 금광이 트란스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South Africa의 9개 주province 중에 하나인 North West에는 아직도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플라티늄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주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인 N12 (N은 National road를 나타냄)의 이름이 Treasure Route입니다. 지금도 자동차로 N12를 달리다보면 좌우에 광산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은 3시기로 나눕니다. 1시기는 남아프리카에 있던 영국군이 보어인들의 공격에 당했던 시기이고, 전쟁 2시기는 영국군 지원부대가 보강되면서 서로 일진일퇴의 대등한 싸움을 벌인 시기였습니다. 3시기는 영국군이 잔혹하게 보어인들을 공격함으로써 결국 보어인들이 항복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영국군은 보어인들에게 초토화 전술을 써서 보어인들에게 보복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보어인들과 많은 농장들이 영국군에 의해서 파괴당하기 시작했고, 시골에 살던 보어인들은 강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때 보어인(네델란드계 백인) 여자들과 아이들이 비참한 고통을 겪게 되면서 영국은 세계적인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2만 명 이상 보어인 여자들과 아이들이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막강한 지원군과 보급물자를 동원해 공격한 영국군에 의해 결국 수세에 몰린 보어인들이 1901년 3월 평화협상을 제안했지만 결국 거부당하고 1902년 5월에 베레니깅 평화주약이 체결되면서 오렌지공화국은 자치권과 독립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당시 사용된 지도입니다.

이 보어전쟁은 결국 네델란드계 백인들만의 공화국인 오렌지 공화국(지금도 네델란드 축구선수들은 오렌지 유니폼을 입고 있지요)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 전쟁을 통해 형식적으로는 영국계 백인과 화란계 백인들이 서로 평화조약을 세워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보어인들은 영국인들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삶은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과 방패를 사용하던 현지인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한 보어인들과 영국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이 전쟁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겉으로는 친절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탐욕과 정복욕으로 가득찬 백인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나라에서 만난 백인들이 친절하고 좋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면 다들 친절하고 예의바릅니다.

그러나 역사를 알면, 그리고 좀 더 깊이 사귀어보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어떤 선교사님은 백인들에 대해 치를 떱니다. 깊이 사귀어보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선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코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고, 돈 앞에서 가혹하고 매정하다고 하시면서 고개를 절레 흔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직 초보자이고 백인들과 만날 일도 별로 없고 또 깊이 사귀어본 적도 없어서 그 정도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로서 이 땅에 살면서 8-10%의 백인들보다는 90%가 넘는 소외되고 가난한 흑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면서 백인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아마도 백인들에 대해 느끼는 흑인들의 생각이 제 안에 깊숙히 들어와버렸나 봅니다.

 

세계 선교학계에서 발표하고 세미나를 주관하는 선교학회의 리더들은 모두 서구의 아프리카 선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리빙스턴을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적인 선교사로 말하고 있는데 반해 아프리카 흑인들의 시각에서 본 리빙스턴은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적 침략에 결정적인 정보를 준 길잡이요 전령입니다.

서구 신학교나 서구 선교학계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다분히 자신들의 약점과 한계를 무시하고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구 선교가 얼마나 식민지배와 황금을 향한 탐욕에 눈 먼 서구열강의 침략과 맞물려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할런지 몰라고 실제 아프리카 흑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성경은 전달했는지 몰라도 복음을 제대로 전했는지, 집을 지어주고 도로를 건설했으나 현지인들에게 성경적인 세계관을 제대로 심어주었는지 매우 의문이 듭니다.

아프리카 어디를 가더라도 흑인들이 운영하는 신학교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입니다.

지식의 열쇠는 백인이 계속 쥐고 있으면서 결코 현지인들에게 그 열쇠를 넘겨주지 않았는데 어찌 성공적인 선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금광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계 백인과 네델란드계 백인이 생사를 걸고 벌인 전쟁..

보어전쟁을 통해 황금을 향한 백인들의 무서운 탐욕을 들여다보며 강대국간의 전쟁 속에 소외되고 버려진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의 아픔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글을 쓰고서 다시 읽어보니.. 

