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책망의 기술

등불지기 2012. 11. 17. 00:32

 

 

책망의 기술

 

대학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읽었던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이 생각났습니다. 그땐 그냥 사랑하면 되지 사랑에 무슨 기술이 있나 싶었는데 사랑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아, 이렇게 사랑하는 거구나'라고 배워야 비로소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배운 만큼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1Jn.4:19

 

사랑의 기술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기술art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늘 실수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한 저의 마음에 새기고 또 연습하고 연마하려는 것들입니다. 사랑의 첫 번째 기술은 [책망의 기술]입니다.

 

"책망하는 것도 기술이다. 책망은 받은 대상이 얼굴을 붉히거나 노여워하지 않게끔 부드럽게 책망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 방법을 익히라."-프란시스 내터배리

 

책망도 사랑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책망도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언 27:5,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진짜 친구는 내 얼굴을 보며 나의 허물을 지적해줄 줄 아는 친구입니다. 면책open rebuke은 숨은 사랑hidden love보다 낫습니다. 나의 허물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는 나의 멸망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허물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친구라면 그의 허물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잘 보지 못하는 숨은 허물을 보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친구입니다.

 

존재와 행위를 구분하라

 

이것은 책망의 제일 원칙입니다. 친구의 허물을 친구에게 보여줄 때 행위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존재에 관하여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우리의 존재에 대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자녀가 실수를 하였다면 실수를 한 그 행위를 지적해야지 '실수투성이'trouble-maker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책망과 정죄의 차이

 

어떤 사람들은 비난하고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책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책망하는 것과 비난하는 것의 차이는 하나님과 원수 마귀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책망은 사랑의 행위이지만 비난과 정죄는 파멸의 행위입니다. 정죄는 행위를 교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행위를 교착시키는 행위입니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수치심 여부에 있습니다. 우리는 책망하되 죄의식과 수치심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상대방을 죄의식과 수치심에 가두어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책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수치심을 주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비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는데"라는 말은 결코 올바른 책망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받는다는 자의식을 보호하라

 

내가 책망을 받을 때 "아, 나는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느낍니다. 반대로 비난과 정죄를 받을 때 "아, 나를 미워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책망을 할 때 책망을 받는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비록 책망을 받을 때 아프고 또 슬프겠지만 '내가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과 감정은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책망의 목적을 알라

 

책망이 사랑의 기술인 까닭은 책망을 통해 사람이 정결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망을 하는 목적이 '성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책망을 통해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또한 우리를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존재'로 세우기 위함입니다.(골1:22) 또한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에도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자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딤전3:10; 5:7; 6:14; 딛1:6,7) 만일 잘못을 행하였는데도 책망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더 큰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책망은 나중의 큰 심판을 면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랑인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 책망하라

 

성경은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말합니다.(잠6:23) 지혜를 주는 말씀은 '책망과 꾸지람'의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걷어내기 위해서 꾸지람이 필요합니다. 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 책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자를 지혜로운 자로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생애를 비교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야생활입니다. 광야생활은 곧 하나님의 꾸지람을 경험하는 기간입니다. 광야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울은 위기의 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하지만 광야생활을 경험한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냅니다. 결국 사울에게 피하여 도망 다녀야 했던 다윗의 광야생활은 다윗을 살리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책망하기 전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책망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 다른 사람의 숨은 허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책망과 비난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쉽게 말하는 것은 책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점검하고 자신을 먼저 교정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허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서들을 읽어보면 선지자들은 책망의 말씀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곧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먼저 책망을 받으며 깊은 고통을 겪는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은 먼저 회개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책망하기 전 분별하라

 

책망에 관하여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은 다소 이상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 책망의 말씀은 '거룩한 것'이며 값비싼 '진주'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책망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책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책망을 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분별이 필요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책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칭찬도 책망의 일부다

 

요한계시록의 2,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향해 책망의 말씀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책망하실 때는 반드시 먼저 칭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망을 할 때 예수님의 이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책망을 하기 전에 먼저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칭찬을 할 줄 모르면 책망도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칭찬할 일을 모르면 책망할 일도 모르는 것입니다. 책망하기 전에 먼저 칭찬을 하시는 예수님의 방법! 참 멋진 책망이지 않습니까?

 

시금석으로서의 책망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9:7,8)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거만한 사람을 책망하면 오히려 미움으로 돌아오지만 겸손하고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할 때는 사랑과 존경으로 돌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인지 아는 방법은 책망을 해보면 알게 됩니다. 책망을 받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핍박을 받으며 광야생활을 하던 것이 다윗에게 '책망의 시기'였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책망의 시기period of rebuke가 찾아올 때 어리석은 자처럼 낙심하고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침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5-10)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죄와 불의로부터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책망하라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2:11-14)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율법주의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고 비록 베드로라 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자신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바울이었지만 그는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얼굴을 대면하여 책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책망입니다. 베드로를 책망했던 바울의 책망입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했던 책망입니다.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외식하려는 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이 책망은 교회를 정결케 하는 것이기에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베드로를 책망했던 바울의 책망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같이, 바울과 같이 책망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책망 앞에 낙심하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김광락 선교사 올림

 

P.S.

 

예수님은 물에 빠져들어가는 베드로의 연약한 믿음을 꾸짖기 전에 먼저 그의 손을 붙잡아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14:31)

책망보다 칭찬이 먼저요, 꾸지람보다 구원의 손을 내밀어 붙잡는 것이 먼저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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