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관계에 관하여 I
How to deal with broken relationship
지난번에 올린 [거절]에 관한 글에 이어 이번에는 [깨어진 관계]에 관하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실제적인 생활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인 삶의 영역에 적용해보려고 하는 것이 저의 의도입니다. (두 번에 나누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깨어진 관계의 파괴력
얼마 전 뉴스에 친구가 친구를 잔인하게 살인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친구가 친구를? 하지만 이런 사건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형이 동생을 무참히 살해한 이야기를 우리는 성경에서 보지 않습니까? 제가 오래 전 전방에서 군복무 할 때 탈영하거나 자살하는 사건 사고를 자주 듣고 보곤 했는데 대부분이 애인의 변심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거절감과 분노도 크고 상처는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습니다. 그리고 깨어진 관계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파괴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깨어진 관계가 주는 파괴력을 알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만약 관계가 깨어졌다면 어떻게 봉합해야 하는 걸까요? 관계가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문제에 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걸까요?
인생길에서 겪는 교통사고
깨어진 관계broken relationship이란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되고, 사랑했던 부부가 서로 돌아서고, 화목했던 관계가 갑자기 불화하게 되고, 서로 축복하던 사이가 느닷없이 저주를 쏟아내는 관계가 되는 사건accident을 말합니다. 운전을 잘 하며 가는데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편 차선에서 자동차가 이탈하여 큰 사고가 나는 것과 같이 '깨어진 관계'는 인생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입니다. 나는 결코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나는 결코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었는데, 나는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아주 사소한 어느 '변수'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큰 '변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 정도의 변수는 대수롭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평소에는 좋아보이다가도,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을 것인데,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와 같이 치유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파괴력으로 소중한 관계를 부서뜨리는 것을 경험할 때 사람은 큰 충격과 상실감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없으면 부패하기 쉽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런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 걸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될 때 상대방은 그 관계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관계는 맛있는 음식과도 같아서 부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더운 지방의 음식이 짠 이유는 쉽게 상하기 때문이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상하기 쉬운 취약성vulnerabil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 관계에도 소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50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관계의 핵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관계는 원래부터 상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면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말씀은 관계란 부패하기 쉬운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와 너가 맺은 관계가 아무리 좋고 우호적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퀴퀘한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울와 다윗의 관계
우리는 성경에서 많은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무엘서를 읽어보면서 인간관계에 관하여 묵상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울왕을 보십시오. 사울왕은 처음 다윗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고 좋아했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울왕은 다윗에게 창을 던집니다. 사울을 향한 다윗의 마음은 그대로인데 다윗을 향한 사울의 마음이 갑자기 변심을 한 것입니다. 이런 갑작스런 감정의 변동에는 원수 마귀의 개입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빈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토대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 성숙하지 못한 사람,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은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손쉬운 먹잇감입니다.
다윗의 아들들
또 다윗이 사랑하였던 아들 암논과 압살롬을 보세요.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향하여 뜨거운 연정을 품었지만 그의 감정은 순식간의 증오심으로 돌변하고 맙니다. 또한 압살롬은 형 암논을 향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가 형을 죽여 버리고 더 나아가 아버지 다윗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왕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 했던 압살롬이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하자 다윗은 "압살롬아, 압살롬아"라고 슬피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쿠테타
이외에도 다윗에게 믿을만한 모사였고 친구였던 아히도벨이 다윗을 향하여 쿠테타를 일으키는 주역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늘 동고동락하며 서로 신뢰하고 서로 도움을 주던 아름다운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되어버린 일들이 성경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는 어릴 적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목사와 장로와 교인들이 어느 날 두 패로 나뉘어서 손가락질을 하며 서로 소송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서로 사이좋았던 친구들이 부모 때문에 서먹해졌을 때 어른들에 대해 가졌던 분노와 원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깨어진 관계가 주는 나쁜 영향 세 가지
이와 같이 소중한 관계가 깨어짐으로서 겪게 되는 아픔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서운 것입니다. 첫째, 깨어진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의 싸움 때문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녀들이 관계가 서먹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교회를 등지기 시작하고 교회생활을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모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교회생활에 냉소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깨어진 관계는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줍니다. 깨어진 관계를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기란 어렵습니다. 왜냐면 깨어진 관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깨어진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이유입니다.
둘째, 깨어진 관계는 예배를 오염시키고 기도를 가로막습니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은 깨어진 관계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가증한 것" "무거운 짐" "헛된 예물" "더러운 피가 가득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고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5:23-26) 베드로 사도 역시 깨어진 관계가 기도생활을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이처럼 깨어진 관계는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셋째, 깨어진 관계는 단지 감정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거짓맹세를 하게 하여 평생 거짓말의 노예로 살게 합니다. 관계가 깨어질 때 사람은 거절감rejection, 분노anger, 상실감loss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리고 깨어진 관계를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하지 말아야지"I will never do that! 혹은 "다시는...하리라"는 다짐을 굳게 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거짓맹세'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말에 노예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깨어진 관계로 말미암아 깊은 상실감과 거절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하나 두고 봐라"는 식으로 맹세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말씀이 아닌 거짓말에 속박하게 만듦으로써 결국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리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방
그러면 이미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과연 깨어진 관계의 치유는 가능한 걸까요?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깨어진 관계의 치유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 깨어진 관계의 치유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잠언에서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치유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이 말씀은 깨어진 관계의 치유가 기적이라고 말씀하면서도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점을 바꾸라!
하나님의 첫째 처방책은 이것입니다. 깨어진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가 깨어질 때 이유와 원인을 분석하느라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바라보며 한 숨만 길게 쉬고 있습니다. 이미 깨어졌으면 깨어진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집중하면서 계속 마음 아파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깨어진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서 노력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어진 관계에서 나의 노력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손을 털고 일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우리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가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주실 수도 있습니다.
풀어주라
둘째 처방전은 이것입니다. "나를 위해 용서하는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용서하라"고 하면 다들 펄쩍 뛸 것입니다. "아니,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용서해야 하지?"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내가 왜 용서해야 하지?" 우리는 용서를 하기 위해서 용서가 무엇이며 어떤 것이 참 용서인지 먼저 배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용서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용서란 풀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란 채무를 면제해주는 행위입니다. 용서란 고소를 취소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는 용서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용서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는데 틈만 나면 분노를 쏟아냅니다. 용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용서해야 하는 겁니까? 용서는 그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음으로 우리 자신을 결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 우리 스스로 예배와 기도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용서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고, 우리의 기도가 열납되도록 하기 위해 용서하는 것입니다.(마태6:15절 참조) 내가 용서한다고 깨어진 관계가 당장에 회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떠나보내라!
세 번째 처방책은 "축복함으로 상처를 봉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용서와 화목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함으로 우리 자신을 풀어놓게 되지만 용서한다고 곧바로 깨어진 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책임이고, 회복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깨어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화목한 관계를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화평한 관계를 추구해야 하지만, 만일 관계가 이미 깨어져버렸다면 그 상황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쓰되, 용서함으로 자신을 풀어주고, 축복함으로써 상대방을 떠나보내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깨어진 관계를 봉합하게 합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풀어놓는 행위이고, 축복하는 것은 떠나보내는 행위입니다. 만약 믿었던 친구가 나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고 떠나갔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래, 친구야! 잘 먹고 잘 살기 바란다!" 용서와 축복은 다시 회복하고 화목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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