제 자신이 아프리카 한인 선교사로서 아프리카에 사는 백인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편견이든 무엇이든 간에 부정적인 관점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흑인 지도자를 키우는 목적으로 사역하다보니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관점도 제 안에 들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아프리카 역사를 알아가면서 또한 그러한 인식이 강화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저와 같이 사역하고, 저와 같이 아프리카 역사를 공부했다면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들과 나름 선교사역을 하는 한인 사역자들도 많이 만나보게 됩니다.

백인들에게는 굽신거리면서도 흑인들에게는 고압적인 한인들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납니다.

백인들 앞에서는 위축되지만 흑인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한인들을 보면 화가 많이 납니다.

 

심지어 선교사라고 하면서도 흑인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분들을 보면 더욱 속이 상합니다.

신학을 하고 안수를 받은 목사인데 흑인들은 '저주받은 함의 자손'이라고 서슴치 않고 말하거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국말로 비어와 속어를 쉽게 내뱉는 그런 '선교사들'을 보면 분노를 넘어서 서글퍼집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흑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한다고 하면서 자기 집에는 흑인을 메이드domestic worker로 부리면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 자녀들이 집안에서 흑인을 부리면서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그 자녀들이 자라면서 현지인들을 향한 존중과 사랑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이 그 마음에 만들어지겠습니까?

선교사의 자녀들이 현지인을 존중하는 모습을 그 부모를 보며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메이드나 가드너를 두지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집 아이들이 제가 섬기는 흑인 목회자들을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깎듯이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게 합니다.

 

메이드나 가드너를 두는 모든 한인들을 제가 뭐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가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이웃을 사랑하자고 하면서, 교회에서 모일 때마다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집안에서 일하는 메이드나 가드너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심한 말을 한다면 이것이 합당한 일이겠습니까?  

나와 가까이 있는 현지인들이 상처를 받으면서 먼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아주 오래전에 인도에 단기선교를 갔을 때 현지인 택시 운전사를 향해 현지어로 욕을 한 바가지 쏟아붓던

선교사님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쓰라린 상처가 얼마나 크면 저렇게 하나 싶지만..

현지인들에 대한 분노와 상처를 안고 어떻게 선교사역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배신과 상처와 강도와 도둑을 맞아 흑인들만 보면 이가 갈린다고 할지라도

원수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스스로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선교지에서 철수해야 합니다.

현지인들에 받은 상처 때문에 계속 괴로워한다면 진지하게 사역을 접고 철수할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음의 어려움을 계속 떠안고 사역을 계속 하라고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모든 한인들에게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현지인들이 아무리 무식하고 무지할지라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비웃거나 차별함으로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모양이든, 어떤 말로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받으신 그리스도께 중대한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백인들로부터 착취와 상처를 넘치게 받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더 가졌고 더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또 다시 아픔과 고통을 주어서야 되겠습니까?

가슴 찢어지는 고통으로 호소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한인의 핏속에는 차별의식이 흐르고 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 사대주의, 오랑캐,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하고 무시하는 것이 몸에 배인 민족이 아닙니까?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지지 못한 자를 무시하는 것이 한국 사람의 못된 습성이 아닙니까?

그래서 월세를 살더라도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옷은 잘 입고 자동차는 멋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허영과 허세가 남다른 민족이지 않습니까?

 

한국은 예로부터 사대주의사상에 젖어 왔습니다. 큰 대륙 중국 앞에서 굽신 거리고

키 크고 피부가 하얀 코쟁이 앞에서 스스로 작아지고,

하지만 배우지 못했다고, 양반 출신이 아니라고, 못생겼다고, 양반 오랑케 운운하면서 사람을 차별해온 역사 속에서

태어난 한국인들은 그 혈관 속에 차별의식이 흐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프리카에까지 와서 못된 한국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사는 모든 한인들은 더욱 조심하여야 하고 더욱 반대정신counter spirit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말과 의식 속에서 '차별주의의 망령'을 멀리, 아주 멀리 쫓아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한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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